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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동안 극심하게 우울했다. 삶의 의욕은 저하되었고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했으며 웃음을 잃어버린 듯한 주간이었다. 사람들의 한탄에 휩쓸렸고 흑백논리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내 우울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렸다. 이 지구 상에 곧 종말이 들이닥칠 것처럼 한숨만 쉬어대는 세상이 안타까웠다. 우울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았다. 나의 우울은 나 자신에게서 파생되기도 하지만 이렇듯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도미노 현상처럼 번져간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에릭 메이젤은 우울증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극도의 슬픔과 불행의 감정이 우리를 '우울하다'로 몰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사실 난 마음이 아팠다. 변화되길 원하는 사람들의 눈물과 그렇지 못한대서 오는 편 가르기 식의 비방과 독설들의 난무 속에서 아프고 아팠다. 아직 무언가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희망을 너무 빨리 저버리는 듯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조금 많이 아팠다. 실질적인 감정은 아픔이라는 게 정확한데 우리는 감정적으로 아프거나 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통틀어 '우울하다'고 말한다. 감정적인 걸 떠나 육체적으로 아프고 타인에 의해 아파도 '우울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울증이라는 건 곧 사회, 정신건강 산업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이름을 갖다 붙인 정신장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장애, 정신질환이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의 표출일 뿐인데 기쁨, 즐거움, 행복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닌 그에 반하는 감정이 상승곡선을 그릴 때 사람들은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거부한다. 그래서 喜怒哀樂에서 喜와 樂만 수용하고 怒와 哀의 감정은 배척하고 부정하는 현상이 이 감정을 장기간 느끼는 사람들을 환자로 몰아가고 있다. 삶은 희로애락의 공존이듯이 사람의 감정도 희로애락의 적절한 배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프고 슬프면 '나쁘다'는 인식만 강하다. 물론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 삶, 타인의 삶, 사회 전반적으로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구 상에 어떤 사람도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감정이 있는 인간이기에 양가적인 감정,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감정의 고조, 고뇌 같은 것들이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질병이 되어있다.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어떤 것에서도 정신적 공허를 견뎌내지 못할 때 병원을 찾는다. 의사는 '항우울제'라는 약을 처방한다. 사회에서 이 우울이라는 것은 이미 질병으로 공공연한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 이유는 현시대의 세계적인 문제점인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와 원인도 파악하지 못할 때 대다수의 사람-주변인, 의사들은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이라 결론짓는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안 되고 인간관계에서의 마찰이 오고 힘든 상황이 자꾸 반복될 때 우리는 고통스럽고 화나고 아프고 슬퍼진다. 그런 때조차 대부분 '그래서 우울해'라며 마치 모든 감정의 근원, 공용어라도 되는 듯이 말한다. 우울증의 증세가 오면 누구나 그 시간을 견뎌내기 힘겨워하면서도 어떤 대책을 강구하려 하지 않는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함에도 마음 자체가 의욕을 잃으니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왜 멀쩡한 사람들을 우울증 환자로 몰아가는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정신건강 산업의 폐해를 꼬집는다.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서 특정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거나 신경전달물질의 반작용 등이 있을 수 있다. 헌데 이조차도 정신건강산업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에 놓고서 저울질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신장애에서 안전한 사람은 누가 있겠는가. 나, 혹은 당신,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 현대인의 고질병, 10명 중 절반은 겪고 있는 현대사회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인 정신장애가 되어버린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일상적으로 느끼는 평범한 감정이라도 불유쾌한 감정에 대해서는 '병(우울증)이 의심된다' 는 고정관념을 심어놓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시나요?', '항상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신가요?'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일단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의심된다. 따지고 보면 고민이 있어도 잠을 이루기 쉽지 않고 기분의 처짐 현상을 겪는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고통스럽고 슬프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쁜 특징 중 하나는 소신과 주관 없이 군중심리에 의해 금방 끓었다가 식어버리고 우르르 몰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식의 일시적 몰림, 전염현상인 '냄비근성'을 들 수 있다. 우울증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울증은 전염성을 가진다. 그리고 우울증에는 별다른 처방이 없다. 그저 '항우울제'라는 화학물질의 처방이 다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약에 광적으로 의지한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항우울제가 약효는 전무하고 오히려 부작용이 심각하게 우려되는데도 그에 따른 어떤 연구사례에도 관심 두려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저 처방받기만을 바란다.
정신장애가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되는 것은 한 방에 모여 앉아 어떤 현상을 정신장애라고 불러야 한다고 결정짓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다. 일단 이 이름짓기가 진행되고 체계 속으로 들어오면, 정신의학계의 나머지 사람들이 그 이름에 동조하고 일반 대중이 뒤를 따르게 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특정한 인간현상을 정신장애로 지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해서 그 현상이 정말로 정신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66p
고통에는 면역제가 없다. 단지 이겨내려 애쓸 뿐이다. 불행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불행이라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희망을 품는 법뿐이고 믿을 뿐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현대인의 병일 뿐인,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우울증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저자는 우리를 정신적 폐허로 함락시키는 극단적 슬픔, 불행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일상 의미화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자기 실존적 삶을 살기를 독려한다. 총 10가지 항목(직시,주관화,중시,선택,집중,저항,고려,훈련,협상,대처)으로 구성되어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간략하게 정의 하자면 이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실존적 삶 안에서는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를 바로 보고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타파하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둬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의미 지향적 삶, 살아가는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그 삶에 어떤 지향점이 있을 수 있겠나. 우울증은 슬픔, 불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는 오는 권태, 무기력함 같은 감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언젠가부터 인간의 공동체 의식이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사회적 통념에 따른 지배를 받고 있다. 이는 개인을 중시하기보다는 다수, 전체를 따르는 메커니즘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야만 할 것같은 일종의 강제성을 띠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유행, 붐에 휩쓸려 모두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치장을 하고 비슷한 삶의 지향점만을 향해 간다. 우울증도 다르지 않다. 감정의 희로애락을,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일 경우 더더욱, 일종의 병리적 증상으로 몰아가는 현상은 개인보다 전체에 휩쓸리는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는 일종의 현대적 현상이라고 본다. 내 삶의 주체는 나이고, 능동적으로 개척하고 주도해야 하는 사람도 나다. 남들이 뭐라 하던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던 독자적인 자신의 걸음을 걸으면 될 일이다. 물론 이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삶은 실존 그 자체다. 그렇기에 매사 의미를 부여하고 고민하고 응당 책임을 져야 함은 기정사실과 다름없다. 그저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머리가 터져라 고민해도 '나'라는 존재, 삶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물음의 답안은 끊임없이 가변성을 지니기에 답이 없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희망적이기보다는 아픔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좌절하고 실패하는 건 누구나가 비슷비슷하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삶은 현실이기에 아프다. 결코 안정적이지도 않다.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투성이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대처할 힘을 기를 수 있다.
누구나 불행하고 누구나 아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상대적일 뿐이다. 내 고통, 내 아픔만 더 크게 다가올 뿐이다. 이 모든 걸 바로 볼 때, 사회, 정신건강 산업이 양산해낸 현대인의 질병이라 일컫는 '우울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슬프고 아픈 건 '병'이 아니다. 인간이 느끼는 지극히 실존적이고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의 '분출'일 뿐이다. 통상적으로 우울증 치료는 화학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이 책은 저자의 직업에 따라 후자에 무게를 두는 책에 가깝고 약물이라는 화학적 치료법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강요하지 않는다. 약물치료도 얼마든지 대체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건 내 삶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체계적으로 살아가는냐 하는 것, 약물에 의존하는 해결방안보다는 이겨내려는 자신의 의지가 더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함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내 삶의 주체가 되고 내면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고민스럽고 불행하고, 이 모든 감정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남들과 비교할 것 없이 내 삶에 집중하는 것. 남들이 행복해도 나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이 불행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모두 제각각이다. 불행은 나, 타인, 사회 모든 것에서 비롯된다. 불행하다 느꼈다 해서 당장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잘못은 아니다. 사는 건 너무도 힘든 여정이다. 즐겁게, 밝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절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삶의 여정 중에 잠깐, 어쩌면 꽤 오래 힘든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해서, 자학할 것도 아니며, 남들과 비교할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우울은 극도로 슬픈 감정의 분출일 뿐임을 잊지 말자. 슬플 땐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더 건강한 정신으로 무장해서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사회가 권하고 만들어낸 우울증,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 우리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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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직장을 그만 두고 있었을때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아파트 1층에서 살아갈 때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아이들하고만 있었을 때 굉장히 힘들었었다. 그리고 아파트 동향 쪽에 있는 1층이라 늘 어두웠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우울해 했다. 늘 비오는 날처럼 어두운 날들이어서 우울해 하곤 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우울증에라도 걸릴 것 같아 직장에 다시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건강해졌다. 언제 우울해 했나 싶게 아주 건강해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난 직장생활을 해야 할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생각한 게 사람은 햇볕을 봐야하고, 집에 있는 것 보다는 바람을 맞으며 매일 산책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연예인들도 그랬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자살을 했었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모두 우울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마음의 병인지 아는 순간이었다.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 주변에 보면 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꽤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들이 '나도 우울증 초기 단계인가'하는 이런 말들을 했다. 저자는 우울증을 권하는 사회라고 했다. 저마다 다들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회, 우울증이 만연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글을 썼다.
우리가 삶을 직시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진실에 도달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최대한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이 위험을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103페이지)
저자는 '우울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라 인간의 슬픔에 잘못 붙여진 꼬리표 라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너무도 슬픈 감정을 사람들은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게 우울하다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들을 실제 사례를 들어 알려주고 있다. 우울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삶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의 삶을 바로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가지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특별하기를 바라지만 평범함 속에서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 기분을 너무 살피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공허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행복한가 불행한가 하는 문제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 기분이 중립인 상태로 일다운 일에 몰두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라며 기분이 아니라 의미에 집중하면 불행을 겪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삶을 이끌어나가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도 더 자신있게 임할 수 있다라고.
진정한 삶은 노력 그 자체다. 날마다 쉬지 않고 작은 몸짓을 하고 큰 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이 꿈꾸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진정한 삶의 경험을 획득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298페이지)
슬프다는 감정을 우울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사람을 만나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거나 혼자서라도 산책을 하다보면 언제 슬픈 감정이 있었나 싶게 마음이 가뿐해 짐을 느낄수 있다.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예를 들면, 나처럼 책을 읽는 순간 책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 느낌을 느낀다던가, 영화를 보며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것들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닐까 한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다보면 우울이란 감정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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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즐기는 활동에 흥미를 잃음
□ 무감동 □ 비관적 태도 □ 기계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 □ 일상적인 일에 집중하기 어려움 □ 원기부족 □ 만성적인 피로감 □ 수면과다나 불면증
현재 나에게 해당하는 증상을 표시해 보세요. 모두 몇 가지에 해당되나요. 만약 4가지 이상 해당한다면 당신은 우울증에 빠진 겁니다. 대략 이런 방식으로 집계한 2011년 한국의 우울증 환자수는 57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걸릴 만큼 흔한 질병이라,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이유를 알만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 책 저자인 에릭 메이슬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슬픈 상태"라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은 물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의약적 처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우울증이라는 병이 널리 퍼지고 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거대한 제약회사의 영향력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의사들이 만들어낸 "꼬리표 달기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일종의 프레임 전략(framing)에 촛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슬픈 마음의 상태로 보느냐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보느냐는 프레임에 따라 치료나 처방의 방식은 확연하게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저자는 우울한 감정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울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반드시 도움을 구하라'고도 말합니다. 단지 전문가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간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우울한' 사람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할애되어 있습니다.
'일상의 의미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슬픔과 불행이 인간의 삶에 내재하는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존재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핵심내용은 하루하루 후회없이 자신만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 만들어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스무 단계의 실존 프로그램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학적 해결책이 아니라 실존적 자아찾기라는 인생의 의미찾기가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복권 당첨자들이 짧은 희열의 기간을 보낸 후 복권이 당첨되기 전보다 더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기 전에 알콜중독자였던 사람은 당첨된 후에도 여전히 알콜중독자입니다. 갖가지 희귀한 술이 담긴 진열장을 가질 수 있겠지만 삶의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지요. 항우울제 복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우울증이라는 정신장애가 있고 특정치료가 증상을 경감하거나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해도, 우울증이 잠시 치료되었다고 해서 삶의 근본적 문제까지 치료되는 것은 아닌 법입니다. 이 책은 우울이나 슬픔과 같은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이 아닌 근원적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결국 나 자신의 삶이 의미있는 삶이 될 때 가끔씩 찾아오는 불행이나 슬픈 감정들도 바로 이겨 낼 수 있는 법이지요. 우울증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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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관련 내용을 공부해 본 적이 있어서인지 항상 책을 볼 때 ‘읽기 전 활동’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 읽기 전 활동이라 하면 대게 ‘표지 보면서 제목과 그림 매칭하면서 이야기 추측하기 - 소제목만 먼저 읽으면서 이야기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기’ 등이 그것이다. ‘가짜 우울_우울 권하는 사회 일상 의미화 전략’이라는 제목을 보고, 우울을 권하는 사회에 대하여, 가짜 우울이 나타내는 의미에 대하여 한참 생각에 잠겨 보았다. ‘어떤 내용일까? 사회가 우리에게 우울함을 주는 이야기일까, 우리가 느끼는 우울의 감정이 가짜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것일까?’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이 책의 에릭 메이젤은 미국의 유명한 심리치료사이자 창의력 전문가이다. 저자는 심리 치료를 하였던 경험을 토대로 ‘우울’이라는 감정과 ‘우울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요즘 만연하고 있는 ‘우울증’이라는 병은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울한 것이 아니라 다만 불행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우울증’이란 특유의 나약함에서 나온 병으로 편의상 붙인 병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주위 사람들은 그 감정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없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 스스로가 그 틀을 깨고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울한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삶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더불어 우울한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실천 방법으로 스무 단계의 실존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그 단계를 밟아나가다 보면 불행 역시 자신의 삶의 일부이며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갈 힘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그 힘을 끄집어낸다면 불행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우울해.’라는 우울 감정 속에 있다 보면 자신의 삶은 ‘우울증’이라는 꼬리표를 계속 달고 다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100만 명에 이르는 자살자 절반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의 우울증에서 시작된 자살 소식 등 우리 사회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우울한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누구나 들 수도 있는 것이니 잠깐의 우울 속에 있더라도 빨리 그 기분을 떨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없이 우울 속에 있는 나에게 누군가 손을 뻗친다고 하더라도 내 스스로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면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다시금 우울함으로 빠져들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지금 행복한 상태인가, 불행한 상태인가라는 기분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나의 삶, 내가 나아갈 길을 선택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도전하는 의무를 갖고 하나씩 실천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지금 우울한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 보라. 내 기분을 돌아보고 삶을 직시하게 되어 우울을 벗어나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것이며, 시련을 벗어나는 방법 또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에 좌지우지되며 자꾸만 흔들리기에는 우리 삶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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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우울하다고 아우성이다. 급기야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우울함을 호소치 않는 게 외려 이상하다는 식의 해석이 난무하고도 있다. 왜 아파야만 하는지는 묻지 않은 상태에서 아픈 게 정상이고 아파야만 한다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논리의 이상함에 대해 따지질 않는다. ‘정상’이라는 범주에 스스로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느라 바쁜 탓이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긴 하다. 조금 쉬어가고 싶지만 언제라도 뒤쳐질지 모른다는 생각, 아니 이미 도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보니 그리 하지 못한다.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만성피로 등 안 좋은 것들이 자꾸만 쌓인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헌데 저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사람들이 호소하는 우울이라는 게 ‘가짜’라는 것이다. 단체로 꾀병이라도 부리고 있단 소릴까. 우울하다고 하여 모두가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병원에 간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진단이 내려지게 된 원인이 무언지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신체가 명확히 증세를 내보이는 감기 따위의 질병은 제3 자라 할 수 있는 의사가 충분히 그 증세를 통해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다르다. 환자가 경험한다는 증세는 오로지 환자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약물치료를 하는 의사가 되었건 상담을 주로 하는 상담가나 복지사가 되었건, 이들 전문가들은 결국 환자가 제 입을 통해 내뱉은 일종의 자가진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환자의 판단이라고 모아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우울증인 거 같아요.”라는 자가진단을 환자가 이미 내린 게 아니라면 그는 병원이나 상담소 등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38페이지부터 45페이지에 걸쳐 펼쳐지는 말장난과도 같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증세에 대한 묘사 등은 환자의 설명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그와 같은 증세가 무슨 질환에 해당한다는 식의 진단만큼은 그래도 과학적이지 않을까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저자는 가상의 정신장애를 만들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정신장애를 만들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를 약간 바꾸어 새로운 명칭을 하나 만들고, 부정적인 인식이 드는 증세들을 나열해 그것이 해당 병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증세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질병은 완성(?)된다. 이 책에서는 ‘디스모베리아(dysmoveria)’라는 이름의 장애를 만들어보았는데, 다소 어이가 없다 싶으면서도 이를 내가 아닌 해당 분야에서 어느 정도 권위를 쌓은 이들이 주장한다면 충분히 하나의 독립적인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많은 질병이 이처럼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걸리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필히 치료 받아야만 하는 병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기에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호소하고 있는 증세, 즉, ‘우울증’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부르는 그 무언가도 ‘가짜’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병의 정의와 진단이 자의적이라면 치료 역시 표준을 따를 이유는 없다. 당신은 이미 우울하다는 자가 진단을 내렸다. 이제는 그 진단에 대해 책임을 질 차례다. 저자는 자신의 방법이 학계의 주류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아마도 많은 전문가들은 저자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식의 주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울증의 근본까지 뿌리를 뽑는 데엔 효과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치료를 중단한 후에 우울증이 재발하는 경우도 잦다. 저자에 따르면 잠시 환자가 호전되는 듯해 보이는 까닭은 특정 성분에 환자가 반응하기 때문이란다. 차라리 진단의 주체인 환자가 치료 과정에도 객체 아닌 주체로 나서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저자는 본다. 이 책에 언급된 직시하라, 주관화하라, 중시하라, 선택하라, 집중하라, 저항하라, 고려하라, 훈련하라, 협상하라, 대처하라 등은 환자의 결심과 결단에 의한 치유법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어떠한 눈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나와 세상을 인식하느냐에 약간의 변화를 기하는 것인데, 이의 효과는 생각보다 뛰어나지 싶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물질적으로 풍요와는 부단히 거리를 둔 국가인 부탄이나 파키스탄 등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굳이 병리적인 영역에 스스로를 가둘 필요는 없다. ‘슬픔과 불행이 인간의 삶에 내재하는 자연스러운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그 불행에 대처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만으로도 치유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저자가 말하고 팠던 게 아닐까 라며 이 책의 번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언급했다. 그의 말이 정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어찌 1년 365일 행복할 수만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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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쯤, '우울증'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 보았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없이 활발한 편이었던 지인이 어느 날 말하기를, "사실 나 우울증에 걸렸다."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거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심각한 '병'이 아니냐고,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넸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였다. 알고보니 자가진단으로 우울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당시는 우울증이 시대의 화두였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외롭고 슬픈 감정을 우울증이라고 생각하며, 마치 자랑거리인 양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 그 지인의 우울증 이유는 '힘듦'이라고 했다. 3년여가 지나, 나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왔다. 당시 1년여 동안 외국생활을 했는데, 너무 외롭고 고독했다. 그 감정들을 추수리기가 너무 힘들었고, 결국 스스로 우울증이라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며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 주기를 바랐다. 당시 나의 우울증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얼마 전, 또 다른 지인이 '우울증'이라고 하며 위로받길 원하는 듯한 느낌을 풍겨왔다. 하는 일이 잘 안되고, 계속 자신을 탓하다 보니 너무 우울해졌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너무 슬프다고 하며. 심리 치료도 몇 번 받아보았다고 했다. 그 지인의 우울증 이유는 '슬픔'이었다. 살면서 우울증에 안 걸려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하는 사연들이다. 우울증은 병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지금.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스타들의 과거 고백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우울증'이고,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는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우울증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었을까? 미국의 심리치료사이자 창의력 전문가인 에릭 메이젤 박사는 그의 저서 <가짜 우울>(마음산책)을 통해 "우울증은 병이나 정신장애가 아니며, 단지 깊은 슬픔에 잘못 붙여진 꼬리표일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며 "슬픔은 현실이고 또한 고통스럽지만...그런 것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려고... 화학물질을 택하는 것이 슬픔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책에서는 그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찾기 위한 실존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무슨 근거로 우울증은 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너가 겪고 있는 슬픔이나 아픔은 누구나 겪는 거니까, 그냥 기운내고 열심히 살아'하고 시크하게 한 마디 던지고 싶은 것인가. 저자의 말을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상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우리 내면의 어휘 체계에서 불행을 실질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슬픔을 느끼면서도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한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교체한 뒤 도움을 구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우울증 전문가를 찾는다. 알약에, 치료사에게, 사회복지사에게, 목회 상담가에게 의지한다. 설령 우울한 이유가 각종 청구서 대금을 내는 일이 힘에 부치거나, 하는 일이 제대로 안 풀리거나, 인간관계가 위기에 처해서일지라도" -1장에서 위에서 소개한 사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힘듦, 외로움, 슬픔 등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 '우울증'이라고 명명된 그 알 수 없는 증세는 점점 '병'이자 '장애'가 된다. 그렇게 우울증에 관한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저자는 그 접점에대중매체, 제약회사, 상담사, 심지어 문화업계까지 얽혀서 "모든 종류의 불행이, 이따금씩 나타나는 것이든 만성적인 것이든 모조리 정신건강 산업의 먹잇감이 되었고 장애로 둔갑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우울증은 만들어진 정신장애이자 문화적 최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행은 인간의 정상적인 특징이다. 그 실체를 알고 이겨내자. 저자는 우울증이라는 하는 병이나 장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삶에서 지워버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며 삶에서 수반되는 불행이나 고통은 지극히 정상적인 특징이며 그것이 장애가 될 순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고통과 어려움이 아무리 극심하고 오래 지속된다 해도 '정신장애'나 '정신질환'의 증거가 될 순 없다. 극심한 치통은 신경치료를 받으라는 정확한 신호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극심한 슬픔은 그 어떤 아픔 못지않게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라 해도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의 징후는 아니다." -프롤로그에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아무리 고통과 어려움, 슬픔과 외로움 등의 불행이 정상적인 감정이고 피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이 결코 좋을리는 없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든 감정의 실체를 알고 있지만서도, 기분 좋은 감정은 '정상적인 감정', 기분 나쁜 감정은 '비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저자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두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결코 피할 수 없는 그 존재를 인정하고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저자는 '일상 의미화 전략'이라는 실존 프로그램 20단계를 제시한다.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1단계에서 부터 부여, 집중, 소통, 대처 등의 단계를 지나 실존적으로, 인지적으로, 행동적으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마지막 단계까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삶에 주어진 불행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을 직시하고, 의미를 파악한다.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고 의미를 부여한다. 자긍심을 갖고 의미를 만들고, 욕구와 필요 그리고 가치를 고려해 선택한다. 삶의 목적이 담긴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평가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의미에 집중하고, 문화적 최면에 저항한다. 다시 현실을 살피고, 의미와 소통한다. 의도를 지닌 문장을 외우고, 의미에 대해 훈련한다. 의미를 어디에 투자할지 협상하고, 의미를 구체화 시킨다. 의미가 길을 잃을 때 이에 대처하고, 자신을 돌본다. 다시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의미'를 만들라는 말이 되겠다. 불행을 없애는 건 불가능 하겠지만, 불행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포용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진정한 삶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불행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고, 생각과 행동이 중요한 것에 맞춰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삶'을 목적으로 삼아, '삶에서의 중요한 무엇'을 향해, '생각과 행동'을 지니고 가는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말은 언어의 부패다. 우리 사회가 우울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 말은 우리 모두를 점점 더 불행으로 몰아갈 것이다. 불행의 병리화는 불행을 만들어낸다. 우울증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그 대신 의미를 만들어라. -에필로그에서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무엇을 치유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치유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 <가짜우울>은 힐링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여느 힐링 관련 책들 같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책을 읽다보면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희망이 생길 것이다. 먼저 시작해보자. 우울증이라는 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자.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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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이 뭐냐는 질문을 아주 가끔 받는다. 바로 답을 안하고 왜 묻냐고 되묻는다. 내 대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B형 아니냐고 자신있게 말하는 상대방. 이럴 때는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아니 어떻게 알았냐고 너무 신기하다고. 그러면 상대방은 딱 보면 보인다고 한다. 개성도 강한 것 같고 고집도 있는 것 같고 평범하지 않은 것이 더도 덜도 말고 'B'형이라는 거다. 내가 너무 신기하다고 흥분을 하면 상대는 더 기세등등하다. 자신이 혈액형과 성격에 대해 공부를 좀 했는데 안 봐도 비디오라는거다. 그 쯤되면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놀이 중에 하나가 혈액형 성격 운운하는거라고. 그리고 안타깝게도 B형이 아니라 A형이라고 사실을 말한다. 제발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하지 마시라고.
포러효과(Forer effect) 또는 바넘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이다. 1948년 포러라는 양반이 대학생들에게 성격을 테스트하는 질문지를 줬다. 그리고 성격을 테스트 한 결과는 대체로 비슷했다. 어떤 상황에 대한 경향을 지수로 평가했는데 5점 만점에 4.26.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질문이 막연하거나(vague) 일반적(general)이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질문에 다들 대체로 그렇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같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자, 이제 책 이야기로 들어가자. '우울'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던 일이 원하는대로 안 되고, 현실은 갑갑하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 며칠 지속된다 싶으면 자가 진단을 한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원치 않는 슬픔, 본인 기준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우리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카드를 내민다.
멜 슈워츠는 심리학 전문 잡지 <사이콜로지 투데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정상적인 경험들이 지금은 기능 이상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시련과 고통에는 진단명이 꼬리표처럼 붙고, 우리는 희생자 집단이 되어간다. 막연한 불안감과 인간다움의 병리화에 희생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속단을 내리게 되는가? 그것은 정신건강산업과 의료계가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에 우리가 놀아나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다양한 증상을 정했다. 이러한 증상 중에 몇가지만 해당이 되어도 '우울증환자'가 되는 것이다. 원치않는 슬픔이 닥쳤을 때 이 증상 중 3-4가지 이상 해당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장애를 "개인에게 발생하며 현재의 고통이나 무능력을 동반하거나, 죽음이나 통증, 무능력, 중대한 자유의 상실을 겪을 위험을 심각하게 증가시키는, 임상적으로 중요한 행동적 또는 심리적 증후군이나 양상"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겉만 번지르르하다. 정신건강 산업 비평가들은 이처럼 알맹이 없는 기준에는 사실상 불쾌한 것이면 무엇이나 들어맞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해서 지적해왔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우울증이라 부르는 만성적인 슬픔의 지속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충고를 제법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실존의 회복, 또는 자존감의 회복이 필요한 부분들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다. 가리거나 과장할 필요없이 불편한 현실을 인정해야한다. 아침마다 그날의 의미 계획을 세우고 순간 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해야한다고 말한다. 항우울제가 치료의 중심이 될 수 없으며 의사의 단기적 처방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은 흔한 병이다. 주변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있다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필요하다. 치료받으면서 병을 인정하고 위로 받는 것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깨닫고 우리에게 대처할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 처방은 또 다른 원치않는 슬픔이 찾아오면 또 고생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어려운 현실에 실존을 회복하면서 당당히 맞서 싸울 힘을 주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제발 권위에 속지 말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빠지지 말고 항상 의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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