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연예인이 이혼한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뜨겁게 닳구고 있다. 꽤 성실하게 가정을 잘 이루어온 줄로 알았던 그녀의 이혼 소식에 솔직히는 많이 충격을 먹었다. 그런데, 항상 여자가 하는 말과 남자의 말이 다르다. 내가 여자여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인지 나는 그 사람의 말이 순도가 높고, 어쩐지 남편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들은 거짓과 변명이 많이 섞여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혼을 하려고 법정에 서면 대부분 여자들이 이혼의 사유가 분명한데 비하여, 남자들은 왜 아내가 자기와 이혼하고자 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옛날처럼 극단적인 부정이나 도박같은 경우가 아니면 자기는 가장으로서 할 일을 다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 남편, 마찬가지다. 맞벌이하면서 똑같이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도, 자기는 저녁에 와서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것이 다이다. 나보다 일찍 들어와서도 밥상 다 차려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도, 식후에 커피 타 달라고 설거지 하는 사람 따라다닌다. 동생이라면 때려주고 싶다. 주말, 몸과 마음이 다 소진하여 꼼짝하기 싫은 날,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아프다, 아프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왜 어디가 아픈지는 알 수없는데, 정말로 서 있을 힘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 날, 이 책을 읽었다. "여성시에는 왜 이렇게 광기와 타나토스가 많은걸까?"하고, 엮은 이, 김승희 시인은 묻는다.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 자신이 바로 여성주의 시를 쓰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가슴을 조이는 듯한 슬픔이, 세상에 발가벗겨져 내동댕이 쳐진듯한 서러운 에너지가 울컥, 하고 두 발로 일어서는(김상미의 아줌마)" 일상 생활. 날마다 울컥, 하고 일어서는 그 무엇때문에 조금씩 제 여자가 미쳐가도 남자들은 모른다. 아니, 남자들은 아예 알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의 섬세한 기호들에 맞추어 가느라고 자기의 많은 기호들을 잃어가도, 남자들은 여자들이 그것을 싫어해서 버린 줄 안다. 그런 취향이 있는지도 잘 모르지. 이 시집의 미덕은 제목처럼 남자들은 뭘 모른다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웃겨, 남자가 뭘 알어, 이기도 하다는데 있다. 김혜순의 "딸을 낳던 날의 기억"은 출산처럼 여자만이 아는 경험을 보여준다. 김선우의 "얼레지"는 흥, 남자가 있어야 꼭 뜨거워지니?라고 하면서 성의 권력을 여자 손으로 가지고 온다. 끊임없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머릿속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석영희의 "심판"도 있다. 어찌나 처한 상황과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한지, 여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쳐가고 자기를 죽이고, 그러면서 또 자기를 살리고, 서서히 전복을 꿈꾼다. 우울한 날, 이 시집을 들고 앉아 한장한장 넘기면서 나는 울거나 웃는다. 때로는 큰소리로 낭독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미칠 것 같은 나를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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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개봉한 영화 "올드 보이". 그 치밀한 남성 판타지에 분노하고 있을 무렵, 여성주의 웹진 언니네에서 글 하나를 보았다. 영화 속 유지태의 누나가 벤치에서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단지 실비아 플라스가 여성이며 자살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독이 유지태 누나의 소품으로 등장시킨 거라면 정말이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은 그런 영화에 그렇게 쓰여도 좋은 그런 책이 아니지.
내가 처음으로 실비아 플라스를 알게 된 시집이 바로 이 "남자들은 모른다" 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아빠>를 비롯한 여러 주옥같은 시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이 시집은 내게 시라는 장르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정도 해소시켜 주는 한 편, 여성시의 다양함과 그 가능성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시집에 대한 평을 다는 것은 처음이라 매우 주저가 된다. 압축의 미학을 지닌 시를 긴 사설로 다시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한 사람의 작가가 아닌 여러 작가의 시들을 모아 놓은 이런 시집이면 더더욱.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 책만큼은 서평을 읽어가며 살까 말까, 볼까 말까 따지지 말고 서점에 달려가서 읽어 보시라. 사족에 지나지 않는 서평은 이 책의 매력을 감소시킬지도 모르니.
아, 시집에는 작가들의 약력이 조금씩 소개가 되어있는데 이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앤 섹스턴의 약력을 읽고 나면 많은 여성들이 위안을 얻게 되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아빠// (중략)/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전 둘을 죽인 셈이에요./ 자기가 아빠라고 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아니, 사실은 칠년만이지만요./ 아빠, 이젠 누우셔도 돼요.//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제 끝났어.아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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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도 서른을 넘어버린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아이 둘과 씨름하다보면 집 밖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조그만 TV 속 뉴스만으로 대충 넘겨볼 따름이다.
<남자들은 모른다="">란 제목 아래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 문학의 주소를 짚어보고자 하는 시집.
책을 읽으며 간혹 낯익은 목소리도 눈에 띄는 시들에서 나를, 나의 언니를, 나의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김상미 시인의 "아줌마"란 시는 많은 공감대를 자아냈다.
일상 생활에서는 바늘 끝 하나 안 들어 갈 것같은, 감정 표현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아줌마(엄마)들이 아침에 TV에 방영되는 여러 멜로 드라마 앞에서 눈물, 콧물 다 찍어내며 연기자의 아픔을 같이 하는 모습 - 우리 엄마가 그랬고, 나도 어쩌면 그 대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년 전 딸아이를 낳던 날이 생각난다.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교과서적인 문구가 그렇게 생생하고 진하게 와 닿은 적은 없을 것이다. 더불어 "딸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난 속으로 " 너도 나중에 이렇게 위대한 경험을 하겠구나."생각하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향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자들은 모른다=""> - 여성 만이 가지는 이 위대한 경험 앞에 남자들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말지어다. [인상깊은구절] 아줌마들은 너무 오래 부엌에만 갇혀 있었다 행복한 식탁에 사슬로 매달려 있는 수저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그 속에서 개성을 잃었다 마음은 마음이 제집인데 아줌마들의 마음은 가족이란 밀집체 속에 너무 깊이 스며 있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얼굴이 아줌마들에겐 없다 - 아줌마 - 중에서남자들은>남자들은> |
| 요즘에는 여자를 모르면 안 된다. 그 반대로 남자를 몰라도 안 된다. 대학을 다니다보면 좋은 점이 있는데, 고등학교 때에는 배우지 않는 여성학이라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필수 과목이라 생각하는데, 그 강좌를 들으면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 강의는 여성을 이분법적인 담론으로 말하지 않고 권력과 정치와 문화 전반에 걸쳐서 평등한 주체로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나도 여성학이라는 과목을 대학때 들었다. 그때 나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랐던 것은 그 강의의 주체가 모두 여자라는 점이었다. 교수도, 학생도 모두 말이다. 간혹 남자들이 듣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고는 역시 남자라는 인상을 줄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 책을 전하는 주체와 내용의 주체도 모두 여성들이라는 점에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 남자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왜 여성들이 그렇게 평등을 이야기하는지, 왜 남자들은 모른다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여성문학은 소수문학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없다거나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소수문학이지만 세상을 전복시킬 힘을 가진 문학이 바로 여성문학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모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부엌에 있는 엄마의 목덜미에서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도, 남녀관계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모성이, 여성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세와 모성은 여성은 많이 닮아있다. 시와 그 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이해되지 않아도 좋다. 여자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그리고 왜 여기에 실려 있는 여자들의 시들이 충격으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보라. 물론, 여기에 실려 있는 시들은 강하다. 내용도 강하고 목소리도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조금 먹히는 그런 것은 아닐까? |
| 최근 여성주의 시인이며 여성주의 문학 비평가인 김승희가 44편의 여성주의 시들을 골라 해설과 함께 책을 엮었다. 김승희의 이러한 시도는 여성주의 시들을 분류함으로써 주류 남성문학에 대응하는 여성문학의 계보를 밝히려는 것으로 읽혀진다. 여기에서 여성성(Femininity)은 여성주의 시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질로 꼽힌다. 김승희는 현대적 여성시의 출발은 '여성적 주체(Female Subject)에서 여성주의적 주체(Feminist Subject) 로의 인식의 전환'에 있으며 이러한 '주체'의 차이가 여성적 문학과 여성주의적 문학의 차이를 생성해 낸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가부장제와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억압과 반항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남성주의 사회의 룰들이 깊숙히 각인된 자아와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는 또다른 자아 속에서 부유하고 혼돈된, 분열적 여성 존재들을 노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시는 시인에게 자신의 자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며, 시인은 시라는 거울을 통해 의식속에서 억압되고 추방되었던 자신의 욕망을 확인함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치유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한번 의식된 자신의 자아와 욕망을 다시 무의식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시는 다시금 자아들의 투쟁의 장이 된다. 幻身의 고백 - 김소연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훈대로, 법도대로, 그 밖의 일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마침 그대의 붉은 살구꽃 핀 담 안 을 엿보게 되자, 저는 스스로 碧海의 구슬을 드렸으며, 꽃 안에서 한 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휘장 속에서 거듭 만날 때는 정이 백년을 넘쳤습니다 .....(중략) 나는 음미한다 내 몫의 허공, 내 앞의 헛 것, 내 안의 무용지물들 또한 나는 식별하리, 이상한 기류들을 생분해하는 나와 나 아닌 것 .....(중략) 오른쪽 가슴을 태워 없앤 아마존 아가씨 저만치 서 있었다 나를 향해 그리곤 힘껏 활줄을 당겼다. .....(중략) 활줄을 당겨 내 눈을 꿰뚫은 아마존 아가씨가 내 앞으로 걸어와선 "당신, 귀를 잘라." 나는 이제 제대로 된 과녁입니다 화살이란 화살 전부 내게 와 나의 幻身에 꽂혀주시기를 이 시에서 김소연은 유교적 덕목을 갖춘 수동적 자아와 아마조네스적인 공격적 자아 사이의 분열적 드라마를 통해 자아를 투쟁의 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 과정은 시인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의식의 상승에 의해 이루어진다. 김승희는 이 책에서 말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성시에는 왜 이렇게 광기와 타나토스가 많은 것일까?" 그 이유는 여성 시인들이 자신들에게 씌워진 금기들을 위반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의식의 분열과 고통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몇년동안 한국문학을 가르친 사람 답게 김승희는 시의 해설에서 여러 서구 포스트 모던 학자와 페미니스트들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특히 크리스테바와 엘렌 식수스, 이리가라이등 정신분석학과 기호학, 언어학을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학자들의 말을 자주 원용하는데, 이는 시의 이해에 길잡이가 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여성문학을 분석하는데 기준과 개념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 문학 비평가들의 부재가 절실히 느껴진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여성주의 시들을 위한 괜찮은 길잡이이며, 여성 문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들에게도 자연스레 여성주의 문학의 특질을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주류 남성문학이 문단을 휘어잡고 있고, 보수/진보의 대립이 정치판만큼이나 격심한 한국문단에 정치적으로 예민한 촉수를 지닌 여성주의 문학가들이 더 많이 생산되길 꿈꾸며, 주류 문학에 대응할 수 있는 여성주의 문학 계보찾기 역시 계속되길 바란다. |
| 예스24에서 배달되어진 책들을 보더니 남편이 말한다. 요새는 여성에 대한 책이랑 요리에 대한 책만 사네...하고. 언제부터일까 자꾸 여성에 대한 책을 사 읽기 시작했다. 대학때 여성학강의를 듣고(교양수업이었지만), 남자들이 '여자는..'뭐 어쩌구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곤 하는 나지만... 금방 리뷰제목을 쓰다가 깜짝 놀랐다. '여성들의 반기'라고 쓰려 했다. 얼마전 종가제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에 대한 신문기사 부제 중 '여성들의 반란'이라는 표현을 보고 흥분했던 것이 얼마되지 않았는데...'반란은 무슨 반란 당연한 권리 찾기'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무심코 여성 비하(?)는 튀어나오나부다. 이 시집은 국내외의 여러 여성시인들이 여성의 입장에 쓴 시들을 묶은 책이다. 시들을 읽다보면 표현이 너무 과격해서 깜짝놀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모른다'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10-20년전에 쓰여진 것들로 최근에 쓰여진 시는 거의 없다. 그런걸보니 현대에 와서 여성들의 '투쟁성^^'이 너무 약해졌나 싶다. 남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사회는 여성상위시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근본적인 평등은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