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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한류의 기원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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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람들의 온갖 놀이, 춤과 노래, 재주와 운동은 700년 동안 계속된 고구려역사, 문화의 동력원, 생명 샘이었다. 동맹축제 때의 춤과 노래가 나라안을 하나로 묶었고, 일상 속 놀이와 운동이 오늘을 넘어 내일을 보게 했다.’(124-125쪽)     처음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음식과 노래를 넘어 이제는 우리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 이런 한류의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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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람들의 온갖 놀이, 춤과 노래, 재주와 운동은 700년 동안 계속된 고구려역사, 문화의 동력원, 생명 샘이었다. 동맹축제 때의 춤과 노래가 나라안을 하나로 묶었고, 일상 속 놀이와 운동이 오늘을 넘어 내일을 보게 했다.’(124-125)

 

  처음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음식과 노래를 넘어 이제는 우리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 이런 한류의 바탕을 이루는 우리 문화의 기원은 언제로 보아야 할까? 물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 기원을 찾는 것은 객관적으로 타당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 [한류의 시작, 고구려]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많은 그림을 토대로 하고 중국이나 우리의 옛 문헌 속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 그 기원을 고구려의 동맹축제에서 찾고 있다.

 

  동맹은 해마다 한 차례씩 10월에 평양 대동강변 너른 들에서 열린 고구려 사람들의 큰 모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온갖 행사가 치러졌다고 한다. 왕을 중심으로 5부의 귀족들은 나라의 큰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고 백성들은 노래와 춤, 놀이를 즐겼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고구려사람들은 동맹이 시조 왕인 동명을 기리는 제사와 놀이로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구려의 수많은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노래와 춤, 놀이를 분석하고 옛 문헌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동맹축제의 모습을 재현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고구려의 음악은 크게 고취악과 관현악으로 나눌 수 있다. 고취악은 위의를 갖추고 위세를 과시할 때, 또는 전쟁이나 사냥에서 기세를 북돋우는데 쓰였다. 고취악대의 구성을 보면 가운데 있는 타고대는 메는 북을 두드렸고, 좌우에서는 거는 북, 흔들 북을 치고 큰 뿔나팔을 불었다고 한다. 실내에서는 비파와 현금, , 적 등으로 이루어진 관현악이 연주되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사용한 악기는 36종으로 비파, 현금 등의 현악기가 10, (생황), (퉁소), 필률(피리), (나팔) 등 관악기가 13, 그리고 현고(거는 북), 건고(매단 북), 도고(흔들 북), 담종(메는 종) 등의 타악기 13종이 확인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마디로 고구려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켜고, 불고, 두드리며 음악을 즐긴 셈이다.

 

  이런 음악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춤이었다. 고구려시대 춤 꾼은 평범한 백성이었으며, 축제가 시작되면 마당 한가운데 춤 꾼 자리가 만들어지고 귀족이나 백성이 너나없이 그 자리를 둘러서서 함께 즐겼다. 이렇듯 춤은 고구려인들에게 일상의 일부였다. 그래서 수많은 벽화에 가무단과 합창대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주로 추는 춤은 소매 춤이나 날개 춤이었고 이밖에도 호선무, 탈춤 등이 서역에서 전해져 고구려 춤으로 자리잡기도 했다고 한다.

 

  놀이는 한마디로 재주부리기이다. 기예, 곡예, 교예 등으로 불린 재주부리기에는 손재주나 발재주, 칼 부리기 재주, 말 타기 재주 등이 있었으며, 고분벽화에 다양한 방식의 재주꾼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구려에는 직업적인 재주꾼이나 그 집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먹질과 발길질로 상대를 제압하여 넘어뜨리는 격투기인 수박희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쿵프, 택견, 태권, 가라데 등으로 발전하는 격투기의 원형이었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과녁을 맞히는 놀이인 마사희는 고구려인에게 활 쏘기와 말 타기가 일하고 밥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음을 알려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밖에도 바둑, 투호, 씨름, 축국 등의 놀이가 성행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고분벽화 속에 나타난 노래, , 놀이를 가지고 그 옛날 고구려에서 펼쳐진 동맹축제마당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에게 이들 놀이는 단지 축제속의 한 모습이 아니라 일상생활이었음을 고대문헌을 빌어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문화의 기원이 고구려시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혀준다. 어쩌면 가설일지도 모르지만 고분벽화 속의 고구려인들의 문화에서 오늘날 한류의 기원을 찾는 저자의 해석이 신선하기만 하다.

 

오늘날 한국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의식주와 놀이문화가 제 모습을 갖추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삼국가운데 가장 먼저 문화의 틀을 짜고 그 안에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 넣은 나라는 고구려다. 그런 고구려 문화의 성격과 내용을 당대에 찍은 영상물처럼 보여주는 고적이 고분벽화다. 고분벽화에 묘사된 고구려 사람의 놀이와 의식주에서 고구려문화와 현대 한국문화 사이에 한류 원형의 성립과 계승, 발전이란 역사의 길이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31)

k*****1 2018.10.10. 신고 공감 6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