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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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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에르케고어는 19세기 북유럽의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참고로 실존주의는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개념인데, 간략히 말하면 인간은 본질 앞에서 실존(존재)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존주의를 표방한 철학자들로는 키에르케고어, 야스퍼스, 하이데거가 있는데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 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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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에르케고어는 19세기 북유럽의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참고로 실존주의는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개념인데, 간략히 말하면 인간은 본질 앞에서 실존(존재)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존주의를 표방한 철학자들로는 키에르케고어, 야스퍼스, 하이데거가 있는데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 카프카의 글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을 실존주의라는 한 단어로 묶어서 이해하려고 하는 건 좀 곤란하다. 왜냐하면 실존주의 안에서도 유신론적과 무신론적으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렵기까지 하고...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주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의문스럽다.

2. 이 책의 제목은 <스스로 판단하라>이다. "실존"이라는 개념에 대한 첫 출발이자 핵심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키에르케고어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가 진정한 자기"라고 수없이 강조하고 되뇌고 있다. (일단 그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임에는 분명하다.) 239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 그는 하나님의 스파이로서 하나님과의 진지한 대면에 몰두한다. 그의 물음은 실존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였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단독자라고 강조한다..." 대중적인 통념과 사회 구성원들의 일반적인 생각들에서 벗어나 오로지 온전한 자기 자신만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설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인 셈이다.

3. 키에르케고어는 사람들에게 술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술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위선자들은 보통 자신이 술에 취해있는 걸 모른 채 남들을 향해 술 깨라고 말하곤 한다. 저자는 이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계속적인 동어 반복을 통해 "그러므로 술 깨라."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술 깨게 되는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정말 술 취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인 셈이다.(58페이지)

4. 이 책은 철학서이기에 앞서 종교 서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에게는 더 어렵게 느껴지거나, 또는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과 서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종교적인 색채를 떠나 삶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도 이를 말하는 사람에 의해 다양하게 정의되듯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일 테니까.

k****1 2017.03.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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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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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라 하면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렇게만 들었을 뿐 그의 사상이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정보들을 잠시 살펴 보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선 단독자라 한다. 신과 나의 관계는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관계가 아닌 주관적이며 특수한 관계라는 것이다. 결국 내 자신의 주체적 결단을 통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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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라 하면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렇게만 들었을 뿐 그의 사상이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정보들을 잠시 살펴 보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선 단독자라 한다. 신과 나의 관계는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관계가 아닌 주관적이며 특수한 관계라는 것이다. 결국 내 자신의 주체적 결단을 통해 신(예수)과 나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의 삶에서 신이 있다고 믿고 선택한다면 내 삶에는 신이 진리가 된다는 것으로, "주체성이 곧 진리이다."는 말의 의미가 된다. 그의 사상에 예수님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는 기독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는 신학까지 마친 기독교인이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시작한 신학이지만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 석사 논문을 발표하고 그 뒤를 이어 여러 저서를 집필하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모양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기독교 정신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또한 베드로전서의 성경 구절과 마태복음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갖고 그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그 당시의 어투대로 번역이 되어 그런지 매우 고전적인 문체였고 비유적인 표현들이 많아 바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파고 들어가 자신의 견해를 늘어놓는 데에서 그의 집요함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복음의 요구조건은 어떤 사람도 실행하기 힘든 실천사항을 담고 있다. 만약 누구라도 용감하게 복음의 요구조건을 실행하기를 감행한다면 그는 그 무게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 ..... 그의 최선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무엇으로 바뀌고 은혜가 더욱 커졌을 때, 그는 가장 높이 들어 올려지게 된다. (P.114~P.115)


최선의 행위가 비천한 것으로 바뀐다면 어느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복음의 요구조건을 실천하려면 그저 최선을 다 할 뿐 그것에 대한 칭찬이나 은혜의 열매를 바라면 안 되는 것이다. 겸손이 따라야 하며 그랬을 때라야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시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그 '겸손'이라는 것이 압력이 되어 나 자신을 짓누를 수 있으니 늘 믿음 위에 서서 행해야 하는 것이다.

겸손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하라 한다. 자신의 모든 행위를 무로 만들고 철저히 겸손해지라고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힘들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나도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순종으로 끝내면 될 것을 결과에 대한 판단이 늘 뒤따르고 그것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곤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저자의 말처럼 힘을 다해 분투해 보려 한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아지는 자가 되기 위해서, 나보다 남을 더 높이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f****1 2017.02.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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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샘솟는 기쁨,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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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생각난다. 실존적 도약을 통해 믿음에 이른다는 그의 철학적 명제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주장은 신앙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베드로전서4장 7절과 마태복음6장 24절에 관한 강화집 <스스로 판단하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독교세계(christendom, 기독교를 믿는 자들이 보편화된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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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생각난다. 실존적 도약을 통해 믿음에 이른다는 그의 철학적 명제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주장은 신앙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베드로전서47절과 마태복음624절에 관한 강화집 스스로 판단하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독교세계(christendom, 기독교를 믿는 자들이 보편화된 나라)에서 신앙은 하나의 합리적 상식, 교양에 불과하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글이 생각났다. 파스칼은 신앙을 가질 합리적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확률적으로 지혜로운 일이다.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존재해서 우리의 불신을 심판하신다면, 믿음을 갖지 않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마는가?’ 파스칼은 이런 식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신앙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인간의 합리적 사고방식을 통해 선택한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인가?

 

그런데 이번에 키에르케고어의 글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확률에 의지해 모험하는 것은 진짜 신앙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의 술에 취한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술 취했다고 말했다. 반면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술 취했으니 깨어나야 한다고 설교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확률에 기대어 합리적 사고만을 하는 기독교세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만 술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기독교세계 안에서 설교자들은 인간의 이성에 입각해 말씀을 설명하고 선포한다. 설교를 듣는 회중은 거기에 감동하고 열광하며 지식을 즐긴다. 하지만 설교자와 청중 모두 정작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잊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실존적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술 깬 자가 되어야 함을 키에르케고어는 설파한 것이다

 

2부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산상설교 중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는 말씀에 집중한다. 그는 산상설교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윤리라고 말한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인간이 실천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세계에서는 인간이 복음의 요구조건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시 인본주의의 술에 취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지 않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 앞에 진지하게 서야 한다. 그의 강화집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참 복음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l******y 2017.0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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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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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본받는 제자인가? 쇠얀 키에르케고어는 덴마크의 철학자다. 시인이고 신학자이기도 한 그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유일한’ 세계적 철학자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는 20세기 현대 사상과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도 그의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키에르케고어는 만년에 ‘기독교 사상가’로서 당시의 덴마크 교회의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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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을 본받는 제자인가?

 

쇠얀 키에르케고어는 덴마크의 철학자다. 시인이고 신학자이기도 한 그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유일한세계적 철학자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는 20세기 현대 사상과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도 그의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키에르케고어는 만년에 기독교 사상가로서 당시의 덴마크 교회의 현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간의 절대적인 차이에 두었다. 그에 따르면 신앙의 영역은 이성으로는 다다르지 못하는 역설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단독자라는 개념과 실존이라는 존재양식은 실존철학의 탄생을 가져오는 토대가 되었다.

이 책에서 키에르케고어는 베드로전서 4:7에 근거하여 술 깨기의 의미에 관해 천착한다. 그는 시인의 은유적 상상과 철학자의 사려 깊음과 유머리스트의 엉뚱한 생각, 그리고 연인과 신자의 열정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키에르케고어는 기독교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의 초기 시대에 아무리 많은 오류가 있었다고 해도, 우리 시대와 비교할 때 그 시대가 기독교적이다. 그 시대는 기독교를 즉각적으로 행위로 옮겼고, 그 행위가 기독교의 단순성일 때 일반적으로 옳다.” 기독교는 초기 300년 동안에는 나름대로 본질의 순수성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교리 이전에 순종이 있었고 신앙고백에 앞서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있었다(우리에게 교리와 신학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어느 시점부터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과 무관한 지점에 이르렀다. 기독교는 학문의 세계의 한 과목이 되고, 심지어 세상적 출세와 명망을 얻는 데 이용(?)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기독교는 각자 나름대로의 학문의 분야가 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그 주제의 교수가 된다. 그러면서 진정한 단순성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것에 대한 진실로 단순한 설명인 그 단순성을 행하는 것을 망각하거나 생략한다.”(51)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행하는 것이요 죽음의 싸움 같은 노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깊이의 수준과 엄중함이 사라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기독교는 알맹이를 잃고 화석화되었다. 본래 기독교는 진리의 증인에 의해 섬김을 받았다. 기독교는 순교자의 피로 증명되는 진리가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는 이 교리를 통해 이익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이 교리를 위해 희생하고 또 희생해야 했다.”(73) 이 진리의 증인들은 교리의 도움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교리를 위해 살았고 교리를 위해 죽었다. “그로 인해, 기독교는 능력이 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기독교는 300년 동안 섬김을 받았고, 그런 식으로 세상의 능력이 되었다.”

기독교가 어떤 지적인 교리로 축소될 수 없음을 키에르케고어는 거듭 역설한다. 기독교는 처음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 지점은 정말 인류가 회피한 지점이다. 그 지점이란 본받음,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다. “중요한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이 지점을 강조한다면, 강조가 더욱 강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적어진다.”(165) 이 지점에서 어떤 양보나 타협이 이루어질 대 기독교는 그 빛을 잃는 것이 아닐까.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기독교를 논하는학자를 원치 않는다. “그분은 오직 제자들만 원한다. 제자는 표준이다. 모범인 그리스도와 본받음은 소개되어야 한다.”(186)

키에르케고어에게 그리스도는 구속자이시며 모범이기도 하다.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순서가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는 먼저 모범이 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 모범을 따라 분투해야 한다. 이때, 의심은 침묵하게 되고 본받음의 흔적을 지닌 사람만이 의심을 향해 진군할 수 있다. 결정적 행동으로 적어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지점에까지 간 사람에게 정말로 복음은 관대하다.”(229)

이 책에는 매우 심오하고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철학이 있다. 또한 자성을 촉구하고 내적 겸손으로 초청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기독교를 다른 무엇으로 축소시키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가진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이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어의 일생을 일관하는 문제의식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통찰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밝은 눈의 독자를 기대한다. 머리말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이렇게 권한다. “사랑하는 독자여, 가능하다면 이 글을 큰소리로 읽으라”(My dear reader, read aloud, if possible!)

 

l****s 2017.02.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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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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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로 명성이 지대한 '키에르케고어'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컸기에 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에 대한 호기심 또한 지대하여 집중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는 인간의 생에서 '불안'과 그것에 대한 '고뇌', 그리고 '신앙'의 이야기까지 모두 염두에 두고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어서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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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로 명성이 지대한 '키에르케고어'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컸기에 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에 대한 호기심 또한 지대하여 집중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는 인간의 생에서 '불안'과 그것에 대한 '고뇌', 그리고 '신앙'의 이야기까지 모두 염두에 두고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독서할 수 있으니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호감 가는 철학자인 '키에르케고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이해하게 된 것에 큰 설렘을 주었다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이 책에서는 '키에르케고어의 생애와 사상'을 특별하게 구성해서 다양한 자료들까지도 수록하여 재미있게 '키에르케고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깊이있게 파악해볼 수 있어서 더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실존주의의 한 중심에 서 있다고 손꼽아 볼 수 있는 생생한 철학자로 불리우는 '키에르케고어'! 그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기에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현대 사상가가 있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많은 관심과 호감을 그대로 느껴보는 인물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기에 더욱 숙고하는 마음, 음미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또한 많이 회자되는 하이데거나 야스퍼스 등의 철학자들에게도 '키에르케고어'의 존재는 '실존'에 대한 음미를 시도하게 해주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주었기에 더욱 주목하여 그의 사상과 철학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쇼펜하우어와 니체 등의 철학자들과 함께 실존주의를 구축한 철학자로 손꼽게 되지요~ 그리고 종교에 있어서도 유년시절부터 기독교의 엄격한 수련을 받아왔기에 더욱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철학과 신학의 이야기를 접목한 위인으로도 손꼽히고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우울증이 심각했던 아버지의 면모를 닮아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고 이러한 경험과 느낌은 성인이 되면서도 이어지고 막연한 죄의식에 힘겨운 인생이 되었다고 해서 안타까웠습니다.

d*******3 2017.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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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깨라, 본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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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깨라, 본받으라]키에르 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rrd, 1813-1855)의 글은 이름만큼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자이며 신학자이기도 한 그는 쇼펜하우어, 니체 등과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서, 헤겔과 더불어 종교철학자로 높이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최근에 그의 저서 『스스로 판단하라』(샘솟는 기쁨, 2017)를 접하였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어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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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깨라, 본받으라]

키에르 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rrd, 1813-1855)의 글은 이름만큼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자이며 신학자이기도 한 그는 쇼펜하우어, 니체 등과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서, 헤겔과 더불어 종교철학자로 높이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최근에 그의 저서 『스스로 판단하라』(샘솟는 기쁨, 2017)를 접하였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어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그였기에 집중력을 발휘해 꽤 긴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좀 자란 것이지는 모르겠으나, 과거에는 그의 말을 듣기만 했는데, 이번엔 작심하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 진짜 죽음이고 절망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도 쉬운 명제이나, 회심이 없던 ‘젊은 날’에 만난 그는 꽤 쓸 만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에 불과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라』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을 “술을 깨라”로 적용한 그의 통찰과 적용은 존경할 만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닮아선 안 될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 본을 보여야 되겠죠.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하신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인으로서 갖추어야할 제자도를 말합니다. 단순히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율법을 초월하는 복음의 진수가 여기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겉모습보다 ‘마음’이 문제라는데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허나 그 부담이 만족이며 은혜인 것을 깨닫습니다. 주께서 오신 이유이며, 주님 안에 거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고객을 모으기 위해, ‘두주인’을 섬겨도 무방하다고 교묘하게 거짓 위로와 평안을 주는 사이,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신뢰하지도 본받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실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치 농담을 하듯 뱉어낸 말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며 믿음이 더욱 성숙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번역도 깔끔하고, 역자의 해제는 이해를 돕습니다. 읽는 맛이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개인적으로 ‘자기지식’을 ‘자아인식’이나 ‘나를 아는 지식’ 등으로 번역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지식’이라고 하면, ‘자기가 아는 지식’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문에 충실하려 그랬을 것으로 보지만 말입니다.

그가 약혼녀 ‘레기네 울센’과 파혼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은은 매우 유감입니다.

2018. 01. 09(화). -배달보이-
h*****7 2018.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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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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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이 책은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관한 변증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의 말씀은 그러므로 술 깨라. 라는 말씀입니다.참 흥미로운 메시지였고 늘 성경을 가까이 두고살아가고있는 나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라서 읽게되었습니다.저자가 이 글을 읽는 이가 단독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양심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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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이 책은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관한 변증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의 말씀은 그러므로 술 깨라. 라는 말씀입니다.

참 흥미로운 메시지였고 늘 성경을 가까이 두고살아가고있는 나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라서 읽게되었습니다.

저자가 이 글을 읽는 이가 단독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양심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라고합니다. 사람을 이성적 존재로 대우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 진실을 말할 줄 아는 양심있는 사람으로 대우하는것이 모욕인가?라고.

그리고 저자는 당부합니다. 가능하다면 이 글을 큰소리로 읽으라고.

이 책은 딱 두가지 주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관한 변증 , 그리고 2장은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 6:24)

이렇게 두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키에르케고어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도 소개해주고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기독교 관점이나 개인의 가치를 알아가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삶을 인도하시고 이끌고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핵심문구에는 빨간색 밑줄이 표시되어있어서 더욱 의미를 곱씹으면서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조금은 이해가 어려운부분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여러번 읽어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하나님안에서 사는것이 참 가치임을 저는 느낍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한 부분들으 ㄹ이해하고 나아가며, 또 배워갈 수 있는 책이였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있는 두가지 말씀은 아직도 머리에 깊이있게 남는것같습니다.

그러므로 술깨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이 말씀은 어쩌면 우리삶에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디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야하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고, 나의 마음과 삶의 중심의 시선이 중요하다는걸 깨닫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측면이나 나의 삶,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고민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여러번 읽으면서 읽을때마다 주는 감동을 새롭게 느껴봐야할것같습니다.


 

p******1 2017.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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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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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를 통해서 '키에르케고어'의 철학과 사상, 종교적 관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어서 특별한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에서 '키에르케고어'가 믿었던 종교적 신념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허락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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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를 통해서 '키에르케고어'의 철학과 사상, 종교적 관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어서 특별한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에서 '키에르케고어'가 믿었던 종교적 신념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허락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어서 이해하는 독서가 가능했어요. 다소 비판적인 '기독교'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키에르케고어의 글내용, 그리고 다양한 의식적 변화들까지도 이 책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특별한 의미를 자꾸 부여하게 되더라고요~

실존주의 사상의 대부로 불리우는 '키에르케고어'!!! 그래서 현대의 여러 철학자들 가운데 키에르케고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러 실존주의 사상가들이 있지요, 하이데거나 야스퍼스 등도 정말 유명한데요 이들에게도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던지고 또 사상적으로 탐구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 대부와 같은 '키에르케고어'!!!

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에서는 '키에르케고어'의 인생 전반에 걸친 이야기들을 잘 풀어주고 있어요, 그는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우울한 성격을 닮았고 평생을 우울과 불에 둘러싸여 그것들과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그는 7남매 속에서 자라면서 특히 사랑, 그것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울과 불안의 정서까지 모두 도사리고 있었고 그러한 감정들이 결국 그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애인인 레기네 올센을 만나 약혼을 하지만 좋은 결말은 보지 못하는데도 그의 불안과 우울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안타까웠어요. '키에르케고어'의 일생을 만나면서 그의 사상과 결부시켜서 보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요~ 이 책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는 한 번만 읽고서 덮는 책이 아니라, 여러 번 읽고서 음미하는 책이라는 생각을 더욱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시간도 되어서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r********7 2017.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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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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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 누구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맞네. 그 사람. 우리가 키에르케고르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이구나. 그런데 키에르케고어로 부르는 게 맞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가 보네. 게다가 이 사람이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관한 변증을 책으로 출판했다고. 뭔가 이상한데.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니체, 쇼펜하우어와 같은 색깔을 지닌 사람인데.  저자 소개를 보니 내가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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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 누구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맞네. 그 사람. 우리가 키에르케고르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이구나. 그런데 키에르케고어로 부르는 게 맞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가 보네. 게다가 이 사람이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관한 변증을 책으로 출판했다고. 뭔가 이상한데.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니체, 쇼펜하우어와 같은 색깔을 지닌 사람인데.

 

저자 소개를 보니 내가 아는 것도 틀리지 않았지만 모르고 있었던 게 있네. 키에르케고어가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신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호. 놀랍다. 그가 헤겔과 함께 종교 철학자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니. 그럼 이 책도 신학자로써 쓴 책인가 보구나. 무슨 내용일까?

 

1, 2부로 나누어서 저자가 말하는 걸 간단하게 살펴보면, 1부에서는 세상을 향해 ‘술 깨라’는 베드로의 외침이 무슨 의미인지를 밝히고, 2부에서는 술이 깬 사람이 행해야 하는 것, 바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너무 간단하게 설명했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자가 설명한 내용이 너무 어렵다. 어려워도 정말 어렵다. 잘은 모르겠지만 신학을 전공한 사람 정도는 되어야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한지 이제 몇 년 되지 않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그래도 이 책으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지.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얼핏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인지도 모르지만 분명하게 알려주신 내용이 있어. 그건 바로....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이 말이 인간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요구조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예수님이 필요하고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소식이라는 것.

 

그렇구나. 그런 의미가 담겨있구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을 올바르게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구나. 당연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언제나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는 '술 깨라'는 베드로의 외침과도 이어지지. 저자에 따르면 술 깨기란 자기지식 안에서 정신 차려 자기 자신이 되기 그리고 무한히 무조건적으로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서 무로서 그분 앞에서 정신 차리기이다. 둘 모두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어.

 

아직 모든 걸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단 하나라도 깨달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하나님 앞에서 오롯이 아무 것도 아닌 내 자신을 깨닫고 온전히 주께 모든 것을 맡기라는. 이 깨달음 하나가 앞으로 나의 삶을 온전히 지배할 거라는 그런 기쁨의 고백이 넘치는 순간이었어. 이런 기쁨을 모두가 누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r******3 2017.0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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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얀 키에르 케고어 저의 『키에르 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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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얀 키에르 케고어 저의 『키에르 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를 읽고솔직히 내 자신 책을 좋아한다. 어느 분야 가리지 않고 본다. 그렇지만 쏘옥 들어오지 않는 내용도 있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어렵지만 붙들고 있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감이 오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것으로 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독서의 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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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얀 키에르 케고어 저의 키에르 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를 읽고

솔직히 내 자신 책을 좋아한다.

어느 분야 가리지 않고 본다.

그렇지만 쏘옥 들어오지 않는 내용도 있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어렵지만 붙들고 있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감이 오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것으로 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독서의 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선택한 책도 어려웠다.

우선 철학자인 쇠얀 키에르케고어에 대해서 막연한 실존주의 철학자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키에르케고어의 사상 내용과 함께베드로전서 47절에 관한 변증 그러므로 술깨라!’에 관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목에서스스로 판단하라하였는데 결코 판단하기 어려워서 내 자신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이 많아서 더 많은 수련과 훈련,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책과 함께 하는 최고 시간을 갖는 행복함을 앞으로도 계속 가지리라 나름 다짐해본다.

어쨌든 이 책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져보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일부 개신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에서 조금은 어려운 모습을 느끼고 있다. 물론 모든 가능성들을 시원하게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여러 상황들이 어떤 완전 합의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기에 오늘날의 현실을 잘 반영하면서 서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는 각자에게 맡기기 때문에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는 그런 교훈적인 순간으로 작용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본인에게는 최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진정으로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이 교회를 향해서 하는 소리들을 들어보고 내 자신 스스로 판단해서 확실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가 말하는 그 내용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하고 곱씹으면서 진정으로 나 자신의 현 주소와 함께 내 자신이 무엇에 취해 있고, 어떤 모습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점검해보았으면 한다.

키에르케고어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이야기로 볼 수 있고, 얼마든지 도전적으로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간만에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속에도 불안과 우울 등에 대해서 같이 알아가는 진정으로 유익한 시간이 되는 나름대로 특별한 시간이 되어 의미가 깊었다. 

m***3 2017.0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