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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메뚜기와 꿀벌》이다. 제목이 좀 아쉽다. 그렇다고 '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라는 설명은 더욱 제목으로 쓸 수도 없을 것이다. '메뚜기와 꿀벌'에 부여한 의미가 이 책의 중요한 핵심이니 말이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낯선 제목 때문에 이 책이 선택받지 못한다면 너무 아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1장 '자본주의 이후'만 읽어보아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본주의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며 눈길을 놓치지 않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배워본다.
제프 멀건은 '메뚜기'와 '꿀벌', 즉 '약탈자'와 '창조자'라는 대비되는 두 개념으로 자본주의의 이중적 속성을 모두가 알기 쉽게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타인이 창출한 가치를 뽑아먹으려 하는 약탈자와 무임승차자에게 보상을 한다는 문제를 지녔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를 창조하는 자, 만드는 자, 제공하는 자에게도 보상을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두 가지 속성의 불균형이 우리 사회에 숱한 문제점들을 야기했음을 냉철히 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전망에 대해 심도 깊게 논한다. (책 뒷표지 中)
이 책의 저자는 제프 멀건. 사회 혁신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이다. 현재 세계경제포럼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미래 위원회'에서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프랑스 디지털 에이전시 이사회, 스코틀랜드 정부의 '캔두'패널, 서울시 사회혁신국제자문단, 아랍에미리트 총리실의 자문위원회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계속해서 움직이는 시스템으로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영구적인 종착지에 도달한 시스템이 아니다. (11쪽)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된다. 1장 '자본주의 이후', 2장 '불모의 위기와 생산적인 위기', 3장 '자본주의의 본질', 4장 '갈취할 것인가, 생성할 것인가: 약탈자와 창조자', 5장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6장 '반자본주의 유토피아와 네오토피아', 7장 '변혁의 속성: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8장 '창조적 기술과 약탈적 기술', 9장 '관계와 유지에 기반한 경제의 부상', 10장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개념들', 11장 '새로운 배열:사회는 (가끔씩이나마) 어떻게 도약하는가, 12장 '자본주의를 넘어서'로 나뉜다.
먼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를 보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자본주의는 부지런한 꿀벌같은 사람에게도 보상하지만 약탈하는 자에게도 보상을 한다. 약탈 또한 자본주의의 단면이고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문제제기를 하며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한 대다수의 저술은 창조성과 약탈성 사이의 긴장 관계를 무시하고 있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본주의는 지금처럼 창조적이었던 때가 없지만 지금처럼 약탈적이었던 때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계속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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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사상과 탄탄한 실용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는 뛰어난 책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책이기도 하다. 멀건은 자본주의가 가진 속성 중 포용적인 측면을 어떻게 최대로 끌어낼 것인가를 논하면서, 공공선을 일구기 위해 우리 사회가 취해야 할 새로운 접근법을 탐구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체제에서 최상의 것들을,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희망을 제공하는 것들을 끌어내자고 설득력 있게 촉구한다.
_존 J.드조이어 (조지타운대학교 총장)
자본주의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 현재와 과거까지 짚어보아야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두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또한 지금껏 생각지 못한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찾는다. 그저 자본주의가 저절로 미래를 향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스스로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충분히 두껍고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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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꿀벌> 자본주의 두 얼굴과 미래의 대안 이야기 독서를 하면서 얻게 된 큰 이점이라면, 결코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다양한 영역에 대하여 지식의 증가는 물론이며, 지식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하나하나의 톱니만 보며 살아왔던 내게,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이 하나, 둘, 셋 그리고 넷의 기어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톱니바퀴는 혼자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최초의 원동기어가 모터에 의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기어에 맞물린 수많은 종동기어들이 자신의 바퀴 숫자에 맞춰 자신의 속도로 돌아가며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생긴 문제의 원인이 연결되고 연결된 저 건너편 기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문제를 풀려면 당장 여기에서 뭘 할 수도 있겠지만 저기서도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에 대한 독서를 거의 마무리 지을 즈음 보게 된 영화 “목격자”는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였지만 너무 시의적절한 만남이어서 독서의 폭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단순히 미스터리 또는 스릴러 영화라고만 생각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는 공포 속에 닫힌 도시인들, 결국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자 많은 대사 속에, 피해자들의 눈물 속에 자본주의가 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 노력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을 추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결국 그 삶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최대의 이익주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집단 이기주의와 개인 중심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가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살인사건 이후 같은 아파트 주민이 사라졌는데도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는 남편을 저지하며 아파트 시세만 걱정하는 못난 사회를 보여준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어떤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자본주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와 혁신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많이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의 자본을 빼앗아가는 약탈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꿀벌은 꽃을 좇아가며 사람에게 이로운 꿀을 생성하지만, 메뚜기는 논과 밭과 나무를 휩쓸고 다니면서 자신의 욕심만 채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황폐함만 남는다. 자본주의가 어떤 생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 책은 경제학자가 쓴 책이 아니라 사회혁신 전문가가 집필한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제대로 직시하고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혁신을 꾀할 수 있을까를 논한 책이라고 보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 책은 전반부에 자본주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자본주의가 진짜 자본주의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했던 유토피아가 어떤 세상이었는지 철학적 접근, 학문적 접근, 그리고 다양하게 시도된 경제 유토피아 사례들의 흔적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를 훑으면서 자본주의의 특성을 파악해본다. 그리고 후반부로 들어가면, 결국 약탈자의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혁신해나갈 수 있을지 <11장. 새로운 배열 : 사회는 어떻게 도약하는가>에서 10개의 소제목으로 밝힌다. 아마도 이 책의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1. 집단 지성과 집단 창조성 동원하기 로베르트 웅거는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현재에 저항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를 법칙처럼 고정된 것, 변형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370쪽) 지식은 오픈소스처럼 개방됨으로써 집단 지성을 강화하게 개인 발명가를 통한 발전이 아니라 집단 창조성을 통해 자본주의가 성장할 때 자본주의는 약탈자가 아니라 창조와 혁신이 될 수 있다. 양질의 지식과 정보를 구별해야 하며, 진실의 생태계를 강화함으로써 데이터의 약탈적 행동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2. 자본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우리의 시중을 들게 하며, 소유와 통제를 함께 대중화하기 3. 지속 가능하고 협업에 기반한 소비로의 전환을 독려하고, 모든 형태의 낭비 및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슬로푸드, 자발적인 소박한 삶, 비만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한 노력 등은 소비를 좋기만 한 것으로 보던 데서 때로는 후생을 훼손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의 전환을 반영한다. (388) 우선, 선택이 늘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 너무 많은 선택지는 선택을 방해한다. 적어도 몇몇 시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선택을 가질 것인가’ 자체를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함’에 대한 질문도 제기된다. 얼마큼이면 충분한 것인가? 20세기 성장모델은 소비의 지속적인 증가를 전제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많이 가지면 오히려 역량이 약화된다. (389) 4. 생산과정을 더 순환적으로 만들고, 유지 보수의 경제 성장시키기 전통적인 생산 모델은 물질, 노동, 에너지를 투입해서 물리적인 생산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 물건이 쓰고서 버려지면 땅에 파묻는다. 그리고 생산과정에서도 최종 제품의 무게보다 몇 배나 많이 나가는 막대한 쓰레기가 나온다. 대안은 생산을 ‘닫힌 고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든 자동차든 어떤 물건이 유용한 수명을 다하고 나면 거기에 들어간 부품들을 수거해 재사용하거나 재활용되게 하는 것이다. (393) 5. 노동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놀이를 삶의 일부로 만들기 많은 이들에게 노동은 불안정하고 충족감을 주지 않으며 불공정하다. 하지만 노동은 정체성과 사회적 인정의 주요 원천이기도 하다. 실업은 임금이 동결되는 것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396) 놀이는 안정성에 의존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경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놀이에서 경쟁한다. 또 놀이는 자율성과 협력 둘 다를 가르친다. 그리고 좋은 노동이 그렇듯이 놀이는 우리는 더 온전히 살아 있게 해준다. (401) 6. 교육, 건강, 복지를 도구적 목적뿐 아니라 관계적 목적 위주로 재구성하기 현대 생물학과 사회과학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임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우리의 행복, 자존감, 자긍심, 아니 우리의 삶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의존한다. (407) 7. 화폐 이외의 다양한 교환 체계 갖추기 8. 부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규범 촉진하기 9. 중요한 것 측정하기 10. 공적 미덕과 사적 미덕 모두를 갖춘 ‘마음 씀’ 육성하기 ‘지능’은 단지 정보 처리나 사고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자동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능은 목표나 사고방식에 대한 ‘성찰’도 포함하며, 성찰은 개인에게만큼이나 사회에도 중요하다. 깊이 마음을 쓰는 사회는 혁신의 수단뿐 아니라 목적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하고, 새로운 지식의 윤리적 차원들도 성찰해야 하며, 서로 다른 주장과 임무들의 상대적인 타당성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421) “깊이 마음을 쓰는 사회”는 결국 영화 <목격자>에서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중앙 화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을 켜고 있었지만, 피해자가 ‘살려주세요’를 수없이 외쳤지만,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한 “깊은 마음”을 쓰지 않았다. 나만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 타인의 안전은 관심 밖이었다. 내가 깊은 마음으로 타인의 안전을 위해 한 걸음 내딛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피해자는 바로 내 가족일 수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다. 그 타인의 익명성은 결국 자신의 익명성과 동일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약탈자의 특성이 더 강화되지 않도록, 꿀벌의 창조와 상상력과 혁신의 특성이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맛있는 꿀로 나타나도록, 우리는 더 준비하고, 희생하고, 깊은 마음을 쓰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주제가 무거웠고, 책도 두꺼웠고, 읽는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이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책이었다. “얕은 마음”을 버릴 용기를 준 고마운 책이다. 내 가족이 소중하듯이 이웃의 가족도 소중하다. 내가 얕은 마음을 버릴 때, 자본주의도 약탈자에서 협력자로 돌아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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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회, 경제, 정치 체계가 사람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 처럼 어떤 발달 단계나 그와 비슷한 것이 있다면 선진국들을 비롯해 우리 나라는 사회, 경제, 정치 체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 <메뚜기와 꿀벌은> 이런 궁금증 가운데 보게 된 책으로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심도 깊게 읽은 책이었다. 이 책 <메뚜기와 꿀벌>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생산과 소비의 측면을 가지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처음과 끝인양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렇게 간단하게만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요소들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우선 책 소개글을 보기 전까지 <메뚜기와 벌꿀>이라는 책 제목만으로는 그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책을 보면서 메뚜기와 꿀벌의 은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보다 조금 앞선 18세기 초 버나드 맨더빌은 자본주의 초장기 명저 중 하나인 “꿀벌의 우화”란 책을 썼다고 한다. 그 이래로 꿀벌은 생산성, 희망, 창조성 등 자본주의의 좋은 면을 지칭하는 은유로 사용되어 왔고 반대로 메뚜기는 자본주의의 약탈성, 무력, 갈취 등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을 지칭하는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 결국 메뚜기와 꿀벌은 자본주의의 양면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책은 꿀벌에 힘을 실어주고 메뚜기를 제악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찰하고 있었으며(p.31)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그 본질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 대해 이야기하며 자본주의의 여러 변화 가능성에 언급하며 Post Capitalism,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그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을 담고 있었다. 이 책 <메뚜기와 꿀벌>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 다각도로 분석해 놓은 책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그 방향이 궁금하다면 이 책 <메뚜기와 꿀벌>을 봐야 한다. 다른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책 내용은 천천히 읽어 나가니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생각이 한번에 머리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던 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무게감이 있어 자본주의를 보는 안목과 식견과 나의 사고를 틔어 주는 책이었다. 정독했지만 한번 더 읽어보면서 과거 자본주의의 모습과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변할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오랫만에 맛있는 책을 본 것 같아 참으로 만족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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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 170년이 지났지만,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또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뚜기와 꿀벌: 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의 저자 제프 멀건(Geoff Mulgon)은 자본주의를 '메뚜기'와 '꿀벌'에 빗대며 소개한다. 자본주의를 삶과 생명에 더 밀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자본주의가 풍성해지고, 즐거워지고, 고양되고, 의미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의 뿌리에는 하나의 개념, 하나의 상상, 세계를 보는 하나의 방식이 놓여 있다. 그 개념은, 오로지 가치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환 가능한, 가치의 표현들'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64p)” 자본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왔으며 자본주의의 명암을 조명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가 가장 잘 만해준다고 보는 견해, 기업가보다는 투자자와 자본가를 자본주의 경제의 지배자로 꼽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위의 견해와 함께 단지 경제의 한 형태로서만이 아니라 '문화'나 '문명'의 형태로서 자본주의를 규정한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두 얼굴이다. 그는 이를 '꿀벌'과 '메뚜기'로 표현했는데, 꿀벌로 표현되는 건 바로 '생산자'이다. 자본주의는 더 정교한 베틀부터 더 정교한 조직 운영 방식까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해서 창조한다. 생산 활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은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가 가진 가장 놀라운 특성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반면 저자는 자본주의의 다른 얼굴로 '메뚜기' 즉, 약탈자의 얼굴을 꼽았다. 과거에는 주로 식량, 주택, 생명 등 가시적인 것을 대상으로 약탈이 이뤄졌다면, 가치의 '표현'이 점점 더 경제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제는 현실에서 한발 떨어진 곳에서도 약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새로운 약탈의 기회도 생겨날 것이다. 어떤 기회는 경제 권력과 군사 권력이 상호 강화적이라는 점에서 나올 것이다. 가령 새로이 열강으로 부상한 러시아와 중국이 자연 자원을 확보하고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열기 위해 다른 나라들에 압력을 행사하려 할지 모른다. 어떤 기회는 조직 범죄부터 외환 거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네트워크'를 통해 생겨날 것이다.(125p)” 저자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소개하며, 앞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진화해갈지 생각해볼 수 있는 이론적인 틀을 제시한다. 특히 자본주의를 변혁할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성공이라고 밝히며, 지금의 자본주의의 성공을 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자본주의 자체가 자주 약탈적 행동에 맹렬히 나서는 것을 경계하며, 꿀벌에 힘을 실어주고 메뚜기를 제약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조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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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 내가 가졌던 느낌은 곤충이었다. 곤충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나쁜점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사회과학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들만 읽었던 것 같다. 특히나 대학을 다닐때나,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키워드에 홀려서 너무 낳이 그 그러한 책을 탐독했던 것 같다. 자본주의를 직시하지 못하고 그것의 단점만을 소비하면서 자본주의 자체를 악마화해서 생각한 것은 아닐지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분명히 인류에게 혁신을 가져왔다. 이것을 어느 관점에서 보면... 나쁜것으로만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인류가 초기에 갖고 있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기여한 부분이 있다. 부만 제대로 분배된다면 오늘날의 문제도 꾀 해결되는 것들이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꿀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꿀벌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자본주의를 움직인 것은 개인의 탐욕 혹은 개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것들의 도움이 뒷받침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나쁜점은 무엇인가? 책의 저자도 책에서 이 이야기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가 자본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메뚜기 때가 곡직을 모두 먹게 하는게 아니라 필요할 때 메뚜기 때를 통해 병충해를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병에 걸린 밭이 있으면 매뚜기가 습격을 하게 만들어 그곳에 있는 모든 곡식들을 없앰으로 인해서 메뚜기를 통해서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메뚜기를 효율적으로 조종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인류가 갖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이런 그런 존재다. 정치가 자본에 우선한다. 민주주의가 혹은 정치가 자본주의에 우선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가 우선한다. 그리고 은밀한 곳이면 곳일수록 자본이 우선한다. 자본은 평생 가지만 권력은 그렇지 못하다. 자본이 권력에 고개를 숙이더라도 자본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더 많다. 자본이 진정한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아리러니한 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누치 챘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보리스 존슨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다. 보리스 존슨은 영국 보수당의 의원으로 현 메이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맡고있고 전에는 영국 런던 시장을 했던 사람이다. 골통 보수이다. 왠지 그런 사람이랑 같이 일했다고 하니까 뭔가 믿음이 그렇게 가는 책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의심은 책을 읽은 뒤에 불식됐다. 이 책은 좋은 책이 맞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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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역경이 닥쳤을 때) 죽지 않았으면 강해졌을 것이다.' 때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위기에서 진보를 향한 길이 놓이기도 한다."(p.50)
<메뚜기와 꿀벌>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경제 경영 서적인데, 군데 군데 좋은 구절이 많아서,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어서 참 좋다.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조지오웰이 말했듯이, 우리는 그토록 안락함을 갈망하지만 막상 안락해지면 그것을 피하려고 기를 쓴다. 우리 본성의 일부는 안락함을 불안해한다."(p.205)
"꿀벌에 힘을 실어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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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꿀벌>이 '자본주의'의 전망에 관한 책임을 인지하고 저자 '제프 멀건'의 약력을 여러차례 되뇌여 보았다. 제프 멀건은 사회 혁신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보스 포럼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미래 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여러 유수의 대학에서 강연에 섰다. 제프 멀건은 <메뚜기와 꿀벌>을 통해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근현대 역사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논한 뒤 현재 자본주의가 놓인 위기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어쩌면 그 진화라는 것은 부분적 변형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그 본질을 살펴봐야 하는데 자본주의를 쉽사리 정의하는 것조차 어렵다. 백과사전에 의존하자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인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에서 인간은 이윤추구의 욕망 아래 자본(어떤 형태이든)이 지배하는 경제체제가 아닌 적이 없었다. 자본주의를 똑부러진 설명으로 정의하기 어렵듯 자본주의의 역사 또한 명확한 경계를 정하기 어렵다. 다만 근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자본주의의 형태는 근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널리 이해되고 있다. 제프 멀건이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어떤 말로써 설명될 수 있을까? 제프 멀건은 자본주의를 '삶의 형태로 뿌리내린 하나의 개념'으로 여기고 '교환 가능한 가치를 가차 없이 추구하는 것'라 말하고 있다. 국가나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자본주의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구성원은 '메뚜기'와 '꿀벌'로 요약될 수 있다. '꿀벌'은 선의의 존재로 인정받으며 생산적으로 일하고 사회에 이익을 선사하는 반면, '메뚜기'는 남에게 기생하고 약탈하여 이기적 욕심을 채우는 해로운 존재를 상징한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분명히 하자면 메뚜기 떼가 부자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 자본을 이용해 무고한 꿀벌에게 해를 입히며 자신의 부를 키우는 집단을 뜻한다. 또한 꿀벌은 단순히 노동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고 생산적 활동을 통해 해당 사회를 혁신과 성장으로 이끄는 모든 자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그들의 행동과 결과에 따라(혹은 의도에 따라) 꿀벌이 되거나 메뚜기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본질적 주체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좌우하는 권력을 지닌 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한 형편이다. '기업가'를 자본주의 체제의 주체로 생각하거나 '투자자와 자본가'를 그런 주체로 생각하는 견해가 있으며 '기업 조직'을 주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기 때문에 특정짓기 어렵다. 정의에서 본 것처럼 근현대사의 중추적 역활을 수행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는 명료하게 요약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자면 종교적세계관이 지배적이던 시절에는(고대 및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서조차) 자본을 토대로 이익을 꾀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기피하는 현상을 띠었다. 위정자와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피지배자로부터 순종을 얻기 위해 '신'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 사상은 르네상스와 근대를 지나며 상공인들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퇴색되었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종교인들이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권력을 행사하고 부정을 일삼는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로부터 시작됐고 구교와 신교는 치열하게 대립했다. 구교와 달리 신교가 취한 자본주의적 사상에 대한 우호성은 근현대 자본주의 발전과 보급에 큰 영향을 끼친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취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제스쳐는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신이 당신에게 합법적으로, 그러니까 당신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영혼에 잘못을 저지름이 없이, 다른 방법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법을 보여주셨는데 당신이 그것을 따르지 않고 이득이 더 적은 길을 택한다면, 당신의 소명이 향해야 할 목적 중 하나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는 신이 주신 보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신이 주신 재능을 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부를 향한 길은 신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육신이나 좌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서 당신은 부자가 되기 위해 일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풍부함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거대 자본가 뿐 아니라 소상공인, 임금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상향(유토피아)를 꿈꾼다기 보다 끝없는 성장과 욕망의 충족을 약속했고 현재까지 이르는 수 세기동안 상당히 잘 성장해 온 것이 사실이다. 1989년을 끝으로 명백한 자본주의의 승리가 그려지는 듯 했으나 꾸준히 상승하는 빈부격차,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경기침체 등 자본주의의 견고함이 되었던 지속적 성장과 풍부함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창조적 파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혁신으로 이어지고 사회에 공헌하는 형태의 자본주의가 힘을 잃고 변질되어 간다는 것을 시시한다. 결국 현재의 자본주의는 냉혹한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다수의 꿀벌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수준에 이르렀고 지난 세기 경제적 풍요를 이끌었던 혁신적 창조적 파괴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약탈을 일삼고 혁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는 메뚜기 떼가 성장할수록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급진주의자들은 흑과 백, 지옥과 천국 등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자본주의가 성장해 온 과정을 살펴보자면 소위 '시인의 방식'이라 말할 수 있다. 에둘러 가는 길을 모색하고 다른 것과의 융합을 시도하며 협력과 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며 자본주의는 성장해 왔다. 자유방임에서 수정자본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과정이 그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제프 멀건이 바라본 자본주의는 이내 종말을 고할 것으로 예측된다. 꿀벌과 메뚜기 간의 격차가 임계점을 지났음에도 메뚜기의 탐욕은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으며 꿀벌에게 삶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자본주의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라 볼 수 있다. 이제 다수의, 그리고 선의의 꿀벌을 살리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는 자본주의가 걸어왔던 길처럼 어느정도의 수정을 가해 다시금 자본주의의 유연함을 자랑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의 변화를 야기하든 제프 멀걸은 자본주의가 현재 정점의 번영을 구가하는 중이고 이후 지속적으로 힘을 잃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고 자본주의가 몰락한 이후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제프 멀건은 서두에서 메뚜기의 횡포를 막고 꿀벌이 대접받는 사회를 그리며 이 책을 집필했음을 밝혔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메뚜기 떼의 약탈은 한계를 넘어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제도적 보안책을 마련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적 혁명으로 오인해서는 안된다. 그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함에 있어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형태의 자본주의를 탈피하는 것울 의미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또다른 형태일 수 있으며, 혹은 새 이름을 부여받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다른 체제로의 전환일 수도 있다. 국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분명 현대 문명사회의 번영은 자본주의에 힘입은 바가 크다. 허나 근래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목적인 번영을 벗어나 소수에 의해 자행되는 약탈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이기 떄문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제프 멀건이 다소 공격적 언어(저자가 의도했든, 역자의 언어선택든)를 사용해 <메뚜기와 꿀벌>에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붕괴를 논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자본주의의 변형에서 자본주의의 유연함을 다시금 목격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겨우 2~3세기에 불과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이전 어느 체제도 흉내내지 못한 인류의 번영을 이끈 체제인 만큼 쉽사리 무너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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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구도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는 확실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빈부의 격차와 경제적 문제의 모습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다.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혼란스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에 '약탈과 창조'라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다룬 책 '메뚜기와 꿀벌'을 읽게 됐다.
자본주의의 뿌리에는 하나의 개념, 하나의 상상, 세계를 보는 하나의 방식이 놓여 있다. 그 개념은, 오로지 가치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환 가능한, 가치의 표현들'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p.63~64)
가치의 성장을 추구하지만 그 성장의 방식에서 메뚜기 전략을 선택하느냐, 꿀벌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꿀벌 전략이 바람직하다 생각하나 현실은 메뚜기 전략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한다. 과거 내 경우도 결국 그런 전략의 한 부분이 되어 돌아갔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나 행하기 어려운 것 자본주의의 욕망에 흔들리는 모습, 아니 자본주의의 어두운 내면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본문에서 그러한 모습을 비유로 얘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옛날에 한 제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내 안에는 곰이 두 마리 있는데, 한 마리는 잔인하고 호전적이고 폭력적으로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곰이고 다른 한 마리는 공감을 잘하고 남을 잘 돌보는 곰이다. 어린 소년이 물었다. 두 마리 중 어느 쪽이 이기게 될까요? 제사장이 대답했다. 내가 먹을 것을 주면서 키우는 쪽이 이기겠지.(p.429)
우리는 과연 어느 곰에게 먹을 것을 주며 키우고 있을까? 최근 지인과 시작한 일이 잘 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연계한 업체는 호전적인 곰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재주넘는 친근한 곰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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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꿀벌. 사실 처음 책의 이름을 들으면 대체 이 책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좀 힌트를 줄 수 있다. 약탈자와 창조자. 경제학자 우석훈. 그렇다면 어떨까? 이제 좀 감이 오는가? 그렇다 이 책은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현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불변의 가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사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아니 그 이후에도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를 변화시킬 대체제가 나올지 의문이다. 자본주의라는 큰 틀안에서 조금씩 변화하면 모르지만 말이다. 이렇듯 자본주의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한다면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는 이 자본주의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많은 미래학자들이 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예언을 한 경우는 많지만 이 책 <메뚜기와 꿀벌>처럼 그냥 자본주의 자체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집중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번쯤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이지만 사람들이 잘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실정 속에서 나에게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온 것은 선물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제프 멀건은 메뚜기와 꿀벌을 약탈자와 창조자에 은유했다.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이러한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가져왔는데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누군가가 창조적 행동을 통해 만들어 낸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그 어떤 것을 약탈자들이 나타나 가져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만 들어보면 이 구조는 굉장히 나쁜 구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따지고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자본주의를 선택한 이래로 인류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최고의 번영을 누려왔다. 즉, 이 구조 자체는 사람들에게 발전의 동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수혜를 받고 그 구조 속에서 살지만 누구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책은 읽어나가면서도 독자들에게 스스로 자본주의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그 힘이 이 책이 가진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한번쯤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은 너무나 중요한 지점을 잘 짚고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한번쯤 치열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