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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 귀한 고전(古典)을 만났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읽고 싶어 하는 명저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인 파스칼(1623-1662)은 학창시절 ‘파스칼의 법칙’으로 수업시간에 만났었다. 그가 쓴 『팡세』(묵상, 생각)를 읽어본 기억은 있으나(완역은 아니다.), 책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언제고 다시 구매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얼마 전 아주 귀한 분에게서 선물로 받았다. 《도서출판 샘솟는기쁨》에서 2014년에 출간한 것이다. 이미 꽤 많이 팔려나간 듯 싶다. 며칠간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에 읽었는데, 과거 읽었을 때보다는 사뭇 감동이 다르다. 그의 신학적인 깊이와 통찰이 존경스럽고, 그의 진실한 신앙고백이 부러웠다. 『팡세』가 읽기 쉽지 않은 책이라는 말이 있지만, 다시 만난 그는 내게 무척 큰 은혜를 주었다. 좀 소개를 해보면, 우선 924편의 단장(短章) 가운데, 342개를 엄선하여 주제별로 묶었다. 전체 12가지 주제를 죄, 인간, 은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믿음, 그리스도교, 교회, 예언, 기적, 성경, 사유 등으로 분류하였다. 장별로 말미에 큐티를 제공한 것도 백미(白眉)이다. 그에 대한 소개도 약력과 더불어 비교적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39세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삶이지만, 너무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16세에 제라르 데자르그의 저서를 연구해, “원뿔곡선론”을 완성했고, 19세에 컴퓨터의 기초가 되는 계산기를 발명했고, 유압프레스를 발명했고, 진공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장자크 루소나 앙리베르그송 및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끼친 것 등, 실로 위인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1654년 11월 23일 마차를 타고 도박장을 가던 중에 큰 사고를 당했으나, 구사일생(九死一生)한 그는 ‘회심’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완전히 다른 정체성과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된다. 31세에 회심이다. 세상에서 너무도 잘나가던 그다. 가는 곳마다 칭송이 자자하다. 천재라는 말이 그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그가 회심을 하고 인격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다. 그의 고백은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였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가치가 있음을 고백하며 증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인 동시에 노예이며, 눈 먼 자이고, 병자이며, 불행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태의 인간을 깨닫게 하여, 구원하고 성화하여 치유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구원은 인간이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고통과 십자가 위의 죽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때 실현된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지성들이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부인을 하는가? 그래서 한없이 그가 더 커 보인다. 비록 완역판은 아니나, 매일 하나씩 읽어 가며 파스칼의 『팡세』를 ‘팡세’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해보길 감히 권한다. 불과 며칠 만에 읽어낸 나는 위대한 신앙의 선배 파스칼에게 크나큰 무례를 범하였다. 좋은 책을 출간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출판사의 노고에도 깊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바이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2017. 11. 12. 밤에 -배달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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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하면 생각나는 것이 고등학교 시절 윤리 시간에 배웠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던 이야기 정도였다. 파스칼이 아주 심각한 삶의 고뇌를 느끼면서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단순하게 아주 대단한 철학자적인 삶을 살았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겠지 하는 정도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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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그 동안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다만 파스칼의 명저인 팡세로,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라고 표현한 정도만 알고 있었지, 깊은 내막이나 원리 등은 잘 알지 못한 체였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신학자일 정도로 다방면에서 확실한 실적을 통해서 공헌한 바가 컸다는 점이다. 아울러 비록 37세까지만 생을 살았지만 그 일생 또한 자유사상가와 함께 했으며, 종교적 체험 이후에는 수도원에 들어가 나름대로 신앙과 관련한 깊이를 더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한 노력으로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지만 사후에 편집자에 의해 ‘팡세’로 출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연이 깃들여 있고, 특히 저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래서 우리가 좋은 책은 고전이 되고,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더 인기리에 읽히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팡세는 총 924편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 책에서 이 중에서 특히 종교와 관련한 12가지 주제로 하여 342편을 뽑아서 재구성하였다. 핵심 중의 핵심만 모아 놓아서 그런지 하나하나의 문장마다 품기는 품격들은 우리들에게 엄청남 힘을 주면서 더욱 더 가깝게 만들어 있다 할 수 있다. 내 자신 아직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인 내용 중 자세한 원리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있으나 대부분은 가깝게 느껴지면서 함께 할 수 있게끔 만들게 한다. 역시 그 어떤 것도 자꾸 대하게 되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도 파스칼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신앙적인 이야기와 함께 느끼는 기독교인의 감정으로 더욱 더 가까워짐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파스칼의 해박한 지혜와 지식에서 나오는 글 솜씨들은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할 수 있다. 당연히 내 자신도 저자와 함께 하는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이웃임을 생각해본다. 이것은 그 만큼 내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많이 얻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해본다. 지금까지 다만 겉에 드러나는 제목만을 알고 있었던 내 자신의 부족함과 게으름을 한 번에 털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너무 기분이 좋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위대한 명언도 우리 인간의 위대함과 동시에 하나님 없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우주의 무한히 작은 존재이지만 한편으로 우주를 초월하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종교적으로 접근하여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간의 행복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독자들은 팡세를 통해서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숭고한 길을 확실하게 배우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팡세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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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 유명한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의 연약함을 갈대로 표현했다면 생각한다는 표현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이야기한 파스칼. 그의 유작인 팡세는 기독교 변증을 위해 쓴 924편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원작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924편의 글 중에서 기독교 변증에 초점을 맞춘 342편(옮긴이는 364편이라고 썼으나 오타인 듯^^)을 12개의 주제로 분류한 작품이다. 사실 기독교 변증이라고 하면 상당히 어렵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간을 향한 사랑을 증명해야 하다 보니 너무 광범위하기도 하고 용어 자체도 상당히 난해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도 쉬운 책은 아니었다. 342편의 글 하나하나를 눈으로 읽고 그냥 이해하기에는 함축적 의미, 중의적 해석이 담긴 문장들이라 가볍게 읽고 책장을 넘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각각의 주제마다 주제와 관련된 QT라는 글을 담아 일반 독자들이 파스칼의 생각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였으며, 중간 중간 삽화로 글의 내용을 표현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도 12개의 주제를 명쾌하게 설명한 짧은 문장들이 눈에 띈다. 파스칼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을 이야기한다. 뒤집어보자면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니 과연 사람들이 철저하게 자신의 비참함을 느낀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고 반문하게 되었다. 파스칼이 비참함이라고 표현한 내용은 결국 인간의 죄인됨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의 자랑에 빠져 천성적으로 사악한 존재.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룰 수 없는 존재. 미래나 구원을 바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또한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가? 신앙은 개인적이라 다른 이들의 믿음이 어떤가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 신앙은 또한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달은 후부터 다른 이들의 믿음과 생각을 들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수백 년 전 천재라고 불릴만한 팡세의 신앙적 고백과 변증은 계속해서 곱씹어 보아야 할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내게 신앙과 관련해 또 다른 사고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고마운 책이었다. 파스칼의 팡세는 기독교인에게만 유용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분명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파스칼의 깨달음을 담은 책이기에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본성에 대해, 우리의 가치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을 통해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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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종교를 통해 힘들때 의지할 곳을 찾고 믿음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이지만 왠지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쭉 무교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모두 옳고 좋은 말씀인건 알고있으나 한번도 정독해본적은 없다. 그런데 왠지 이 책만큼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천재 수학자가 말하는 기독교를 변증하는 책이라고하니, 왠지 모르게 끌리는 느낌이 있던것같다.
우선 책을 읽기전에 천재 수학자 파스칼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다. 파스칼은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신학자 였다고 한다. 계산기를 발명하였고 확률론, 수론(數論) 및 기하학 등에 걸쳐서 공헌한 바가 컸던 그는 처음에는 자유사상가들과 어울렸으나 종교적 체험 이후 수도원에 들어가 신앙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책들중 팡세(Pensees)는 파스칼이 몇몇 지인을 위해 기독교를 변증하려고 집필하였으며, 그가 37세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고, 완성하지 못하였으나 사후에 편집자에 의해 '팡세'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파스칼의 팡세 924편 중에서 죄, 인간, 은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믿음, 그리스도교, 교회, 예언, 기적, 성경 사유 이렇게 열 두가지 주제로 342편을 가려 뽑아 재구성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러한 종교에 관한 책이겠거니 했는데, 하루 한 편씩 읽어나가는 명언집처럼 짧고 인상깊은 이야기들은 나에게는 작은 충격들을 안겨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에 바라보던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질문을 동시에 풀어주는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나는 딱 한번 호기심에 교회에 들어가 본적이 있는데, 당시 초등부를 맡고 계시던 선생님께 보이지도 만질수도 없는 존재를 왜 믿는냐고 선생님은 만나본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꿈 같은 실제에서 그 실체를 보았다고 답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것이 어린 나를 속이는 거짓일거라고 생각해서 화가 나 다시는 그곳에 발걸음 하지 않았었는데, 파스칼은 1654년 어느날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무한한 사랑을 체험했다고 한다. 아... 그렇다면 당시 선생님의 말씀이 사실이였을수도 있지 않을까.
또 평소에 기독교에 대해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자는 왜 구원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였다. 책을 읽고나서 명확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그 부분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몇몇 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기독교를 알기위해 시도했던 첫 책으로 참 잘 선택했던것같다.
인간이 눈앞에 벌어질 심판을 근심하지 않고, 심심풀이로 소일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손을 무겁게 만든다.
당신은 '내가 예배드리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신호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으므로 지금이라도 깨우쳐야 하며, 이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대적하려고 하나, 하나님은 그분을 갈망하고 따르려 하는 자에게 대적하던 길을 돌이키기에 충분한 빛을 은혜로 주신다. 그러나 그분을 갈망하고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교만, 욕망, 정욕, 연약함, 비참함, 불의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는 진실로 눈 먼 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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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고전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만나본적 없던 저어기 멀리 다른 행성계의 별처럼 신은 그저 막연한 존재로 느껴졌던 사춘기 그 시절이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깨닫게 되는 지금이나 동일하게 가슴에 남는것이 있으니 .. 읽기쉽게 편집되어 나온 이 책 <팡세>는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또 철학자이기도 했던
파스칼이 하나님을 만난 고백서이다. 언론인들이나 명강사들을 보며 말을 참 잘하는구나라고 느낄때가 많은데
이 책을 읽고있노라면 팡세의 간단명료하면서도 모든 의미가 다 들어가있는,
마치 발에 꼭 맞는 맞춤신발처럼 한치의 낭비가 없는 그의 언어에 그들과는 견줄수조차 없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하나, 천재의 아집스러운 강요가 아닌,
미사여구도 필요없는 담백한 그의 내적 고백이다. 그래서 진리가 그러하듯이 그의 진정성있는 고백을 읽는것 자체가 곧 기독교의 변증이된다.
죄,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목적
인간, 생각하는 갈대인가?
은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 모든것을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믿음, 주의 증거에 향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교, 사랑하도록 하시다
교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
예언, 복음을 믿도록 할 뿐 아니라
기적, 의심의 여지가 없게 하심
성경, 진정한 평안,진리
사유,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이보다 더 명료하고 정확하게 진리를 설명할수 있을까?
12가지 키워드를 보고 파스칼의 수학적 발견을 들었을때보다 더 파스칼의 위대함을 느꼈다.
각각의 키워드를 통해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가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이었기에,
냉철한 이성을 지녔음에 부족함이 없는 인간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로 인식할만큼
인간의 한계를 잘 아는 인간이었기에 인간의 성찰과 고민이 녹아든 그의 고백이 더없이 강력하다.
342개의 짧은 단락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기독교의 변증을 위해 쓰여진
파스칼의 924편의 단장들을 편집하여 12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편성하였다. 한없이 심오한 '신'이라는 존재에 관한 성찰을 담은 내용인데다 중간중간 일러스트가 있어서
마치 시집을 읽는것처럼 천천히 묵상하며 읽기 좋게 구성되었다.
이미 기독교인이라면 아직 믿지않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반박할때
팡세처럼 그 변증으로서 미리 읽기두기에 좋고 혹은 그들에게 선물로 활용하기도 좋겠다. 아직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개독교라 욕하기 이전에 지탄받아 마땅한 오늘날 기독교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진리라고 말하는 그 신, 하나님에 대해 약 400년전 과거에 살다간 한 천재 인간의 신에대한 진솔한 고백을 들어봄이 나쁘지 않다.
혹은 굳이 종교서로 접하지 않더라도 ,
천재 수학자의 다른면을 보는 호기심으로 접근하거나 인간과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접근으로서의 책으로도 좋다.
검증된 훌륭한 고전을 부담없이 읽기좋게 잘 재구성한 책이다.
원죄는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이나, 그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드러나도록 된 것이다.
따라서 비이성적인 면을 가지고 비난하지 마라.
이러한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고전1:25)
어리석음이 없다면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의 전적인 상태가 미세한 부분에 달렸다.
어떻게 인간의 이성이 이것을 깨닫겠는가?
이성에 반하는 내용으로 깨닫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이성적인 내용을 제시해도 뒤로 물러나게 할 뿐이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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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의 인간 파스칼의 <팡세>가 또 출간 되었다. 신생 기독교 출판사인 샘솟는기쁨에서 편집 출간된 새로운 팡세는 지금까지의 팡세와 사뭇다른 느낌이다. 모순과 역설의 인간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했던 천재 수학자 파스칼은 팡세를 통해 확율적 신앙의 가능성을 시도했다. 수학자다운 그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모순은 진리의 빈약한 지표다. 확실한 것에도 모순이 많고, 오류의 대부분이 모순 없이도 통한다. 따라서 모순은 더 이상 오류의 지표가 아니며, 모순 없는 것이 진리의 지표도 아니다."(31쪽) 근대적 인간관이 서서히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할즈음 파스칼은 인간의 영혼을 신앙의 매스로 해부한다. 모순과 역설의 인간을 예고한다. 아담의 타락은 합리적 인간의 시작이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자신의 사유 안으로 종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허물과 모순 투성이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축출되고 비참과 모순의 실존으로 추락한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신을 감추려하지만 감출 수 없다.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면 할수록 인간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임을 자증할뿐이다. 추락, 그 이상의 이간을 말할 수 없다. 인간은 모순 그 자체다. "인간.. 하나님 외에는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행복이 육체에 있고, 불행은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자는 그 욕망을 채우다가 그렇게 죽기를 바란다."(23쪽) 진정한 행복을 알지만 그렇게 행할 수 없다. 끊임없이 행복을 갈망하지만, 오늘의 심심풀이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것이 인간이다. 고상한 대의명분의 겉옷을 벗겨내면 인간이란 존재는 비열하고 오만하며, 간사하고, 교만하며, 더럽고, 추하며, 겁쟁이에다 협작뿐에 불과하다. "인간은 진리를 갈망하면서도 자기 안의 불확실성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며, 행복을 추구하지만 고뇌와 죽음만을 깨닫는다. ... 이러한 갈망은, 인간이 얼마나 타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다."(40쪽) 그렇다. 인간은 갈망한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는 않는다. 갈망함은 부재의 증명인 동시에 아직도 이루지 못함의 실존이다. 바로 이점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타타로스(Tartaros, 무한지옥)적 형별이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존재(40쪽), 거짓된 기만으로 이성을 기만하는 감각적 존재(46쪽), 천사와 같아지려는 교만으로 짐승이 되어버린 존재(62쪽)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욕망을 남김없이 해부하며, 하나님 없이는 존재로서의 의미 없음을 선포한다. 바로 이점이 <팡세>가 에세이나 산문이 아닌 '변증서'로 읽어야할 이유다. 표지에 '기독교를 위한 변증'를 적은 이유이다. 번역자가 서두에 밝힌 대로 '원서에서 기독교를 위한 변증에 초점을 맞춘 364편을 가려 뽑아, 12가지 주제로인 죄, 인간, 은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믿음, 그리스도교, 교회, 예언, 기적, 성경, 사유로 구분하여 재구성'했다.(7쪽) 기존의 팡세가 문장의 난해함과 사유의 깊이로 인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반면, 이 책은 주제별로 다시 재구성하여 내 놓았기 때문에 파스칼의 사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단, 클레오파트라의 그 오만한 '코'만 없다면.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할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3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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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에 대해서 천재 수학자로 알고 있었다. 천재 수학자 파스칼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사색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 팡세이다. 내가 기독교인 인지 지금도 고민하는 나이지만 파스칼의 팡세는 그리 쉬운 글은 아니었다. 우선 파스칼이 살던 그 시대의 분위기 이러한 배경지식 없이 처음 맞이했을때는 조금 당황 스러웠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그의 사색의 결과를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받아들인다는게 쉬운일은 아닐 터이다. 그렇지만 여러 글 중에서 내 마음에 와 닿은 글도 분명 있었다.
[비참하고 힘없는 자를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인간은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홀로 죽는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화려한 집을 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저하지 말고 진리를 찾아 나서라. 그렇지 않는다면 진리보다 평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p29 결국 공부하라는 말이다. 책을 읽으라는 말이겠다. 왜냐하면, 사람은 단지 육체와 그에 따른 욕망의 존재이기 이전에 보다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옛 성현들의 말을 되새겨본다. 본래의 선한 본성이 욕망에 사로잡히기 보다, 독서와 공부라는 자기 수양을 통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 인간의 존엄은 생각에 존재한다. 회복을 위해서는 채워질 수 없는 시공간이 아닌 생각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하도록 갈망하자. 여기에 도덕의 원리가 있다]p37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난 두가지 의미를 생각해봤다. 하나,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둘 그러한 이성이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불완전한 나약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짐승과 구별할 수 있는 이성이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이성을 갈고 닦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발 더나아가 도덕의 원리를 얘기하고 있다. 이건 머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성과 도덕성을 함께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즉,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실천을 하기 위한 도덕적 판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도 갖춰야 한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인간을 묘사한다면 타인에게 의존하면서도 독립을 꿈꾸며 항상 무언가에 결핍을 느끼는 존재라고나 할까?]p48. 이 얼마나 짧지만 정확한 표현인가 싶다. 물론 파스칼 그도 이런 존재 나와 이 글을 읽는 모두 그런 존재이리라 생각한다. 무언가에 결핍을 느끼기에 그 결핍을 채우려고 무엇인가를 하기에 문화,예술, 지성이 발달하지 않을까? 참 멋진 표현이라 생각한다.
아직 파스칼의 글을 온전히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삶에 대해 고민한 파스칼의 고뇌가 느껴지는 글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 그 만남 자체만으로도 읽는 보람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