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들은 모른다》를 읽으면서, 얄팍하고 절충적으로 온갖 이론을 끌어들이며 여성시를 해석하는 것이 못미더웠는데, 그래도 골라 놓은 시들은 좋았고, 적어고 그 안목에 대한 신뢰에 근거해 이 책을 읽게 된 셈이다. 결국 그 얄팍함과 절충주의가 보다 생생히 발현하는 것을 보고야 만다. 김승희의 페미니즘에서 교양주의의 수사를 걷어낸다면 여성지 수준의 세계관 밖에는 남지 않는다. 기껏해야 서구에 비해서 여기는 별로라는 식의 불평이 비판의 전부인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일 수 있을까. 전혜린이라는 선배가 보여준, 존재론적 코드에 갖혀 사회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을 도안시하는 모순은, 오늘도 지리하게 반복되고 있다. 김승희는 “허우적대지 않는 여성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들의 인생은 119와 같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현실이 끔찍하고, 그래서 딱 그 수준에서 발버둥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른 타자와 적극적으로 조우하지 않는 한, 타자로서의 자의식은 정당성도 힘도 가질 수 없다. 윤석남의 작업 또한 자족적 회로에 갖힌 것은 아닌가 의구의 눈길을 보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페미니즘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전지구적, 국지적 보수 반동의 물결에 발목을 잡힌 안타까운 현실에서, 그런 속류화된 페미니즘은 더욱 못마땅하게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