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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 책을 그만 읽어야지, 생각해 놓고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잘 한 일인것 같다. 마음산책에서 '에밀 아자르'로 나온 책들부터 먼저 읽다보니...사실 조금 정신 사나웠는데, 얼마전에 '숨가뿐 사랑'을 다시 읽고 나니, 로맹가리에 급 관심이 다시 생겼다.
그리고, 돌이켜보니..올 해 내가 사랑했던 세명의 남자. 로맹가리,롤랑 바르트, 존버거 였으니. 뭐...끝장(?)을 봐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 번 책은 참 마음에 든다. 일단 이야기 자체로 보면 충격적인 결말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아주 흑인들은 죄다 죽여야 된다,는 때아닌 흑인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나는 살지 않았고, 또 역사적으로도 그닥 관심가는 시절이 아니였기 때문에 간과하고 살았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68혁명이나, 흑백 인종 갈등 같은 부분도 중요한 꼭지는 몇 개 정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딱 내 수준에 맞게 '그 즈음에 태어나서 그 꼴을 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무조건 박해를 받은 흑인을 옹호하기 보단...백인이나 흑인이나 별반 다를바 없이, 인간의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잔인하며 위선적인 모습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고 있어서 좋았다. 즉, 흑인이라도 특별히 더 잘한 것도 없네,하는 마음이 들었으니...우리가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 흑인이랑 유태인은 무조건 박해만 받았다,라는 것에 대한 부정이라고 해야할까?
여하튼, 피부색에 상관없이..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꼴을 보게 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론...어디 머나먼 외진 곳에 가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렬하게 들긴 했지만, 만족스럽다. 읽고나니...로맹가리에 대한...그의 휴머니즘..인간애 같은 것이 한 문장 한문장을 통해서 느껴져서 살짝 감동까지 했었으니까.
개를 기르는 내 입장에서, 어쨌거나 사건의 중요한 발단이 되는 흰 개, 이야기는 너무 안타깝다. 개가 뭘 알겠는가. 나쁜개는 지가 태어날때부터 나쁜게 아니라, 개키우는 사람이 잘못 키워서 그렇게 되는 것을... 처음엔 흰 개로 육성 받고, 그 다음은 검은 개로 재교육되는 바트카가 마지막에 진세버그네 집 앞까지 와서 죽은 장면이 나에겐 제일 슬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개와 개보다 못한 사람이 함께 물에 빠진다면...누구부터 구해야할까. 난 개부터 구할 것 같다. 거죽만 사람이고... 개보다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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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에서 출간된 로맹 가리 시리즈를 읽고 있다. 인종주의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데 제목은 '흰 개'라니 궁금할 수 밖에.게다가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여진 탓에 소설이라기 보다 르포 같은 느낌마저 든다.소설의 배경은 1968년.미국은 베트남 반전 시위가 한창이었고,루터 킹 목사의 암살로 인한 인종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파리의68혁명의 혼란스러운 시기까지 담고 있다.그야말로 정신을 바싹(?)차리고 읽어야만 할 것 같다.그런데 조금 읽다 보면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게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오버랩된다.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당신이고,당신이 나죠." 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염세적이군.혹은 자기 연민이 너무 깊은 거잖아.라는 원망을 퍼붓고도 싶었다.그러나 작가는 읽는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으며 당신의 책을 대할지 예견 했을지도 모르겠다.도저히 해답이 없을 것만 같은 문제들의 연속이다.흑인문제 만큼은 소설로 남기지 않겠다던 작가의 고집을 꺽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은 '흰 개' 덕분(?)이었다.오래된 습관은 너무 깊이 각인된다는 사실! 흰 개를 어떻게든 훈육 시키던 작가의 박애주의는 키스라는 흑인조련사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다.검은 개로. 소설은 비단 흑인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인종주의 그리고 수많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불균형한 사건들을 다룬다.그런데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왜 답은 없는 걸까? 살짝 흘러가듯 '대조의 조화'를 언급하지만 역시나 여전히 소원한 문제인 것 같다.억압을 받았던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의 승리를 찾기 보다는 꼭같은 방식으로 대적해야 한다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흑인을 물도록 훈련된 '흰 개' 한마리로 인해 미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혹은 전 세계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접근하는 작가의 소설 방식이 놀라웠다.지나치게 냉소적인 듯 하기도 하고,읽는 독자들을 숨막히게 만든 것이 원망스럽긴 하지만,수많은 갈등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흔들어 주기'로서의 역활은 충분히 해 준 듯 해서....
"흰 개라니까요.모르세요?" (...) "물론 모르시겠죠.당연합니다.이건 흰 개예요.남부에서 온 개죠.그곳에선 경찰이 흑인을 체포하는 걸 돕도록 훈련한 개들을 '흰 개'라고 부릅니다.지극정성을 들인 훈련이죠." /31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문장은 그 역명제도 성립한다는 얘기다."내가 '당신들'이라고 할 때는 내 얘기이기도 하오."(...) "내가 당신이고,당신이 나죠." /31
"나는 바트카( 흰 개)에게 달려들었고 칼로 난도질당하듯 이빨 세례를 받았다.(...)그는 웃고 있었다. (...) "검은 개!"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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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사람도 결국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이런저런 근거 없는 선입견들도 결국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차곡차곡 쌓여져 온 결과일 것이다. 간혹 그걸 속시원히 깨버렸을 때 마치 자신이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된 듯 착각하곤 하지만 방금 탈출한 선입견이 내가 가진 수만가지 중 그저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또다시 침묵하게 된다. 1960년대 미국엔 흑인만 보면 공격하도록 훈련된 개가 있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흰 개'는 바로 흑인을 공격하도록 길들여진 개를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 어느날 로맹 가리의 미국 집에 얌전한 셰퍼드 한마리가 찾아든다. 잘 길들여진 그 셰퍼드는 바로 앞서 말한 '흰 개'다. 조상대대로 경찰견으로 길러져 7~8세가 되면 은퇴하고 일반 가정에 비싼 가격으로 분양된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백인 중산층들이 매우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충격적인 소재는 예상대로 미국내 뿌리 깊은 인종갈등의 문제를 들어낼 수 밖에 없다. 그건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일 수 없다. 수백년간 쌓여온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 누구도 선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주제를 다룸에 있어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건 한마리 개 외에는 흔히 알고 있는 백인 악마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흑인들의 시행착오를 과감히 바라보고 지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백인이 악인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 너희들이 꼭 선이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이 주제가 몹시도 불편한 또 한가지 이유는 이유만 조금 다를 뿐 지금 우리에게도 못지 않은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이해당사자의 한축에 속해있는 만큼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책의 결론이 많은 고민에 빠지게 하는건 분명하다. '흰 개'를 '검은 개'로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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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미국 체험이 담긴 신랄한 자전 소설 『흰 개』. 1960년대 말 격동기의 미국에 있었던 프랑스 사람 로맹 가리. 1968년부터 1969년까지 2년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흑인과 백인, 개인과 집단, 남성과 여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의 대립으로 사회 갈등이 한창 고조되었던 격변기 미국에 관한 생생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1968년 2월 17일 폭우가 쏟아지던 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숙소에 손님이 찾아든다. 산책을 나가 며칠이나 소식이 없던 누렁개 샌디가 친구를 데려온 것이다. 잘생기고 건장하며 친절하고 붙임성 좋은 이 회색 독일셰퍼드는 금세 로맹 가리 부부와 가족이 돼 사랑을 받지만, 가슴 깊이 불안함을 야기하는 미심쩍은 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특정한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살점을 찢으려는 것.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부색이 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