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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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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제 떠오르는 해와 오늘 떠오르는 해가 특별히 다를 것이 없지만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일정 마디를 정하고 그 마디의 끝과 시작에 나름의 의미를 주는 것은 그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스스로 나태해지고, 순응하여 그저 흘러가는 우리네들의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인류의 오래된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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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제 떠오르는 해와 오늘 떠오르는 해가 특별히 다를 것이 없지만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일정 마디를 정하고 그 마디의 끝과 시작에 나름의 의미를 주는 것은 그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스스로 나태해지고, 순응하여 그저 흘러가는 우리네들의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인류의 오래된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해의 시작은 우리에게 많은 다짐을 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버킷리스트도 작성하고, 한해의 계획도 세워야 할 때지만 그 무엇보다 한해의 시작을 무슨 책으로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아직 제가 만나보지 못한 서가에 꽂혀있는 많은 책을 바라보다 제 시선을 당긴 것이 바로 노인과 바다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내용 또한 익히 알고 있지만 명작이란 읽는 때와 그때의 상황에 따라 마음에 울림을 주는 내용이 달라지고, 감동 또한 달라진 경험에 미루어 한해를 시작하는 지금 제게 가장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하여 노인과 바다를 새해 첫 책으로 선정을 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195291일 라이프 지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발행된 지 이틀 만에 라이프 지는 5백만 부나 팔렸고, 스크리브너 사에서 인쇄한 단행본 초판이 5만부나 되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만년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53년에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그에게 안긴 만년의 대표작입니다.

 

  쿠바 연안의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어부인 산티아고 노인은 84일간이나 바다에 나갔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노인의 운이 다했다고 다른 어부들과 이웃들이 그를 조롱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정성껏 어구를 준비하고, 미끼를 챙겨 배를 몰고 낚시를 나갑니다. 빈 배로 돌아오는 그를 반기는 것은 그에게 5살 때부터 낚시를 배운 소년뿐이었습니다. 다음날 그렇게 기다리던 운이 그에게 찾아옵니다. 그는 이제껏 잡아보지 못한 큰 청새치와 이틀 낮밤에 걸치는 사투 끝에 드디어 길이 5.5m, 무게 700kg짜리의 고기를 잡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의 행운은 거기까지입니다. 달려드는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청새치는 뼈와 대가리만 남고 또 다시 빈손으로 항구로 돌아옵니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잠자리에 들어와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이게 이소설의 줄거리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고 세밀한 묘사도 없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청새치에게 끌려 다니던 이틀 낮밤의 고통과 허기를 견디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노인의 육체적 고통과 외로움을 잊고자 혼자말로 하는 독백과 그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이 소설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 삶과 자연의 어떤 본질적 존재와 행위를 대변하는 상징 내지는 우화적 이미지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산티아고 노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얘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산티아고 노인은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84일은 우리가 숫자 중 가장 큰 숫자라고 생각하는 99가 곱해져 나오는 숫자인 81보다 사흘이나 많습니다. 이건 인간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숫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33)” 맞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릴 힘들게 하더라도 우린 우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행운의 여신은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그리고 준비한 자만이 그 미소를 취할 자격이 있겠지요.

 

  산티아고는 운수가 완전히 바닥나 사람들의 놀림을 받기까지 하는 늙고 지친 어부 입니다. 하지만 그는 불운의 극치에 이른 상황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거나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긍정과 도전의 자세로 다음날 새벽 다시금 고기잡이를 하러 나갑니다. 언제나처럼 말입니다. 푹 쉬어라, 작은 새야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57) 그의 독백은 말합니다. 사람이든 새든 세상의 모든 만물이 그렇듯이 언제나 도전하며 너답게 살라고, 너답게, 너의 모습 그대로 살라고 말입니다. 세상적인 것에 맞추지 말고, 누구의 시선도 고려하지 말고, 그저 그렇게 너의 길을 가라고 말입니다.

 

  강인하고 남자다운 거침을 가진 산티아고 노인은 자신의 힘든 처지에 대한 감상적인 연민에 빠지는 일도, 거대한 물고기를 잡은 것에 대한 오만한 승리감에 도취되는 일도 없습니다. 상어의 공격을 받아 거대한 물고기를 잃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상어와 맞서 싸웁니다. 그리고 상어들에게 물고기를 다 뜯기는 패배의 순간조차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인간적 위엄을 간직하며 용기와 불굴의 투지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분투하는 산티아고 노인은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으로 비쳐지기 보단 내일은 승리자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108)

 

  그렇습니다. 삶은 그래야 합니다. 산티아고 노인처럼 아무리 현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외면한 듯해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의 운을 기대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꿋꿋하게 나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또 내일을 준비하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그 끝을 봐야하는 것 그게 바로 삶의 여정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새로운 도전에 닥치면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그 도전에 응하여 최후까지 내 길을 가는 것 그것 말입니다.

 

  곤경의 순간에도 행운의 순간에도 언제나 겸손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산티아고 노인의 인간적인 면모는 삶을 대하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힘에 부치자 신을 찾는 그의 모습에서, 외롭고 지칠 때마다 소년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에서, 상어의 공격을 받고나서 물어뜯긴 청새치를 속상한 마음에 보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에서, 상어들에게 완전히 청새치를 물어뜯기고 나서는 애초에 자신이 바다 멀리 나오질 말았어야 했다고 부질없는 후회와 탄식을 터뜨리는 것은 바로 삶 앞에서 극도로 나약해지는 일상에서의 우리의 삶을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오래전 산티아고 노인처럼 평생에 원하는 커다란 청새치를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청새치를 잡기위해 수없이 많은 날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또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 운이 제 운이 아니었던지, 행운의 여신은 마지막에 저를 외면하더군요. 제 잘못도 아닌 시대의 조류 때문에 그 청새치를 상어떼들에게 다 뜯기고 배조차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은 가장 큰 불행과 같이 모양입니다. 산티아고 노인처럼 말입니다. 그 불행을 극복하는 자만이 그 행운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새해입니다. 이제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그 때 잡았다 잃어버린 그 청새치보다 더 큰 청새치를 잡아야 한다는 나의 꿈을 이루기위해서 말입니다. 그동안은 어쩌면 상어떼 들에게 뜯긴 이미 내 것이 아닌 청새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기억과 상어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아픈 기억에 사로잡혀 세월을 허송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은 그저 깊은 잠에 빠져 세월을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구를 준비하고 바다로 나가겠습니다. 청새치를 낚기 위해 좀 더 튼튼한 낚시도구와 상어떼의 습격에 대비해 날카롭고 잘 드는 고기잡이 칼과 작살을 준비해서 말입니다. 잘 갈아서 날을 바싹 세워 이제는 어떤 상어가 습격해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산티아고 노인도 다음날 아침 언제나처럼 다시 바다로 나갈 것입니다. 바다가 거기 있는 한, 그리고 거기에 청새치가 사는 한 말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니까요.(Think tommorrow, tommorrow is another day) 

 

 

 

P.S :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양치기의 이름이 산티아고입니다. 또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어부도 산티아고입니다. 이는 우연의 일치일까요? 연금술사산티아고노인과 바다산티아고나 인생의 참된 비밀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보았을 때 어쩌면 그와 비슷한 순례길인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그 이름의 모티브를 따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는 우연일까요? 아님...???

 

 



YES마니아 : 로얄 h*****o 2013.01.03. 신고 공감 6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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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산티아고! [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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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군더더기 없이 정확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단어들.

문체의 담백함을 무시하고 문장 속에 생동하는 힘, 역동, 그리고 그 모든 꿈틀거림.

그리고 안 쪽에서 빛나는,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격려.

 

- 이 작품을 위해 어떤 단어를 나열해야 옳은 것일까? 시덥잖은 감상 따위는 결코 지껄이고 싶지 않은데, 적어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럼에도 나는 무엇이든 써 내려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문학동네에서 발간한, 이인규 교수의 번역본으로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외롭고 긴 청새치와의 싸움을 조금 더 여유롭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 떄문이었을까? 번역 때문일까, 그 동안 흘러 온 세월 때문일까. ‘그 것에 대한 나의 애정이 깊어졌기 때문일까 

 

금새 질문 투성이가 되었다.

 

산티아고. 한 때 굉장한 힘과 낚시 솜씨를 자랑했던 늙은 어부는, 84일 동안 매일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지만 아무 것도 낚아 올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닌 척 했지만 그는 자존심이 상했고, 힘들었고, 포기하고 싶었고 무척 외로웠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85일째 되던 날, 늙은 어부는 멀리, 조금 더 멀리, 아주 큰 운을 예상하며 먼 바다로 나아갔다. 간절한 기원과 기다림 끝에 늙은 어부의 찌를 문 것은 직접 보지 못하고 다만 낚시줄로 물고기가 끄는 힘을 느껴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놈이었다. 홀로 배를 탔던 노인은 혼자 힘으로 그 큰 고기를 끌어 올릴 수 없어, 조심스레 낚시줄을 풀어주어 버티면서 물고기가 이끄는 대로 나아갔다. 그렇게 이틀을 꼼짝 없이 낚시줄을 지탱하며 버텨낸 후, 노인은 기어이 물고기를 제압하여 잡는 데 성공했고, 삶의 동지와도 같은 그 물고기를 제 몸 만한 배에 간신히 묶었다.

하지만 작살에 찔린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고 곧 상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은 이번에는 물고기를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상어들과 싸워야 했다. 이미 승산 없는 싸움이었으나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는 뼈와 머리만 남은 거대한 청새치를 배에 묶은 채 육지에 다다랐다. 돛을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험해 노인을 몇 번이고 주저 앉아 쉬어야 했다.

 

투우, 사냥, 낚시를 좋아했던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실제로 청새치 낚시를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늙은 어부가 청새치와 힘을 겨루며 정신력으로 버티는 그 이틀간의 이야기를 매우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위대한 오른 손의 힘을 따라오지 못하는 왼 손을 꾸짖어가며(때로 달래가며), 날 생선을 먹어 에너지를 보충하며, 간간히 잠깐씩 눈을 붙이면서도 절대 놓지 않았던 팽팽한 낚시줄. 그 낚시줄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고, 왼 손에 쥐가 나고, 그래서 평소에 외우지도 않는 주기도문을 암송해 보기도 하고, 혼잣말로 자기 자신을 더욱 격려하기도 하는 것. 노인과 청새치의 이틀 간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고 재미있었다. 잠깐씩 나는 내가 마치 작은 새가 되어 배 위에서 노인을 지켜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막막함을 우리가 삶 속에 꽤 자주 느끼고 있는 뿌리깊은 각자의 외로움에 비할 수 있겠다. 한편 바다 그 자체는 퍽퍽하고 거대한, 그래서 그 주인을 한없이 작게 만드는 삶이라는 것에 비유해야 하겠지. 그리고 담담히 그러나 끈질기게 맞서고 부딪히는 산티아고의 일화는 우리가 삶에서 늘 동경해 마지 않는 승리의 은유일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당신이 85일에 큰 물고기를 낚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삶은 이미 충분히 멋진걸요.

모르는 척 그냥 그 아이와 함께 배에 오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사자 꿈을 꾸는,

그리고 야구 이야기를 하는,

그런 삶도 충분히 멋지다구요.

그러니 힘내요 할아버지.


열정과 욕망의 추진력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나이지만,

산티아고를 그저 분수를 모르고 대어를 낚는데 미쳐버린 할아버지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은,

헤밍웨이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마초적인 도전의 너머에 있는 산티아고의 삶의 면면이 이미 내게 차분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헤밍웨이의 얼굴이자, 바삐 달리며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산티아고들의 얼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사랑할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b*********g 2012.05.18.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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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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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씩, 아니 제법 자주, 보기 싫은 장면을 목격해야만 한다. ‘로드 킬’이다. 덩치가 작은 짐승부터 제법 큰 것들까지 길 위에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인간인 것이, 내가 자동차라는 괴물을 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문득 끔찍하게 느껴진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심성이 있는 것인지, 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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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씩, 아니 제법 자주, 보기 싫은 장면을 목격해야만 한다. ‘로드 킬이다. 덩치가 작은 짐승부터 제법 큰 것들까지 길 위에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인간인 것이, 내가 자동차라는 괴물을 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문득 끔찍하게 느껴진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심성이 있는 것인지, 나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물론 사람도 사람 나름이다). 그렇다고 동물들이 나를 무조건 좋아하는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가끔 선의로 다가가도 무서운 이빨을 왕왕 드러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 녀석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들에게 당해야만 했던 것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셈이니 말이다. 나는 장난으로, 혹은 재미로 동물을 학대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인간들을 볼 때면 무섭도록 놀라운 살의를 갖게 된다.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인간이 만들어놓고 실험 혹은 현재도 유지하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 속에는 안타깝게도 자연이나 동물, 생태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녹색당이나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질서나 국제사회의 방향을 흔들고 있지는 않다.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공산주의, 사회주의조차 자연의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전 세계가 만약 미국처럼 에너지를 사용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간다면 지구가 6~8개 정도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때도 난 막연하지만 무서운 살의를 느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그따위 막돼먹은 짓거리를 하는 것일까? 조금 편하겠다고? 조금 빨리 가거나 조금 시원하게 살겠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인간이란 이름으로 이 지구상에 현재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살고 있으니.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생전의 마지막 출판 작품이다. 그 전에 세상에 내놓은 강을 건너 숲속으로가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냉대를 받자, 절치부심하여 1년여 만에 내놓은 작품이었다.

 

이제 세계문학사상 불후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불굴의 의지로 역경 속을 헤쳐 나가는 위대한 인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언제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나는 이런 고전을 이제야 제대로 읽고 말았다.

 

올 초에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었다. 이 작품에도 역시 인간과 자연의 치열하고도 위대한 대결이 펼쳐진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는 유사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애소설…》이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에 따른 자연의 복수 또는 처절한 저항이 주된 모티브라면 노인과 바다는 말 그대로 산티아고 노인과 거대한 청새치와의 생을 건 사투의 이야기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줄거리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의 작품이 이토록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무엇보다 헤밍웨이 특유의 문체와 인생관이 작품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단문 위주의 하드보일드적인 어법은 감정의 과잉이 없기에 더욱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위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공존, 또한 인간이 가져야 할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죽여야 할, 혹은 자신을 위해 죽어야 할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벗이자 형제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청새치를 잡는 것이기에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고, 또한 오만한 승리감에 빠지지도 않았다. 승리와 패배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자연은 산티아고에게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 모든 생명체들에게 한없이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노인과 바다가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의 사투에서 끝내 승리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줬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없이 미약한 인간이 위대한 자연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서도, 또한 자연을 존중하고 한없이 겸손한 존재 그 자체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하기에,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하기에,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눈물겹게 고마운 사실을,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속가능한 발전 따위에 거짓 선전은 그만하고 말이다.

 

위대한 작품을 행복하게 읽었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3.07.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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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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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노인과 바다>. 이 책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지나친 신뢰감’ 때문이였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같이 집에 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갔다. 그날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하게 되었다. 친구는 자신이 그동안 읽었던 책에 대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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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노인과 바다>. 이 책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지나친 신뢰감’ 때문이였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같이 집에 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갔다. 그날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하게 되었다. 친구는 자신이 그동안 읽었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노인과 바다>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 소설은 그냥 단순해. 노인이 어느 날 커다란 참치는 잡았는데, 그 참치를 배에 실고 오는 도중에 상어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돼. 결국 도착할 때에, 참치의 머리와 뼈만 남았다. 라는 이야기야.” 라고 아주 간단하면서, 무미건조하게 나한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당시에 친구의 말을 들은 다음, 나는 ‘<노인과 바다>라는 책 완전 재미없구나, 읽어보지 말아야지.’라고 치부를 했다.

 

 

과거의 이런 내가 갑자기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올해 말에 실시하는 ‘문학동네 서평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분량이 짧은 <노인과 바다>를 선택한 것뿐이다. 이런 단순한 이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그 친구가 했던 말은 책의 내용을 완전 삭막하게 전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친구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이번에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노인의 모습에 대해서 자주 감탄을 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티아노 할아버지라는 노인은 지난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었다.

 

p33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고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 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그 다음날인 85일째에, 기존보다 먼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했다. 드디어 낚싯줄에 물고기가 걸린 것이다. 길이 5.5미터, 무게 700kg이 나가는 대형 참새치. 노인은 이틀간 밤낮으로 낚싯줄에 걸린 대형 참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참새치는 낚싯줄을 끊으려고 바다 속 깊이 들어가려고 하고 아니면 힘으로써 줄을 끊게 하려고 한다. 동시에 노인은 이런 참새치의 행동에 대처를 한다. 낚싯줄을 더 늘리게 하면서 기운을 빠지게 한다든지, 아니면 배의 저항력을 높이려고 노를 수직으로 걸쳐둔다.

   

p49 이럴 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 멋질 텐데. 그러다가 그는 생각했다. 한순간도 물고기를 잊어서는 안 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해야 돼.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절대 안 돼.

   

이렇게 2일 동안 참새치와 싸우면서 할아버지는 참치를 정복대상이 아닌 하나의 친구로 여긴다. 힘에 부친 상황에서 노인은 옛날의 장사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노인과 참새치의 사투 과정 속에서 노인은 참새치를 하나의 과시욕이 아닌 친구로 여긴다. 나중에 노인은 참새치에게 너를 일부러 죽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어부)을 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을 전한다. 이렇게 해서 잡은 참치를 보트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도중에 상어떼에게 습격을 받는다.

   

p107 하지만 나는 내 물고기를 물어뜯은 상어 놈을 죽였어, 노인은 생각했다. 게다가 놈은 내가 여태껏 본 덴투소 중에서 제일 큰 놈이었어. 하느님도 아시겠지만 난 큰 놈들을 많이 왔어.

오래가기에는 너무나 좋은 일이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모든데 다 꿈이라면,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전혀 없던 일이고 그저 혼자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있는 거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언정 패배하지 않아.” 그래도 이렇게 되고 보니 저 물고기를 죽인 게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처음에는 꼬리, 그 다음에는 대뱃살, 그 다음에는 아가미등을 뜯어 먹는다. 그렇게 상어떼 에게 당해고 나서 보트는 해안가에 도착을 했다. 그때, 보트에 실린 것은 참치의 대가리와 앙상한 뼈만 있었다.

   

p126 물에 반사된 가로등 빛을 통해 물고기의 커다란 꼬리가 배의 고물 뒤로 높이 솟아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허옇게 드러난 기다란 등뼈와 주둥이가 뾰족 튀어나은 시커멓고 커다란 머리가 보였고, 그 사이로 뼈만 남은 텅 빈 잔해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나에게 소설 속 노인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는다. 물고기를 잡지 못한 84일 동안 어부로써의 자존심이 구겨졌을 텐데도, 자신에게 분명 ‘운’이 찾아온다 라고 믿으면서, 그 날을 위해서 준비하는 노인의 모습. 마침 그 기회가 왔을 때,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잡으려는 노력과 결국 참새치를 싣고 돌아오는 모습. 상어떼 에게 참새치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격렬히 저항하는 노인의 강인한 모습.

   

이러한 노인이 겪은 상황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어느 누구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이 순간을 즐기면서 보낸다. 이 순간을 얻기 위해서, 분명 힘든 고생을 했을 것이고, 심지어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드디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만족감 및 행복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속으로 ‘이렇게 열심히 살고, 노력한 나를 하늘이 외면하지 않고, 도와 준 거야.’ 라고 읊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에 반드시 시련이 점점 다가온다. 그 시련이 소설 속 노인처럼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한 순간에 빼앗겨 버려진데도,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 전해준 첫 번째 메시지이다.

   

소설 속 마지막 부분에서 노인은 자신의 방에 와서, 깊은 잠을 청했다. 만일 노인이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상어에게 뜯겨지기 전의 청새치를 계속해서 생각했다면, 집에 가서 잠이 올까? 내가 노인의 입장이라면 오히려 아쉬워서 잠을 안 잘 것이다. 아니 못 잤을 것이다. 자신의 노력을 해서 얻은 최상의 청새치를 어느 누구(상어)가 빼앗아 가고, 쓸모 없는(뼈와 대가리) 것만 남겨서 억울한데, 잠이 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노인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최선을 다 해서 일 것이다. 즉 자신의 능력범위인 극한 상태까지(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가서 최고의 상대(청새치)와 만나서, 그와의 대결에서 이겼다. 그것(청새치)을 외부에 있는 것들(상어떼)로부터 지키려고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노인은 침대에 눕자마자 깊게 잠에 빠져든 것이다. 이러한 노인의 자세는 ‘청년’의 모습과 유사하다. (제가 말하는 ‘청년’의 의미는 단순히 20대인 남자,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청년은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지칭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조정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가 노력을 한 게 자기 스스로를 감동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그게 정말로 노력하는 것". 이 말씀처럼 자기가 한 노력에 스스로가 감동을 받을 만큼 목표 및 목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본 자를 청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전해준 두 번째 메시지이다. 노인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는 ‘겉만 늙은 청년’이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몸은 청년인데, 마음도 청년인지를 생각해 봤다.

 
 
a*******2 2012.11.22.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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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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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세계문학전집이라고 이름으로 나오는 고전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 절판되는 책 시장에서 오랬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살아 남은 책들이다. 즉, 베스트셀러 중에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그만큼 좋은 내용의 책들이 많지만, 많은 책들이 난해한 내용을 다루고 있거나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 많은 마음의 여우가 있지 않는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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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세계문학전집이라고 이름으로 나오는 고전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 절판되는 책 시장에서 오랬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살아 남은 책들이다. 즉, 베스트셀러 중에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그만큼 좋은 내용의 책들이 많지만, 많은 책들이 난해한 내용을 다루고 있거나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 많은 마음의 여우가 있지 않는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많다. 나에게 있어 '노인과바다' 는 그런책중에 하나였다.

 

그러면서 최근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예스24에서 개최한 한 문화축제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 연사가 앞에 나와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뽑은 것이 이 책이였던 것이다. 그것도 문학동네라는 출판사를 꼭 집어서, 작가이기도 한 그가 특정 출판사를 꼭 집어 이야기 했다는 것은 이 번역본이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는 뜻으로 난 받아들였다. 번역본의 경우 번역자가 어떻게 완역 하는지에 따라 작가에 의도를 그대로 전달 할 수도 왜곡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저없이 문학동네의 '노인과바다'를 선택해서 읽었다.

 

'노인과 바다'를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않아 있어야 했다. 책이 주는 여운이 오랬동안 남아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특정 책을 거론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10대에 읽을때, 20대 들어 읽을때, 그리고 30대에 읽을때 느낌이 다 다르다". 사실 그때는 이 말의 의미를 파악 하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당시에는 책의 스토리가 재미 있으면 됐지 그 안의 담긴 작가의 의도나 함축적 메시지를 알기에는 너무 경험이 없었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당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다시 상기 되었다. 이 책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만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아마도 10대에 읽었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내용들이었을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인생의 성장통을 겪고 난지라 '노인과 바다'가 주는 의미는 새삼 남다르게 다가왔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시에 살면서도 우리는 늘 고독한 존재들이다.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고독하다는 것을 잠시 잊고 지낼 수 있을 뿐,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의 배처럼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하나하나의 고독한 배와 다름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가 꾸는 사자의 꿈처럼 희망을 안고 항해를 시작하지만 그 여행의 끝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업다. 오로지 산티아고가 말하는 것처럼 '운과 기술'에 맡기고 무조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나아갈 쯤 행운이라는 대어를 낚는다. 우리는 그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에는 무언지 알 수 없다. 손에 상처를 내어가며 사투를 벌여 보지만, 간혹 내가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그것이 이끄는 방향으로 끌려 다녀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상어라는 위협과 고통에 대처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뼈만 남은 허무함과 공허함 뿐이다.

 

이렇듯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네 인생과 닮아 있다. 하지만, 허밍웨이는 우리네 인생이 단지 허무함과 공허함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오히려 그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친 한 사람의 인생은 교과서 그 자체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된 형이 한 명 있다. 처음에 그 형을 봤을 때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는 군대를 갓 졸업하고 잠시 거쳐 가는 곳이었지만, 그 형의 경우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였다. 보통의 그 나이라면 직장생활을 몇년 하고도 남을 나이였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약간 무시하는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게 된건 저녁을 함께 먹은 뒤였다. 아주 잠시였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그 형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경험과 생각의 깊이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형과 나는 당시 5년이라는 간극이 있었지만 너무나 다른 삶이었고 그 삶에서 나오는 인생의 향기 만큼은 아주 진하게 풍겼던 것이다. 그 이후 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무시한 적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르다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깊이는 내가 배워야 할 점이면 점이지 그걸 무시 할 수 있는 권리는 내게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의 삶도 무시 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산티아고는 최근에 84일 동안 물고기 한마리 잡지 못한다. 그의 어구는 쓸만하지 않고 그의 배에 달린 돛은 밀가루 포대를 이어 메었을 정도로 낡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운이 다했다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가치로 따져 보았을 때 그의 이런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과 별반 다를바 없다 그런 그에게 그를 잘 따르는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은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다 주고, 말벗이 되어 주고, 일일이 그의 생활을 챙겨주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존재다. 그 소년이 그를 이렇게 잘 따르는 이유가 단순히 그가 소년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까?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다른 배에 옮겨 탔지만, 그가 곧 한 어부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산티아고가 훌륭한 기술적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고 해서 소년이 자신처럼 잘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는 자세한 묘사는 나와 있지 않더라도 분명 존경을 자아 낼 만한 좋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 해 볼 수 있다.

 

이렇듯 노인은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 한 것처럼 운이 다했는지도 패배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그의 축적된 어부로서의 경험과 인생만큼은 다음 세대를 의미하는 소년에게는 큰 자산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모습이 패배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오랜 세월동안 갖은 풍파를 거치 그의 인생은 교과서 그 자체인 것이다.

 

 

조 디마지오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노인

 

 

노인은 뉴욕 양키스의 레전드라 불리는 조 디마지오를 좋아한다. 디마지오는 메이저리그에서 56연속 안타라는 대기록과 마릴리먼로와 결혼과 사람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런 그를 좋아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지만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며 독백을 한것을 통해 알수 있듯이 그는 디마지오와 자신을 동일 시 한다.

 

여기서 재미 있는 것을 하나 발견 할 수 있다. 희망을 의미하는 사자꿈의 주인공 사자는 초원의 제왕이고, 그에게 시련을 안겨주는 상어는 바다의 제왕이다. 그런데, 인간의 대표는 메이저릭의 톱타자 중에 한명인 디마지오다. 구지 허밍웨이가 디마지오를 선택한 것은 디마지오의 아버지가 어부 출신이라는 점도 있지마 혹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야구의 한 인물, 그것도 뒷금치 부상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인 디마지오를 노인과 동일 시 한건 아닐까. 그러면서 노인을 통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과 인간은 공존의 관계

 

 

노인에게는 바다에게 삶의 터전이자 그의 삶을 위해서 바다의 생물은 어부로서는 반드시 낚아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노인의 사뭇 남다르다. 자신이 3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잡은 청새치에게 끌려 다니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가 하면, 상어에게 살점이 뜯겨 나갔을 때는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또한 노인을 번민을 한다. 자신은 어부의 자존심으로서 고기를 낚을 뿐이지 단순히 죽이기 위해서 삶을 위해서 잡는게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이는 어부로서는 상당히 모순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노인의 태도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장면들이다. 노인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다. 바다는 여자와 같아 달이 기울듯이 변덕스러움에는 모든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바닷물의 생물은 그에게 형제와 나름없다고 생각을 한다. 뱃속에 있는 미끼로 쓰이는 다랑어조차 쉽게 먹지 못한다. 오로지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기 위해서 먹는다.

 

그런 그에게 바다는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공급처가 아니라 사람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물고기를 잡을 뿐이지 인간이 그것들을 해 하거나 죽일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 허밍웨이의 철학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노인은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면서 인간은 파멸당할지 몰라도 패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년에게는 자신은 패배를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패배한 것일까? 아니면 패배한 것이 아닐까?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노인은 분명 패배를 하지 않았다. 단지, 상어떼에게 습격을 받으면서 그의 성공이 빛을 바랬을 뿐이다.

 

사실 여기에서 패배했느냐 패배하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그 다음 문구가 너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나중에 패배가 아니라 잠시 멀리 나온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으며 스스로 패배자의 낙인을 찍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악재가 겹치고 겹치기도 한다. 이제 막 견딜만한 일이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개인사가 발생 해 죽을만큼 괴로운 시절을 겪기도 한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거나 충분히 감내해 낼 수 있는 일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든 시절이었나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들이 있어기에 지금의 내가 있기는 하지만, 만약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잠시 멀리나와 있었던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았더라면 조금 더 성숙하게 대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한 여행객에게 웨이터는 노인이 잡아온 물고기를 상어의 한 종류라고 했다. 노인은 그것이 청새치라 알고 있는데, 상어라니. 나는 이부분이 놀라운 반전이라고 생각했다. 물 몇모금과 다랑어 몇조각, 그리고 손에 상처을 입어가며 그가 대처하고 있었던 것이 진짜 상어라면 말이다.

 

상어는 삶에서 올 수 있는 시련, 고통 등을 의미한다. 청새치는 한겨울을 나게 해 줄 수 있는 커다란 복덩어다. 그런데 상어 한마리를 쉽게 죽일 수있는 그가 3일동안 사투 끝에 잡을 수 있는 시련앞에 맞닥뜨렸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쩌면, 허밍웨이는 인생에는 오는 시련과 고통은 그것을 지각하느냐 아니면 못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에게는 그것을 감내 해 낼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g****i 2012.1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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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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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비쩍 마르고 야위었으며 목덜미에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두 뺨에는 열대 바다가 반사하는 햇빛으로 생긴 양성 피부암 때문에 갈색 반점이 번져 있었다. 갈색 반점은 얼굴 양옆을 타고 길게 아래까지 번졌고, 두 손에는 낚싯줄에 걸린 무거운 고기를 다루다가 생긴 상처 자국들이 주름처럼 깊이 패어 있었다.(10p)노인은 너무 늙어버렸다. 늙고 쇠잔하여 다음에 바다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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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비쩍 마르고 야위었으며 목덜미에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두 뺨에는 열대 바다가 반사하는 햇빛으로 생긴 양성 피부암 때문에 갈색 반점이 번져 있었다. 갈색 반점은 얼굴 양옆을 타고 길게 아래까지 번졌고, 두 손에는 낚싯줄에 걸린 무거운 고기를 다루다가 생긴 상처 자국들이 주름처럼 깊이 패어 있었다.(10p)


노인은 너무 늙어버렸다. 늙고 쇠잔하여 다음에 바다로 나가면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노인은 바다로 나간다. 그것은 소년 때문일지도, 과거의 영광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여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바다에서 돌아오며 노인은 소년과 동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거라 생각하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가시만이 남은 상황이다. 소년을 이 광경을 보며 울고 동료들은 청새치의 크기에 놀란다. 노인은 영광을 얻고 그렇게 잠이 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깊은 울림이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또한 눈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헤밍웨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미리 예견한 건지도 모른다.


r*******0 2017.1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