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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학들의 리포트 짜집기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들의 논물, 전문적인 학술논물조차 짜집기하면서 마치 자기것인양 떠벌리고 있다. 자신의 깊이 없이 마치 남의 것을 자기것인양 나열하는 지식이다. 자신의 지적재산권은 악착같이 주장하면서 남의 지식은 도둑질 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효용성은 둘째로 치고도 떳떳하게 거짓말하는 것은 굉장히 역겨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 대놓고 남의 지식(코드)를 훔쳐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볼만한다. 고종석이라는 사람 저널쪽이나 많은 독서를 하기전에는 듣기 어려운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세계의 대표 보수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다. 그리고 의식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훔쳐온 지식이 어떤지 궁금하다. 40개의 다양한 주제에 관한 모색. 대부분의 다른 유명인물들의 저작들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어떻게 보면 가치중립적이라고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자신이 원하는 내용들만 가져왔기때문에 편향적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그속에 무슨 의지가 있고 욕망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좀 더 나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때론 진보의 입장에서 때론 소수의 의견에서 때로는 다수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지극히 카멜레온적이기도 하지만, 옳다는 것은 꼭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소수도 아니고 다수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서를 하면서 그의 방대한 지식량, 아니 훔쳐온 지식의 양에 놀랐고, 적재적소에 짜집기 하는 그의 실력에 감탄을 계속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의 깊은 생각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짜집기하여서 인용만 하는 그가 조금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또한 몇몇 구절, 그의 얼마안되는 그의 생각, 그의 코드가 들어있는 곳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의 유연화에서 "남자든 여자든 동시에 여러 배우자를 지닐 수 있게 되고, 남자든 여자든 동시에 여러 배우자를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사랑은 에리히 프롬이 정식화한 '소유에서 존재로의 이행'을 경험할 것이다." 이런 글귀에서 상당히 아쉬움을 느꼈다. 내가 느꼈을때는 그가 에리히 프롬의 저서를 오독을 했던지 아니면 자기 의견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껴맞춘 것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글 상당수가 종교와 연관되서 설명되었다. 특히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가 많이 등장하였다. 그 중 기독교의 창조론을 믿는 자들을 광신으로 폄하하는 것이나 기독교가 사회의 악처럼 비쳐지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과학에서도 창조론과 진화론 어느 한쪽도 과학적으로 완전하지는 않다고 한다. 한쪽은 불완전한 과학을 더 믿고, 한쪽은 보이지 않은 신을 더 믿을 뿐이다. 그가 저널리스트로서 비판을 하기 위한 대상을 찾기 위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조금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저널리스트는 사회의 잘못된 것을 꼬집을 수 있고, 사회를 좀 더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하며, 보다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사회가 곪는 것을 막기 위한 백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때론 사회가 그들의 이러한 노력에 길들여져 그들의 글이 항생제처럼 되어 또 다른 면역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결국은 어렵지만 철인 저널리스트가 되어야한다. 이루기 힘든 유토피아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리 추구자의 길이다. 많은 지적 사치에 빠졌다. 좀 더 아쉬운 것은 이 책은 단행본 보다는 신문으로 보는게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게 독자에게 더 감동을 주었을 것 같다. 그래도 읽으면 좋은 교양 백과사전같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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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사서 펼쳤을 때부터 사실 쉽게 글에 다가가기 힘들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단 어휘가 너무 어려웠다. 진보와 자유에 대한 글쓴이의 사상을 써내려간 책이다 보니 주제조차도 너무 어려웠다. 자연히 옆에는 전자사전을 놓고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글쓴이의 방대한 지식의 양에 놀라면서 처음에는 한 쪽 읽는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의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읽어나간 내용 중에서 내가 이 글에서 논하고 싶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 마리화나와 자유에 대한 글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마약류의 소지 및 흡연을 엄중히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치료 도중 고통 감소를 위한 의료 용도로 쓰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작가는 순수한 마약으로써 마리화나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자유란 도대체 어떤 모습인걸까. 작가의 말을 축약해보면 마리화나는 중독성이 없고 오히려 술, 담배 보다 흡연 시 범죄율도 낮으니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그냥 마리화나 피게 해줘라. 이런 생고집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마리화나 소지 및 흡연자들 중에는 이런 유명하고 잘난 연예인들과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라고 서술하면서 은연중에 독자들로 하여금 ‘권위의 오류’를 범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저런 유명인들이 마리화나를 한다면 마리화나의 이미지는 대번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술, 담배보다 덜 해롭고 범죄율도 낮을 뿐이지 아예 해롭지 않고 범죄율이 없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전적인 의미로 자유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본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면서 마리화나는 기분이 좋아지므로 본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일부 국가에서는 마리화나를 허용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본인의 몸을 자해하는 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언제 해도 자유라는 말과도 같다. 자식이 마약류에 절어 있는데 어떤 부모가 행복할까? 남편이 마약을 하는데, 부인을 때린 것도 아니니 몇 시간 정도 늘어져 있는 것은 상관 말라는 말과 같다. 정상 적인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그저 한 순간 기분 좋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 주변인의 마음은 어떨까? 그것이 본인이 행복하고 남에게 해 끼치지 않는 자유라면 나는 그 자유라는 놈이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라는 속담이 있다. 정도가 심한 사람이 심하지 않은 사람에게 잘못됨을 나무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나는 마리화나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겨 묻은 개는 조금 밖에 잘못 안했으니까 괜찮지 않나.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라고 생각한다. 겨 묻은 개도 분명히 잘 못된 부분이 있다. 작을 때 그것을 고쳐주지 않으면 그 개는 결국 똥묻은 개로 변질될 것이다. 작은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해 마리화나를 시작한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책의 내용대로라면 마리화나는 몸에 해가 없고 중독이 없으니 언제든 끊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꾸준히 마리화나를 피웠고, 어느 순간 마리화나가 주는 자극에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헤로인, 엑시터시 같은 더 자극적이고 중독 있는 마약에 손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나는 적어도 50%이상의 확률로 다른 종류의 마약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자연스레 다른 종류의 마약에도 손대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중독 없는 마약, 해로움이 없는 마약 대마초의 현주소다. 글이란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누가 읽을지 모른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노년의 할아버지가 읽을 수도 있고, 이제 막 본인만의 주장과 생각을 정립해가는 어린이가 읽을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읽는 이의 환경, 생각, 가지각색의 요인에 따라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만약 후자가 이 글을 접한다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글이 결론에 가까워 갈수록 나는 소름이 돋았다. 작가는 자유를 위해서는 술과 담배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마리화나에 대한 법적 제재를 풀어주는 것이 자신의 조심스러운 의견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작가는 지금 원자폭탄이 한번 떨어진 히로시마에 죽은 사람과의 형평성을 위해서 한 번 더 원폭을 투하해 나머지도 죽이자는 말과 같다. 마리화나를 음지로 몰면 암시장에서 가격이 폭등하여 밀매과 관련 범죄조직이 생긴다며 마리화나 제재시의 부작용을 밀어보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 그런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인구가 대체 몇이나 된다고, 온 국민이 마리화나 값의 폭등과 전 세계적인 시장의 흐름을 걱정하면서까지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을 합법화 시키는데 동참해야 한다는 것일까? 연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 범죄와도 관련이 있는 그 마약류인 마리화나를 말이다. 또한 작가는 마리화나를 흡연하는 사람을 범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민 행복의 총량을 줄어들게 한다며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초한 원초적인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가 마약류에 물들지 않고 앞으로 자라날 어린 아이들에게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더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복량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행복과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억압당했을 때 개인은 인생의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며 극단적으로 나아가 삶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리화나로 인한 그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면 더 큰 세상의 행복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나 긴 인생의 여정에서 마리화나로 인해 찰나의 기쁨을 맛보고 그 뒤 억겁의 세월을 허무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련 개인의 행복이 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우리 뇌 속에는 이미 엔도르핀이라는 천연 행복 물질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작가에게 철저히 반박을 하며 읽는 적도 드문 것 같다. 고종석을 인문학적으로는 존경 하지만 한 명의 독자로서,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한 주장을 강요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나마 글로 생각을 정리하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어른들이 앞으로 자라날 세대에게만큼은 이런 불편한 주장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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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체가 40여개의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저널리스트답게 아주 명쾌하고 분명하게 사회의 현상을 꼬집고 비판하여 자신의 생각들을 피력하고 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아주 의미(?)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중에 결혼을 하였다.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날들이었다. 아직도 실감은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짝이 생겼다는 책임감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여하튼 3분의 2쯤 읽고, 3분의 1은 결혼을 하고 마저 읽었다. 중간에 약간의 시간적 흐름이 있어 전체적인 흐름을 약간을 잃어버린 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쉽고 명쾌하게 되어있다라는 느낌은 시종일관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읽어면서 개인적으로 지식의 얕음을 알게 되었고, 국어교사로서 세상 돌아가는 데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용이 어렵고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천적인 앎으로 옮기면서 살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있었고, 그리고 알고 있는 내용들을 쉽게 풀어쓰는 저자의 솜씨에 반했다고나 할까,
글쓰기가 전범이 될 수 있을 만큼 좋은 형식의 글들이었다. 앞서 읽었던 김훈의 책들과 비교해 본다면 전체적으로 내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두 저자들은 공통점은 개인적, 합리적, 세계적, 실용적이다라는 표현들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다소 표현면에서 김훈의 글들은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데 반해, 고종석의 글들은 간결하면서도 매우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양식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부딪쳐야 하는 문제들은 담아놓고 있다. 저자의 생각들이 다소 세계적이며 개인적주의적인 점에서 약간의 부담은 느끼지만, 합리적이면서도 시대에 걸맞은 내용들을 제시해 놓아서 크게는 부담이 되지 않았다. 교양서로서는 아주 안성만춤격인 글들이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으로서는, 31장 "유토피아와의 결별", 38장 "인터넷과 자유"였다.
30년간의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유토피아"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유토피아라는 말에 대해 새롭게 보게 되었다. 유토피아는 고대의 형이상학, 중세의 기독교, 근대의 마르크스주의가 만들어 낸 하나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라는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색으로 표현한다면 회색이라고 할까. 세계가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된 현금의 인터넷 시대를 통해 앞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계급이 누가 될것인지를 언급한 부분도 꽤나 흥미있게 읽었다. 고종석은 글을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대중의 안일함을 파고드는 저자의 공격력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고종석의 글은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좋다. 물론 내용은 부분적으로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인상깊은구절] 비인간적인 어떤 것도 낯설지 않게 하라는 것은 늘 자기 안의 악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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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또는 사회와 정치적인 영역에서 고종석의 위치는 참 애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흔히(또는 쉽게) 사람들이 분류를 하고 있는 우와 좌로 분류하기가 (한국에서는) 애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강하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호응을 할 수 있는 발언도 곧잘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둘 모두에게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의 자유주의 이전에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현실적이고 합리주의자이며 개인주의적인 그의 정서 때문인 것 같다. ‘나를 내버려두라’라는 입장을 갖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고,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의 의견은 타당하거나 혹은 수긍할 수 있는(동의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이지만) 생각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그의 여러 의견들 중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마리화나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기도 하지만 그의 경제에 대한 혹은 사회에 대한 시선에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의 날카로운 분석과 의견에 비해서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로움을 느끼기 힘들었고, 지금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구석이 강해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짐짓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혹은 그런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내버려 두거나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계급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합리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다른 보수적인 사람들의 의견들에 비해서는 꽤나 수긍할 수 있고 이해가 가능한 발언들을 하고 있다. 이런 인물이 한국의 보수주의 사회에서 전혀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심한 노릇이기는 하지만 그의 의견들에는 꽤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경직적이고 돌려막기 식으로 같은 말만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의 의견에 비해서도 꽤 날카로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참고 : 아마도 이런 방식의 에세이 책들 중에서 자신의 글과 함께 추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드물었던 것 같다. 고종석은 추가 정보 혹은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식으로 내용이 정리되어서 꽤 마음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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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언문세설을 읽고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말을 ㄱ, ㄴ , ㄷ ,순으로 정리하여 음운 구조에 따른 특성과 어휘의 특성이 작가의 사물을 세상을 보는 눈과 함께 펼쳐진다. 그리고 유럽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통해서도 고종석의 모국어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전에 언문세설을 추천해 줬더니 좋다고 하던 제자로부터 "고종석님 신간 『코드 훔치기』를 사들고 들어오는 길"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yes24시에 책 주문을 내고 반가운 친구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틀이 지났는데 드디어 책이 도착했다. 다행히 1판 1쇄다. 속물적 욕심인데 1판 1쇄를 손에 넣게 되면 흐뭇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 책이 맘에 들기까지 할 양이면 남들 미처 알아보지 못한 보물을 선점한 듯한 속된 욕심에서 기쁨은 절정에 달한다. 목차를 훑어보고 성급하게 몇 꼭지의 글을 골라 읽는다. 개인들의 시대 -붙박이에서 떠돌이로두 개의 다위니즘 -자연과 문명 사이 금지된 사랑 - 동성애를 위한 변명 테크놀로지의 미래 - 앎과 윤리 삶의 존엄, 죽음의 위엄 - 안락사에 대하여 그런데 무엇보다 관심이 간 것은 이 책이 학생들에게 유용하리란 것이었다.
학생들과 논술 수업을 준비하는 중에 늘 고전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판타지 소설류가 주종을 이루는 아이들의 독서 취향과 비교하면 고전이란 어림없는 권장도서 목록일 뿐이다. 그리고 어차피 고전을 언급하는 것이 과거의 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지식-앎을 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면 오히려 학생들의 문제 제기는 『코드 훔치기』편이 훨씬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멋쟁이 이론가들이 '노마드(nomade)'라고 부르는 떠돌이들은 휴대폰과 노트북을 끼고 지구의 이 도시 저 마을을 누빌 것이고 이것이 21세기 인류의 이름이라고 제시한다. 근대 이후 끝없이 지속되어 오던 개인주의가 오늘날에 와서는 분자화 된 개인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집단의 틀 안에서 사고하길 거부하는 이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떠돌이들을 학교의 틀 안에 가둬 두고 교육하는 것이 또한 나 -21세기 교사의 딜레마이다.
근대적 생명 과학의 뿌리가 된 다윈의 진화론 중 우리가 제일 열심히 신봉하는 것이 바로 적자생존의 원리가 아닌가 한다. 이 사회에서 약자는 살아남을 길이 없고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길이 없으며, 강자의 약자에 대한 억압은 이 논리로서 정당화된다.. 그러나 사회적 선택 공간 안에서는 자연도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멋진 이론도 다윈의 연구의 결과라고 한다 문명을 향한 인간의 발걸음은 진화 과정에서 도태를 도태하는 '진화의 역전' 현상을 보인다는 것. 우리 사회의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장치가 다른 선진 국가에 비해 열악한 환경인 것을 생각하면 다윈의 진화론의 또 다른 한 축은 미칠 듯 앞만 보고 질주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제어장치 역할을 할 듯하다.
배우 홍석천의 '커밍 아웃'선언으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관한 논의가 구체화되었다. 우리 사회의 성윤리는 대단히 이중적인 면이 있어서 간통죄로 개인의 애정 문제가 제한되고엄격한 윤리 강령이 존재하는 한편에서 매매춘과 원조교제, 러브 호텔 난립과 같은 비뚤어진 성의식이 노출되기도 한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질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고종석의 너그럽다. 나 자신의 경우 종교적 신념과는 배치되는 것이지만 동성애에 대해서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관념적으로,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로 이해되는 애정의 한 형태로 말이다. 최근 홍세화님에 의해 확산된 '똘레랑스'라는 개념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 리 사회는 남과 다른 것에 대한 질시가 하도 심해서 늦도록 결혼하지 않은 내 친구 중 하나는 이사할 때마다 직장을 옮길 적마다 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곤 한다고 말한다. 하물며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
끝없고 흔한 그러나 중요한 논쟁 중 하나가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다. 안락사를 인정하자는 쪽이나 반대하자는 쪽이나 모두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어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측면이 강하다 . 삶의 존엄과 죽음의 위엄 사이의 판단만큼은 저자의 태도도 유보적이다.
어디 이것뿐일까. 『코드 훔치기』에서는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져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의 윤리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이며 이런 모든 문제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얽히고 얽힌 난마(亂麻) 같은 삶의 문제들이다. 40이 되어서도 불혹(不惑)을 얘기할 수 없게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하물며 채 성숙하기도 전에 표류해야할 학생들을 위해 저자의 예언서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고 저자가 제시한 코드를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 .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고, 다가오는 세기에 완성해야 할 혁명은 개인주의 혁명이다. 그 혁명은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혁명일 것이다. 이 혁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개인주의는 일상적 삶의 체계적 개성화(또는 프라이버시화)를 유연하고 느슨한 사회화와 묶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출할 것이다. 그것은 풍속을 포함한 문화 전반의 소포트화를 동반하는, 쾌락주의적이고 너그러운 새로운 자본주의와 어울린다. 그 혁명의 주체는 전체가 아니라 개인이고, 수동적은 붙박이들이 아니라 능동적인 떠돌이들일 것이다. |
| 21세기에 이미 접어들었다. 이건 조금 잘못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노역사학자 에릭홉스봄은 그의 저서 "극단의 시대: 단기 20세기의 역사"에서 이미 20세기는 1991년 소련의 붕괴에서 끝을 맺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의 말을 따른다면 21세기는 서력에서는 아니지만, 벌써 10여년 흘러간 현재의 세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20세기의 끝을 맺고, 21세기의 시작을 풀든지 간에 미래에 대한 전망은 과거와 현재를 그 밑바탕으로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를 일러 "과거와 현재를 날줄과 씨줄로 엮어 미래를 짜가는 것"이라 한 이도 있지 않은가. 고종석이 한국일보에 연재하던 "모색 21세기"를 묶어 내놓은 책이 "코드 훔치기"이다. 모색이란 서문에서 언급한 그의 말대로, 전망과는 달리 행위자의 의지를 담은 것일테다. 그는 "21세기"를 "모색"하면서 그에 대한 "코드"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훔치"려고 한다. 그 작업의... 미완의 결산이 이 책이리라. 저자가 책의 전편을 통해 줄곧 강조하고 있는 가치는 대개 개인주의고, 자유주의며, 세계시민주의에 가깝다. 그는 민중주의, 공동체주의, 민족주의 등의 가치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그의 실제 토픽을 통한 두부류의 가치들의 비교는 실은 공정한 잣대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실패한(듯 보이는) 후자의 현실을 들어 전자의, 시도되지 않은 우월성을 은연중에 옹호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코드들은 수십년간 세계사의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이다. 그가 많이 참고하고 의존했다고 밝힌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보다도 그 범위는 협소하고 주제만을 두고 본다면 어느 정도 진부하다. 그러나 그런 약점들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종석은 특유의 차분하고 담담한 필치로 판도라의 상자를 묘사한다. 열어보면 아주 전형적이든 그 안에는 희망이 존재한다. 적어도 그에 대한 "희망"이 있다. 마리화나에 대한 그의 급진적(으로 보이는)인 생각은 미발표글이다. 술이나 담배, 카페인을 함유한 음료들의 실제적 유해성과 대조적으로 개인적인 부작용 약간을 유발하는 이른바 "금지약물"에 대한 현실 인식의 부당함을 설득적으로 제시하는 그 마지막 글처럼, 고종석은 21세기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20세기의 구태들을 21세기에는 부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틀 전환이라고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느 글에서처럼 "문명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야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문명을 야만의 상태보다는 우위에 둘 것이다." 그런 것이다. |
| 코드 훔치기, 도대체 이게 어떤 작업인지 고종석은 좀처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의 지적 역량을 시험해 보기라도 하듯이. 완독을 한 다음에도 글의 구성이나 내용의 행간에 배치한 여러 장치들로 인해 또렷하게 그 의미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겨우 짐작하기는 21세기 사회의 암호(code)처럼 불가해한 모습이나, 그 시대를 지배할 삶의 규칙(code)들을 훔쳐오듯 미리 파악하여 미래 사회를 전망해보고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상황을 모색해 보자는 뜻으로 읽었다. 지적인 글읽기가 요구되는 저작이다. 그러나 고종석의 미래 예측 작업은 지적인 측면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담고 있다.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예언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추상적으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이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필자는 21세기의 사회상에 대해 과학적이고 가치 중립적이며 냉정한 예측을 시도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소 과학적 신뢰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가치 함축적인, 인간의 온기가 스며있는 소망을 담아서 21세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글 곳곳에서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물론 거기에는 자유주의적이고 공리적인 그의 노선이 은근히 배어있다. 이처럼 지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측면을 지닌 이 책은 미래 사회에 관한 40가지의 다양한 주제를 경쾌하게 서핑하듯이 두루 섭렵하게 해준다. 독자는 읽는 동안 21세기의 사회상뿐만 아니고 미래로 이어질 오늘의 현실까지 읽을 수 있으며 더불어 그러한 현실 인식을 가능토록 해 주는 의식의 고양까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의 지적 단련에 특히 적합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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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진정한 자유주의자, 또는 세련된 문체로 글을 쓰는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이 높다. 그의 책, 『코드 훔치기』는 부제인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이란 말처럼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모색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언서’가 아니며, 오히려 20세기의 앎에 대한 회고라 할 수 있다. 지나간 길을 되돌아다 보면, 앞으로의 여정도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길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도록 되도록 다양한 길들을 회고해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의 미래>에서부터 <자유의 한계 ; 마리화나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문학, 동성애, 종교, 영어, 노동, 가족, 생태주의, 문화와 정치, 미국, NGO, 인터넷 따위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인지 언론고시생들에 대한 추천도서로 자주 꼽히기도 한다.
고종석이 「책 앞에」에 밝혔듯이 원래 이 책의 텍스트들은 「모색21 ㅡ 전환기의 이념과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된 주간 기획물이었다. 책의 맨 마지막에 자리잡은 <자유의 한계 ; 마리화나의 경우>는 주제의 민감성 때문에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관점이 엿보인다. 책 뒤에 쓰여진 평에 따르자면…
그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이 드러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쓰런 애정은 아둔한 비평가의 눈에도 한눈에 보였다. 그는 우리 나라의 어떤 ‘좌파들’보다도 더 좌파적이었고, 어떤 ‘우파들’보다도 더 우파적이었다.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아니 진보의 험난한 좌절들을 진실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는 충실한 좌파였고, 많은 좌파들을 부끄럽게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또한 충실한 우파였다.
ㅡ <김철.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과 교수>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자유주의에 기초한 모호함이 그의 정확한 의견이 무엇인지 어렵게도 한다. 이를테면, 대학 교육에 대한 의견으로 글을 매듭짓고 있는 <미래의 교육> 부분에서 이렇게 끝마치고 있다.
시민들의 조세저항을 정부가 이겨낼 수 있다면, 유럽식의 국공립화가 교육의 기회 균등이라는 점에서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금과 같은 이원체계보다는 국립 대학의 민영화와 그에 따른 수업료의 자율화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시장의 가격기구가 늘 최선은 아니지만, 그것은 적어도 합리성의 근처에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95쪽)
지금처럼만 아니라면 이 방법도 저 방법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좋을 것이다라는 의견이다. 물론 이러한 진단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교육 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대학 교육 제도가 어떤 방식이며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키겠는가, 하는 점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의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예언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추상적으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너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언은 우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예언자에게 불리하다. 적어도 예언자의 생애가 끝난 뒤의 시점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너무 구체적인 예언은 엇비슷하게 맞추었더라도 꼬투리를 잡히기 쉽다.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 「책 앞에」(10~11쪽 일부)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그저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했으나 앞의 <미래의 교육> 부분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라는 말이 무척이나 눈에 거슬렸다.
한 개인 모두를 ㅡ고종석과 같은 저널리스트나 지식인이라 할지라도ㅡ 좌파나 우파로 규정할 필요도 없겠으나 좌파나 우파 모두의 의견을 접수하여 자기 주장을 펼 때에는 그 까닭이 두 의견에서 모두 합리성을 발견했을 때가 되어야지, 자신의 “도망갈 구멍을 미리 미련해” 두기 위해서 라면 그것이 “슬기”로울지는 몰라도 무책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 참 좋은 책이다. 다양한 방면에 대한 식견을 높이는데 좋은 책.
* 그가 자주 인용하고 거론하는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도 읽어보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예언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추상적으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너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언은 우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예언자에게 불리하다. 적어도 예언자의 생애가 끝난 뒤의 시점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너무 구체적인 예언은 엇비슷하게 맞추었더라도 꼬투리를 잡히기 쉽다.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 |
| 컬티즌이라는 웹사이트에서 고종석에 대한 얘기를 처음 접했다. 나는 잘 모르던 그의 글쓰기 실력에 대해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도대체 그의 글쓰기가 어떤 것이길래.. 하는 마음으로 가장 최근의 것으로 선택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어려운 듯 하면서도 쉽게 읽히고, 쉬운 듯 하면서도 쉽지않은 그의 사고에 점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코드훔치기'라는 다소 거만한 듯한 제목 역시 더할 나위없이 적절한 메타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격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 접속하는 나만의 코드가 그로 인해 쉽사리 포섭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했으니 설득하는 재주가 뛰어난 이야기꾼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다만, 일관되게 자크아탈리를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 거리감이 느껴져 아쉬웠다. 그러나 나 역시 그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느낌이니,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의 필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