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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책으로 읽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은 찾아 읽는다. 영화 속 이야기를 알아야만 이해가 가는 책이라면
중간에 접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나도 언젠가는 영화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읽어
나간다. 영화에 대한 책이라고 해서 전부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쓰여 있는 것은 아니기에..
올해 창비에서 진행한 연속특강 ‘지혜의 시대’에 영화감독이 강연자로 참석했다. 변영주가 그녀이다. 물론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하긴 알고 있는 영화감독이 한, 두 명에 불과한 나로서는 대부분의
감독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하며 현대사회의 실상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감독이라고 한다. 이번 강연에서 그녀가 말하는 주제는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이지만 그녀가 주로 말한 것은 창작의 원칙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창작이란 ‘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라는 결기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는 저자는, 좋은 사회에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이는 어떤 사회에
좋은 영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담론이 생성되지 않는 그 사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아닌 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영화제작이나 배급을 둘러싸고 이따금씩 벌어지는 갈등이나, 재미는 있지만 울림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가
많은 것을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좋은 담론이 생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처음 발명된 시점부터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조건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배급망이 필요했기에
처음부터 가진 자들의 담론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문명의 발달은
이런 영화를 막대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력 없이도 제작이 가능하게 했고, 그렇게 지배담론 너머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를 독립영화라 부른다고 한다. 이러한 독립영화 중에서도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알려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다큐멘터리에는
정교한 각본을 바탕으로 내레이터가 실제 주인공처럼 기능하는 설명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대상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더 이상 카메라를 낯설어 하지 않을 때 그들의 모습을 담는 다이렉트 시네마, 시네마 베리터 등으로 구분하는데, 영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형식을 염두에 두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영화와 영 안 친한 것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즐겨보고, 자주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누가 영화에 대해 물으면 독립영화 팬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그것들의 형식이 어떤 것인지부터 살피며
봐야겠다.
그녀는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사와 검열, 외화쿼터제와 같은
예전의 웃지 못할 제도는 물론, 지금도 시행중인 상영등급부여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악용될 수 있는지
등이 그것이다. 또한 특정배급사나 극장체인의 상영관 독과점등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며, 문제는 그것들을 관리할 어떤 원칙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강연자는 영화이야기를 떠나 자신만의 창작에
대한 철학도 들려준다. 영화일을 하면서 내 문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창작자는 자기 문장을 만들고 찾기 위해 마음 속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는 어부와 같다고 한다. 호수에는 그동안 자신이 접했던 인상적인 모든 것들이 섞여 있는데 그 중에서 자신에게 화두가 되는 것을 건져
올릴 때 창작이 시작된다며, 그런 자신만의 호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 든, 소설이든 가리지 않고 폭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기 취향을 알게 되고, 그렇게 건져낸 문장이 쓰레기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호수에서 건져낸 문장으로 만든 영화를 본 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강연자. 그녀가 만든 독립영화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우선 그녀의 영화를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라 하니 거부감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처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어떤 결기와 태도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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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 때문이든. 당신 때문이든 간에 말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나만 바뀐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바뀔 수 있거나 부정적이고 퇴행적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어느 소설 중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바뀔 수 없지만 나는 바뀔 수 있다. 바뀐 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라도 바꿔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을 늘 생각한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나. 책임이 싫어 복잡한 일은 피하는 나. 긍정보다는 불안을 먼저 내세우는 나. 진짜 바꿀 수 있을까. 영화감독 변영주의 강의를 담은 '지혜의 시대' 시리즈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는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r게 하는 책이다. <방구석 1열>에서 쉽고 친절한 언어로 영화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변영주는 이 책에서도 청중을 향한 자신만의 확실한 영화 철학을 들려준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모든 꿈이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에 청춘들에게 삶을 향한 조언과 유머 섞인 이야기를 말한다. 책이 짧다는 게 이토록 아쉬울 수가. 다큐멘터리의 정의부터 한국 영화가 처한 현실과 바람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제가 본 소설이나 영화 중에 좋았던 것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대개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억울하잖아요. 저는 수십수백 편의 그저 그런 작품들을 보고 그중에서 한두 개를 발견한 건데 그걸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고 억울하지요. 저는 여러분도 재미없는 작품들을 보고 견디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명작을 찾아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변영주,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中에서) 영화를 만들든 만들지 않는 사람이든 간에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변영주 감독에서 청중은 '특히 좋아하거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다른 소설 혹은 영화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한다. 변영주 감독은 '재미없는 작품들을 보고 견디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명작을 찾아'내라고 말한다. 씩씩하고 거침없는 화법이 음성 지원이 되는 듯해 읽다가 웃음이 났다. 죽어라 읽어서 재미있는 작품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걸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뼈 때리는 대답인 것이다. 쉽지 않다. 살아가기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조차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서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저 프로그램 명령이 입력된 기계처럼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인 삶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드는 변영주는 자신이 만든 영화가 낮은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연대하는 삶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잃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상업 영화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감독 변영주는 연대라는 책임을 끝까지 가져간다. 제가 만드는 영화가 세상을 더 좋아지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주 다른 거거든요. 제 영화는 그런 일을 할 힘이 없지만, 제가 제 호수 안에 있던 어떤 물고기를 잡아먹고 만들어낸 한 문장 하나가 여러분에게 세상과 싸우겠다고 결심할 마음의 휴식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면 저 스스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호수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변영주,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中에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뒷걸음질 치기보다 한 걸음 나아가는 선택을 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가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누군가가 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 일이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 내 안의 호수의 깊이를 가늠해본다. 그 안에 뛰어놀고 있을 나의 다정한 마음들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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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최근에 제가 강연을 잘 안 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우리는 항상 분노의 표적을 결정하잖아요. 뭔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불공정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하지 않아요. 표적을 정하고 전진할 뿐이지요. 그러면 매번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지만 어떤 것도 바꾸진 못해요.
제가 『화차』라는 책에 꽂혀서 그걸 영화로까지 만들었던 이유는 주인공인 쇼코의 삶이 너무나 불행했기 때문도, 그녀가 신용불량의 시대를 상징하기 때문도 아니었어요. 자기 삶을 너무나 특별하게 생각한 한 여자가 자기연민에 빠져서 괴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 소설에 끌렸던 거예요. 자기연민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됩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하기 때문에,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니까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을 찾거나 거기에 대항하는 데 열정을 쏟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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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4.0 / 5.0 다른 책에서 변영주 감독님에 대한 묘사를 읽고 감독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책을 구입했습니다. 강연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듯.. 영화는 명백하게 사회에 종속적인 대중예술이기 때문에 좋은 사회가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첫 말씀부터 충격적이었어요. 좋은 영화가 좋은 영향력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사회가 있어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말이... 특히 자신만의 취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감독님의 차기작 너무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