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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십이지와 종이는 돌궐족이 만든겁니다.(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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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등을 세는 단위인 '다스'는 통념상 12개를 가리킨다. 하지만 [악마와 마녀의 사전]에서 한 다스는 물건 '13개'를 한 꾸러미로 하는 단위로 설명된다. 저자가 취재차 만난 러시아의 <마법사 집회>에서 겪은 이 에피소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동시통역사로 일하며 세계 곳곳을 경험한 저자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통념'이란 없으며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통역이라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말을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말이 가진 '의미'와 미묘한 뉘앙스까지 다른 언어에서 찾아내 전달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두 언어 사용자가 가진 의식과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루어지는 통역은은 그 말이 가진 의미를 100% 전달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번역기 돌린' 통역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번역에 앞서 상대의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려 노력해왔고. 세상에서 말로 인해 만들어지는 모든 오해와 분쟁이, 상대와의 차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음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이야기 한다. 나에게는 한 다스가 12개이지만 마녀들에게는 13개인 것을 잊지 말자.
본문 중 최근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구절이 있었다.
"국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쟁으로 몰고 가거나,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강제 동원하기에는 이 마녀사냥이라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전체주의에서 마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획일적인 방향으로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이나 사상,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을 다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오래가지 않으며 결국은 참담한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 후유증은 이후에도 그 사회와 구성원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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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http://blog.yes24.com/document/12508807) 다음으로 이 책 <마녀의 한 다스>를 읽어본다. 재미있는 책인데, 여러 다른 책들과 같이 읽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요네하라 마리의 독설과 유머,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녹아있다. '마녀'라고 하면 '마녀사냥'이 떠오른다.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 뿐만 아니라 요즘 언론을 통한 마녀사냥까지. 이 책에서는 그런 '마녀'의 범위를 문화의 다양성까지 넓혀 생각한다. 즉, 한 집단에서는 상식이 다른 집단에서는 엉뚱한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때문에 소수의 집단이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내 상식이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 가능하다고 쉽게 착각하지 말자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요네하라 마리는 말하고 있다. COVID-19 이후 유럽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미국에서는 인종차별로 인한 시위 및 약탈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몇년 전에 난민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한참 불거졌었다. 강자 또는 다수가 약자, 소수를 억압, 음식 문화에 대한 조롱 등 아직도 마녀사냥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 그리고 그 여유를 통해 다양한 민족과 좀 더 원활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인드를 갖을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하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요네하라 마리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더 다음 책이 기다려지고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작가가 더 아쉬워진다. 어느 문화인류학 국제회의에서 아담과 이브의 국적에 대해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어느 나라 학자건 자기 나라 사람이길 바랐나 보다. 기독교 문명권이 아닌 곳에서 온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바람이 그네들 마음속 깊이 있다 보니 논의도 뜨거워졌다. 우선 영국인 왈, "에덴동산은 우리 영국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소”라고 했다. 그 뜻인즉, “영국은 신사의 나라요. 사과가 하나밖에 없을 때, 당연히 여성에게 양보하는 것이 젠틀맨십이죠. 아담은 영국 신사였을 거요." 이에 프랑스 학자도 “아니오, 두 사람은 프랑스인이 틀림없소”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겨우 사과 하나로 남자에게 몸을 맡길 여자는 프랑스인 외에는 생각할 수 없거든"이라며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발언을 내놓는다. 이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소련 학자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자신만만하게 내뱉었다. "논의를 이제 끝내죠. 아담과 이브는 우리 동포가 틀림없어요. 입을 것도 변변치 않아 거의 알몸으로 살고 있고 먹을 거라곤 사과 하나 정도 밖에 없는데, 거기를 낙원이라고 믿게 하다니 소련 외에 다른 곳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에 세계 각국의 쟁쟁한 학자 선생들도 꽤나 납득이갔는지 달리 반론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pp.27-28) 노력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분야에서는 이상형을 취하고, 용모나 나이 등 노력의 여지가 없는 분야에서는 쓸데없이 이상형을 품지 말 것. 이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p.146) "이라크에서 산 적이 있었죠.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초대받은 이라크 손님이 어쩌다 비싼 접시를 깨뜨렸다고쳐요. 그럼 그 손님은 절대로 미안하단 소리를 안 해요. 대신 '마레쉬, 즉 신경 쓸 거 없어'라고 태평한 얼굴로 말하죠. 일본인 집주인은 화가 나겠죠. 누가 할 소리를 대신하는 거냐고 말이죠. 이슬람 문화권에 가면 무슬림이나 이슬람 문화에 반발심이 생겨 갑자기 이네들이 싫어지게 된다는 사람들이 꽤 많죠. 하지만 그건 발상법이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깨진 접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접시를 본인이 깨뜨렸다면 얼마나 후회스럽고 자책에 괴로울까. 그런데 신은 그 접시를 깨는 불행을 내가 대신하도록 했다. 그러니 신경쓸 것 없으며,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거죠. 이 논리에 납득, 아니 적어도 익숙해지기란 어려울지 몰라요. 그런데 이런 발상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재미있지 않아요?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소중히 여기는 접시를 남이 깼는데도 '아, 내가 깨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고, 깬 쪽은 깬 대로 '아, 상대방의 불행을 내가 대신해주었다'라고 생각하죠. 서로가 좋게 좋게 생각하는 거죠." (pp.302-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