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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요네하라 마리의 책 몇권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 이 책도 다른 요네하라 마리의 책과 비슷하다. 독설, 유머, 통역가로서의 다양한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책. 하지만 또 다른 요네하라 마리의 책과는 다르다.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을지언정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 비슷한 소재라도 조금씩 다르게 풀어가는 점, 그리고 책의 제목이 다르다는 점. 어쩌면 <문화 편력기>(http://blog.yes24.com/document/12701909)가 가장 비슷한 류의 책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래도 역시 다르다. 이 책의 원제목은 "한낮의 별하늘". 책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서 소개하고 있다. 한낮의 별하늘이라, 태양 때문에 보이지 않는 별들,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별들. 소소히 살아가는 우리네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요네하라 마리의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다. 우선 각 에피소드가 길지 않기 때문에 절대 지루할 틈이 없다. 뻔한 내용 같지만 조금씩 비틀어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끔 지루할 때 쯤이면 유머가 짜잔하고 등장한다. 아니면 여러 나라에서 겪은 얼토당토한 경험담이라든지. 대단한 입담이 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해야할까. 요네하라 마리의 책. 가끔 무료할 때 책장에서 꺼내서 한 편씩 읽어보자. 그러다 쭉 읽게 될라. 가가린이 인류 처음으로 우주를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곧장 공산당 서기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부탁이니 신과 만났다는 것만은 비밀에 부쳐주게."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또다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바티칸의 교황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부탁이니 신이 없었다는 것만은 말하지 말아주게." (p.47) 북풍형, 태양형 이솝의 대표작은 누구나 어릴 적에 한 번은 읽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북풍과 태양이 서로 자기 힘이 더 세다고 자랑한다. 둘 다 자신만만해 하며 양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내기를 하기로 한다. 자, 지금 저기 걸어가는 여행자의 모자와 외투를 누가 더 빨리 벗길까? 성공한 쪽이 이기는 걸로 하자. 불만 없지? 져도 원망하지 않기야. 북풍은 힘껏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여행자에게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을 내뿜었다. 외투 깃이 펄럭이고, 모자는 날아갈 듯이 들썩였다. 더 거세게 몰아붙인다면 외투도 모자도 벗겨지겠지. 북풍은 폐활량의 한계를 다해 폭풍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여행자는 모자를 고쳐 쓰며 끈을 동여맸고, 몸을 굽혀 외투가 벗겨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북풍이 열심히 바람을 일으킬수록 여행자의 수비는 더 견고해졌다. 마침내 북풍이 그 끈기에 지고 말았다. 다음은 태양 차례. 조금씩 기합을 넣으며 여행자를 서서히 데웠다.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렸던 여행자는 어느새 긴장이 풀렸는지 외투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태양이 숨겨둔 정열을 한층 돋우어 지글지글 햇살을 내리쬐니, 결국 여행자는 모자와 외투뿐만이 아니라 윗옷까지 벗어던지고 말았다. 태양의 승리, 북풍의 완패였다. 이 이야기의 저자 이솝은 전적으로 태양의 편이다. 대부분의 독자도 북풍의 수단은 어리석기 그지없고, 태양의 방식이야말로 현명하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물론 나도 그랬다. 강요는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본인이 자기 의지와 희망에 따라 달성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때와 경우에 따라서 태양보다 북풍의 방식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북풍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여행자는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자각했다. 하지만 태양의 경우, 여행자는 태양의 의지를 마치 자기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해 외투와 모자를 벗었기 때문이다. 붕괴 전 소련 당국에 의한 언론 통제는 노골적으로 북풍형이었다.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 금기는 명확했고, 그것을 깰 경우의 탄압은 가혹했기 때문에 당국의 의지는 좋든 싫든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신문도 방송도 믿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는 말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간파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뻔히 보이는 권력 예찬을 반복하는 작가와 저널리스트들마저 그것이 아첨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반체제파 지식인들은 권력의 의지에 거스르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고 일단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표방하는 사회가 출현하니, 국민의 의지를 조작하는 방법은 태양형으로 전환되어갔다. 매스컴을 통한 여론 유도는 무척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바탕으로 한 듯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끊임없이 사고, 방송 인터뷰를 하면 열에 아홉이 마치 자신의 의견인 양 방송 진행자나 신문의 논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자신이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에 자진해서 투표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이 정보 조작의 결과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북풍형은 사람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 오래가지 못하지만, 태양형은 그 존재마저도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오래갈 수 있다. 정신의 자유를 위해서는 허울뿐인 자유보다는 자각하고 있는 속박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pp.113-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