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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 그 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싸움과 반목이 끊이질 않고, 해결 되기는커녕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 기만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바보가 아니기에 대부분 옳게 판단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정말 그런 걸까?
흔히 우화라 함은 동식물을 의인화하거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내포된 풍자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우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동식물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바보라 부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화에
등장하는 이런 주인공들 때문에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읽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런 우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닫는지는 전적으로 우화를 읽는 우리 자신의 몫이다. 자연에 덧붙여진 상상의 그림이나 바보들의 행동 속에서 우리는 철학을 배우기도 하고, 세파에 찌든 나 자신을 비웃기도 하고, 또 실의에 빠진 내 마음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많은 우화를 듣고 자랐다. 그러나 그런 우화 속에서도 우리는 사고의 차이를 느낀다. 이솝 우화나
장자에 나오는 수많은 우화와 우언을 읽으면서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느낌과
수용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살아온 관습이나 삶의 태도에 대한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 [인생
우화]는 그런 인식의 차이를 좁혀준다. 폴란드의 작은 마을
헤움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에서 소재를 빌려오고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하지만, 저자가 살아온
삶의 배경이 우리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 우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든 우화가 그렇듯이
자신들에게 닥치는 문제와 타협하며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지혜라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서로 비슷한
만큼의 지혜를 가졌기에 바보들은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뤄 행복한 장소로 만든다. 세상을
배우고 싶다는 아들 요엘과 함께 길을 떠난 아이직에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충고한다며 참견을 한다. 아이직과
요엘의 사정을 알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한다. 아이직과 요엘은 길을 떠나기를 멈추고
헤움으로 다시 돌아온다. 헤움은 자신의 지혜에 따라 살면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되,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곳이었다. 헤움에
잡담과 수다가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만큼 험담도 늘어나고 다툼도 늘어난다. 마을의 현자들은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 수를 250개로 제한하는
법을 만든다. 헤움의 사람들은 하루에 250개의 단어를 넘기지
않기 위해 조심하다 보니 험담과 수다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장수 페이사흐는 셔츠에 단추 하나가 떨어진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떨어져나간 단추를 새것으로 갈아 끼운다. 그런데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나머지 단추들이, 와이셔츠가, 바지가.. 하나하나 새것으로 바꾸다 보니 지금껏 아무런 불만없이
살아온 삶과는 다른 삶이 펼쳐진다. 하나가 새로워진 순간 또 다른 욕망이 꿈틀거린 것이다. 페이사흐는 망설임없이 단추 하나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었던 삶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우화집에 실려있는 45편의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그 결말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다. 개성 뚜렷한 바보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걸린다. 마음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살면서 때로는 웃음도 필요하고, 때로는 독설도 필요하고, 그리고 때로는 위안도 필요하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웃음과 독설과 위안이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마음을 다소나마 풀어 준다면 그것은 우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생을 우화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아직도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 동안 힘들게 달려오면서 여기저기 긁힌 곳도 많고, 이런저런 속도위반도 했을 텐데, 아직도 그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아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헤움의 바보들은 그런 나에게 말하고 있다. 내실이 없는 허세와 과장이 많았던 삶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라고. 그들이 속삭이는 말 속에서 나의 우둔함과 이기심을 깨닫는다. 바보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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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오는 건지, 마는 건지, 조금은 헷갈리는 날씨다. 내 기분도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조금 헷갈리는 마음이다. 그리고 정말 읽고 싶었던, 오래 전에 두었던 책을 펼쳐든다. 인생우화.
"그대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 어쩔 수 없는 사고였으므로 이미 용서받았다. 우리, 저들을 그냥 저 장소에 살게 하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지 지켜보도록 하자. 어쩌면 좋은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 p.10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화들. 그 우화들의 세계로 들어가면, 어떤 세상이 있을가. 나는 이 우화를 다 읽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리뷰를 쓰는 이유는 조금은 궁금한 상태에서, 조금은 읽을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지금 시점이, 『인생우화』를 얘기하기엔 가장 좋은 시점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이유는, 결론을 보고 얘기하면, 왠지 이 책의 내용을 전부 말해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맛보기만이라도 하려고 한다.
2.
"우리의 가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나무를 '비'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비는 '나무'라고 부릅시다. 자,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풍부한 비가 보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온통 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현자 하임이 다시 물었다. "여러분, 주위 모든 곳에 무엇이 보이나요?" "비요!" 모두가 합장하듯 소리쳤다. "우리는 온통 비에 둘러싸여 있어요! 이제 지긋지긋한 가뭄이 끝났어요!" 그렇게 그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고 다시 행복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지혜로운 방법으로 가뭄의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비가 내려 지붕이 새고 강이 넘쳤을 때는 현자 하임의 해결 방식에 따라 '비'를 '나무'라고 부르며 마음을 놓았다. - PP.31~32
그들의 삶은 이렇게 현자의 삶을 통해, 긍정적으로 생활을 한다. 『인생우화』는 이렇게 현명한 삶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드러나지 않는, 드러날 수 없는 진실을 숨겨놓기도 한다. 비를 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가뭄을 극복하는데 현명한, 긍정적인 생활방식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금 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하며, 그것에 대한 적극적 해결방식을 모색하지는 않는 안일함도 있다.
3. "우리가 구입한 정의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세상 어디에서나 정의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만의 정의를 해움에 세울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긴급히 의회가 열렸다. 회의는 않식과 축일을 제외하고 한 달 가까이 계속되었다. 긴 토의와 숙고 끝에 다음과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이제부터 해움에서는 모든 음식과 옷에 <최고급>이라는 상표를 붙인다. 그리고 회당의 모든 좌석은 <설교단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라고 지정한다.' - pp. 46~47
그들의 해결방식은 현명하다기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정의를 구입하러 미국까지 갔다왔지만, 구입한 정의는 썩은 생선만 가득했다는 이 일화는, 그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이,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4. 과연,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다 읽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어떻게 그들이 생활해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생활방식은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인생우화』란 제목처럼, 인생의 깨달음을 아주 현실적인 측면에서 얻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인생우화』는 인생교훈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삶의 아주 긍정적이면서, 현실적인 생각의 방향을 정말 우아하게, 우화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인생이 반드시, 한가지로만 답할 수도,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겪어낸 삶을 통해 다양한 삶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오래되어, 아주 친숙한, 아름다운 느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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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들만 사는 마을이라면 그 어떤 고민이나 아픔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간사 다양한 고민들과 걱정은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혜가 아닐 수가 있고, 삶의 해답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류시화 작가가 말하는 인생 우화에는 허탈한 웃음도 존재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닌 바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드니까. 하지만 누가 지혜롭고 누구 바보 같다고 재단할 수 있을까?
류시화 작가가 쓴 이 우화집은 17세기부터 동유럽에 구전되어 내려온 짧은 이야기들을 재창작한 이야기다. 우화가 펼쳐지는 무대는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 헤움이다. 세상의 바보들이 모여 살지만 스스로는 지혜롭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책을 읽으며 이들이 과연 바보일까? 지혜로운 사람일까? 생각했지만 더 읽어 내려가면 알게 될 것이다. 바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하는. 지혜로운 사람도 때론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고, 바보 같다 생각한 사람도 때론 지혜로운 순발력을 발휘한다. 똑똑한 사람이 늘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 늘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피부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느끼는 자신만의 삶의 형태가 있기에 순간순간 우리는 다양한 지혜로움을 발휘하고 순간의 선택으로 바보 같은 일도 행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 갈만 하다고, 슬프지만 즐거울 수 있다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손목에 빨간 끈을 묶었는데 그게 사라지자 혼란스런 빵장수, 다른 도시로 떠났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자신이 살던 마을로 돌아와서는 이곳이 자신의 마을과 똑 닮은 다른 도시라 믿는 사람, 실수로 창문을 만들지 않은 교회당을 밝히기 위해 손바닥으로 햇빛을 나르는 사람들, 자신이 지어낸 행운의 우물에 대해 거짓말을 반복하다 진짜 믿게 된 사람들, 진실을 구입하러 도시에 갔다 속아서 구린내 나는 오물 한 통을 사온 이야기 등..
너무 바보 같아서 헛웃음이 나지만 우리들 세상도 바보들의 행진인 경우가 많으니 마냥 웃을 수도 없다. 이 세상은 더 어이없는 일도 발생하니까. 큰일에 행복하려하지 말자. 사소하고 작은 일에 늘 행복함을 느끼면 좋겠다. 많이 웃고, 감사해 하며 오늘 하루 크게 웃었다면 그 또한 행복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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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만이 사는 마을인, 헤움에서 벌어지는 바보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접한 책이 [전태일평전(조영래 지음)]인데, 유연치 않게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면서 열악한 근로환경을 깨닫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바보회'였다. "세상 사람들은 전태일과 그의 친구들을 '바보'라고 한다. 왜 바보인가? 고난의 길을 자초하니 바보이다. 세태와 타협할 줄 모르고 순응할 줄 모르는 바보이다." P156 전태일이 만든 '바보회'는 업주들의 방해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버리지만, 그 바보에 대한 정의 만큼은 전태일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냄에 틀림이 없다. [전태일 평전]에서의 바보에 대한 정의는 헤움마을 사람들로 적용하자면 "세상 사람들은 헤움 마을 사람들을 '바보'라고 한다. 왜 바보인가? 자신들이 바보인지 모르기 때문에 바보이다." 이다. 그만큼 바보이다. [인생우화]에 나오는 바보들의 마을, 즉 헤움사람들의 특징은 순수하다. 그리고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의회를 통해 그 해답을 얻고 그 해답이 진실인양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삶은 불행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두 똑같이 사니까. 그러나 그중에 부자가 생기고 빈자가 생기는 와중에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소유는 물질적인 풍족을 가져다 주지만, 영혼을 갉아먹고 관계를 흩어버리는 것임에 틀림이 없음을 많은 예화를 통해 알게된다. 이 헤움 마을에서의 다양한 이야기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나름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움 사람들과는 다르게, 문제가 생겼을때 순수하게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의회나 랍비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우화]는 마치 거울같다. 처음에는 '이런 바보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점점 나도 저러지 않았나라는 생각.. '나도 바보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헤움 사람들,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나는 문제는 그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생각하는 헤움 사람들이 오히려, 당장 눈앞의 문제를 과장하고 은폐해 버려 정녕 문제의 본질에 벗어나는 해결책을 찾게 만드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림에 틀림없다. '지혜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이란 우화에서 마을을 대표하여 이제크가 위대한 선지자에게 지혜로운 말을 듣고자 이웃마을로 간다. 그 메시지를 받고 이제크는 마을로 돌아와 그 메시지를 마을사람들에게 전달하며 자신의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가까이 있지만 바보처럼 까먹는, 메시지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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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플 때 필요한 건 두통약, 상처난 곳에는 소독약. 몸 상태는 이렇듯 정확하게 관리가 되는데, 왜 유독 마음은 관리가 어려운 건지... 그건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늘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인생 우화>를 읽으면서, 그 질문들을 다시 떠올렸어요. 이 우화집은 폴란드에서 전해 내려오는 헤움 마을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류시화님이 재창작한 45편의 이야기라고 해요. 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헤움 마을이에요. 재미있는 건 바보들이 모여 사는 헤움에서는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는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장소에 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혹시나 그들을 바보라고 비웃는 건 아니겠죠? 처음엔 어처구니 없다고, 어리석다고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점점 알게 될 거예요. 나 역시 바보라는 걸 말이죠. 맨 앞에 실린 이야기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목욕탕에 모여 철학적인 토론을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를 우리 자신이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모두 똑같게 창조되었다고 성경에 적혀 있어." "맞아. 따라서 우리를 구분해 주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야."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인공은 깊은 고민에 빠져요. '만약 각 사람의 존재를 구분해 주는 것이 옷이라면, 그 옷을 벗으면 어떻게 되지? 이러다가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로 나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 가지 묘안을 찾아내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 오른쪽 손목에 붉은색 끈을 한 가닥 묶는 거예요. 그 뒤로 목욕탕에 갈 때마다 옷을 다 벗기 전에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으면서, 내가 나라는 증거라고 생각했죠. 문제는 외지인이 헤움으로 이사를 왔는데, 목욕탕에 갔다가 우연히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은 주인공을 발견한 거예요. 외지인은 그것이 헤움의 관습이라고 여기고 따라했고, 그와 마주친 주인공은 공포에 몸을 떨며 말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의 손목에 묶은 끈은 사라졌고, 눈 앞에는 붉은색 끈을 묶은 낯선 남자를 봤기 때문이에요. "친구여, 나는 당신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바로 나입니다. 아니면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목욕탕에 들어갈 때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나에게 말해 주시오. 만약 당신이 나라면, 나는 누구인가요? 제발 말 좀 해 주시오. 남은 인생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오." 어떤가요?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우리들도 저마다 붉은색 끈을 손목에 묶고 있지 않나요? 어떤 직업을 가진 나,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 특히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붉은색 끈들을 볼 수 있어요. 그 붉은색 끈이 사라졌을 때, 내가 나라는 증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인생 우화>는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저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요. 다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될 것 같아요. 신성한 책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각각의 영혼에 탄생을 주관할 천사를 한 명씩 지정하여, 세상에 내려가는 영혼의 귀에 대고 속삭였대요. "세상에 내려가 기쁘게 살고, 배움을 얻고, 더 지혜로워져라." 하지만 인간 세상이 번창하면서 천사의 속삭임을 잊은 영혼의 숫자가 나날이 늘어났고, 어떤 곳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했대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지혜로운 사람인 거예요. 천사의 속삭임만 기억한다면. <인생 우화>를 혼자 볼 수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했어요. 사은품으로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워리돌 인형을 받았어요. 워리돌은 '대신 걱정해주는 인형'이라는 뜻이에요. 자신의 고민이나 슬픔을 인형들에게 이야기한 후 베개 밑에 넣고 자면, 밤 사이에 인형들이 대신 고민해줘서 걱정이 사라진대요. 걱정은 걱정일 뿐, 그 걱정들이 나를 집어삼키게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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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이번 신간은 그동안 그가 쓰고 번역한 책들과는 색다르다. 내가 알기로는 그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번째 우화집이다. 궁금해서 다른 작가들의 우화집을 검색해 보니 한국 작가들이 쓴 우화는 찾기 어렵다.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인생 우화>는 바보들이 모여 사는 폴란드 남부의 헤움이라는 가상 마을을 설정해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써내려간다. 발상부터 신선하다. 신이 천사에게 세상의 모든 바보들을 모아 오라고 지시했는데 천사의 실수로 바보들을 담은 자루 밑이 찢어져 한 마을에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를 매우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비슷한 만큼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비슷한 만큼의 지혜를 갖고 있으니까. 이 우화집의 흥미로운 점이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점에선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화 한 편 한 편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문제,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개성 뚜렷한 주인공들이 어떻게 풀어나가는가를 써내려간다. 그래서 어떻게 더 많은 문제를 만드는가를.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지 않기 위해 손목에 빨간색 끈을 묶은 남자가 그 끈이 사라지자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몹시 당황하는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진실을 말할 때 우리가 하는 거짓말> 편에서 한층 무르익는다. ‘우리가 그렇듯이’ 헤움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외부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자신들의 마을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우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물을 마시면 누구나 행운이 오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이 거짓말을 반복한 끝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차츰 그것이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우리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파트와 차와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나는 이 책을 짧은 시간에 두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으니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무엇을 이야기들의 행간에 숨겨 놓았는가가 보였다. 그 숨겨놓는 것이 우화의 특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우화 읽는 재미라는 것도. 책 날개에 적힌 ‘오랜만에 우화 읽는 재미를 선물한다’는 말이 그냥 광고 문구가 아님을 느꼈다. 좋은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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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 표지에 있는 이 문장을 본 순간, 왠지 움찔했다. 누가 뭐라 했던가? 거울을 들여다보듯, 책 안에서 너무 닮은 '우리'를 만났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지혜를 모으고자, 해결책을 찾으려고. 광장에 모여 논의를 거쳐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매우 민주적이고 최선의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은 또 다른 어리석음을 낳고 또 다른 혼란만 일으킬 뿐이라는 걸, 그 안에 있는 그들은 모르고 그 밖에 있는 우리는 안다. 이야기 중 <전염병 미해결 사건>편은 읽는 내내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마을에 무서운 전염병이 돈다. 회의 끝에 사람들은 '아침을 지키는 사람들' 모임을 만든다. 동트기 전 기도와 경전공부를 하면 전염병이 물러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일어난다는 건 헤움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 다시 회의를 한다. 회당지기를 한 명만 고용하기로 한 것. 그의 임무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잠을 깨우는 것. 하지만 늙은 회당지기는 울면서 추운 꼭두새벽에 사람들을 깨우러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시 회의. 그에게 양가죽 코트 한 벌을 지급하기로 결정. 하지만 마을의 야간 경비원이 민원을 제기. 야간 경비원도 양가죽 코트를 입기 때문에 분간할 수 없을 거라는 불만. 또다시 회의, 불만제기, 다시 회의....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진실은 구리다> 편에서는, 헤움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진실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마부를 보내 진실을 '구입'해온다. 하지만 그들이 사온 진실에서는 구린내가 났다. "구린 걸 보니 진실이 틀림없어." "진실이 맞아! 진실은 원래 심한 구린내가 나잖아!" 그들은 자신들이 어리석게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옳은 결정이었고 현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구린내가 난다 하더라도. 우화는 재미있다. 그래서 우화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른들을 위한 우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너무 교훈적이거나 너무 익숙한 내용의 우화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무더운 여름에 만난 <인생 우화>는 새로웠다. 폴란드라는 낯선 배경도 신선하게 다가왔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 잘 익은 과일을 맛있게 다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천사들의 실수로 모여 살고 있는 바보스러운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엉뚱한 진실'을 만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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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작가님의 신간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애타게도 기다렸다. 폭염을 녹이는 한 사발 빙수처럼 도착한 <인생 우화>. 양장본으로 나온 책이 색깔까지 비취빛이다.
경전 철학서와 함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가 우화집이라는데... "모든 인간은 우화적 세계 속에 태어나며 따라서 우화적 세계 속에서 사유한다. 그런 만큼 어떤 시대를 지배하는 우화 구조를 이해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 라 퐁텐- 말에 동의한다는 작가님의 말씀에도 적극 공감이다.
문제점 45편이 수록된 각각의 목차조차도 우화스러워서 의문을 가졌다. <자기 집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 - 떠났다면서 왜 자기 집인가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 - 하늘에서 나무가 내린다니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 - 걱정을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진실을 말할 때 우리가 하는 거짓말> -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바보도 아는 질문, 천재도 모르는 답> - 바보라야 아는 답, 천재면 모르는 질문 <완벽한 결혼식에 빠진 것> - 빠졌다고 하면서 완벽한 결혼식? 등등
제목들을 훑어보면서 순식간에 스치던 생각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꽤나 진지하고 현명하다고 착각했으나 책을 읽고 나서야 나처럼 엉뚱하고 몽매한 사람이 있나? 하고 돌아보게 했다. 비만을 염려하면서 음식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고 아플 것을 신경쓰면서 밤낮을 의식하지 않았다 불리하게 작용하는 곳에서는 마치 내가 아닌 척 했고 금방 당장 내게 필요치 않으면 모른 척 했던..... 내 안에 나는 누구일까? 하고 지금도 어리석은 물음속에 방황하고 있는 나를 깨운다.
'어처구니없는 세상에서 헤움 식으로 살아가기' 엽서 같은 단편 글에는 긍정을 초월하는 해결법! 어떤 때는 현자가 해결을 하고 때로는 바보가 해결을 하는 내용을 보며 목놓아 웃다가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우화는 내 일상의 실화였다.
어리거나 사춘기의 학생들에게도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는 작가님의 추천이 없었더라도 읽는 내내 만나고 있는 모든 어린 친구들과 어른들까지 강력추천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화속의 세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무한한 답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고의 유연성을 동반하게 하며, 아이들은 유능함을 키우고 어른들은 자기 반성을 하게 되는 내용들
별빛마을이 있는 보현산 숲 속에 앉아서 읽다가 숲길을 걷고 있는 누구라도 동행이 되어 함께 읽고 싶은 책 목타는 초록의 함성이 있고 구름이 가을을 데려오는 계절의 길목 책을 덮으면서 <인생우화>가 <인생심화>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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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화 읽는 재미'를 선물 받았다. 이야기들은 이해하기가 무척 쉬웠다. 행간 사이에 의미를 숨겨놓지도 않았다. 심지어 어떤 편은 제목이 스포일러다.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우화가 그러하듯 그럼에도 여전히 웃음을 준다. 어떤 편은 짧은 실소를, 어떤 편은 아린 미소를 주었다. 또 어떤 편은 오래 음미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자기 집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내 입장이 돼 봐>가 특히 좋았다. 이런 소재들은 문학 외 명상서 어쩌면 심리분석서로도 쓰일법한데, 이번엔 우화를 빌러 가볍게 웃으며 읽으라고 어깨를 툭 치며 권하는 듯하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들에서 수집된 '발굴된 우화들'이라 소개했지만, 고르고 정제하고 새말을 입히는 과정에서 저자의 시선이 녹아들어, 이 우화들은 여전히 류시화 시인의 한결같은 주제의 연장선으로 읽혀졌다. 또한 각각의 단편들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엮어낸 꼼꼼함이 한 권의 책으로 읽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존재하지만 실재하지는 않는, 이 가공의 마을은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각 단편 속 주인공은 다른 단편 속 조연으로 등장하고, 이 단편의 무대는 저 단편의 배경에 섞여든다. 그렇게 엮여진 이야기들은 더 길어지고 넓어져, 어느새 나도 그 엉뚱한 자리에 합류한 느낌이 들었다. 청소년이었던 시기 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고 이야기가 잘 통하던 친구에게 그 책을 선물했었다. 좋아하는 목소리를 공유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서 작가는 우화의 전달자로 충실하려는 듯 작가개인의 목소리를 지워낸 듯하다. 나 역시 저자를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면 '류시화 시인'의 '신작'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우화집을 아무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성공하고 있는 사람이든, 실패하고 있는 사람이든. 우물 안 개구리이든, 길 위의 여행자이든. 글을 너무 많이 읽은 어른이든, 간신히 읽는 아이든. 류시화 시인을 좋아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즐거움과 웃음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네.' 라는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서평처럼 우리들은 이미 영웅신화와 우화를 우리들 내면 일부분으로 채우고 있으니. 번역서, 수필, 그리고 이번엔 우화를 통해 작가는 같은 이야기들을 정성스럽게 반복해 쓴다. 각각의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특별하지 않다고. 우리는 다 비슷비슷하고 세상의 법칙은 단순하다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아마도 늘 여행중인 그가 만나는 세상이 계속 그러하고 그 이야기가 계속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작가의 그런 우직함과 부지런함이 좋다. (이러한 '정성스러운 반복'은 삽화로 쓰인 블라디미르의 연작그림들에서도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한마디로 리뷰한다면 '베스트'가 아닌 '스테디'라는 것. 난 이 책을 세 살 난 사랑하는 조카에게 선물했다. 십 년 후도 이 이야기는 동시대의 이야기일 것이고, 어떤 아이로 자라든 이 우화들은 웃음을 줄테니. (지금은 글을 읽지 못하는 조카도 다행히 삽화 그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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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우화. 우선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인생을 우화에 빗댄 제목이라니,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그 내용이 사뭇 궁금해졌습니다.
예약 주문 뒤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음 책 <인생우화> '천사의 실수로 세상의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는 프롤로그가 좋았습니다. 저는 왠지 '천사의 실수로 이렇게 책 한 권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로 들리더군요.
책의 표지와 중간 중간에 그려져 있는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동화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책 페이지를 넘기는 문장 곳곳에서 웃음이 튀어나오고 때론 어이없어 이마를 치게 되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김없이 해맑게 웃으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네.’ 하며 노래 부르고 있는 듯한 그림들이 만화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까지 더해주었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그날 제게 이야기를 들려줄 헤움 주민이 누구일까 상상하며 책을 펼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야기 ‘시인의 마을’이 들려주는 결론, 누구나 시인이라는 말, 그래서 시인이 필요 없었다는 말처럼 ‘오~’ 하며 감탄을 내뱉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해시계를 해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유’에서 보여주는, 해시계를 보호하기 위해 해시계를 꽁꽁 가두는 헤움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면서도 왠지 내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며 내 그림자를 돌아보게 하는 장도 있습니다. 또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에서처럼 결국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들, 즉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붙잡아주는 그런 헌신의 마음들이 아닌가 하는 진지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책의 맨 앞장에 나오는 이야기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처럼 붉은 색 끈 하나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내가 나라는 증거는?’ 이라 되묻게 되는 장도 있지요. ‘나는 때때로 이런 우화를 쓰고 싶었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의 엉뚱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작가의 말에 나오는 이 글귀가 저는 참 좋습니다. 엉뚱한 진실, 어쩌면 세상의 진실이란 헤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삶이 헤움 마을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느껴집니다. 심각하게 삶을 대하지만, 사실 핵심이 빠져있고, 때론 바로 옆에 있으나 보지 못하고 때론 다 아는 사람이 된 듯 행동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그러면서도 행복한 헤움 사람들을 보며 때론 그 행복마저 부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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