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한두 해 전이던가, <옥탑방 고양이="">이라는 TV 드라마가 인기를 모았었다. 그러나 한국에 있을 때에도 TV 드라마와는 담쌓고 지냈으니, 당시 뉴질랜드의 새내기 이민자였던 내가 그 드라마를 보았을 리가 없다. 당연히 나는 그 드라마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며칠 전에 황인숙 시인의 산문집 <인숙만필>을 읽고 있노라니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자꾸 떠올랐다. 이 책의 몇몇 글에 의할 것 같으며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바로 옥탑방이며, 그녀의 등단 작품은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는 제목의 시였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가 혹시 황인숙의 작품이거나, 아니면 지금까지도 독신으로 살고 있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서 제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확인해 보니, 원작자도 다르고 내용도 '현실에서 꿈을 찾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다. 다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숙만필>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여전히 '옥탑방 고양이'를 떠올 린다. 서울의 남산 가까운 동네의 한 옥탑방에 혼자 살면서 오롯하게 즐기고 있는 '은자의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그녀의 산문집에서 읽은 탓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황인숙은, 그녀가 이십대에 쓴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는 시에서 열렬히 희망했던 것처럼, '툇마루에서 졸지 않'고 '사기 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고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한 마리 고양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숙만필>은 그 '옥탑방 고양이'가 들려주는 매우 유쾌한, 그러면서도 자주 가슴을 서늘 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산문집이다. 2. <인숙만필>이라는 책의 제목은 김만중의 <서포만필>에서 따온 것인데, 만필(漫筆)이라는 글자 뜻 그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쓴, 우스꽝스러운 글'들을 묶은 것이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황인숙은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김만중의 '만필'에 겸손의 뜻이 배어 있는 것처럼, 황인숙의 이 고백에도 역시 겸손이 배어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우스꽝스러운 글'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숙만필>을 읽으면서 나는 많이 웃었는데, 그것은 글이 우스꽝스러워서가 아 니라 글에서 만나게 되는 황인숙의 솔직하고도 엉뚱한 면모 때문이었다. 나의 입에서 터져나온 웃음은 고양이의 발걸음처럼 가볍고 유쾌한, 그리고 그녀의 기발함에 찬탄하는 마음이 반쯤 섞여 있는 그런 웃음이었다. 예컨대 다음의 글들에서 그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열 가지 중 하나는 휴대폰을 장만하지 않은 것이다. 나머지 아홉 가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들 예정이다. (25쪽, '농담') 내 수첩에는 '1. 파워 2. 기다림(모래시계가 없어질 때까지) 3. 시작 누름 4. 한글 97 누름 5. 끌 때는 오른쪽 끝 X를 누른다. 그 다음 시스템 종료 누르기'가 있다. (38쪽, '수첩에 관 해 이야기하고 싶은 세 가지') 2년만에 체중계는 마치 내가 네 살 난 어린애를 업고 올라서기라도 한 듯 낯선 숫자를 보 여주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울적한 가장 큰 이유였다. 어찌나 울적한 지 이 울적함의 무게만도 5킬로그램은 더 나가는 것 같다. (32쪽, '성 발렌타인 데이의 문상') 이제 나도 어른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내가 이미 어른인 걸 깜빡 잊고 모 르는 사람 중 내 또래를 만나면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가, 아, 나도 꿀릴 거 없는 나이지, 힘을 낸다. (96쪽, '깊어가는 가을') 아직껏 휴대폰이 없고 컴퓨터도 다룰 줄 몰라 원고지에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옛인류' 중 의 한 사람인 황인숙의 이 솔직함과 엉뚱함은, 자신이 나라 국(國)도 쓸 줄 모르는 한자맹임을 고백하고 있는 글 '한자 오디세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여기에 자기 이름자인 맑을 숙(淑)을 엉뚱하게 조합해서 쓰는 바람에 망신을 당한 일화는 가히 압권이다. 그러고도 그녀는 "커밍아웃이란 때로 좋은 것이다. 이렇게 내놓고 한자맹임을 밝히니 세상 두려울 게 하나 줄었다"고 오히려 당당하다. 숨길 것도, 주저할 것도 없는 이 당당함이야말로 황인숙의 글들이 재미있게 읽히는 힘인 데, 이 책의 발문을 쓴 고종석은 이를 '기품'이라고 달리 말하고 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마음 내키는 데로 쓴' 글들인데도 아줌마의 수다에서 흔히 느껴지는 경박함이나 저자거리의 잡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천박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녀가 지니고 있는 이 기품에서 연유하는 것이리라. 기품 있는 그녀의 글은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 밥과도 다르고, 씹지도 않고 후루룩 마시는 국수와도 다르다. 소화하기 어려운 난해하고 관념적인 에세이도 아니고 아무 생각할 것도 없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그런 잡문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인숙만필>의 글들은 황인숙이 몹시도 좋아하는 냉면과 너무나 닮아 있다. 가느다란 면발을 씹지 않고 후루룩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함께 넣은 오이ㆍ무채와 편육과 곁들여 먹을 때는 꼭꼭 씹지 않으면 안 되는 냉면처럼 이 책의 많은 글 역시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 제 맛이란 바로 겨자와 식초의 맛이다. 그녀의 글에는 혀가 얼얼할 정도로 톡 쏘는 겨 자의 맛처럼 아프게 세상을 꼬집는 비판도 보이고, 잘 익은 사과일수록 단맛보다 신맛이 더 깊고 그윽하게 느껴지듯이 깊게 숙성된 철학도 담겨 있다. 예컨대 다음의 글들에서 우리는 웃음을 그치고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며칠 전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다 보니 여기저기 신문지를 깔고 덮 고 누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밤도 머리가 딩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왜 노숙자들에게 슬리핑백이라도 나눠주지 않는 것일까? 봄이 지나면 도로 거둬들여 세탁해서 보관했다가 추워질 때 다시 주면 되니까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 거 같지 않은데. 이렇게 겨울이 추운 나라에서 사람을 신문지에 싸서 시멘트 바닥에 버려두다니. 그들에게 '죽어, 얼어, 부활할 거야'라고 농담이라도 건네는 건가? 그들더러 어쩌란 말인가! 한뎃잠이라도 잠은 자야 될 거 아닌가? 불운한 사람들의 유일한 도피처인 잠조차 최소한도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독한가? 우리는 악독한 추위처럼 독하다. 그런 거 같다. '우리'라고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만은 아닌 것 같다. 죄 없이 벌받는 사람이 많은 겨울이다. 죄 많은 겨울이다. (174쪽, '겨울바람') 웃음이 헤픈 건 좋다. 울음이 헤픈 건 화가 치민다. 미감이 상한다. 내 성질이 이상한 건 가? 울음은, 눈물은,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상비약처럼 아껴둬야 한다. 정말 그것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순도와 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돼버려서는 안될 눈물을 위해서. (15쪽, '쓰달픈 인생') 3. 하지만 무엇보다도 황인숙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가 가장 많이 멈춰 서서 가 만히 눈감고 귀기울여 본 곳 역시 바로 그렇게 한 편의 시를 불러낸 문장들 앞에서였다. 유쾌하게 웃느라 활짝 펴졌던 미간이, 얼얼하고 시큼한 냉면의 맛에 찔끔 찔려서 굳어진 마음이, 이 아름다운 문장들 앞에서 다시 단정해지고 부드럽게 풀리곤 했다. 오랜 외출을 끝내고 모처럼 집에 돌아와 따스한 난롯가에 웅크리고 얕은 잠이 든 고양이처럼 말이다. 밤이 사뭇 깊어졌다. 귀뚜라미가 울어대서만도 아니고, 바람이 소슬해져서만도 아니고, 뭐랄까, 한 해 중 이맘때면 지구의 기울기가 밤 쪽으로 사뭇 기울어지기 때문인 듯 싶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밤을 바다라 치면 이맘때가 밀물 드는 때라는 것이다. 가을, 밤이 만조가 되는 계절. (161쪽, '가을밤 바람이 분다') 높고 맑은 소리로 바람이 분다, 담요를 끌어덮고 누워 바람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듣는 바람소리는 막막히, 자꾸 잠으로 굴러 떨어지게 한다. 그렇게 해서 나무들은 혼곤한 잠으로 이 겨울을 나는 것이다. 겨울바람은 겨울나무를 위한 자장가. (180쪽, '겨울나무를 위한 자장가') 이렇게 58년 개띠 '옥탑방 고양이'가 야옹야옹거리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취해 3월의 열흘 을 보냈다. 가볍고 경쾌하게 그러나 경박하지 않고 천박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었다. 그리고 나 역시 한 마리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야옹. 인숙만필>인숙만필>서포만필>인숙만필>인숙만필>인숙만필>옥탑방>옥탑방>인숙만필>옥탑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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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름을 이렇게 '나를 웃긴 외로움'이라고 달아도 되는지, 많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른 이 말이 맘에 든다. 읽는이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읽으면서 참, 많이 웃고 울었다. 나도 모르게 외로워서 웃고, 나도 모르게 외로워서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웃음이 더 컸다. 친구들에게 웃음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읽어 봐, 라고 권하고 있다. 일상의 소소함(자질구레함)이 즐겁고, 유쾌한 것이구나! 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톡톡 튀는 감각적인 말들이 황인숙 시인의 매력이지만 <<인숙만필>>을 읽어 보시라. 그 매력에 빠지게 될 터이다. "유쾌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세상의 심각한 일들이 이해될리 없다.-처질"이 첫 장에 펼쳐지는데, 나는 솔직히 세상의 심각한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황인숙 시인의 유쾌함을 이해할 듯하다^^* 즐거운 책읽기가 되길 바라며..... [인상깊은구절] 여름에 나는 깜빡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인숙만필> |
| 같은 제목 아래 한 데 묶여져 있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처럼, 그녀의 생각은 여기저기를,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가기도 하고, 벌처럼 왱 쏘다니기도 한다. 그녀는 그만큼 자유롭다. 그 자유를 즐길 줄도 안다. 그런 그녀가 여기와 저기를 넘나들며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분명,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에세이라는 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왠지 이 책을 선뜻 고를 때에는 별다른 주저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주저하지 않고 손에 집어들게 한 것을 배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책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었다. 다만, 책의 말미에, 사족을 넘어 오히려 황인숙의 글을 망치는 듯한 느낌의 발문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분명 황인숙에게는 그녀의 친구들이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진대, 왜 그런 면을 굳이 그렇게나 부각시키려 했을까, 싶다. 과연 그녀가 살아가고 삶에 대처하는 모습이 그저 아씨나 사슴의 모습일까? 어쩜 책 한 권, 시집 몇 권을 통해 그녀의 한 면만을 보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녀가 사슴이 아닐 것 같아서 좋다. 아씨가 아닐 것 같아서 좋다. 그저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영혼을 가진 그녀일 것 같아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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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끄럽다. 내가 쓴 글을 남이 읽는 다는 것이 부끄럽다. 글을 쓰다보면 어느세 어쩔수없이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 내게 된다는 것이, 온전하게 발가벗겨진 내 또다른 모습을 타인이 읽어내린다는 것이.. 내가 써낸 글의 모자람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니다. 나름의 고통과 노력을 들여 완성해 낸 글들이니까. 내 또하나의 모습이니까. 그치만 뭐랄까..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내게 어떤 종류의 수치심을 안겨준다.
내가 써 낸 글 속에는 마침표 하나에도, 쉼표 하나에도 내가 있다. 나의 자부심, 부끄러움, 자랑, 열등감까지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숨기고 싶어도 나도 모르게 드러나 있다. 그것을 누군가 읽어낸다는 것이 부끄럽다. 마치 동화속 벌거숭이 임금님이 된 느낌이랄까. 알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버젓이 군중속으로의 행진을 멈출 수 없었던 그 어리석은 임금처럼..
그래서 그런지, 가장 부러운 것이 글쟁이들이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며 나름의 멋을 더해가는 여류작가들. 내눈에 그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임에 부끄러움을 잊었고 글 속에서 그 누구보다 당당하다. <인숙만필>의 황인숙 시인도 그렇다. 그녀의 글은 담백하다. 글속에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미사여구로 점철된 비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정제되어 가늘어진 말라깽이도 아니고 딱 좋은 표준이었다. 표준도 그냥 표준이 아닌, 위트와 센스로 무장한 심심하지 않은 표준. 그래서 그녀의 글은 편하다. 심심하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웃음도 흘리게 된다.
독신에 사십대에 접어드는 여성으로서 하루하루 일상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감추는거 없이 '황인숙'스럽게 드러낸 글들 속에서 이 여자는, 시인은, 작가는 당당하게 스스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뚜렷한 주제는 없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같은건 더더욱 없다. 나이듦이나, 독신녀로서 사랑에 대해서나, 어느날 조카와 슈렉을 보며 떠오른 생각들이나, 어느날 산책을 나갔다가 발견한 멋진 교회에 대해서와 같이 하루하루 스쳐지나가는 일들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 수다속에는 위풍당당한 그녀, 황인숙이 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이 부러웠다. 글속에서 조차 나를 숨기지 못해 남앞에 내가 쓴 글조차 내밀기를 꺼려하는 내 모습과는 다른, 솔직한 여자, 시인, 작가. 그녀가 부럽다.
** 이 책은 YES24 리뷰어 클럽에서 책을 사랑하는 리뷰어의 한사람으로서 몸소 책나눔을 실천하시는 "woojukaki"님께 받은 책이다. 이 책을 받은 지가 거의 한달이 다 된거 같은데 이제야 리뷰를 썼다. 책을 받을 때는 리뷰로 보답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나 늦어지고 말았다. 변명이라도 덧붙이자면 그동안 책욕심에 여기저기서 책을 받아놓고 급한것 부터 처리(?)하느라 미뤄두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되신다면 말씀드리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늦었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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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글은 피천득,법정,박완서...그런 분들의 글과 뭔가 다르다.
그 뭔가 다르다는 것이 참 오묘한게, 절대로 문학 하는 사람 같지 않은 은근한 희안한 무엇인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각 작가들을 생각해 보면, 피천득은 수필의 백미를 보여주는 듯 싶고, 법정은 자연, 박완서는 인생이라는 단어가 딱,하고 떠오른다.
황인숙의 산문집은 '목소리 무늬'부터 먼저 읽었는데, 첫 느낌이..참 웃긴다,였다. 작가한테는 죄송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짠~ 하거나 그런 느낌없이..중간 중간 많이 히힛,하며 웃으며 읽었던 것 같다.
대신..웃으며..많이 공감하지 않았나 한다. 아마 황인숙의 글이..바로 나의 일상과 내 이웃의 생활과 너무 밀접해 있기 때문이리라. 감동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나의 잔잔한 일상에도 저런 에피소드들이, 저런 생각들이 묻어 있겠구나 생각하니까, 나도 내 인생의 작가가 될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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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만필''은 쉽게 읽히는 수필이면서도 쉬이 읽어내지 못 했던 책이다.
사물이나 주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와 연관된 생각의 가지를 따라
가다 보면 그 상상 속에 내 얘기도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물이든, 생물이든 대상을 따뜻하게 본다. 자기를 무는 개미와
공존을 모색하는가 하면, 노숙자들에게 국가차원에서 침낭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외국에 사는 그녀 언니의 수영장에 빠져죽은 스컹크의 죽음이 갈증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 그녀는 언니에게 그들이 마실물을 따로 떠놓으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녀의 가난하지만 이런 사물과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고종석의 발문에서
처럼 ''움츠려들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젠체하지 않는'' ''내면의 긍정''때문인듯 하다.
그의 표현처럼 그녀는 혹은 그녀의 글은 ''기품''있는 여자의 유며스러한 표현을 입은 따뜻한 격려이자 삶의 성찰이다. [인상깊은구절] 무언가 물고 가는 개미는 차마 죽일 수 없었다. 무언가 물고 있는 개미와 맨입의 개미는 그저 우연의 차이일 뿐인데……개미 일반에게 느끼는 것이 차가운 생명이라면, 무언가 물고가는 개미에게서는 거의 의인화된 따뜻한 생명이 느껴진다....p113 |
| 황인숙의 시를 보면 어딘지 유머스럽고 경쾌하다. 우리나라 시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여유와 유머가 시에 상쾌하게 담겨있으니 어찌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고 어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으리오. 황인숙의 '인숙만필'은 간단하게 말하면 신변잡기이다.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소소하고 오락가락하고 하나의 제목 안에서 그 짧은 분량의 글에서도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아슬아슬할 지경이다. 황인숙의 수필을 많은 기대를 안고 사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쯤은, 아주 조금쯤은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읽다가 점점 아무 느낌이 없어졌다가 또 갑자기 재미없다고 퍼뜩 느끼게 되는... 그런 기분이 반복이어서 나도 모르게 내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는...이상한 변덕이 들끓게 했던 수필집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의 내 기본적인 기분에 좌우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때 기분이 재미없어서 책이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기분이 가벼울 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 될 것 같은 그런 수필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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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북유럽이 아니지만 낮에 나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한 주일 동안 햇빛 속에 나가 있어야만 하는 일이 기대된다. 그 시간에 돌아갈 곳도 없이 하염없이 햇빛 속을 떠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희열이 느껴진다. 발이 부르트도록 쏘다녀야지. 아픙로 한 주일 동안은 어떤 꽃도 나 모르게 피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어떤 바람도 나 모르게 불지 못하고 어떤 비도 나 모르게 내리지 못하고 어떤 햇빛도 나 모르게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온몸이 봄을 요구한다. 나는 제대로 봄을 맞을 것이다. 공짜인 봄을. - '봄맞이' 중에서
* 벚꽃이 다 지고 나니 라일락에 아카시아가 철쭉이 한창이다. 철쭉꽃의 그 요란하고 화려한 색을 보고 있으면 왠지 예전 아줌마들의 몸베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에 5월 덥지도 춥지도 않고 선선한 바람도 불고 나무마다 신록이 싱그럽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건 모두 공짜'라는데 이 공짜인 봄, 충분히 만끽은 하셨는지? 예전에 황인숙의 에세이 '일일일락'을 나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갔다가 문득 눈에 띄어 다시 읽게 되는 그녀의 에세이 이번엔 '인숙만필'이다. 일일일락이 아주 짧은 멘트 였다면 이번엔 그래도 수필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여전히 소소하고, 조금 궁상스럽기도 하고, 조금 우습기도 하고, 또 명랑하면서 어이없는 그녀의 시선들이 그녀의 생활들이 페이지들마다 들어차 있다. 어떤 이야기는 웃기고, 어떤 이야기는 서글프고, 어떤 이야기는 어이없고, 어떤 이야기는 슬픈 것이 마치 우리들이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모습과 별 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종종 어떤 에피소드 들은 좀 어처구니 없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너무나 천진하다고 봐주어야 할지, 대책없다고 봐주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누구나 삶을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아프지 않게 너무 힘겹지 않게 또한 너무 가볍지 않게 너무 우습지 않게 그렇게 조금씩 둥글어지며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수필을 읽다 보면 그의 일상을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런 것들이 마치 그 사람을 잘 아는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수필을 읽다 보면 그녀의 시를 읽을 때와는 달리 재밌는 노처녀로 변해가는 친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친구와 이런 저런 소소한 수다를 떤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우리들의 허름하고 궁상스런 그러나 너무나 친숙한 편안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황인숙의 <인숙만필>이었다. - 다락방서 허뭄 사진은 네이버에서 '맑은물'님의 사진 |
| 인터넷세상은 사람들의 노출증과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없던 세상은 어땠나.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관계맺음의 시작은 관음증에서 시작한다고, 그 발전은 노출증에 기반한다고 보면 무리일레나. 등단한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영화감독등이 작품외에 자신의 얘기를, 생각을 에세이 형태로 발간하는 일이 잦다. 목적이 순수하지 않아보여 적극 권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어쨌건 작가는 예술적 도구를 버리고 자신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길을 찾은 것이도 하다. 독자는 편하게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글이 솔직하다는 전제하에. 이 책을 쓴 47살 먹은 전업작가 황인숙은 아직 미혼이고, 가난하며, 뚱뚱하기도해서 얼마 전부터 헬스장에 다니고 있단다. 작가 답지 않게 사행성 짙은 오락거리에 흥미를 느끼며, 소심하지만 오지랖은 넓어 문단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활동중이란다. 이 책의 발문인 고종석의 ''황인숙 생각''이란 글이 좀 과하다 싶은 분들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조금쯤 저 글을 수긍하지 않을까 싶다. 글이 좋다. 글이 좋다는 건 문장이 좋다는 뜻보단 그 문장을 쓴 사람에 공감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갈수록 속내를 털어놓을 일도, 사람도 적어지는게 아쉬운 즈음에 위안받은 책이다. |
|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나날들이다. 우울의 발단은 어떤 사소한 사건이지만, 잊지 못하고 내내 마음 쓰는 내 모습에 더 우울해져서 책을 읽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편하게 읽을 요량으로 고른 책이다. 에스24의 독자서평도 좋고, 또 강력추천 도서이며, 황정민의 저서에서 인용한 시 구절이 마음에 들어 시인에 대한 호기심도 좀 있었다. 인숙만필.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서포만필"이란 남의 제목을 차용한 그 뻔뻔스러움(혹은 개그스러움)이란.. 황인숙씨의 사진도 책을 통해 처음 봤다. 분명 아줌마이건만 긴 파마머리에 손까지 얹은 모습이라니... 약간 공주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딱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서일까.. 책에 대한 첫 느낌을 그랬다. 읽으면서 느꼈다. 아! 왜 만필인지 알겠구나.. 말 그대로 작가가 쓰고 싶은대로 쓴 글이다. 굳이 누구에게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닌 듯 했다. 처음에는 시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는데, 읽다보니 그녀 역시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직 결혼을 안한 사실을 알고 나니 그녀의 삶이 더욱 이해되었다. 특히 불어나는 체중을 보면서 한숨 쉬고 안타까워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발문을 미리 읽었더라면 그녀가 쓴 글이 대한 이해가 더 빨랐을걸 싶었다. 그리고 발문을 읽고 나서야 그녀가 쓴 글들이, 그녀의 삶이 더 쉽게 이해되었다. 발문을 쓴 이는 그녀를 기품있는 여자라 표현하였다. 여자에겐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싶다. 가진 것이 없어도 기품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리고 강금실 장관처럼 올곧은 친구가 있다는 것도 부러웠고, 젠체하지 않는 것도 부러웠다. 심란한 마음에 읽은 책이라, 첨엔 삐딱하게 보였지만 읽고 나선 그녀의 많은 점이 부럽고 또 안타까웠다. 만필인 만큼 두고두고 읽을 책은 아니고, 그냥 스산한 기분이 들 때나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을 때 적당한 책이다. 저자가 책 중간중간 소개한 다른 책들과 음악을 추후에 접해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