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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토저의 글을 읽을 때면 이전 교회 담임 목사님이 불이 있는 책이라고 하신 말씀이 와닿는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깊은 신앙에 도달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고 보혈의 가치를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토저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얼마나 광대허신 분이신지, 얼마나 세심하시고 사랑이 크신지, 얼마나 전지전능하신지를 알게 되었고 그 크신 분이 육신으로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도록 믿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을 보니 이전에 설교를 들을 때 구약에서 시편이나 잠언 등 구절로 예수님을 연결시킬 때 인정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모두 이해 되었다. 이럴수가! 구약에도 온통 예수님 이야기구나! 특히 잠언을 읽으며 결국 지혜가 예수님임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혜도 결국 예수님이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성경을 읽는다고하여 진정으로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진다. 요새 계속 토저의 책을 읽어왔는데 이 책을 읽고 결국 5권의 토저 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렸다. 다시 일주일간 토저가 알려주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 속에 빠져보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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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료시키는 지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영원한 지혜’이다 영원한 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와 세상의 심리학을 공부해본 나는 그것들의 약점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눈에 금방 띄는 그 한계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문화에는 그 문화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독특한 지혜가 있으며, 그 지혜에는 또한 특유의 한계들이 있다 어떤 문화에서든 간에, 인간의 마음과 상상에서 나오는 지혜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내가 ‘영원한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히브리 민족을 통해 계시된 지혜이다 히브리인들이 가르친 지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아주 많이 나온다 시편이나 잠언이나 전도서를 읽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 교리의 ‘창조의 지혜’와 동일시했는데, 창조의 지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와 만물을 창조한 음성이다 요한은 헬라인들이 그의 글을 이해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는 했지만, 창조의 지혜를 헬라 사상과 조금도 연결시키지 않았다 당신이 교부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도 창조의 지혜를 믿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고의 신적 영감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요, 지극히 밝은 영원한 빛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흠 없는 거울이시라고 믿었다 그들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그분의 선지자와 친구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표상이셨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선지자로 만들었는가? 성경 말씀의 증언에 의하면, 그것은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시편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 기록들이 많기에 때로는 다윗의 말이 메시아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한 가지 예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시 22:1)라는 말이다 물론 이 시편을 쓴 것은 다윗이다 그러나 인간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메시아, 메시아의 영, 하나님의 태고의 지혜이시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또 다른 성경 말씀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는 구절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태고의 영원한 지혜’라는 히브리 교리와 신약성경을 연결 짓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 히브리 교리와 신약성경 사이의 연결성 때문에 히브리 교리가 헬라 사상과 다르다고 가르쳤다 다른 사도들은 그렇게 가르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바울은 그렇게 가르쳤다 히브리인의 성경과 헬라 철학을 모두 공부한 박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은 구약성경 외의 것을 다룰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바울은 헬라 사상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라고 말했다 또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라고 말했다 고린도전서 1장에 이어 2장에서도 그는 히브리인들의 메시아 교리와 헬라 사상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1-5) 사도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 학문의 도시였던 고린도에는 철학자와 지식인과 학자가 많았다 바울은 그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또 그들의 헬라 사상과 히브리인들의 지혜 교리를 어떻게 대조시켜야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편지를 썼다 현재 유행하는 철학의 뿌리가 아무리 오래 되고 고상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철학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려고 시도할 때 기독교는 즉시 능력을 잃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이런 식의 동일시를 시종일관 거부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로고스’를 단지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헬라 사상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 요한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하나님의 로고스, 즉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대 헬라인 중 어떤 이들이 때로 하나님의 로고스에 꽤 가까이 갔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들의 인간적 이성과 논리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반면, 히브리인들이 가르친 지혜는 어떤 문화보다도 큰 것이었기에 어떤 사상 체계 안에 갇힐 수도 없고 설명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 중 발췌
페이퍼북 출간 알림을 받고 언제나 ebook으로 출간되나 했는데, 시간이 좀 꽤 걸렸다 토저 목사의 설교는 복음주의의 위기를 넘어 기독교의 위기라 일컬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디로 가야 회복과 갱신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설교집에서 역시 토저는 하나님만이 모든 근원이 되시기에 그에게 돌아갈 때 생명의 충만함을 입고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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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그의 복음전도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오지 않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오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5-7)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1-24 우리는 바울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은 능력을 원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원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의 글들에서 줄곧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기독교는 세상의 일반적인 것들과는 달리 신적인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지혜에서 흘러나왔다. 기독교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로 설명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 사람들이 기독교로 착각하는 것들이나 교파주의 같은 것들은 심리학이나 철학으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기독교는 그럴 수 없다. 바울은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지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마음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마음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심리학이 기독교를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이 설명하려는 것은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종종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비유들은 선택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비를 하나의 비유라고 본다면, 이 비유는 인간의 지성에 의해 전혀 설명될 수 없고, 오직 성령께서 그 마음에 빛을 비추어주실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오직 영원한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 신적 지혜와 능력 없이도 종교나 교단을 성장시킬 수는 있다. 영원한 지혜와 능력이 없어도 교회를 세우고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성장시킬 수는 있지만, 참된 기독교를 성장시킬 수는 없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기독교 신앙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데 이것은 영원한 지혜와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5)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것이 단지 신앙적 격려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신 얼마 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사도행전 6장을 읽어보라. 여기에서는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행 6:10)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영원한 지혜(하나님의 창조적 지혜)의 세례를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소경은 손에 랜턴(lantern)을 들고 있다 할지라도 도랑에 빠질 것이다. 소경의 손에 있는 랜턴은 낡아서 못 신는 장화와 다를 바 없다.” 이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랜턴이 소용없다. 이 진리를 교회에 적용해보자. 교회에 온갖 종류의 교사와 교육프로그램, 온갖 종류의 성장 전문가와 성장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눈이 없다면 그 교회는 도랑에 빠질 것이다. 이 창조적 지혜가 없는 교회는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 안의 어떤 이들은 학문에 의존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학문은 의안같은 것이다. 의안은 눈 같은 느낌을 주고,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시력을 줄 수는 없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는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2가지 방향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향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예 오락이고, 다른 한 방향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 복음주의이다. 지혜와 능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을 학문으로 이루려는 노력은 의안으로 앞을 보려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영원한 지혜(하나님의 창조적 지혜)의 세례를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 중 발췌
이 책의 저자인 토저 목사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영적인 교제로 인해 생전에 신비주의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였었다. 그러나 그의 설교와 저작을 보면 현실을 떠나 몽상 속에 살아가는 신비주의자가 아닌, 이 땅에서 살과 피와 땀으로 살아가는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토저 목사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안목과 경륜을 힘입어 참된 인생의 가치를 조망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