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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가 등불을 밝혀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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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가을   바람찬 생의 뒤안길을 걸어온 그는젊은 날 가슴속 거친 칼로 스스로를 베기도 했었다 생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길만 내었다 산길 모퉁이를 따라 돌아보니 어느 가을날 오후 문득 고향집 앞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감나무가 등불을 밝혀 들고 있었다 붉고 따뜻한 감을 시린 두 손으로 고이 품었다 온몸이 환해졌다    시인은 가을에 오래된 집을 떠난다.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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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가을

 

 

바람찬 생의 뒤안길을 걸어온 그는

젊은 날 가슴속 거친 칼로

스스로를 베기도 했었다

생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길만 내었다

산길 모퉁이를 따라 돌아보니

어느 가을날 오후

문득 고향집 앞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감나무가 등불을 밝혀 들고 있었다

붉고 따뜻한 감을

시린 두 손으로 고이 품었다

온몸이 환해졌다

 

 

 시인은 가을에 오래된 집을 떠난다. “낙엽 소복이 깔린 길을 / 드문드문 행인들이 오간다 / 시절이 익을 대로 익어서 / 이 가을은 / 오래 묵힌 술독을 비울 때다 /  안으로 안으로 발효한 / 향기는 맑고 서럽다 / 마지막 제상 차리는 제주처럼 / 나는 정성스레 술을 걸러 / 집에게 잔을 올린다.” 사람의 온기가 깃들지 않은 집은 곧 허물로 남을 것이다. 한때 오래된 집은 “고치처럼 환하였고 알처럼 따뜻하였다”. 그렇지만  “말랑말랑한 살과 피 / 나뉘지 않은 한 몸이었으나 / 언제부턴가 껍질로 굳어 갔다 / 쉬이 소멸하지 않는 집의 습(習)”(「오래된 집을 떠나다」)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인이 오래된 집을 떠나는 것은 껍질로 굳어진 습과 안녕을 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동안 뜨겁게 살아 가을에 다다른다. “세상에 가득한 슬픔 / 그 한 조각을 내 것으로 받아들고 / 슬퍼하며 한 시절을 지나왔더니 / 세상에 넘치는 두려움과 아픔 / 또 한 조각 내 것으로 받아들었다.” 그러는 동안 “고통은 신에게로 열리는 문”(「기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사 풍파를 많이 겪은 나는 / 봄의 새싹이 안간힘으로 돋는다고 / 시를 쓴 적이 있었다 / 그런데 또 한 굽이 지나고 보니 / 그게 아니다 / 새싹이 저 혼자 힘으로 /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게 아니다 / 햇빛이 다정스레 손 잡아주고 / 봄 흙이 부드럽게 등 밀어주고 / 바람이 기분 좋게 간질여주므로 / 천지의 벗들이 응원하며 기다리므로 / 새싹이 뾰족뾰족 돋아난다”(「정정(訂定)」)것까지 알게 된다.

 

시인이 당도한 고향은 온몸이 환해지는 가을이다. 그렇다고 하여 가을이 어찌 환하기만 하랴. “마음이 쭈글쭈글해졌으면 / 나른하게 납작하게 시들어갔으면 / 꽃잎은 이우는데 낙엽도 지는데 / 시들지 않은 마음은 하염없이 / 뻗쳐오르고 시퍼레지고 벌게지며 / 이렇게 푸드덕거리며 기세등등할까 / 그만 고운 먼지에 싸여 / 하야니 핏기를 잃고 /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서 / 더 이상 출렁대지 않고 들끓지 않고 / 조그맣고 동그랗게 여위어져서 / 소리도 없이 툭 떨어졌으면”(「이 가을)」)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출렁임과 경탄과 밥알과 사과와 / 창과 하늘과 운동장 아이들의 함성 / 세계는 완벽하고 신비는 충만”함을, “무심히 외면하고 귀 막지 않”(「도시락을 먹으며」)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19.05.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