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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별로 안 좋아한다. 비키니 시위에 대한 마초적인 태도로 나꼼수가 곤혹을 치를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싸. 김어준? 궁금해서 『닥치고 정치』를 읽었더니, 별로 인상 깊은 내용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다소 거북했다. 정치경제 질서에 대한 진지한 분석보다는 인물 위주의 가십으로 채워진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러한 점이 인기를 끌었는지도 모른다. 『닥치고 정치』는 몇 개의 꼭지를 다루지만, 아마 가장 핵심은 정권교체일 것이다. 이 책이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곳곳에서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이 되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과연 그런다고 세상이 많이 좋아질까? 진중권이 서울시장으로 노회찬을 지지하면서 했던 말을 조금 빌리자면, 노무현 정부 때도 사는 건 팍팍했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과오라면 별 생각 없이 집권했고 진보도 아니면서 진보인 척 했다는 것 정도? 신자유주의, 라는 틀에서 본다면 김대중 정보,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는 대동소이하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혜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실천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대외 위기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자랑한다. 이게 신자유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혹자는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좌빨이 부자를 미워하기 위해 만든 수사에 불과하다고. 경제학적인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란 없다고. 어쩌면 맞는 말일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신자유주의보다 통화주의라는 말이 더 실체 있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통화주의라는 경제학적 학설이 국민국가가 실험하면서 신자유주의는 모습을 갖춘다. 신자유주의는 실재한다.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이전의 자본주의를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발전한 초기 자본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이차대전부터 시작하자. 히틀러, 로 이차대전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다. 히틀러는 경제공황을 국가사회주의(?)로 돌파하려는 독일의 시도가 구체적인 인물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으로 시작한 전세계적 경제 위기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아리기 역시 이차대전을 자본주의 헤게모니를 쥐려고 한 미국과 독일 간 경쟁이 대규모 살상으로 나타난 비극이라고 본다. 이렇듯 각국간 치열한 자본간 경쟁은 전쟁을 야기했다. 전쟁은 군인을 필요로 했고, 노동자는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국민국가에서 많은 지분을 획득한다. 전쟁 중 의회로 활발하게 진출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은, 이러한 역사적 실례다. 이차대전에서 교훈을 얻은 세계는 전쟁의 원인이 공황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공황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시스템을 구축한다. 국민국가 차원에서는 케인즈주의를, 세계적 차원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든다. 1973년까지 이 체제는 잘 작동한다.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한 이 시기의 이윤율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로, 그 이후 어떤 시기도 이전의 이윤윤을 능가하지 못했다.(로버트 브레너의 논의 참고) 하지만 케인즈가 만들어 놓은 처방전이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다. (계속) 『신자유주의의 탄생』은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논의가 길어지니, 내일 다시 써야겠다. 지금은 자야 할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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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20세기 후반을 뒤덮었던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복음이었다. 맞다
틀리다의 여부는 필요없고, 일단 신자유주의라는 색깔로 채색된 세상은 그렇게 가야 하고, 갈수 밖에 없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전세계의
새로운 운동원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치판단을 해보자. 그 전에 신자유주의의 반대쪽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반대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낳았는가?
일단 좌파의 경제 전략, 정책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발생시켰다는 논리적인 귀결 체계는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우파의 압승이라는 결과에 가려서 도서관 역사학 장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들을 되불러내야 한다. 이 책이 하려는 작업이 바로 이것이다]
좌파의 출발점은 생활 영역이다. 책의 앞 부분에서부터 좌파 존재의
의미 부여점이자 시작점이다. [좌파 정치는 항상 생활 세계로부터 출발했다. 여기에서 생활 세계는 무슨 심오한 철학적 개념은 아니다. 그보다는
상식적 용어에 가깝다. 이것은 민중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현장을 의미한다. 그런 삶의 현장으로 노동 현장이 있고, 지역 사회도 있다. 당연히 가족 생활도 포함된다. 풀뿌리 민중이 직접 교류하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생활 세계다.] 그리고 이 생활영역은 전지구화된 신자유주의와의 전쟁터에서
패배한 이후 [생활 세계의 정치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는 좌파 정치와,
지구 질서 수준에서 움직이는 자본주의는 지극히 비대칭이었다.] 생활 영역은 그 패배에 대한
복기를 통해 재확인한 영역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금융자본의 일관된 지배였을까? 저자에 따르면
대공황과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하여 헤게모니는 바뀐다. [미국 내에서는 뉴딜 개혁과 전쟁을 거치면서 지배
세력들 사이에 새로운 합의가 형성되었다. 그 핵심은 이제 화폐 자본 대신 생산 자본이 자본 진영 내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대량 생산 방식을 선택한 산업 자본과 금융 규제를 받아들인 은행 자본
그리고 국가 기구가 동맹을 맺고, 이들이 다시 조직 노동과 타협했다.] 과연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 (또는 협력)했을까? 아니면 대중 앞에 등장한 강력한 산업자본의 배후는 여전히
금융자본이 커튼 뒤에 있을까? 자본주의의 성격을 규정하고 미래를 예상하려면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나, 당장 우리가 갖고 있는 제한된 정보로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말 이상은 없어 보인다.
대중의 정치참여가 확대되고 민주주의가 진화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향상되고, 늘어난 소득은 소비로 직결된다. 이렇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고착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소득을 현재화하여 소비하는 신용 경제가 확대되면서 버블이 커진다. 그리고 향상되는 소득과 정치적 입지 속에서 노동자들간에도 이해 관계가 상충되고 각자의 생활을 최적화하면서 이기심의
충돌이 발생한다. 이러한 충돌은 좌파 정당의 지지도 하락에 기여하고,
금융 세력은 이 상황을 100% 충분히 활용하여 한동안 조용하던 모습에서 상대방에 대한
글로벌한 총공세를 시작한다. 여기에 대해 노동자와 좌파 세력은 상당 부분 밀리는 상황에 직면한다.
좌파가 꿈꾸는 세상. 2차 대전 이후 첫번째 시도는 칠레에서 1970년 아옌데가 대통령이 되면서 시작된다. 이후 각종 국유화 활동, 국제 정치에 대한 적극적 참여, 미국의 실기(?),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임금의 대폭 상승 등 새로운 활동이 수행되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은 곧 경기 과열로 연결되고, 기본적으로 취약한 칠레 경제 속에서 우파의 개입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아옌데가 수행한 각종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란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라는 심증 속에 구체적인 단서로 무엇을 제시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상황은 이 책 속 다른 상황 속에서도 일관되게 내 머릿속을 관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성숙화된 나라로서, 자본주의가 성숙기 이후에 어떻게 될지 점치기에 가장 알맞은 사례이다. 순서상으로는 칠레 이후 영국에서 좌파의 집권이 시작되었고, 칠레에서의 실패 경험과 (칠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진화된 산업구조,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유로움 등은 무언가 기대 해봄직한 사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 또한 인플레이션이라는 필수 과정 속에서 반대편의 공세를 극복하지 못한다. [결국 비용 증가의 고통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이 되었다. 인플레이션의 배후에는 국민 국가의 기존 틀을 넘어서 과도하게 성장한 중간 경제 행위자들의 권력이 존재했다.] 그리고 글로벌한 금융 역학 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점도 좌파의 한계로 들 수 있겠다. [영국의 정치 경제 상황이 안좋아지면 이들 나라(영연방)의 중앙 은행이 파운드를 시장에 쏟아냈고 그럴 때마다 파운드 가치가 폭락했다. 그래서 영국은 북반구 국가들 중 IMF의 문을 가장 자주 두드리는 나라가 되었고, 제1차 윌슨 정부 시기에는 파운드의 평가 절하를 단행하기도 했다. 국외 파운드 잔고 문제는 은퇴한 제국이 짊어져야 할 숙명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는 프랑스에서도 시차를 두고 후행적으로 발생해서 우여곡절 끝에 미테랑이 대통령이 된다. 비록 출발은 좋았다. [영국의 구조 개혁 좌파의 꿈이 프랑스에서는 현실이 되었다. 칠레 인민연합이 그토록 간절히 희구했던 단단한 권력 지반이 프랑스 좌파 연합 정부에는 애초부터 제법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역사는 희극에서 비극으로 반복하는 걸까? [한동안 활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던 국민-대중 경제가 다시 열병을 앓았다. 이것은 칠레 이민연합정부 2년 차에 벌어진 상황 그리고 영국 제2차 윌슨 정부 2년 차에 벌어진 상황과 유사했다]. 이제 또다른 반복, 스웨덴에서의 경험이다.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에서도 구재개혁의 포기에 뒤따른 것은 자본 측의 반동 개혁이었다]
연속적인 패배, 무엇이 문제일까? 태생적으로 국제화되지 못하고 생활 속, 좀더 확대해야 국가에 한정되는
좌파와 기본적으로 국제화를 내재하고 있는 자본 세력간의 국제 경쟁 게임은 이미 몇 수를 접고 시작하는 바둑판의 하수가 아닐까? 게다가 완전고용이나 노동자에 대한 우대로서의 임금 상승은 물가와 상호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부정적인 상호 작용) 그리고 인건비(노동자)와 가격 결정(자본), 통화공급(국가)은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키는 세 개의 축으로서 또한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가? 여기에,
80년대까지 존재하던 사회주의 국가의 비능률성은, 좌파가 찾아야 할 임상 실험대상으로서의
자격과는 너무나도 멀어진 상태였고, 결국 좌파는 스스로 패배를 자인할 만큼(그게 전술적인 후퇴라도) 상황은 최악의 상황까지 전락한 것이 아닐까? ‘더욱 치명적인 것은 좌파 스스로 패배를 합리화하고 우파의 구조 개혁을 새로운 신념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것은 국민 국가의 정치에서
다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정치의 또 다른 층위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생활 세계의 정치였다.] 이러다가는 회의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잠시 열리는 듯 보이던 기회의 문은 소리 없이 다시 닫혔다. 유럽의 이른바 좌파 정부들은
제3의 길(영국) 혹은
새로운 중도(독일)등을 내걸며 누가 신자유주의 지구 질서에
더 잘 적응하는지 경쟁했다. 유럽 좌파 정당은 당장은 일국 수준에서도,
유럽 수준에서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기 변명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그래도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젼과 대안을 제시하고 일관되게 전진해야 겠다. [이렇게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나가야만 좌파 정치도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출발점은 곧 계급
세력 관계의 역전이었다.이것이 모든 구조 개혁 비전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세계 금융은 그 약점을 전세계에 드러내주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는 한 시대에 다시 종지부를 찍었다. 신자유주의
지구 질서 자체가 곧바로 붕괴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전성기가 이미 끝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이다! [자본-임노동 관계나 국가 관료 기구의 거대 체계로부터 자율성], [좌파
집권 세력들이 서로 연대해 국민 국가의 좁은 틀을 넘어선 좌파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말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낳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시행착오에 대한 명확한 방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번
전환기는 지난번 전환기와는 다른 결말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과거의 투쟁들이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미래의 승리를 위한 시련으로 새롭게 되살아 날 수 있다. 결전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책 한권을 보고나서 그 고민이 전략부터 실행방안까지 나오는건 무리다. 한권의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백권 이상의 참고 서적을 갖고, 자기의 고민에 대한 결론을 짓지만 미약한 독자인
나로서는 아직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하지만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고민할지 시금석을 삼을 만한 도서의 가치를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