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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페이지나 되는 양을 하룻밤사이 다 읽었네요.. 딱딱한 글일지 알았는데 예상을 뛰어넘게 훨씬 재밌었어요 지금도 우리의 맹목적인 믿음이 많은 잘못된 지도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고 마지막 글을 읽을때 느껴지던 어떤 카타르시스같은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글 안에 담겨있는 여러 분야의 깊이있는 지식과 통찰도 놀랍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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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슈바(meshubah)는 '등을 돌림', 즉 변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입니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는 한국 대형교회의 타락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근래 뉴스를 통해 접했던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는 흡사 대기업의 경영 세습을 닮아 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악들... 놀랍게도 한국 기독교의 타락은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친일, 친미라는 비열한 기회주의만이 살 길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심어줬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에 찬성했던 목사들 대부분이 내세운 변명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대체 그 교회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해방 이후에도 교회는 정치적 입맛에 맞춰 발전해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대형교회입니다. 화이트 엘리펀트! 메가처치(megachurch)는 미국에서 주간 예배 참가 신도 수가 2,000명이 넘는 교회를 뜻하는 말이며, 화이트 엘리펀트(하얀 코끼리)처럼 몸집만 커진다는 비유로 쓰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성교회 목사 명수창 역시 미국의 메가처치 모델을 따라 거대한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페셜 오퍼링(Special Offering, SO)이라는 비자금을 축적한 내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교단이 200개가 넘는다는 사실. 장로교, 감리교, 침례료, 성결교... 기타 등등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온 예수님은 한 분인데, 어떻게 그 예수님을 믿는 종교는 이토록 종류가 다양한 것인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계적인 한국의 대기업 삼★의 기업조직도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어떻게 운영을 해야 좀더 조직적으로 헌금을 모으고, 규모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마치 대기업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인지. 저자는 말합니다. 현실은 이 책보다 더 심하고 더 역겹다고, 즉 허구이면서 사실이고 사실이면서 허구라고. 겨우 소설일 뿐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대형교회에 대해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을 똑같이 재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해왔고, 이 책은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왜 루시퍼에 넘어간 것일까요?" "삼십여 년 넘게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169p) 신의 대리인이 메슈바가 되기까지 아무도 그 잘못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의 대리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들의 정체를 똑똑히 봐야 할 때입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굳건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에 도저히 허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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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옆의자 / 신의 대리인, 메슈바 / 권무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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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둬라. 인간이 말하는 정의란 갖가지 이해관계나 다양한 맥락에서 변질되고 왜곡될 수 있다. 쉽게 제 입맛에 맞게 구부러트린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한번 살펴보자. 지구는 우주에 떠다니는 빛나는 푸른 먼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땅은 지구에서도 극히 일부분, 서울의 변두리 땅에 아무리 큰 성전을 짓는다 한들 먼지의 먼지도 안 된다. 고양이 낯짝만 한 땅에 교회를 짓겠다고 눈을 벌겋게 뜨고 발버둥 치는 격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과 바다를 모르는 법이다. 1970년대 얼웠던 시절에는 너무 헐벗고 배고파 하나님의 자녀로서 먹칠을 할 것 같으니, 먹을 것을 달라 해서 먹을 것을 주었다. 예배당을 짓겠다고 해서 충분한 재물을 공급했다. 1990년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데도 또 크게 짓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데 또다시 교회 건물을 두 배로 짓겠다고 칭얼댄다. 하나님은 큰 교회가 필요 없는데, 도대체 누굴 위해 그렇게 높게 지으려고 하는가? 결국 메가처치는 '화이트 엘리펀트(하얀 코끼리)'처럼 몸집만 키우고 있다."(p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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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무인 저의 『신의 대리인』 을 읽고 오래 동안 생활해오면서 마음으로 끙 하고 있었던 내용들이 아주 많이 아니 대부분 해소가 되어버렸던 책읽기의 결과여서 너무나 의미 깊은 시간이어 좋았다. 특별히 종류를 가리지 않고 대하고 있지만 오래 만에 손에 잡힌 소설인데 바로 종교인 기독교 계통의 교회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너무나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대하거나 접할 수 있고,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전혀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자신이 이 종교를 믿지 않고, 정식 신도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또는 매스컴이나 책 등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 정도인데 여러 의구심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소설을 만나서 더욱 더 자세하게 여러 사연과 이야기들을 듣고 알게 됨으로써 많이 수긍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았다. 아울러 진심으로 종교의 근본이념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진정으로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힘들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원점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어렵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돕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발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순리다. 또한 이것이 바로 기도와 믿음의 결과로 계속 이어지고, 이러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날로 확산이 되면서 자연적으로 이 대성교회는 대형교회로 계속 커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늘어나는 신도들이 부담하는 기부금에 의한 돈과 이 돈을 이용한 성전 건축 등의 확산으로 인한 대형교회의 확충 욕심 등으로 번지면서 내부 갈등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의 순수했던 그 마음이 결국은 완전히 변절되면서 함께 했던 동료마저 결국 의심하면서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러한 내용들을 H신문사 사회부 우종건 기자는 취재를 시작한다. 지옥의 대리인인가, 천국의 대리인인가 세속과 세습에 빠진 대형교회의 민낯 한국 기독교의 원죄를 도려내는 차갑고 날카로운 메스 '유다창문'으로 포착한 한국 대형교회의 민낯 성경에 대한 해박하고 깊이 있는 분석 돋보인 최고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시종 이 책의 깊이와 넓이를 받쳐주는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삶의 경험이 담긴 글 내용들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의 많은 의아함을 많이 해소했음을 고백해본다. 그는 참 욕심이 많은 작가이기에 앞으로 더 멋지고도 창의적인 작품을 기대해본다. 어쨌든 이 작품을 통해서 본 작금의 기독교는 그리고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는 대형교회의 추문들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모쪼록 이 책이 들불처럼 번져 교회 곳곳에서 자성의 기도가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진정으로 대성교회 처음으로 시작했을 때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이 다 풀리리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해본다. 자신을 비우고 새로운 생명으로 자신을 바꾸어 가는 것에서 장애는 오직 '나 자신'이다. 이제 전심을 다해 '나 자신'을 버려야 한다. 나를 비워야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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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리인, 메슈바>를 읽고 나를 읽고... 나의 가족과 내 나라 사람들과 내 나라의 영혼을 걱정한다. 얼마 전 TV 한 프로그램에서 어떤 정치인을 보았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경찰대학을 나왔고 범죄심리학자로 이름을 날렸다는 것 조금, 지금은 진보적 정치인이라는 것 조금. 그런데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80년대의 기억을 소환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를 모르기에, 아마 그는 80년대에 경찰대에 재학 중이었던가 보다. 이후 경찰로서 시위진압현장을 누벼야 했고, 급기야 어느날 화성병점 사거리에서 격렬했던 (그의 말로는) 시위대의 돌에 맞아 얼굴에 큰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 화성병점 사거리란 말에 나의 눈과 귀, 모든 촉수가 긴장했다. 나에게는 20대의 열정을 바쳤던 곳이 그에게는 전투경찰 소대장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던 곳이라니. 그렇게 한 장소를 두고 각자의 세월이 흘러 과거의 흐름이 다른, 나름 묘한 재미(?)도 있었다. 이미 과거는 소환되었고 며칠 후 책 한권을 읽었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 제목과 표지부터 상당히 도발적이다. 내게는 80년대에 거세게 불던 '민중신학'과 '해방신학'도 도발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거창하게도 그 강의를 들어야만 할 것 같아 끙끙대며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것은, 잘은 몰랐으되 정통신학이 아니라고 밖으로부터 배척당하면서도 그것이 끝내는 시대적 상황이 낳은 고민이었고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소통이었다. 이제 기독교가 처한 시대적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악은 또 다른 의미로 존재하고 있다. 교회는 내부의 자성에도, 밖으로부터 비판에도 눈과 귀를 닫아 버렸다. <목사님, 제발 예수 믿으세요.> 어느 대형교회 목사세습을 반대하는 신학대생의 조촐한 시위현장에서 힘없이 나부끼던 플랜카드 한 장. 그것의 진정한 뜻이야 모를 리 없건마는...... 다시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나는 그것의 시작이 이 책이길 바란다. 실로 놀랍다. 시종 이 책의 깊이와 넓이를 받쳐주는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삶의 경험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그는 참 욕심많은 작가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과 상황에 대한 묘사, 그에 따른 심리묘사에만 그치지도 않는다. 중간중간 쉼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메시지들을 툭툭 던진다. 톨스토이에 대한 그의 안목은 또 어떤가? 지적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작가의 의도는 어디까지일까. 하물며 그의 글에는 아픔을 드러내는 고통 속에서도 시종 따뜻하고 애정이 흐르니 그는 분명 기독교인임에 틀림없겠다. 나는 여전히 비기독교인이다. 그런데 나의 형제들은 모두 기독교인이다. 무엇보다 거동이 불편한 구순이 넘는 나의 노모는 늘 기독교방송을 보시며 열심히 기도하신다. 그러니 나는 이 기독교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나 이책을 통해서 본 작금의 기독교는 그리고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는 대형교회의 추문들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모쪼록 이 책이 들불처럼 번져 교회 곳곳에서 자성의 기도가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기독교인이었으되 채플시간 만큼은 그분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던 과거의 내 순수한 열정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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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을 때 PD수첩에 명성교회가 방영되었다. 대형교회와 세습과 800억 원이란 돈을 다루었다고 한다. PD수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키워드만 가지고 바로 이 소설 속 대성교회가 떠올랐다. 위치는 강동구와 송파구로 다르지만 장로 한 명의 자살과 다른 문제들이 우연치고는 너무 비슷했다. 명성교회를 좀더 파고든다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있겠지만 그 이상 파고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자주 본 대형교회의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말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성교회. 명수창 목사가 세운 교회다. 80년대 개척교회로 시작하여 대형교회로 발전했다. 그가 개척교회를 이끌 때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신도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악인에게조차 등을 돌리지 않는 모습은 왜 그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의 그늘 속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교회가 커지고, 신도의 상황이 좋아지면서 돈이 많아진다. 이 많아진 돈이 문제다. SO(Special Offering)이라 부르는 비자금이 생긴다. 이미지를 쌓는데 이 돈을 많이 사용한다. 독재자를 만나고, 유력 정치인들을 만난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다. 이런 표면적 이미지는 언론이나 신도들에게 잘 먹힌다. 그의 영적 몰락은 점점 가속화된다.
비자금의 손실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독실한 신자이자 수석장로였던 김일국이 투자 사기에 걸려 많은 돈을 잃었다. 목사와 김일국의 관계는 개척교회 초기로 올라갈 정도고, 장로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교회를 키웠다. 목사는 재무를 모두 맡길 정도로 김일국을 신뢰했지만 돈의 손실을 용서할 수는 없다. 이 돈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금이기도 하다. 목사의 질타와 투자 원금의 손실 등은 김일국의 영혼에 큰 상처를 준다. 횡령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가 동생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대형교회의 힘으로 이 사건을 조용히 덮는다.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 된 우종건 기자가 취재를 시작한다.
명수창 목사를 가운데 놓고 우종건 기자와 이건호 교수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돈과 권력과 조직은 모두 명수창 목사가 가지고 있다. 장로와 신도들은 교회를 앞세워 목사의 잘못과 비리를 덮고, 목사를 우상처럼 숭배한다. 김일국 장로가 “돈! 우리는 돈을 믿었고, 돈이 불어나는 것을 소망했고, 돈을 무척 사랑했다.”고 외친 것은 기독교가 늘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된 데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목사와 장로와 신도들이 신앙보다 교회의 명예와 존속을 더 앞에 둔 탓이다. 덕분에 썩은 내가 진동할 때까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호 교수가 외치는 작은 교회와 신도 한 명이 움직이는 성전이란 말은 허공에서 순식간에 흩어질 뿐이다.
사실 우종건 기자가 교회의 비리를 파헤치고, 이것이 교회의 추문과 목사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몰락의 과정은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 그들이 지닌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면서 현재의 한국 교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기독교의 신사참배라고 말한다. 불교의 부처를 보고 우상숭배라면서 불까지 지르는 이들이 신사참배를 했다니 놀랍지 않은가. 시대적 상황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뭐.”라는 반응은 해방 후 한국 기독교의 성장 속에 어쩔 수 없이 품고 있던 원죄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대형교회들의 세습과 부패들이다. 잘못에 대한 회개와 반성이 없다면, 처벌이 없다면 그 잘못은 반복된다.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만 주장했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은 탓에 사회윤리와 공적 책임이 등한시되면서 이기적 신앙관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기독교 교인들의 모습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아주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한국 교회는 나치 시절 루터교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권위와 권력에 취하면 진실은 빛을 잃는다. 명수창이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보여준 행동들은 목사가 아니라 부패하고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다윗의 타락이 왕이 된 후 있었다는 말처럼 대형교회로 성장하면서 목사들은 타락했다. 그 이전에 타락한 목사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 속 명수창 목사는 최소한 그랬다.
많은 교회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까지 일어난 소송들도 말하고 지나간다. 훌륭한 목사들이 선택한 후임 목사들의 변신은 인간이 지닌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세습의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의 비리라고 말할 때 그들이 가진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다. 성직자로 생각했던 목사들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잘 보여준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할 때는 인간을 외치고, 돈을 걷을 때는 신앙을 외친다. 천국에 집착한 교인들에게 목사는 또 다른 우상이 된다. 속된 말로 예수가 재림하면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이단으로 몰릴 것이란 말이 그냥 무심코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신앙은 교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신앙은 세상으로 흘러가야 하고, 세상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하다. 또 다른 해석으로 변질된 가능성도 있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과 현실을 바탕으로 잘 보여준다. 교인들이 읽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