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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문학 모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50년 전에는 여성과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경찰이 길가는 젊은이를 붙잡아 두들겨 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은 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문학 역시 시대적 상황에 맞는 구성과 주제와 표현방식을 달리한다. 법은 인간의 정의를 주레로 하여 현실적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문학은 인생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비해 법은 딱딱하고 비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법과 문학 모두 단어와 문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지만 그 단어와 문장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반대다. 법과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수단이지만 대체로 법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문학은 공감을 얻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법과 법률가들(변호사, 판사, 검사)은 대중들에게 가장 큰 불신과 비난을 받는 직종에 속한다. 왜 대중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는지는 자신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법률가들 스스로가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법의 적용과 판단이 대상자의 지위고하에 따라, 빈부에 따라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법률가들이 불신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여러가지 역사적, 태생적인 이유도 있고 제도적, 구조적, 정치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부 법률가들은 법의 본래 취지에 맞는 활동과 역할을 펼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고 정의와 평등을 위해, 헌법의 정신에 따라 올바른 법률적 행위와 판단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법조인'인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상당수 변호사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어떻게 민변의 적지 않은 변호사들은 일반적인 법률가, 변호사들과 다른 자세와 태도를 보일까? 아미 작고하신 조영래 변호사나 지금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를 통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노력'하는 법률가들이다. 그들이 노력하는 내용은 스스로 공평무사한 자세와 태도를 갖추기 위래 애쓰고 법에 대해 더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도 있도 대중들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고 공감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노력을 하는 민변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법과 문학의 간극을 줄이고자 시도한다. 그는 서구사회에서 법이 대중화된 이유 중 하나를 셰익스피어를 통해 찾는다. 그는 "법과 문학의 본질과 효용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의 총체적 이해와 사회의 통합적 지성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아니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전공인 법학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반에 걸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지난 수 십 년, 셰익스피어는 나의 친절한 스승이자 친구였고, 작품의 수많은 인물은 내 꿈을 휘젖는 연인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영국의 대문호'로만 알고 있던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의 다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셰액스피어는 '소송만능주의자' 수준으로 일생동안 숱한 송사에 휘말려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많은 자료조사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실존 당시의 보통 사람보다 자신의 재산적 이해관계에 민감했으며 재산을 얻고 지키려고 기꺼이 법절차에 의존했다고 말한다. 정확하지 못한 기억으로 증언을 한 적도 있고, 담합성이 강한 소송에 동참하기도 했다.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다른 소송이 있었을 가능서도 높다고...^^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셰익스피어의 대다수 작품 속에는 소송이나 재판와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많다고. 그것은 그가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시대는 소송 폭주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한 해 평균 1백만 건 이상이였다고...ㅋ) 물론 소송과 관련한 사건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소재나 줄거리에 반영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생애, 갈등과 반목, 애정과 애증 등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이 합의하여 서명한 계약서의 내용이 약간 특이하다. 만약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기로 한 날짜에 갚지 못하면 자신의 심장 가까이 살 일 파운드를 채권자에게 준다는 내용이다. 법대로 따르겠다는 약속을 이미 했다. 거짓말도, 유혹도, 사기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의사로,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맺은 계약이다. 피고도 각오하고 있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사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빚쟁이의 자비, 법원의 관용 뿐이다. 엎드려 비노니 그저 목숨이라도 부지하게 해달라는 애원 뿐이다. 젊은 판사의 입에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다. 그러나 경천동지의 일이 벌어졌다. 재판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판사는 모든 사람의 예상대로 원고의 법적 주장에 동조하면서 피고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권고했을 뿐이었다. 판사로서의 자신의 권한은 그뿐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그러나 완강한 채권자는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채무자가 원금의 3배에 해당하는 대금을 위약금으로 변상하겠다는 청약마저 일축하고 오로지 계약서에 적힌 대로 '살'로 '특정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판사의 태도가 돌변한다. 느닷없이 계약서에 적힌 내용의 기슬적인 흠을 문제람아 피고의 책임을 면제해준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불법이고 따라서 무효하는 것이다.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다. 그러나 판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태도를 표변한 판사는 이제 폭군으로 변한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를 살인미스로 몰아 그의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명령한다. '법아 그러나 어쩔 수 없다'며 소극적으로 채권자의 자비를 호소하던 판사는 일순간 고도의 사법적극주의자가 되어 경각에 몰린 생명을 구하고, 마침내 위태롭던 정의를 세운다. 신참판사의 명판결(?)은 신화가 되어 대에 길이길이 전승된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창작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광을 업고 지구를 정복한다. 셰익스피어가 내놓은 문제의 판결은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최고 명판결로 후세인의 칭송을 받는다." 위 안용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주요 내용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복수극이라고 한다. 고리대금엄자인 원고는 자신을 공공연하게 고리대금업자로 비하하고 심지어 '목을 따 죽일 개'라고 부르며 수염에 침을 뱉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모욕을 준 피고를 법을 통해 복수하려는 것이었다. 원고는 사적 복수를 공적 복수로, 물리적인 직접 복수에서 제도를 통한 복수로 형식과 절차를 변한 근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반대편인 피고의 복수 역시 잔인하다. 위기에서 벗어나 처지라 바뀐 피고는 원고를 파멸시키기로 작심한다. 판사의 판결에 따라 자신의 몫이 된 원고의 재산의 절반을 자신을 수탁자로 하는 신탁을 창설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향후 원고가 취득할 모든 재산을 신탁재산에 납입할 것을 약속하라고 강요한다. 그뿐 아니라 유대교안 원고를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정신적인 자산마저 빼앗는다. 그로써 원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이로써 '명판결'이라는 법적인 정의와 별도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복수가 무엇인지, 둘 중 누가 궁극적인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생각토록 한다. 저자는 "법은 시대의 거울"이기에 모든 문학 작품 속에 법이 투영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법을 빼고 읽어도 문락이 되지만, 법과 함께 읽으면 더욱 큰 문학과 세상이 보인다"고.. 그는 시인을 높게 평가한다. "시인은 위대하다. 시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정교하고 차원 높은 언어의 마석이다. 시는 역사보다 더욱 진실하고 철학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이 있다. 역사는 특정 시기에 치중하지만 시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취지다. 문학이야말로 인간 삶의 주제를 더욱 깇이, 선명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창의적인 작가라 내면의 진힐에 더욱 용이하게 접근하도록 인도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시인도 시대의 입법가이자 판관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법락자이면서도 법률전문가들의 독점물로 전락한 법을 문학의 아래에 위치히키는 저자의 입장과 법철학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공감하게 된다. 법 역사 사회적인 합의로 규정되는 '인간의 창작물'에 불과한 것이고 역사적일 수 밖에 없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인간이 만든 법이든 모두 불안전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끝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갈등하는 것이 본질일 수 밖에 없다. 법규의 문장에 구속되는 법률전문가들은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로스쿨 학생들, 전현직 법률가(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등)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삶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뭇 학생들과 법에 대해, 셰익스피어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 2012년 5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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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법으로 읽는 책. 사실 개인적으로 법학 분야는 관심 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법에 대해 법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전문적인 법에 대해 다뤄서 이해가 어려울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셰익스피어의 극에 관심이 있었고, 문학과 법학의 만남이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과 궁금증이 함께한 이 책은, 한 챕터를 읽자 마자 기우였음을 알았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또는 두 분야 모두 잘 모르는 사람이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리처드 2세>, <줄리어스 시저>등 다양한 작품에서 법을 읽고자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접했으나, 법의 관점으로 본 적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새롭고 신선했다. <햄릿> 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햄릿>을 처음 읽었을 때 든 생각은 햄릿의 고뇌가 극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복수를 다룬 다른 작품인 <오셀로>처럼 빠르고 단순하게 극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단순히 복수극보다는 햄릿이라는 인물의 고민이 더 기억에 남고, 어떻게 보면 주인공 햄릿의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 지기도 한다. 마치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 것만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햄릿의 태도는 마치 영리한 법률가 같다고 말한다. 법률가는 단순한 분노나 심증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주어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법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또한, 대중적인 ‘법률가’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침착하고, 무엇보다 이성적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법이 이성의 대표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법대로 하자’라 말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싸우던 사람들도 이성을 되찾고 법의 심판에 그들의 싸움을 맡긴다. 그만큼, 법은 인간의 이성을 나타내며, 법을 따르는 법률가들은 이성적인 존재여야 한다. 법률가와 같다는 해석을 보니 햄릿의 자세가 또 다르게 보이는 듯하다. 햄릿의 상황에 놓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수만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러나 햄릿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자신의 이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 햄릿이 법학을 공부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의 이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법률가 햄릿의 ‘법대로 하자’ 라는 이성적인 생각과, 복수만을 생각하는 감정적인 마음. 이성과 감정의 충돌이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명대사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법이 완전히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겨울이야기>를 다룬 부분에서 저자는 법은 완전히 이성적인 것이 아니며, 감성과 열정이 함께 해야 진정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겨울이야기> 속에 나온 사례와 같이 생각해보니, 100퍼센트 이성적인 법은 오히려 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법이 이성을 추구하고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안에 감성과 열정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이성과 감성의 기준은 다르다. 누군가는 법은 90퍼센트의 의성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80퍼센트라고 하는 등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섞인 완전한 법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이 책을 통해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우리들은 악인 샤일록이 주인공 안토니오의 목숨을 위협했으니 정당한 처벌을 받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해석을 저자는 제시한다. 극의 인물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눈다면, 주인공은 선이고 이에 반하는 인물은 악이다. 그러나 법을 기준으로 삼는 다면, 선과 악이 달라질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는 극 전체에서 재판이 중요한 장면을 차지하는 법률 희곡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베니스의 상인>을 볼 때, 포셔의 판결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는다. 법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작품을 읽을 때는 이를 우리들도 모르게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깨닫고 법의 시점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전혀 다른 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안토니오를 견제하는 포셔에 대한 부분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해석이라 신선했다. 그저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주요 인물이라 생각했는 데, 어떤 부분에서는 대립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보면서 이런 해석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법학자의 눈으로 보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흥미로운 해석,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 담긴 그 시대의 법.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셰익스피어 시대의 법뿐 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법이 나아가야할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현대의 법에서도 재판 판결문에서 셰익스피어의 극이 인용되기도 하는 등 셰익스피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법과 셰익스피어 문학의 관계는 재미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에 법이 담겨 있고, 그러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현대의 법에 등장하기도 한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던 두 분야에 몰랐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는 방법. 이 책을 읽기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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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셰익스피어를 입다]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여 역설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 "셰익스피어"에 대하여 대단히 흥미롭고 심도있게 쓰여진 책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인데 그의 희곡을 "법"이라는 안경을 통하여 바라보면서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극 대본으로서 읽는 일차원적인 이해와는 다른 색다른 관점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질적이고 서로 상반되는 '법'과 '문학'을 조화롭게 한 책으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것은 법학자인 저자의 문학에 대한 애정 덕분일 것이다. 이 책에는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을 비롯하여 그의 주요작품들을 법이라는 프레임으로 읽고 분석한다. 저자는 [햄릿]에 나오는 무수한 복수의 유형들을 형법상 살인죄에 대응시켜 햄릿이 치밀하게 자신의 면책을 주장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라는 점을 추측한다. 또한 [줄리우스 시저]에서는 헌법의 근본인 "정치 체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저와 브루투스, 그리고 로마 시민들을 분석하여 이들의 이념과 그에 따른 고민들을 짚어본다. [리어왕]에 나오는 법률가의 모습을 현대시대의 법률가의 모습과 비교해보며 문제점도 지적한다. 이렇듯, 가까워보이지 않는 법과 문학을 하나의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책의 구성도 각 작품별로 되어있기 때문에 각 챕터를 읽을 때 지루하지 않았다. 이러한 깔끔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적정 길이의 텍스트는 논술 준비를 위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저서인 [법, 영화를 캐스팅하다] 또한 현대문화의 주축인 영화를 법과 접목시켜 고등학교 논술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됐었다. 책의 가격은 약간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이상의 효용을 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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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학도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진실로 도전적이다. 법과 문학의 '완벽한 경계'를 확신하는 대다수 법학도와 법조인들의 무능함을 조롱하듯, 이 책은 대한민국 지성의 전당에서, 평생 법학을 전공해 온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 교양서 한 권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문 '법학계'에서 이는 '참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서양 최고의 문학가로 추앙받고 있고 무수히 많은 '고전'을 남긴 셰익스피어, 그가 동양의 한 법학자에 의해 21세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한국에서 법학이 문학과 괴리 된 것은, 전적으로 무능함 때문이지, 문학과 법이 표상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잠시만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는 송사에 휘말려 '수령이 침식을 잊고' 판결에 매진하는 나라였다. 지금도 그렇다. 인구수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소송을 통해, 또는 법적인 지식과 인력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법이 빠진 적은 없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또한 법학도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문학들은 논리정연하게도 사람들의 감정을 좌절하게 했다가, 감격하게 했다가, 두려움에 떨게 했다가, 분노하게 하고, 다시 평온하게 만든다. 마치 치열하게 계산한 것처럼, 그렇게 논리적이다. 무섭다.
다양한 작품들을 법적인 차원에서 고찰하고 마는, 그런 책이 아니다. 서양 사회의 가장 추앙받는 문학가가 "왜?" 법적인 쟁점을 다루는 문학들을 피토하듯 써냈을까? 한 번쯤 고민해본다면 '법'과 '문학'의 본질적인 동질성을 파악하게 되고, 나아가 문학을 통해 법을 풀어내는 것이 마치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임을 우리는 조금씩, 책을 보며 느낄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덕목들, 법치주의적인 모습, 부당한 계약의 모습과, 혁명적 상황에서 연설하며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대중들의 모습까지, 우리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지금, 여기에, 문학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법은 단순히 우리가 법정에서, 사고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손에 잡고 읽는 소설속에서, 크게는 문학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찾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문학이라는 틀로 법학을 바라볼 기회가 필요하다. 꼭 셰익스피어를 서구인들만 읽고 즐기라는 법은 없다. 법적인 쟁점들과 법치주의의 가치를, 딱딱한 법문언이 아니라, 문학의 섬세한 문장과, 다채로운 사진자료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읽어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이란 이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