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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로 그의 책을 대부분 다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꽤 오래 전 책이었고, 내가 놓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이미 계시지 않는 작가, 더 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글이었는데, 새롭게 만난 것처럼.
책은 얇았고 내용은 낯설지 않았다. 반가웠다. 여전하신 분이구나, 여전한 글이구나, 한결같은 삶이었구나, 한결같은 작가셨구나. 그리고 끝내 섭섭했다. 있는 책 다시 읽을 일밖에는 없구나, 기억이 전부이구나.
책 속에는 흑백 사진이 꽤 실려 있다. 작가의 사진을 이렇게 모아 놓은 책은 처음 본 듯하다. 백발에 인자하면서도 올곧은 인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얼굴.
그리움은 여전히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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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의 현학적인 글로 독자의 시선을 확 끄는 것도 아니고, 읽고난 뒤 내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의 관념성을 지닌 것도 아니지만(이인성이나 허윤석의 글들과 비교해 상대적인 의미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붙잡는 게 이청준 선생의 소설이다.
오랫만에 소설 '눈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련하게 그리움이 밀려 왔다. 선생의 글들을 다시 한번 읽고 싶었다.
'당신들의 천국'이나 '병신과 머저리' '소리의 빛' '매잡이' 등 이십여 년 전 선생의 글들을 읽을 때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던 글과는 달리, 편안한 글들이어서 정말 섭섭이 할머니의 '야윈젖가슴'을 더듬어 내리듯 그립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 독서 체험에서 얻어낸 "성자의 두 모습"(P36-39)이나 "따뜻한 마음의 길"(p 150-153) 등에서 세상을 오래 산 이의 달관의 눈이 느껴지고 잡다한 일들에 얽매이지 않는 혜안도 느껴진다. 좀 더 너그러워진도 하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에서 오는 글들이 자신의 성찰을 통해 잔잔하게 전해지는 것이지, 독자에게 세상사란 그런거야라고 훈계하고 있지 않아 더 가슴 애잔하게 닿는다.
독서를 통해 할머니의 쪼그라진 젖가슴을 그리워하듯 나는 보잘 것 없고 볼품없지만 나를 키워준던 나를 사랑해주던 아련한 과거와, 내 어릴 적 꿈(언제나 책을 읽고 그 감동을 일용할 양식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리라던)이 지금도 퇴색하지 않은 채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한 해를 접고 또 한 해를 열며 모처럼 가슴이 훈훈해진 책읽기였다. [인상깊은구절] "수평선 단상 -넓어지려면 단순해질 일이다"(106쪽) "낚시터에서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물 가운데로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내가 나를 버릴 수 있음을, 내가 아픔없이 나를 작별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10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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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윈 젖가슴, 책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한권의 산문집이다. 이청준씨라면 '당신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작가이고, 그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읽고나서 마음에 훈훈함이 남았던 책 다운 책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청준씨가 낸 산문집. 작가의 이름 하나 믿고 덜컥 책을 읽었다. 솔직히 많이 어렵다. 보통 산문집이라면 작가의 일상을 담거나, 수채화적인 성향을 많이 띠지만 이 책만큼은 예외다. 하긴 이청준씨가 그런 식의 산문집이라면 좀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이 산문집은 세계적이라고 할까? 한 구절 한구절 시간이 필요하다. 그 문장에서 이청준씨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캐야 하는 다소 어려운 작업이 있었기에 그 작업만큼이나 읽고 났을 때는 약간 어리둥절함 속에 자부심을 가질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책은 사진집에서나 볼만한 인상적인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문학에 대한 가르침도 있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소설 읽기가 더욱 재미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여 나는 그 이후부터 집안에 있는 소설책을 모두 찾아 읽었다. 지금 대강 기억나는 것으로는 예의'순애보'이외에 김말봉의 '밀림''찔레꽃' 박종하의 '다정불심' 따위 대중 연애 소설과,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배따라기' 빅토르 위고의 ' 레 미제라블' (당시의 책제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같은 본격 번역 소설에 이르기까지 집 안에 있는 책 목록은 모두 섭렵한 셈이었다. |
| 이청준의 야윈 젖가슴은 '삶과 문학의 이삭줍기'라는 부제가 말하듯 꽤나 자그마한 소품으로서의 산문집이다. 덩치 큰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과 삶에 관한 노작가의 자그마한 생각의 편린들을 그렁그렁 적어놓고 있다. 가슴을 쥐어뜯게 만드는 애절한 사연 같은 것이 그득하지도 않고, 직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마냥 순발력 있는 재치 덩어리의 글들인 것도 아니지만, 그저 읽고 있으면 야윈 젖가슴 마냥 가슴으로 스며든다. 책은 1과 2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앞 부분은 주로 한 두 권의 책을 중심으로 그 책과 연관된 이야기들이고, 뒷 부분은 세상살이의 지혜(너무 거창한지 모르겠지만)와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앞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동유의 『주영편』, 도융의 『고반여사』, 이희익의 『십우도 - 깨달음에 이르는 열 가지 시리즈』와 같은 책들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 정도를 했고, 뒷 부분을 읽으면서는 '깨어진 영혼들의 대화', '따뜻한 마음의 길'이라는 두 편의 산문에 방점을 찍었다. '깨어진 영혼들의 대화'는 밤길의 선행자가 후행자가 건네는 인사를 모티브로 하여 오늘날의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미에 적어 놓은 한 프랑스 시인인 저자의 친구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 밤길의 행인은 비록 혼자일지 모르지만, 다른 산에도 그런 독행자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의 문학은 그 외롭고 고난스런 독행자들의 존재를 서로 알려줄 수 있다. 이 밤길의 나말고도 지금 어느 산길에선가는 나와 똑같이 그의 깜깜한 길을 혼자 외롭게 더듬어 가고 있는 또 다른 수많은 독행자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겠는가. 문학은 우리 영혼간에 그런 통화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내 마음을 톡톡 건드린 또 한 편의 글인 '따뜻한 마음의 길'은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큰 눈이 내린 어느날 시내에 살고 있는 친구는 교외의 산자락 아래에 있는 친구의 집이 걱정되어 찾아간다. 그런데 찾은 친구의 집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집의 주인인 친구가 자신을 찾는 친구의 소리를 듣고는 나타나는데 집의 뒷문으로 나와서는 뺑돌아 등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친구를 향해 이 집주인인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뜰앞의 눈이 하도 고와서 차마 내가 밟고 나오기가 아깝더구만. 자네가 왔으니 자네가 먼저 저 눈을 밟고 내 집엘 들어오게 하려고 일부러 뒷문으로 길을 돌아 나왔지. 자 그러니 자네가 앞장서 이 눈을 밟고 들어가자구." 가끔 나의 무르스름한 삶이 좀더 거칠고 단단한 것이었으면 하는 투정을 부려보고는 한다. 그리고 이 난관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되다는 돌맞아 적당한 투정 또한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놓인 시간들을 책읽기로 소일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투정한 적이 없다. 이렇게 간혹 누군가의 삶을 엿보다 어깨가 휘청, 하는 좋은 글을 만날 때, 내 투정을 무람하게 만드는 기약 없는 자유에 젖어버리는 것이 이리도 좋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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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할머니를 볼 때면 하루가 다르게 부쩍 늙어 가심을 느낀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기에 어머니보다도 손녀딸인 형님은 여느때보다도 할머니께 각별한 신경을 쓴다. 그런 형님을 볼 때면 난 어느새 돌아가신 우리 친할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서 할머니가 없으면 죽을 것만 같던 시절이 있었기에...
처음 '야윈 젖가슴'이라는 제목을 봤을 땐 별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서문을 보고서야 정말 슬프고도 아름다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이청준님의 글은 처음 읽었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향기만으로도 알 수 있듯 삶의 아름답고 따스함이 베어나는 글이다. 사실, 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 이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뭐라 말해야 할지...
모진 세월에 졸라 붙은 야윈 젖가슴의 섭섭이 할머니는 어쩜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딱딱한 음식은 이가 약해지고 또 많이 빠져서 씹을 수가 없으셔서 부드러운 음식만 드시는데도 소화가 잘 안돼 소화제를 달고 사시는 할머니의 소화기관.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셔서 파스를 늘상 붙이고 다니시지만 아직도 일을 하시는 할머니의 다리.(이번 설에도 손주들의 세배 돈은 손수 챙기셨다.) 이렇듯 우리 할머니의 졸라 붙은 건 야윈 젖가슴만이 아닐 것이다.
삶이란 무엇일까?
또,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인상깊은구절] "낚시터에서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물 가운데로 멀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내가 나를 버릴 수 있음을, 내가 아픔 없이 나를 작별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
| 책을 읽으면서 가장 두드러기게 느낀 점은 바로 평생의 독서. 책에도 나오겠지만 작가의 독서력을 과히 엄청나다.. 살아갈 날의 가치를 높이는 데 노력해야 할 시간들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독서가 아닐까 한다. 독서와 사고의 넓이는 서로 비례하듯이 아직까지는 모자른 부분이 많은 내 자신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또, 작가는 독서에서 얻은 지식과 감정들을 현대사회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바로 현실사회에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의 책이라는 것이다. 각박한 현실세계의 삭막함. 서울의 정글화. 냉정하고 개인적인 세상살이. 위 글들이 바로 작가가 현대사회를 바라본 모습들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불을 꺼주는 단비처럼 이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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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청준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작가소개에 나와 있는 서편제를 쓴 사람이라는 글과 그리고 야윈젖가슴이라는 제목에 관한 이야기에 감동을 먹은 나는 책 내용이 궁금했다. 제목에서처럼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메마른 나의 가슴에 단비처럼 감동의 눈물을 적셔주리라.
갱지(재생지)로 편집된 편안한 느낌의 책,,, 표지의 그림이 뭘까를 카트에 넣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황지우씨의 사진이라니... 카리브해안이란다... 책에는 황지우가 찍은 작가의 사진이 군데군데 실려 있고 작가의 글들은 나를 역시나 감동과 생각의 길로 안내한다. 사람과 사람간에 사는 서로 나누는 맘과 주고받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 즐기고 하는 것들은 아마도 맘의 여유가 있을 때만이 가능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누리는 것지 표현하는 건지 그것이 그리도 고마운 것인지도 모를 때는 이 책을 보면서 잊었던 그 여유를 되찾는 것도 행복할 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느 해 겨울 새벽 그가 잠을 깨어 보니 밤새 창 밖에 눈이 하얗게 내려 쌓여 있었다. 그는 그 눈을 보자 서울 교외의 산자락 아래 들어박혀 살고 있는 한 벗의 집이 떠올라서 곧바로 그 친구네로 차를 달려갔다. 교외길 주변은 온통 눈 세상을 이루고 있었고, 친구네 또한 그 애애한 아침 눈빛속에 아직 고즈넉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집안의 친구는 그가 불러도 한동안 아무 기척도 없었다. 이 친구가 어디 출타중인가? 그가 몇 차례 더 기척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뜻밖에 등뒤에서 벗의 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야." 위인은 벗이 찾아온 소리를 듣고 뒷문으로 집을 돌아 등뒤로 나타난 것이었다. "뜰앞의 눈이 하도 고와서 차마 내가 밟고 나오기가 아깝더구만. 자네가 왔으니 자네가 먼저 저 눈을 밟고 내 집엘 들어오게 하려고 일부러 뒷문으로 길을 돌아 나왔지. 자 그러니 자네가 앞장서 이 눈을 밟고 들어가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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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설은 읽고 나면 보람은 있지만 읽는 도중에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기 때문에 안 읽게 된지 오래다. 그런 그가 이번에 오랜 만에 수필집을 냈다니 내심 '이번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건조한 소설보다는 그래도 좀더 잘 읽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책표지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작품보다 훨씬 부드러워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냉철함이랄까 깊이랄까 하는 것들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가 1과 2로 나뉘는데 1에 있는 글은 좀 건조한, 말 그대로 이청준 글의 특성이 베어나오는 작품이고 2는 좀더 그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2에 있는 글들이 마음에 드는데, 부드러운 이청준의 글을 읽고 한결 마음이 푸근해졌다. 지조를 잃지 않고 이런 수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몇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그리고 서당에서 배운 책이고 학교시절에 읽은 책이고 지금은 거의 그 내용을 기억할 수조차 없다. 설혹 그것들을 다 이해하여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들, 그리고 그 시절 '사서삼경'이나 어떤 고급한 선지식을 읽었다 한들, 지금의 나에겐 그 고지식한 글방 선생님이나 국어 선생님의 나이를 넘어선 글읽기와 삶의 모습보다 더 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책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그분들의 평생 글읽기는 바로 그분들의 삶이자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뒤늦은 깨달음, 책읽기를 통한 끊임없는 자기 창조의 기쁨이 함께 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