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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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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후 원작을 다시 펼쳐들었다. 이 작은 책이 엄청난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구면인데도 매번 처음인 듯하다. 모국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눈에 꽂히는 문장이 읽을 때마다 다르다. 이번에는 한 개인의 역사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다.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기억과 입증(corroboration)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책을 마주하는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연말 증후군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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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본 후 원작을 다시 펼쳐들었다. 이 작은 책이 엄청난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구면인데도 매번 처음인 듯하다. 모국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눈에 꽂히는 문장이 읽을 때마다 다르다. 이번에는 한 개인의 역사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다.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기억과 입증(corroboration)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책을 마주하는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연말 증후군도 한몫했겠지만 예순이 넘은 주인공이 건네는 말을 듣자니 삶의 공허함이 온몸을 강타했다. 평온하고 싶고(peaceable) 그럭저럭 괜찮게 살았다는 말 한마디 듣는 일이 이리 녹록치 않다.

 

  아무래도 주말동안 감기 몸살이 더 심해질 것 같아 찾은 병원은 독감 판정 검사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수고한 한해를 보냈을 거라는 생각에 새삼 시간과 흐름에 마음이 머문다. 가급적 덤덤하게 기술하던 토니 웹스터가 매달린 말이 겨우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인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아팠다. 남의 말이 중요하지 않다면서 우리는 암암리에 타인의 판단에 기대고 인정을 갈구한다. 어쩌면 이 한권의 책은 그런 자신에 대한 마음 정리이며 변호이다. 물음조차, 아니 대답할 기회조차 없이 끝()나버릴지 모르는 삶에 대한 반론 제기인 것이다.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고, 괜찮은 삶이라는 평을 듣고자 각자의 방식대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삶을 길게 놓고 봤을 때 아주 조금의 찰나적인 환희와 그에 상반된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권태와 힘겨움이 공존한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사는 데는 분명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소설의 구절처럼, 인간에게는 자기 보존의 욕구가 있는데 아마 주인공도 전부인과 딸이 없었다면 어느 날 날아든 한통의 편지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온 삶에 대한 평판 앞에 완벽히 자유롭고 떳떳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뚜렷한 진술이나 확증 없이 홀로 삶의 심판대에 서는 일은 퍽퍽하고 모양새가 좋지 않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과의 차이이기도 한데 남의 삶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을 기술하는 믿을 수 없는 화자라서 옮기는 걸음마다 불안하고 쓸쓸하고 허망했다. 그런 분위기가 그만 마음을 점령해버렸던 걸까. 여전히 사람들의 말에 예민하고 눈치보고 두문불출하는 어리석고 미숙한 마음이 자꾸 비추어져 괴로웠다.

 

Don't think ill of me, remember me well. Tell people you were fond of me, that you loved me, that I wasn't a bad guy. Even if, perhaps, none of this was the case. (118)

 

  이 보잘 것 없는 삶에서, 사라짐과 함께 삼십분의 애도를 넘기지 못할 이 가느다란 삶에 우리가 이토록 애쓰고 지난한 노력을 쏟는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인간은 본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면 더 마음이 스산해진다. 결국 우리가 기대한 크게 보상받는 삶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니 이 얼마나 놀라운 자세인가.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든, 패배자의 망상이든 저마다 역사를 정의하는 공식이 다른 듯하다. 그 등식에 놓일 겨우 몇 사람과 사건과 가치를 만나기 위해 이 삶이 지속되고 끝까지 퍼즐을 맞추려든다는 점에서 또다시 삶이 별 것 아닌 가운데 매우 심오한 지점이 발생한다. 그 미묘한 틈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한편 우울했고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내 삶에서도 주변을 맴돌 뿐 중심부를 향해 과감히 걸어들어 가지 못한다. 그 한계와 두려움을 알기에 주인공의 삶의 반추는 중심/구멍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있다.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길에 그는 진입하고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니까 그를 향한 시선과 마음을 쉬 거둘 수 없다.

 

  그리고 내 삶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건은 단순한 덧셈과 뺄셈이 아니라 몇 곱절로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지금의 내 결정도 결코 그 과거의 잔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마거릿을 분명한 여자로 이상적으로 보지 못했듯이 은연중의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결정들이 있다. 이렇듯 작게 혹은 크게 전의 것을 뒤집으며 출렁대는 역사 앞에 우리는 서있다.

s********d 2018.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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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will tell you who I was and had been.   <시대의 소음>을 읽고 여운이 가시지 않던 차에 영화 개봉소식이 들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페이퍼백으로 만난 소설은 작은 다이어리만 했다. 얇지만 결코 얕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줄리언 반스의 해학과 진중함을 이제 좀 알겠다. 그래도 궁금해진다. 2011년 당시에 노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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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will tell you who I was and had been.

 

시대의 소음을 읽고 여운이 가시지 않던 차에 영화 개봉소식이 들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페이퍼백으로 만난 소설은 작은 다이어리만 했다. 얇지만 결코 얕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줄리언 반스의 해학과 진중함을 이제 좀 알겠다. 그래도 궁금해진다. 2011년 당시에 노년과 기억, 시대, 역사, 시간, 양심의 가책을 말하는 책이 많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짧은 소설이 대세인 걸까, 출판 당시 소설은 문학상을 받으며 대히트를 쳤다.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무색할 만큼 내용도 단순하다(별 줄거리가 없다). 평화로움을 추구해온 토니의 말년에 날아든 뜻밖의 동요에 그가 당혹해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한 번의 반전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예상을 비튼다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이야기는 끝난다. 헐, 이렇게 끝나? (...) 이렇게 끝날 수도 있구나!’가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었는데 펜에 힘을 빼고 스스슥 적어내려간 듯하다. 기존의 미스터리물처럼 맹렬히 추적하는 장면도 없이(있다면 과속 방지턱 정도 ㅋㅋㅋ), 말년에 삶을 정리하고 회고하던 차원에서 주인공은 안식을 취할 수 없는 비극에 처하는 것이다. 이제 와 달리 구제 방안도 없다. 자신을 수용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you're on your own).

 

  예전 같으면 크게 공감하지 못했을지 모르겠으나 지독한 건망증과 명사 분실증을 겪고 있는 터라 그의 기억이 기억하고자 하는 사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이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랬듯이 작가가 감각(sense)이라는 단어와 양심의 가책(remorse)에 꽂혀 집요하게 파고드는 인상을 받았다. remorse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에 잘못하거나 나빴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a feeling of being sorry for doing something bad or wrong in the past)이다. 아이러니 감각은 시대의 소음에서도 강조되듯 작가는 생존과 자기보존에 필요한 언어전략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우리 모두 더 이상 젊지 않은 범주(non-young category)에 속할 때가 반드시 온다, 베로니카를 미스 프루트케이크라고 호명하며 데미지 이론(theories of damage)을 적용시킨다, 여자를 명료하거나 미스터리한 두 종류로 나눈다, 세 가지의 묘비명 후보, 흔들리는 다리에서의 재회, 손으로 자른 감자칩, 손목시계를 안으로 매기, 축적은 덧셈과 뺄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실패는 곱절이 되기도 한다 등의 철학적인 사유들로 넘친다

 

  나이 먹고 기억력 감퇴를 겪는 우리의 기억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젊은 날에는 친구나 적의 구분이 칼처럼 명료하지만 이상하게 나이 먹을수록 애매해진다. 마지막에는 둘 다일 수 있음을 열어둔다(It could be both). 그렇기에 기록이나 주변의 증언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나이든 상태에서는 그조차 여의치 않다. 증인이 죽었거나 기록마저 소각돼 복사본 조각만 열람이 가능하다.

 

  소설은 고등학생 친구들의 역사에 대한 정의와 인식으로 호기롭게 시작한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은 언제나 역사의 속성과 개인의 삶을 평가하는 윤리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십년 전에 자존심 상하고(영국 상류층을 향한 불편함과 자격지심이 깔린) 치기어린 나머지 쏟아낸 저주는 어쩐 일인지 기억에서 종적을 감추고 만다. 차마 용서가 안 되는 일이지만 어린 그가 저지른 일이기에 나이든 그가 인정하고 수습해야 한다.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지만 진심어린 제스처를 건네야 한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 혹은 패자의 자기망상이 된다.

 

  소설가는 토니라는 한 개인의 기억 착오가 이야기를 점령할 즈음에 그 역시 모른 채로 기만당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때 이른 임신과 부적절한 관계는 자살을 초래한다. 많은 부분이 비어진 채 급하게 마무리된 점이 제목과 하나가 되어 파격적인 소설 결말을 장식한다. (Adrian) Finn. 노년의 주인공은 자살한 자 외에 아이와 파트너는 이야기에서 소외되고 배제됨을 문제시한다.

 

  젊은 시절 망설임 없이 공식화하고 이론화했던 바가 이제는 그렇게 간단히 도식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공식과 이론의 오만한 단정을 뒤로하고 예외로 남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실제 삶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안다고 믿었던 삶과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면 좋겠지만 이 시간이라는 잣대도 고정되지 않고 융해하는 성질의 것이라서 여러 버전의 말하기가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선명한 눈금이 그려진 자로 모든 걸 재던 시절이 있었기에 놓치고 잊는 시간도 맞이할 수 있는 거니까 평온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침투하겠지만 일단 살아볼 일이다 

s********d 2017.08.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