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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교회가 곳곳에 있다. 밤에는 십자가에 불을 붙는다. 밤 하늘에 붉은 빛이 가득하다. 십자가의 의미는 예수님안에서 찾을 수 있지만 밤 하늘의 붉은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크고 작은 교회를 만난다. 큰 교회는 사람이 많아서 크고, 작은 교회는 사람이 작아서 작다. 큰 교회는 건물이 커서, 작은 교회는 작고, 아담하고 상가, 지하교회이다. 크고 작은 곳에 차이가 이것뿐인가.
나는 도시에 살고 있다. 시골에 살았을 때는 리 단위에 한 교회정도 있었다. 그런데 현재 살고 있는 작은 동네에 70여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놀라웠다. 교단과 교파가 다르다. 그렇지만 교회를 세웠던 목적은 같다고 한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하여 믿게 함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목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교회는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저자의 21년 목회의 길을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목회는 녹녹한 길이 아니다. 눈물과 배고픔이 있다. 큰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작은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저자는 재미나게 하고 있다. 작다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큰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목회 현장에서 즐겁게 사역하는 저자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인다.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생각으로 목회 현장에서 주변 교회와 함께 어우러져야 할 모습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비춰진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저자는 교회와 목회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을 이 책을 통해 그릴 수 있는 스케치 역활을 한다.
이 책은 작지만 큰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지만 큰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집의 구순한 냄새가 우리의 담장을 넘어오듯이 이 책은 구순한 목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모두가 소망하는 목회의 모습은 아니지만 예수의 냄새, 사람의 냄새를 경험하게 하는 책이다. 성도들의 작은 마음과 목사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사랑으로 승화하는 모습이 이 책에 담겨있다. 솔직하고 단백한 마음의 고민과 눈물로 인간인 목사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는 인간 예수를 만났다. 그분으로 인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목사님은 인간 목사님이시다. 거룩하고 성자다운 목사가 아닌 우리의 이웃과 형제, 가족인 목사를 만나게 했다. 그가 말하는 목회와 성도, 사람들의 삶 등을 통해 웃고 우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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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교회 블라블라 목사님』을 읽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 어디를 보아도 십자가가 부착되어 있는 교회당 건물이나 성당 건물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도시하고 시골하고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도시는 그 규모가 클뿐더러 많은 신도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시골에 있는 교회당은 여유가 넘친다. 분명 참가하는 신도들은 똑같지만 그 분위기에 따라서 목회생활 모습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목회를 주도하는 목사님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대도시의 교회당 목사님들과 시골 교회의 목사님들을 비교해본다면 그냥 상상이 된다.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의 똑같은 대상을 향하여 하나의 일관된 모습이기는 하지만 느끼는 정취는 분명코 다르다. 대도시에 살기 때문에 대개가 교회당 규모가 엄청 크고, 많은 신도가 다니는 것만 목격해서인지 이 책에서처럼 시시콜콜하면서도 알콩달콩한 모습과 소리로서 목회활동을 하는 모습을 대하니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진정으로 우리 사람 속으로 들어와서 보여주고 있는 저자 목사님의 해맑은 모습이 더욱 더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엄숙한 자리이지만 특유의 해학을 동반하여서 함께 가는 마치 친구 같고, 이웃 같은 사이로 만들어준다. 그러기 때문에 어렵게 보다는 더 공감하면서 가까워지게 만들고 있다. 바로 일상적인 삶속에서 순수한 목회 모습을 편안하게 소개하고 있어 더욱 더 친근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 ‘하하하’와 ‘블라블라’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도록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웃음과 함께 기쁨의 모습이 그대로 연상이 되어 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의 세계로 안내한다. 즉 세상 속 신앙읽기로 이어지게 만들면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소리와 함께 실제 신앙생활의 진면모를 알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더 좋다. 작은 교회 중심의 저자의 21년 동안 목회 현장의 기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소중하다. 절대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몸으로 실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신도이건 비신도이건 정말 가깝게 느껴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세상 속 신앙읽기로 초대하고 있다. 작지만 더 행복함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저자만의 이야기가 더욱 더 빛을 발휘한다. 그냥 일상적인 삶속에서의 자그마한 생각과 생활 모습들이 더 가까워지면서 부담이 없게 만든다. 서로 이렇게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이런류의 책들을 조금 딱딱한 면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더 편하게 대하면서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마력을 갖게 한다. 작은 교회 이야기이지만 가장 큰 교회의 목회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이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랑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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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교회는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다. 개신교 역사상 지금의 한국 교회보다 더 타락한 교회는 없었을 것 같다.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성적 스캔들을 일으키고, 수억을 횡령하여 감옥에 들어가고,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자식에게 세습하는 예가 빈번하다. 수천억대의 교회를 건축하면서 자기과시에 열올리는 또다른 우상화, 기득권에 아부해서 특권층이 되려는 교회의 지도자들, 이 모든 것이 한국 교회의 자화상이 되고 있다. 어떤 교단의 총회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기관이 억대의 돈이 오고가는 선거로 회장을 뽑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어떤 교단 총회에는 조폭이 동원되고 가스총이 등장하였다. 예수 팔아 돈 벌고, 예수 팔아 권력이 되고, 예수 팔아 자기 배만 살찌우는 사이에 교회는 누더기로 변하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은 이런 현실에서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그러니 쓰레기통을 뒤져 이 말씀을 건져내는 교회가 진짜 교회가 되는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기존의 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뛰어들어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 진정한 교회다. 그런 교회를 이 책을 통해서 본다. 이 책은 충청남도 홍성 광천은파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으며, 현재 두 번째 목회지인 봉담상동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김기목 목사가 21년 동안 목회 현장에서 그날 그날 묵상하며 목회 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페이스북 연재 글 속에 종종 등장하는 “하하하!”라는 후렴구를 그대로 살려 다음 세대를 위한 익명의 교회, 소망이 되는 교회를 제안한다. 저자는 작은 교회만이 누리는 행복한 소통, 참 목회 이야기, 때로는 웃게 하고 울게 하며, 함께 감동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랑은 물론, 결혼식 문자, 자장면집, 호도과자, 창고에서 썩고 있던 생선, 중고나라, 벌통, 호박죽, 잘못 전해진 김장김치, 밥사의 하루, 생일 꽃꽂이 같은 일상의 사물들로부터 메시지를 전달하는 웃음의 해학, 패러독스의 감동이 넘쳐난다. 이 책의 ‘소문난 사연’에서 저자는 교회 문을 24시간 열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간혹 찾아오는 가출 청소년들과 노숙자들이 예배실을 점령하고 예배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의 가방을 뒤졌기 때문에 교회 문을 잠그려고 생각했다. “교회 문을 잠그자고 했을 때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나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나서서 번호키를 달자고 했다. 여전히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큰소리친 게 무색하기만 하다.”(p.26)고 했다.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서 24시간 문을 열어놓아야 하는데 우리 교회도 여러 번 도둑이 들어와 엠프와 마이크 등을 훔쳐갔기에 교회 문을 잠그고 있다. 한밤중에도 교회 문을 열어놓는 교회가 되지 못하여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목회현장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모은 것으로 실감이 나면서도 진지하고 웃음을 머금게 한다. 신학생들과 초보 목회자들에게 참고서가 되고, 교회의 리더들에게는 소통의 도구가 될 것이므로 기쁨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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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 제목을 보는 순간 나노 모르게 든 생각이다. 그냥 웃고 말 제목이다. 특이한 제목의 책이 많다지만 이런 제목 처음이다. 저자인 김기목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다듬어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곳에서 김기목목사는 글 사이에 또는 글 마지막에 ‘하하하’ 웃음을 집어넣는다. 그런데 블라블라는 무슨 뜻인가? 내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어에서 가져온 표현인 듯하다. 영어에서 블라블라(blah blah)는 우리나라 말로 ‘어쩌고저쩌고’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나에게 지난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쩌고 저쩌구(블라블라)했다.’ 굳이 번역하지면 사사로운 이야기, 중요하지 않는 일상의 이야기인 셈이다. 정말 그런 뜻으로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일이다. 책을 읽어봐도 ‘하하하’에 대한 설명은 있어도, 블라블라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문맥 속에서 블라블라를 찾아보자.
우리교회에서 가장 영어를 잘한다는 그녀인데,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잘 일하고 있었는데, 원어민 교사에게 1등자리를 내어주게 되어 섭섭하지 않을까? 블라블라! 이제 2등으로 물러나야 하는데 시험에 들면 어쩌나?(75쪽)
이 문장에서 블라블라의 뜻이 명확하지 않다. 다른 곳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더 궁금해진다.
책의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보니 목회적 예리함이 유머와 미소라는 거푸집 속에 숨어있다. 언뜻 보면 가볍고 유머가 가득하다. 그러나 한 참을 웃다보면, ‘이렇게 목회하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교우들의 추천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된장국’ ‘구수한’ ‘농부’ ‘이웃집 아저씨’란 단어들이 유난히 많다. 저자인 김기목 목사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조인숙 권사는 여기에 ‘목동 다윗처럼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면에서는 철저하고 단호하’다고 덧붙인다. 과연 맞는 말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라하지 않던가. 때론 부드럽게, 그러나 위기 속에서는 강열하게 대응하는 김기목 목사의 목회 철학이 담겨있다.
타자(他者)는 거울이다. 나는 김기목 목사에게서 나의 추함을 본다. ‘참을 것을’(115쪽)이란 글에는 남아공에서 일어났을 일을 이야기 한다.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배수구로 물이 빠지지 않는다. 삼일을 사용하다 사흘을 지내다 다른 방으로 바꾸었다. 다음 날, 샤워를 하는데 찬물만 나온다. 다른 방으로 또 옮겼다. 웬걸! 샤워기가 없어 욕조에 물을 받아 사용해야 했다.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한다.
“숙소들을 돌이켜보면 맨 처음 숙소가 가장 좋았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만 참, 참, 참을 것을! 감사하게 사용할 것을! 싸고 좋은 방을 찾아보아라. 그런 방은 없더라.”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문장이다. 나 또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이 옮겼던가. 저 곳은 좀 더 좋으리라. 저곳은 좀 더 나으리라. 허망한 기대를 품고 옮겨 보지만, 맘에 드는 곳 단 한 곳도 없다. 지나보면 이전에 있었던 곳이 더 좋았다. 지금 이곳에 만족하지 못함으로 약간의 더 나은 곳을 찾다보면 결국 더 나쁜 곳으로 옮겨지기 마련이다. 희망을 버리란 말이 아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그렇게 읽었다.
‘돌팔매질’(173쪽)을 읽을 때는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 들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등록한다. 그는 이전 교회를 불평하며 불만을 쏟아 놓는다. 저자는 동조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성도가 다른 교회로 옮겼다. 목사는 안다. 그렇게 옮기는 것이 목사들의 마음을 얼마나 찢어 놓는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성도가 그 이전 교회, 그러니까 저자가 섬기던 교회와 저자를 비판하고 다니며 다른 성도들에게 교회를 옮기라고 꼬드겼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말미(末尾)에 이렇게 회개한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교회에 등록할 때 늘어놓은 온갖 불평에 은근히 맞장구를 쳤던 내 모습이 다시 떠올라서 더 놀랐다.”
나다. 누구도 아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다. 김기목 목사는 나의 거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다. 그런데 나를 알지 못하고, 적도 알지 못하니 무슨 전쟁을 할 수 있으랴. 부끄럽고 안타깝다. 대부분의 글에 나오는 ‘하하하’도 이 글에는 없다. 진중(鎭重)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省察)이다. 이 책으로 나를 보았고, 나의 삶을 보았다. 김기목 목사는 나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다. 그래서인지 살짝 겁도 난다. 나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