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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만큼 그 영역이 광범위한 개념도 드물다. 문화란 '그 어디에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현상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문화비평은 일상성과 보편성의 이면에 놓여진 의미와 문법을 찾아내 해석하고 개입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곳에서 문화는 '의미가 생산되는 장소'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의 저자 문강형준의 문화비평은 대단히 급진적이다. 스스로도 밝혔듯이 문화비평이란 문화의 정치적 보수화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고 애시당초 못 박았기 때문에, 그 내용은 급진적, 혁명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급진성은 현실성과 충돌하면서 논란을 낳는다. 책을 읽다보면 설사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급진화 된 기준을 세워놓고 여기로부터 현실을 소급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성찰의 과정이 될 것이다.
재미있다, 하지만 공허하기도 하다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 혹은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한 재미추구형 정치의 영향력 확대. 무엇으로 정의하든 간에 '나꼼수'가 열풍은 열풍이었다. 나 또한 몇차례 나꼼수를 다운받아 들었다. 주류 매체에서는 절대 등장할리 없는 거침없는 말들과 풍자, 조롱. 나꼼수 멤버들의 가공할만한 '이빨'은 대중의 특히 젊은층의 열광적 반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속 시원하다는 뜻일 터이다. 원래 그렇잖나? 사람들은 타인을 신나게 욕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나꼼수가 욕했던 대상이 '가카'였기 때문에 정치적이었이고, '가카'에게 불만을 가진 수많은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재미, 오락, 유머. 바야흐로 어떤 영역에서건 이것들과 결합하지 않고서는 대중의 호응을 얻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일까. 정치가 엔터네인먼트의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 접근하기에 높기만 한 정치의 담벼락을 허무는 효과도 있지만 반대로 정치 자체를 '희화화'해 버리는 역효과도 분명히 있다. 나꼼수는 정확히 이 경계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다. 하지만 공허하기도 하다. 욕먹어야 할 대상을 눈치 안보고 신나게, 재미있게 욕해주는 것. 어쩌면 나꼼수의 임무는 여기까지일지도 모르겠다.
문강형준은 이 책에서 시대를 지배하는 "즐겨라!"는 명제에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다. '투사가 멘토로, 거리시위가 토크콘서트로, 정치적 비판이 정치적 엔테테인먼트로 변한 상황'에서 정작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그 '즐거움'의 말초성 뒤에 가려진 본질이다.
서바이벌 :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배적 삶의 형식
신자유주의는 이 시대의 교리다. 이는 단순히 정치경제학 용어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가치관, 삶의 방식, 관계를 맺는 양식과 문화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일종의 코드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배적 삶의 형식은 '서바이벌'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한국은 지금 전 국민의 오디션화가 진행중이다. 엔터테인먼트와 휴머니즘의 조화가 빚어낸 스토리텔링의 강력한 시너지 효과는 마치 마약처럼 국민들을 웃고 울린다. 오디션은 춤 노래 연기와 같은 대중예술 뿐만 아니라 요리, 내집마련, 신입사원 채용과 같은 일상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나도 손에 땀을 쥐면서 '슈퍼스타K'를 시청하고 이름없는 환풍기 수리공 허각의 우승을 응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열혈 시청자로 간접 동참하면서 그 어떤 짜릿한 쾌감 같은 것도 느꼈다.
하지만 '서바이벌'이 창조하는 성공의 판타지는 사실 냉정한 눈으로 들여다보면 '승자독식'에 대한 미화에 지나지 않는다. 슈퍼스타K의 허각은 개인의 인생으로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서바이벌'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탈락한 134만명의 인생과 실패를 가리는 판타지로 기능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정말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이제는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신분과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이다. 철저한 기회의 박탈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이 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라는 환상을 유포하며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단순한 개인적 문제로 치환시켜버린다. 이것이 슈퍼스타K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이다.
불행한 것은 이 같은 사회 현상에 진보개혁세력도 은근슬쩍 묻어가려 한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 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선보인 청년비례대표 선발 오디션이 단적인 예다. 사실 지난 총선에서 나는 진보개혁이 얻은 의석 수 보다도 이 부분이 더 절망스러웠다. 승자독식 가치의 반대편에 있어야 할 진보개혁은 왜 이런 헛발질을 했을까.
문강형준은 이 책에서 "경쟁이냐 평등이냐, 서바이벌이냐 공동체냐라는 서로 다른 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두가치를 모두 다 포괄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p44)라며 "이와 같은 모순 어법이 오늘날 소위 한국의 진보정당들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라고 비판한다.
책의 전반적인 논조가 마치 지금 당장 혁명을 선동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충분히 그 관점에서 짚어봐야 할 삶의 근본적인 가치 문제에 대단히 진지한 성찰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세상에 안주하고자 하는 쪽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쪽에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