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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존경하던 마이어스는 편지 한 통을 쓴다.그러나 정작 보낼 용기는 없어서 헤밍웨이의 희곡 <제5열>에 꽂아두게 되고...그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이 몰래 편지를 보내게 된다.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마이어스에게 일어난다.함께 쿠바에서 낚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헤밍웨이의 제안...우상이라 믿고 있었던 작가의 부름을 듣고 마이어스는 쿠바로 날아간다. 영화<헤밍웨이 인 하바나>를 보고 싶었던 건 마이어스와 헤밍웨이의 관계가 아니라,왜 쿠바였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헤밍웨이가 쿠바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입을 통해 듣긴 했었다.그러나 직접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영화는 궁금증도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다 헤밍웨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들었다.몇년 전 우디알랜이 만든 영화 속에서 헤밍웨이를 만나고 난 후 그의 소설을 읽게 된 것처럼..마초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작가였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너무도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되서 놀랐다.심지어 영화가 너무 평면적인건 아닐까 싶은 느낌마저 들정도였다.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결과(?)로 인해 헤밍웨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헤밍웨이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2012년인가 헤밍웨이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을 모두 읽었다.<노인과 바다>같은 경우는 2년마다 한 번씩 읽고 있다.매번 산티아고 노인에 대한 내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워서...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특히 인터뷰 같은 글의 형식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다 보니..그런데 <헤밍웨이의 말>..너무 재미나게 잘 읽힌다.우선 영화 속 모습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였나 싶을 만큼..아니 어쩌면 이런 인터뷰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터뷰 속 헤밍웨이는 마초적인 남성의 느낌보다,인간 헤밍웨이가 보였다.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여서 그랬던 걸까?(물론 7년 후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다른 느낌으로 읽혔을테지만...)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마지막 페이지는 서른아홉 번을 다시 고쳐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소설의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놀라운 반전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기에..작가의 열정에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그런가 하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내 책 중 무슨 책이든 읽는 즐거움으로 읽어요.그 외에 무엇을 찾건 그건 읽는 사람이 독서에 들고 온 기준일 겁니다"/46쪽 <노인과 바다>를 읽을때마다 산티아고 노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희곡<제5열>은 왜 더이상 쓸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도(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희곡 작품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글이 잘 써지는 이유로 쿠바를 선택했다고 했지만,훼밍웨이는 그곳에서 글만 쓰지 않았다.물론 <헤밍웨이의 말> 속에는 쿠바에서의 생활이 조명되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볼 수 있었기 때문에..노벨상을 받아도 미국정부와 쿠바정부에서 보기에 헤밍웨이는 블랙리스트였다는 사실은 쓸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길지 않았던 인터뷰 글에서 역시 귀를 쫑긋하게 되는 부분은 역시 작품과 관련된 내용일게다.특히<노인과 바다>는 읽을 때마다 산티아고 노인에 대한 시선이 달라져서 다시 읽기를 반복하고 있는데,작품을 쓰게 된 상황을 읽게 되면서,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이번에는 작가의 마음으로 <노인과 바다>를 읽어 보고 싶어졌다고 해야 할까...절대 작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는 없겠지만...이미 여러 번 읽으면서 다른 시선을 경험해 보았으니,조금은 식상한 혹은 작위적 느낌으로 읽게 될지 몰라도...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되었던 걸까 상상해 보고 싶어졌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작가들의 강연을 열심히 찾아 다녔었다.그러다 어느 순간 작가와의 만남이란 것이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헤밍웨이의 말> 같은 책을 두려워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핑계일수도 있겠지만...)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도 두려웠고,작가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는 것도 것도 두려운 부분이였다.헤밍웨이처럼 소설은 재미있지만,작가로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경우에는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그런데 작품에 대해,작가로써 갖는 소신 있는 철학에 대해 들을수 있어 좋았다.(고전을 읽을 때면 종종 작가의 강연을 직접 들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 보곤 했는데,이런 강연이라면 무조건 들으러가야 하지 않았을까...순간순간 그의 유머를마주할때 특히 상상되는 목소리라니.."몸이 둔해지면 마음도 둔해질 수 있어요."/76 와 같은 멋진(?) 아포리즘을 만날때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고,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후유증이라면 조르주삼농의 책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는 사실일게다.(물론 노인과 바다고 다시 읽어야 겠지만^^)
이 책은.. "헤밍웨이가 1952년 마지막 걸작 <노인과 바다>로 작가로서의 건재를 성공적으로 증명한 이후에 이루어진 인터뷰들이다.(그래서 노인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어진 듯 하다.).더 정확히 말하면 1954년 초에 이루어어진 첫 번째 인터뷰<소설의 기술>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 직후와 그 4년 후에 이루어진 인터뷰들이다." |
| 헤밍웨이가 인터뷰를 별로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있는데 이 책에 그 적은 인터뷰들 중 정수가 담겨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헤밍웨이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이 시리즈는 전부 재밌습니다 다른 책도 추천해요 |
![]() 도서 『헤밍웨이의 말』 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의 인터뷰 4건이 담겨있다. 1952년 출간한 『노인과 바다』 를 통해 작가로서 정점을 찍은 이후에 진행된 인터뷰라 그런지, 아니면 2번의 비행기사고로 건강이 악화되고 결국엔 8년뒤 생을 마감한 비극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애주가이자 마초적인 이미지의 유명작가의 모습이 아닌, 건강악화로 인해 유한한 삶의 끝을 직감한 듯 조금은 지치고 서글픈 모습의 헤밍웨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4편의 인터뷰로 그의 삶을 내밀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거친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의 작품을 좀더 가까이 다가서서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p.s. Ernest Hemingway 관련 영상 ============================== 역사학자 대니얼 J. 부어스틴 Daniel J. Boorstin, 1914-2004은 실제없는 셀러브리티가 판치고 명성에 중독된 현대사회를 비판하면서 과거의 영웅과 현대의 셀러브리티를 "영웅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셀러브리티는 미디어가 창조" 하는 것이라 구분하여 정의한 바 있다. 작가 헤밍웨이는 명실상부 스스로를 창조한 영웅이었다. 출판된 작품 하나 없이도 대작가 셔우드 앤더슨의소개 편지를 받아 파리로 건너가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쟁쟁한 문인들과 어울리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패기만만한 습작 시절부터 ![]() 전후 세대의 정서를 혁신적 문체로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은 첫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로 단번에 문단의 명사 ㅡ 로스가 기사에 인용한 헤밍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20대 중반에따서 계속 지키고 있는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 ㅡ 로 등극하고, 마지막 걸작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가 여정은 그 자체로 한편의 전설적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두드러지는 개성으로 끊임없이 세간의 관심에 시달리고 미디어에 의해 정형화되고 문화 아이콘으로 소비된 셀러브리티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헤밍웨이 사후 한 신문 기사에서 헤밍웨이와 플로리디타에서 프로즌다이키리를 마신 사람은 모두가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헤밍웨이라는 인물은 그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잘 팔리는 소재였다. 그 글들은 헤밍웨이의 전형적 이미지를 재생산하거나 더 공고히 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헤밍웨이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하기도 했다. p 012, 013 들어가며 ㅡ 마초 셀럽브리티를 넘어서 ============================== 소설이나 단편을 쓸 때면 매일 아침, 가능하면 해가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방해할 사람도 없고, 날은 서늘하거나 춥고, 와서 글을 쓰다 보면 몸이 더워지죠. 전날 써놓은 글을 읽어봅니다. 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때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계속 써나가요. 아직도 신명 juice 이 남아 있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지점까지 쓴 다음, 거기서 멈추고 다음 날까지 꾹 참고 살다가 다시 시작합니다. ![]() 예를 들어 아침 6시에 시작하면 정오까지 계속 쓸 수도 있고 그 전에 끝날 수도 있어요. 글을 멈출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났을 때처럼 텅 빈 느낌, 그와 동시에 전혀 비어 있지 않고 꽉 들어차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것도 상처를 줄 수 없고, 아무일도 일어날 수 없죠. 여기서 아무것이란 다음 날 다시 글을 시작할 때까지 어떤 것도 그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음 날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힘든 일이죠. p 029 소설의 기술 ============================== 사람들이 날 내버려두고 방해만 안 한다면 언제든 글을 쓸 수 있어요. 혹은 모질게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최고의 글은 분명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옵니다. 그게 다 똑같아 보인다면, 차라리 아무 설명도 안 하렵니다. p 033 소설의 기술 ![]() ============================== 지식은 작가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글쓰기를 더 어렵게 만들죠. 영원한 가치를 가진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건 전업입니다. 실제로 글을 쓰면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에 불과하더라도요.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은 작가들만큼이나 여러 종류가 있죠. 중요한 건 우물에 깨끗한 물이 있는 거고, 그러자면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p 036, 037 소설의 기술 ============================== 난 상징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도, 질문을 받기도 싫습니다. 설명해달라는 청을 안 받아도 소설과 단편들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요. 대여섯 혹은 그 이상의 훌륭한 해설가들이 계속해서 설명할 수 있는데 왜 내가 그걸 방해해야겠습니까? 내 책 중 무슨 책이든 읽는 즐거움으로 읽어요. 그 외에 무엇을 찾건, 그건 읽는 사람이 독서에 들고 온 기준일 겁니다. p 046 소설의 기술 ![]() ============================== "난 글쓰기를 굉장히 존경합니다." 그가 뜬금없이 말했다. "작가는 글쓰기의 도구로서가 아니고는 전혀요. 작가가 삶에서 의도적으로 은퇴하거나 어떤 결함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은퇴한다면, 그 작가의 글은 보통 쇠퇴하게 돼요. 사용하지 않는 팔다리처럼. 모든 사람에게 정력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것만이 훌륭한 삶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운동선수가 된 사람은 누구든 몸을 알맞게 유지해야 해요.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거든요. 몸이 둔해지면 마음도 둔해질 수 있어요. 영혼도 둔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야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는 자신의 아픔과 괴로움, 너무 튀어나온 배, 너무 높은 혈압, 몇 주나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근육들에 대해 숙고하듯 생각에 잠겨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살이 찌거나 쇠약해지는 과정이 찾아오겠죠. 어느 쪽이든 안 좋긴 똑같을 겁니다." p 076, 077 쿠바의 헤밍웨이 ============================== "인터뷰를 못해서 아쉽지만, 만약 했다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인생을 최고로 활용할 수 있는 선생님만의 방식은 뭡니까?" 그는 1초 정도 생각에 잠겼다. "절대 흥분거리를 찾아다니지 마요. 흥분거리가 찾아오게 해야지." 그의 대답이었다. p 116, 117 헤밍웨이에게 들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