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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저시리즈의 최신 권입니다. 매번 이 시리즈가 나올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생깁니다. 매번 많은 도전을 하게 하는 이 귀한 책을 저술하고 또 출판하는 규장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이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이신다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은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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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 사미스의 〈예수 따라가며〉(Trust and Obey)라는 소박한 찬송가는 아주 근본적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의지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옛날 어떤 현인은 “두 날개가 무거워 날지 못하는 비둘기는 없다”라고 썼다 비둘기는 두 날개 때문에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의지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두 날개이다 우리는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는 것은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의지해야 한다 믿음없이 순종하려고 한다면 실패한다 순종없이 믿음만 가지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순종하는 것’과 ‘신뢰하는 것’이 동의어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유의어이다 이 2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전을 생각해보자 고운 톱으로 동전을 갈라서 쪼갠다면 한쪽 면으로 물건을 살 수 있을까? 동전의 한쪽 면만 본 판매원은 일단 의심없이 받겠지만, 손 안에 쥐면 즉시 이상하다고 느끼고 “이게 뭡니까? 지금 장난합니까? 동전의 한 면만 있지 않습니까?”라고 항의하며 당신에게 다시 돌려줄 것이다 한면 밖에 없는 동전을 유통시킬 수는 없다 양쪽 면이 다 있어야 화폐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신뢰는 동전의 한 면이고 순종은 또 다른 면이다 그러나 교회는 고운 톱으로 동전의 양면을 갈라서 쪼갠 다음 “순종할 필요는 없으니 믿기만 하십시오”라고 가르친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동전을 나누면 안된다 양면이 갈라진 동전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신뢰만으로도 안되고, 순종만으로도 안된다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라 그리고 나가서 순종하라 그러면 이것이 영원한 구원의 길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찾으려고 애쓴다 내가 볼 때, 아마도 지름길을 찾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전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광야의 후미진 곳에서 40년을 보내야 했다 바로의 궁전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모세에게는 40년 광야 생활이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완벽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안내자가 되시어 그분의 존전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실 수 있다 그분께 이르는 길은 편하지도 않고 지름길도 없다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지름길을 가시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가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 우리의 중보자와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그분은 그 길을 끝까지 가셨다 만일 그분이 지름길을 선택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밤, 즉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 어두운 밤을 생각해보라 그날 밤 그분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다 편한 길을 택하지 않으셨고 지름길을 찾지도 않으셨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안내자가 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편한 길을 마다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서 우리를 위해 죽음을 맛보시고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 임명을 받아 인간을 위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존전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안내자이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영혼의 원수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들은 완전한 안내자를 찾은 것이다 그분을 따르는 중에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안식과 평안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이신다 중 발췌
부와 번영만이 성공이라는 세속화의 신화가 교회를 점령한지 오래다 그래서 이제 교회에서도 부와 번영을 누리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자로 취급받는게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토저 목사 당시에는 복음주의권의 세속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독교계 전반에 펼쳐진 세속화와 그에 따른 가짜 복음이 버젓이 교회 강단을 차지하고 있다 토저 목사 생존시 그 위기에 대한 해답으로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내어놓고 있다 기독교계 위기인 지금에도 그의 해답은 성경적이며 합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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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나름대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하나님의 깊은 일을 아는 것이 힘든 시대이다. 현대의 기독교가 세상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영적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워낙 많은 일들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세상에 정신이 팔려 허송세월하게 된다. 내가 볼 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가장 위험한 상황은 ‘양심의 소작’(燒灼: 약품이나 전기로 병의 조직을 태우는 외과적 치료법)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다. 이것은 사람으로 주변 세상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런 무감각에 빠진 사람은 도덕적 문제들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도덕적 무감각은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이들은 도덕적 문제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역설은, 사람은 때로 자기 느낌의 부재로 인하여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이 시대의 부도덕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 이런 위험한 상태를 초래한 원인은 죄의 행위로 말미암아 생긴 ‘반(半) 마비 상태’이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자기의 양심을 어느 정도 마비시키게 된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양심을 소작하는 것이다. 신체의 어떤 부분을 소작하면 처음에는 그곳이 아프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그곳의 느낌이 사라진다. 소작한 부분은 피부가 두꺼워져 딱딱한 껍질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죄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죄는 양심을 소작하기 때문에 머지않아 죄를 지어도 전혀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마귀’라고 부르는 저 거룩하지 못한 자가 양심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마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고후 4:4)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우리가 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영적 무기력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를 듣고서도 부자연스런 영적 나른함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적 나른함에 빠지는 사람들도 이 시대의 현실적 위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예를 들어, 핵공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즉각 방사성 낙진 대피소로 피하는 법을 알려고 기를 쓸 것이다. 암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를 보면 자기의 몸을 살피며 ‘최근에 통증을 느낀 것이 혹시 암 때문인가?’라고 걱정할 것이다. 이처럼 얄팍한 것들에는 언제나 큰 관심을 쏟지만 영적인 것들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지혜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에게 거의 또는 전혀 유익이 없는 것들에는 관심을 쏟으면서, 지극히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에는 무관심하여 그저 ‘통과!’라고 말한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장난할 때에는 혼신의 힘을 다 바친다. 그러므로 얼른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물질과 쾌락의 추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도덕적 무감각과 영적 무기력은 우리가 영적 건강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2가지 주요 재앙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걸음걸음마다 방해를 받게 마련이다. 이 2가지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으로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이신다 중 발췌
토저 목사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오류들을 영적 잡초라고 부르고 있다.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지적, 영적으로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힘써 강조하고 있다. 매일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