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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일로나 예르거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일로나 예르거" 내용보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일로나 예르거의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는 소설이다. 역사적인 두 인물의 표지 디자인을 보면서 꽤 묵직한 인문 교양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 책은 엄연히 예르거의 상상력에 의하여 재현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그저 허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다보면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낄 정도로 치밀하게 구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일로나 예르거" 내용보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일로나 예르거[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는 소설이다. 역사적인 두 인물의 표지 디자인을 보면서 꽤 묵직한 인문 교양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 책은 엄연히 예르거의 상상력에 의하여 재현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그저 허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다보면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윈가 마르크스의 행적과 더불어 그들 각각의 수많은 편지를 분석하여 이들의 행적을 재구성하였기에 가능한 것처럼 보여진다. 실제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생몰시기를 감안한다면 그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며, 죽음의 시기는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그들이 말년에 영국에서 수 십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사실은 예르거가 왜 이 두 사람을 소재로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진화'와 '혁명'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두 사람의 치열했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로 대변되는 이 작품은 실제 '진화'와 '혁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다윈과 마르크스의 삶의 행적을 고스란히 재현해내고 있다. 그들의 업적과 사상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에 나름의 고충과 내면에서 갈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예르거는 베케트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하여 그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며, 아울러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둘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있다. 특히 베케트 박사가 구체적으로 둘의 접점을 찾는 지점이 바로 그들의 유명한 저서인 [종의 기원][자본론]을 이용하고 있는 점은 상당히 탁월한 시도라 생각된다.

 

 베케트 박사는 마르크스를 진료하면서 창가의 나무 테이블에서 [종의 기원]을 발견한다. 그 책은 마르크스가 샅샅이 검토한 듯 쪽지들이 책장 사이에 끼워져 있었기에 베케트는 그가 [종의 기원]을 통하여 유인원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선별 과정을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것이 생겨나기까지의 과정에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공교롭게도 베케트는 다윈의 병도 돌보는 상황이었는데, 다윈의 서재에서 마르크스가 헌사를 써서 보내준 [자본론]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다윈은 그 책이 독일어로 쓰여진 초기의 판본이기에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베케트는 둘이 묘하게 통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실 여기에서 가공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는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면서 무신론자가 된 상황이었고, 신을 부정하는 마르크스에게도 호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터라 베케트는 왠지 다윈과 마르크스를 교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느낌마저 풍기고 있다.

 

 인간은 본래 무지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며 죽음이란 결국 다시 그런 상태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임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막 빠져나온 안개를 뒤돌아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략) 우리의 몸이 다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료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라면 그런 미래를 도대체 왜 두려워하겠는가. 오히려 희뿌연 영원의 공간으로,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 77 中에서 -

 무신론에 기반을 둔 베케트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윈의 '진화론'을 통하여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질료'가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베케트가 다윈과 마르크스의 만남을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둘의 만남에 대한 생각은 다소 온도차가 느껴진다. 우선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여 걸림돌이 되던 부분들을 상당 부분 해소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윈에 대하여 호감을 드러낸다.

 "그는 자연에 역사적 발달 과정이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그 밖의 초자연적인 모든 얼룩을 깨끗이 지운 것이오! (중략) 그는 우리에게 종교를 처형할 수 있는 창을 쥐어 준 것입니다."

 "다윈은 자신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관찰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 그대로 대입한 겁니다."

 - p. 140 ~ 141 中에서 -

 하지만 다윈은 마르크스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실제 다윈은 주식 투자라든지 유산 상속을 통하여 당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던 터라 마냥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 사람 모두 무신론자이며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존재로 보고 있기에 이들의 만남은 어쩌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실제 둘의 만남은 이 작품 속에서 우연히 이루어진다. 다윈이 독일의 자유 사상가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마르크스가 그 자리에 함께 한 것이다. 베케트가 그 자리에 없어서 그랬을까? 둘의 저녁 식사는 의외로 싱겁게 끝난다. 시종일관 마르크스는 다윈과의 이야기를 통하여 접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지만, 다윈은 애써 그러한 마르크스의 시도를 외면한다. 심지어 다윈은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발언을 하면서 마르크스의 분노를 사게 되지만, 마르크스 역시 갑자기 잦아든 기침으로 인하여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게 된다. 저녁 식사 후 둘이 산책을 하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지만, 결국 마르크스는 다윈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접고 그가 무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자라고 판단하게 된다. 사실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는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불가지론자는 신의 존재에 대하여 있을 수도 있다라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으니 마르크스이 입장에서는 다윈의 그러한 모호한 태도가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는 유신론자라고 말하는 다윈의 모습은 아마도 죽기 직전에 신을 다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아내 엠마와의 갈등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한 다윈에 대하여 신을 살해한 자라고 비난하는 종교인들의 압력 역시 노년의 다윈에게는 큰 부담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다윈의 미세한 입장 변화를 마르크스를 통하여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훗날 다윈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것에 대하여 마르크스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는 장면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예르거의 상상력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둘의 만남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는 이러한 허구 속에서 둘의 실제 삶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가령 [자본론]이라든지 [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사회주의 이론을 만들어낸 마르크스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다윈의 다양한 실험과 발견에 대한 내용들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몹시 흥미롭다. 이러한 날 것의 사실들이 바케트 박사에 의하여 한층 더 가공되어 해석되는 점도 일로나 예르거의 고증과 상상에 의한 절묘한 결합으로 다가오게 된다 .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신의 왕국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것이며 최후의 심판은 혁명, 연옥은 폭압적인 중간 단계가 평화로운 공산주의의 종착점으로 가는 과도기로 비유하면서 무신론자인 마르크스의 사상이 성경과 같은 어조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사실 둘의 업적과 사상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통하여 소설의 묘를 느끼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둘의 만남에 대한 부분은 기대와는 달리 여운이 남기도 하였지만, 실제 그들의 노년의 삶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통하여 색다른 감동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그러한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g*******7 2018.10.22. 신고 공감 9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18-13 다윈과 마르크스가 만난다면
"'18-13 다윈과 마르크스가 만난다면" 내용보기
갈등을 피하고자한 다윈과 저주하며 갈등을 일으킨 마르크스. '이게 그 둘의 진짜 본모습일까?'를궁금케할 뿐만 아니라 너무 유명한 고전을 완성한 이유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이후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하겠습니다.   1881년을 현재로 상정하여 구성한 이야기. 사료 또는 자료(사진, 저서) 등에 근거하고 일로나 예르거 저자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다
"'18-13 다윈과 마르크스가 만난다면" 내용보기

  갈등을 피하고자한 다윈과 저주하며 갈등을 일으킨 마르크스. '이게 그 둘의 진짜 본모습일까?'를

궁금케할 뿐만 아니라 너무 유명한 고전을 완성한 이유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이후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하겠습니다. 

  1881년을 현재로 상정하여 구성한 이야기. 사료 또는 자료(사진, 저서) 등에 근거하고 일로나 예

르거 저자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다윈과 마르크스, 두 거인은 이런 고초와 내적인 갈등을 겪었을 것

이라는 예상/추정을 구체화 시킨 상태에서 두 사상가와 주변 인물을 투입하여, 설게된 공간과 상황

속에서 살아움직이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독자의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생년은 다르지만 공통의 지병을 앓고 1년 차이로 세상을 떠난 다윈과 마르크스, 근대 진화론과 유

물사관에 입각한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한 막스주의 창시자를 가까이서 살펴보는 즐겁고 흥미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짧게 요약된 연보와는 다른 픽션과 논픽션이 어우러진 다큐라할 수 있을 듯.

  아쉬운 점은 이들은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보다는 이런 주장을 한 후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렇

게 살았을 것이다를 보여준 점이 조금 제 궁금증 해결에 미흡했다는 점이지만 그건 다른 책을 통해

해결하면 될 것 같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악몽과 불면으로 피폐해진 다윈의 밤 7. 여정은 계속되고 자연은 지속적인...... 15. 인간의 지적 능

력에 대한 의심 33. 엥겔스가 부탁한 독일인 환자 51. 그 의사는 신을 믿지 않는다 73. 산책길까지 온

통 실험실 89. 불온한 사상가와 신을 살해한 자 103. 다윈 씨는 유물론을 위한 자연과학적 이론을 마

련한 셈 125. 가엾은 마르크스? 가엾은 다윈! 155. 인식의 조개 189.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한 식사기

213.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 253. 파스칼의 내기 277. 신은 죽었다! 305. 켄트의 언덕에서

323. 죽었으나 죽지 않은자, 마르크스 337.

 

  <사실과 픽션>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나, 아니면 오히려 겁이 많은 사람이었나? 걱정을 나누는 사

람은 누구였나? 그가 남긴 서신들과 그리고 유명한 메모장들이 그의 우주를 온전하게 드러나게 했

다. 특히 그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으며 나는 그의 삶에 서사적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다윈 전기를 읽다가 우연히 곁가지로 언급된 사실, 바로 카를 마르크스가 1873년에 자본론에 다윈

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헌사를 적어 그에게 직접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두 인물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에 어렴풋이 이 책을 착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감전된 것처럼

이 책을 쓰는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신속하게 마르크스에게 감사 인사를 적어 보낸 다윈의 편지를

찾았으며, 그 내용을 읽자마자 마르크스가 이 책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또 두 사람이 겨우 20마일 떨

어진 곳에 살았다는 사실도 빠르게 찾아냈다. (중략)

  카를 마르크스에 관해서도 역시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론 구조보다는 마르크스 개인으로

서의 성격이라든지 속한 국가가 없는 망명자로서의 삶 같은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무엇을 하면 시간을

보냈나?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희망했나? 그가 사용한 언어는 그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끝

이 보이지 앟을 정도로 계속된 파산 상태와 꾸준한 투병 생활, 그리고 프로이센의 스파이들에게 받은

감시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중략)

  가장 큰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인류가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저작을 집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자

의 종교를 가차 없이 목을 쳤고, 비슷한 방식으로 그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353 ~ 355쪽

 

  나는 소위 원숭이에 관한 질문을 던져 그 질문에 인류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답한 사람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 되는 일을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신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교회의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반역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또 바로 그 때문에 좌파들에

게서는 온갖 찬사를 받는 것도 이제 고통스러워요. ……

  내가 보기에는 무신론자들의 논리는 로마 카톨릭 성직자들과 똑같습니다. 충분한 토론 과정을 생

략해 버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배제하고,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을 주장하고, 생각을 전파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굴지요. 이 과정에는 도대체 조금의 겸허함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오? 245-246쪽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습을 입법과 제도를 통해 바꿔 나가야지 피가 흥건한 혁명을 통해서는 안 된

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마구 해고되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요. 이들이 해고 전에 그

사실을 통보받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빈곤층에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데는 단두대

나 프롤레타리아의 승리 말고도 다른 방법들이 있을 겁니다. 109쪽

 

  많은 좌파들이 오래 전부터 교회를 증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이 행성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이 처음에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알지 못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느낌은 있었지만 그걸 설명

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가 없었다고 할까요. 다윈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죠.

  그는 자연에 역사적 발달 과정이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그 밖의 초자연적인

모든 얼룩을 깨끗이 지운 것이오!

- 마법에 걸린 듯 사로잡혀 저 너머의 세계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것을 넘어 사람들은 이제야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삶을 돌볼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

  다윈은 자신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관찰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 그대로 대입

한 겁니다. 아니 그가 자연에서 예전 영국의 역사를 다시 알아본 건 우연이 아니에요.  141쪽

 

  나는 선생이 내가 자본론을 공부하다 말았듯 만각류에 관한 그 두 권의 책, 천 페이지가 넘는 그 책

을 샅샅이 살펴봤으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오. 어쨋든 한 가지 사실만은 교회에서 아멘을 외치는

일과도 같이 확신하고 있소. 내가 보낸 그 세월 동안 현미경 렌즈 아래서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모범

이 될 법한 그림은 절대로 본 적이 없소. 단 한 번도 없소. 악마에게나 잡혀 가라지! 173쪽

 

  좌파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예언자를 단순히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뜻을 따

라 새로운 종교가 되게 하려면 누군가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사

람들이 이해하기에 마르크스가 쓴 사회적 평등에 관한 내용은 너무 어려웠다. 183쪽

 

  (마르크스의 장례식)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열한 명의 조문겍과 함께 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였다.

339쪽

  정확히 열한 시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정문이 열리자 2천 명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런던 시장

이 러시아, 프로이센,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대사를 동반하고 화려하게 착석했다. 상원 귀족들이 서

로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했다. 이전 며칠간 여러 매체에 용서의 말을 퍼뜨려 놓은 주교와 수석 사제들

이 영광스럽다는 듯이 참석했다. 314쪽 (다윈의 장례식)

  극과 극이지요.

 

  다윈이 유기적인 자연 현상 속에 숨겨져 있던 발전의 법칙을 발견했듯이, 마르크스는 인간 역사의 발

달 법칙을 발견한 겁니다. ......

  다윈의 자연과학은 신의 죽음을 선포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은 자본주의를 살해했지요. 다윈은

동물이나 식물의 종처럼 우리 인간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통해 발달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다양한 계급들이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을 통해 생겨났다고 설명합니다. ......

  진화론이 최종적으로 증명한 것, 모든 인간이, 피부색이 검든 노랗든 희든 모두 같은 조상을 공유하

고 있기에 평등하다는 것, 이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진화론과 공산주의는 노예와 억압

없는 사회를 위한 공고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345쪽 - 저자가 엥겔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업적-

 

  1881년을 현재로, (가공의 인물인) 베게트라는 의사를 접점으로 다윈과 마르크스의 생활과 대화를 본

다는 구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거짓된 예언자(마르크스를 혹평할 때), 불가지론자(다윈을 혹

평할 때)이거나 아내의 뒤에 숨어 상황에 적합한 말만하는 사람 또는 망명의 삶에 지쳐 돈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쏟아내는 무어인일 수도 있는 다윈과 마르크스. 저명한 과학자로 국장 차원에서

사원에 묻힌 사람과 쓸슬히 장례식을 치뤘지만 공산주의의 창시자가 된 사람. 이 두 사람의 삶을 두 눈

에 담을 수 있는 픽션과 논픽션이 뒤섞인 다큐 스타일의 책. 짧게 요약된 네** 정보를 넘어선 생각의 나

래를 펴고 싶을 때, 자신의 삶의 방향을 체크하고 싶을 때도 읽은 만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거인의 삶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긴다는 점도 좋지 싶습니다. 생생히 묘사된 생활

이나 대화가 궁금하신 분들도 읽어보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증정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j 2018.10.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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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 사실과 허구, 내적 삶과 이론, 그리고 투쟁...
"마르크스와 다윈, 사실과 허구, 내적 삶과 이론, 그리고 투쟁..." 내용보기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라는 부제의 일로나 예르거(Ilona Jerger)의 책 ‘두 사람’을 읽었다. 동기(動機)가 된 것은 정조(正租)와 정약용의 관계를,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적 상상을 더해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는 생각이다. 사실 ‘두 사람’이 소설(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소설 형식이어서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저녁 식사라는 말을 접하고 10년 전
"마르크스와 다윈, 사실과 허구, 내적 삶과 이론, 그리고 투쟁..." 내용보기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라는 부제의 일로나 예르거(Ilona Jerger)의 책 두 사람을 읽었다. 동기(動機)가 된 것은 정조(正租)와 정약용의 관계를,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적 상상을 더해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는 생각이다. 사실 두 사람이 소설(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소설 형식이어서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저녁 식사라는 말을 접하고 10년 전 읽은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식탁을 떠올렸다. ‘다윈의 식탁은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논쟁 형식의 책이다. 나는 다윈에 대해서는 물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최근 흐름으로 보건대 나에게 익숙한 것은 마르크스(의 생애).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본을 쓴 그를 역시 같은 도서관을 자주 찾아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와 비교하는 글로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독일인 마르크스가 영국인 다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것은 망명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존재를 알았다. 다윈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헌사를 적어 다윈에게 보냈을 정도인데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마르크스와 다윈의 관계를 매개한 것은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다윈의 지인이자 마르크스의 사위인 에이블링이 다윈에게 장인을 모시고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성사되었다.

 

베케트 역시 두 사람에게 차례로 상대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는 다윈과 마르크스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며 각기 이런 저런 병에 시달린 두 사람을 치료해주는 주치의로 설정되었고 에이블링은 실제 마르크스의 사위였지만 그가 마르크스의 사위가 된 것은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이다. 따라서 이 설정 역시 소설적 즉 (부분적으로) 허구다.

 

저자는 진화 이론 자체가 아닌 다읜의 내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 만큼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이론 구조보다 마르크스 개인 성격이나 국가 없는 망명자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말을 했다. 다만 다윈의 경우는 집안이나 산책로 등의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된 반면 마르크스의 경우는 베케트와의 짧은 대화가 주되게 다루어졌다.(자료 찾기가 어려운 결과다.)

 

내적인 삶이나 개인 성격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베케트가 다윈과, 그리고 마르크스와 나누는 이론적 대화는 꽤 전문적이다. 마르크스와 다윈이 만난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도 그렇다. 사실 이 부분은 다윈의 아내 엠마의 문제가 드러난 자리이기도 하다.(엠마는 무신론자인 남편 다윈이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저술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본저술의 단서를 삼았지만 다윈을 기회주의자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관찰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 그대로 대입했으며(141 페이지) 공산주의는 진보이며 순진하게 꿈결 같은 자연 상태가 진보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146 페이지)

 

다윈은 자연과학자로서 과학이란 모든 사회적인 분쟁의 외부에서 작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말(162 페이지)과 함께 자연에 협력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경쟁의 결과라는 말, 협동을 기본 원칙으로 격상시키려는 사회가 두렵다는 말(163 페이지)을 했다.

 

다윈은 자연의 수많은 법칙 중 몇 가지를 점점 더 이해함으로써 신앙심 깊었던 예전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한다.(298 페이지) 다윈은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규정했다.

 

두 사람은 내 관심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유대인 및 랍비와의 연관성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랍비 아버지의 자식들이었으나 그런 점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누가 가족사를 알려고 하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랍비가 되기를 기대받았지만 범신론을 버리지 않아 파문당했다. 오랜만의 소설이라 말해야 하지만 소설 이상의 책이라는 생각에 그런 표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소설 형식의 책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은 하고 싶다. 재미를 묻는다면 재미라기보다 진실의 감동이 더 크다는 말을 하고 싶다.

    

m******1 2019.02.2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화(evolution) 대 혁명(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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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40억여원. 희귀한 보물이나 유품의 낙찰금액이 아닌 지난 2016년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워렌 버핏 회장과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금액이다. 낙찰자는 다음 투자처를 제외하고는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유명인과의 식사기회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낙 높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에 응찰할 수 있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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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가 40억여원. 희귀한 보물이나 유품의 낙찰금액이 아닌 지난 2016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워렌 버핏 회장과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금액이다. 낙찰자는 다음 투자처를 제외하고는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유명인과의 식사기회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낙 높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에 응찰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 보면 유명인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함께 하는 식사 과정이 친밀감을 높여 더 우호적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고, 더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등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편 그동안 출판계에서는 대담이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지성, 분야별 전문가 등의 사회적 현안에 대한 입장이나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내는 내용을 담은 책을 꾸준히 출간해왔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주선한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라 불리기도 하는 도정일·최재천 교수의 대담>,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국내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씨의 소설가 정유정, 방송인 김어준 등과의 인터뷰를 다룬 다양한 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형식의 책은 대담자나 인터뷰이의 생각을 좀 더 생생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편이다. 종합해볼 때 식사와 대화는 그 참여자의 본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는데 갈라파고스의 신간 두사람은 지성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다윈과 마르크스라는 두 인물의 가상의 만남을 다룬 작품이다.

 

  저자는 두 인물이 건강이 모두 좋지 않았고 런던 부근에 살았다는 점, 그리고 마르크스가 1873년 자신의 책 자본론에 다윈에 대한 헌사를 직접 적어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둘의 만남을 구상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두 명의 주치의로 등장하는 베케트라는 가상 인물의 눈을 통해 건강상태, 연구주제, 생활모습,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사후세계를 믿지 않으며 환자가 죽음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고자 노력하는 진보적 의사였던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가진 학문적·역사적 의미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사회의 실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베케트는 다윈과 마르크스를 오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만나보기를 권하는데 급기야 다윈과 마르크스가 서로에게 관심을 두게 된다.

 

  그러나 정작 실제 둘의 만남은 런던에 온 마르크스의 사위 에이블링으로 인해 이루어졌는데 188110월 저녁식사 자리에서 다윈은 진화론이 유물론을 위한 자연과학적 이론을 마련한 셈이라는 입장을 가진 마르크스에 대해 본인이 불가지론자임을 밝히면서 마르크스를 이상주의자라 비판한다. 세상을 향한 관점의 차이만 드러낸 채 이 역사적인 자리는 불편하게 끝을 맺고 마는 것이다. 1883년 마르크스의 장례식의 엥겔스의 추도 연설에서 언급된 두 거인에 대한 평가로 책은 마무리된다. “다윈이 유기적인 자연 현상 속에 숨겨져 있던 발전의 법칙을 발견했듯, 마르크스는 인간역사의 발달 법칙을 발견했다.”

 

 

  다윈과 마르크스의 실제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신학을 전공하고 신부가 되려던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신을 부정한 셈이 되었지만 종교적이고 보수적이면서 공산주의 운동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고 마르크스 역시 랍비를 많이 배출한 유대교 집안 출신이었지만 혁명을 주창했던 열혈 행동가였다. 이런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을 종교를 매개로 잘 연결하고 말년의 모습을 소설 형식으로 서술해 종의 기원, 자본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두 위인의 학문적 성과와 인간적 모습, 고뇌 등을 흥미롭게 따라가도록 한 두 사람은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글쓰기의 진화(evolution)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d*****a 2018.10.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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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식사를 엿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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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식사를 엿듣고 싶다.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함께 저녁을 즐기며 두 거장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을 상상만으로도 이미 눈과 귀가 즐겁고 기대된다. ^^내가 책으로만 만나서 알고있는 마르크스와 다윈이 만나 둘만의 저녁식사를 나누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펼칠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는 보너스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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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식사를 엿듣고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함께 저녁을 즐기며
두 거장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을 상상만으로도
이미 눈과 귀가 즐겁고 기대된다. ^^
내가 책으로만 만나서 알고있는 마르크스와 다윈이 만나 둘만의 저녁식사를 나누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펼칠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는 보너스라 기대하며^^
h******0 2018.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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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일로나 예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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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에 거의 이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살았고 각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저작을 쓴, 세계사에 남을 두 영웅이 서로 협의해야 할 것이 있었다면 그건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p.353동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자연과학자 찰스 다윈과 정치경제학자 칼 마르크스의 만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일로나 예르거" 내용보기

동시대에 거의 이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살았고 각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저작을 쓴, 세계사에 남을 두 영웅이 서로 협의해야 할 것이 있었다면 그건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p.353

동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자연과학자 찰스 다윈과 정치경제학자 칼 마르크스의 만남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다. 두 사람은 런던의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실제로 조우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출간한 당시 찰스 다윈에게 헌사를 써서 직접 보냈고, 찰스 다윈이 감사 인사를 적어 보냈다고 하니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자는 찰스 다윈이 남긴 만 오천여통의 편지와 메모,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 받은 서신을 통해 두 사람의 이론적인 면보다 개인으로써 살아왔던 내면에 초점을 두었고, 가상의 공간에서 둘의 만남을 그려냈다.



여보, 공산주의자가 우리 식탁에 앉아 있어요! p.226


다윈이 유기적인 자연 현상 속에 숨겨져 있던 발전의 법칙을 발견했듯이, 마르크스는 인간 역사의 발달 법칙을 발견한 겁니다. (…) 다윈의 자연과학은 신의 죽음을 선포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은 자본주의를 살해했지요. p.344

찰스 다윈과 칼 마르크스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였지만 공통점도 적지 않다. 둘 다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고, 말년에 나타난 병세도 비슷했다. 인상은 전혀 다르지만 덥수룩한 수염을 가졌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종교에 관한 것이다. 다윈은 신학을 전공했지만 진화론을 발표하고난 뒤 창조론자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마르크스는 랍비 출신의 집안이었지만 유대교 박해로부터 개종하고 후에 그는 완전히 무신론자가 된다. 


두 사람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찰스 다윈은 자신의 가족과 동물을 사랑하고, 일에 있어 철저히 계획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대함에 예의가 바르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혁명을 외쳤던 마르크스는 말도 거칠고 성격도 화마 같았으며, 하고싶은 공부가 너무 많아 약간 마무리가 안되는 스타일이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엥겔스의 재정적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후에 엥겔스의 여자친구가 죽고 난 집을 달라고 했다가 엥겔스가 엄청 화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약간은 철면피스러운 모습도 가지고 있다. 


책은 학자로서의 찰스 다윈과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말년에 접어든 두 사람의 삶이 그려낸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 찰스 다윈의 전기에 좀 더 가깝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일은 딱 한 번 그려지는데, 이 저녁식사는 실제 두 사람이 만났더라면 이런 장면이 불 보듯 뻔하게 연출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게 쓰였다. 또한 저자가 등장시킨 허구의 인물 의사 베게트와 사제 토머스 굿윌 외에 실제로 당대에 유명했던 학자들이 한 책에 모아 놨으니 실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이 책을 읽는다면 찰스 다윈과 마르크스와 함께 저녁을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뭐 소화가 잘 되련지는 모르겠지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h*********o 2018.10.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