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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만 있고 대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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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는 유식사상의 핵심이다. 유식사상은 연기, 무자성, 공의 가르침을 '마음' 중심으로 설명한다. 만법유식(萬法唯識)과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원리는 '일체유심조'의 두 동의어다. 만법유식은 '모든 법이 오직 식뿐'이라는 말이고, 유식무경은 '오직 식(마음)만 있고 대상은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유식사상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성유식론』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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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는 유식사상의 핵심이다. 유식사상은 연기, 무자성, 공의 가르침을 '마음' 중심으로 설명한다. 만법유식(萬法唯識)과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원리는 '일체유심조'의 두 동의어다. 만법유식은 '모든 법이 오직 식뿐'이라는 말이고, 유식무경은 '오직 식(마음)만 있고 대상은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유식사상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성유식론』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고찰하고 있다. 『성유식론』은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서인 『유식삼십론석』의 한역본이고, 역자는 대당삼장 현장 법사다.

 

대승불교사상의 양대산맥이 용수 보살의 중관사상과 무착 보살의 유식사상이다. 유식사상을 펼친 학파를 유가행파라고 한다. 유가행파의 시조는 미륵 보살이고, 무착 보살과 세친 보살로 이어진다. 유식사상의 주요 저작은 『유식이십론』, 『유식삼십송』, 『섭대승론서』 등이 있다. 『유식이십론』은 다른 학파의 반박에 답한 논서로서, 게송과 더불어 세친 보살의 풀이가 있다. 『유식삼십송』은 세친 보살의 유식사상이 담긴 게송으로, 게송만 있을 뿐 풀이가 없다. 그래서 여러 논사들이 『유식삼십송』에 주석을 달았는데 특히 유명한 이들이 친승, 화변, 덕혜, 안혜, 난타, 정월, 호법, 승우, 최승자, 지월이다. 이들을 '십대논사'라고 부른다. 십대논사는 다시 세 가지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덕혜 논사, 안혜 논사로 이어지는 계통인데, 진제 법사가 이 계통의 교리를 중국에 전하였다. 다른 하나는 화변 논사에서 진나 논사, 무성 논사, 호법 논사로 이어지는 계통으로, 현장 법사가 이 계통의 교리를 중국에 전하였다. 마지막은 난타 논사로 이어지는 계통으로,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호법 논사 계통의 유식사상은 마음으로 펼쳐진 세상은 연기되어 나타난 것으로서 있다고 보는 유상유식(有相唯識)파이고, 안혜 논사 계통의 유식사상은 마음으로 펼쳐진 세상은 집착되어 나타난 것으로서 없다고 보는 무상유식(無相唯識)파다. 현장 법사의 『성유식론』은 바로 호법 논사의 유상유식의 주장을 중심으로 편역한 것이다.

 
색법, 심법, 심소법, 불상응행법, 무위법 등이 식을 떠나서 홀로 있지 않다. 색법은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 등을 말한다. 색법은 흔히 '물질'이나 '대상성'으로 번역된다. 심법은 6식 등 주된 마음을 말하고, 심소법은 믿음과 탐욕 등 부수적인 마음을 말한다. 불상응행법은 색심불상응행법이라고도 하며, 색과 비슷하지 않고 식과 비슷하지 않은 법으로 목숨, 음절, 단어, 문장 등이 그러하다. 무위법은 진여를 말한다.

 

아에 대한 집착을 아집이라 하고, 법에 대한 집착을 법집이라 한다. 아집과 법집은 각각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자생적이냐 습생적이냐에 따라 구생아집(俱生我執)과 분별아집(分別我執), 구생법집(俱生法執)과 분별법집(分別法執)으로 구분된다. 구생아집과 구생법집은 선천적이고 자생적인 아집과 법집이다. 분별아집과 분별법집은 후천적이고 훈습적인 아집과 법집이다.

 

분별아집과 분별법집은 오직 제6식에만 있다. 분별아집은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한 온(蘊)의 모습이나 아(我)의 모습을 분별하여 실아(實我)라고 집착한다. 분별법집은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온·처·계나 자성 등의 모습을 분별하고 잘못 헤아려 실법(實法)이라고 집착한다. 한편, 구생아집은 제7식이 제8식을 실아로 보는 집착이다. 구생법집은 제7식이 제8식을 실법으로 보고, 제6식은 온·처·계의 모습을 실법이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아공(인무아)과 법공(법무아)을 깨쳐야한다. 아공을 증득하면 번뇌장(煩惱障)을 끊어 진해탈을 얻고, 법공을 증득하면 소지장(所知障)을 끊어 대보리를 얻는다. 그런데 그릇되게 공에 집착하는 자들이 있고, 공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악용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악취공에 빠진 이들을 악취공자(惡取空者)라고 한다.

 

능변식은 세 가지가 있다. 이숙식(제8식), 사량식(제7식), 요별경식(전6식)이다. 전6식이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을 말한다. 전6식은 깊은 잠을 자거나 기절했을 때는 연속되지 않는다. 제8식은 아뢰야식, 이숙식, 일체종자식이라고 불린다. 이를 제8식의 삼상(三相)이라 하는데, 각각 자상(自相), 과상(果相), 인상(因相)이 된다. 아뢰야식은 장식(藏識)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아뢰야식 내에서 능장(能藏)은 인상, 소장(所藏)은 과상, 집장(執藏)은 자상에 해당한다. 집장은 제8식이 아애(我愛)에 의해 집착된다는 뜻이다. 제7식은 아애 등의 작용으로 제8식을 나라고 집착한다. 이처럼 제8식은 위계나 특징에 따라 나타나는 이름이 여럿이다. 제8식을 아뢰야식으로 표현할 때, 이숙식으로 표현할 때, 일체종자식으로 표현할 때, 그때마다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제8식은 종자를 저장한다. 종자는 자기 모습을 생겨나게 하는 잠재적인 힘, 잠재적인 에너지(공능)를 말한다. 종자는 본유종자(本有種子: 본래 있는 종자)와 시기종자(始起種子: 새로 생기는 종자) 두 가지가 있다. 제8식이 체라면 종자는 용이 된다. 이는 강과 강물의 관계와 같다.

 

"이상 종자의 여섯 조건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생겨나자마자 간격 없이 바로 사라져야 하고(刹那滅), 반드시 현행인 과법과 함께 있어야 하고(果俱有),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동일한 종류로 항상 상속해야 하고(恒隨轉), 선악 등 성품이 결정되어야 하고(性決定), 여러 연을 기다려야 하고(待衆緣), 자기의 과법을 생겨나게 해야(引自果) 비로소 종자라 할 수 있다."(97쪽)

 

유루종자는 중생을, 무루종자는 성인을 말한다. 중생의 삶이 드러난 것이 유루법이고 유루종자를 훈습한다. 성인의 삶이 드러난 것이 무루법이고 무루종자를 훈습한다. 그럼, 어떻게 중생의 삶에서 성인의 삶이 드러나게 되는가? 중생도 무루종자를 본유종자로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문사수'에 의해서, 즉 들어서 얻는 지혜(聞慧), 생각해서 얻는 지혜(思慧), 닦아서 얻는 지혜(修慧)를 통해서 우리에게 본래 갖추어진 본유무루종자를 자극하여 현행시키게 된다.

 

제8식의 소연은 기세간(器世間), 종자, 유근신(有根身)이다. 기세간은 일체 중생이 살고 있는 세간, 즉 우리 앞에 펼쳐진 공간적 세계를 말하고, 유근신은 오색근(五色根)과 근의처(根依處)를 말한다. 오색근은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을 말하고, 오색근을 '진실한 근'이라는 의미에서 승의근(勝義根)이라 부른다. 색근이 각각 의지하고 있는 신체기관(안, 이, 비, 설, 신)을 근의처라 하고 '승의근을 도와주는 단순한 물질적인 근'이라는 뜻에서 부진근(扶塵根)이라 부른다. '근(根)'이란 훌륭한 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아뢰야식은 무시시래(시작 없는 때로부터) 인과가 끊어지지도 않고 상주하지도 않고 항상 굴러흘러가는 폭류와 같다. 그래서 아뢰야식은 삼계(욕계·색계·무색계), 오취(지옥취·아귀취·축생취·인취·천취), 사생(태생·난생·습생·화생)을 드러내는 윤회의 근본이 된다. 제8식이 없다면 유정의 생사유전을 세울 수 없다.

 

제7식은 말나식(末那), 사량식(思量), 의(意)라고 한다. 말나식은 아라한의 청정 말나식과 중생의 염오 말나식이 있다. 그러나 보통 제7식하면 염오 말나식, 염오의(染汚意)를 가리킨다. 제7식은 다른 능변식과는 달리 항상 헤아리고 자세하게 헤아린다. 제8식은 항상 헤아리기는 하지만 자세하게 헤아리지는 못한다. 제6식은 자세하게 헤아리기는 하지만 끊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항상 헤아리지는 못한다. 전5식은 항상 헤아리지도 못하고 자세하게 헤아리지도 못한다. 제7식은 제8식에 의지하고 제8식을 헤아린다. 지혜와 함께하지 않는 제7식은 아상을 항시 자세하게 사량하고, 지혜와 함께 하는 제7식은 무아상을 자세하게 사량한다. 제7식은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한다.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이다. 아치는 무명, 아견은 아집, 아만은 거만, 아애는 아탐을 말한다.

 

"참고로 근본본뇌에는 열 가지가 있다. 즉 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이다. 그런데 악견에는 다섯 가지 차별이 있다. 살가야견(薩迦耶見)·변견(邊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 그래서 모두 열 가지이다. 살가야견(아견)은 오취온을 아(我)아소(我所)라고 그릇되게 집착하는 견해이다. 변견은 아견의 대상에 따라 끊어진다거나 항상한다거나 집착하는 견해이다. 사견은 말 그대로 그릇된 견해이다. …(중략) 견취견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악견 등이 가장 뛰어나서 이를 통해 능치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계금취견은 어떤 계율이나 규칙 등이 가장 뛰어나서 이를 통해 능히 청정법을 얻을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이다."(149-150쪽)

 

전6식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무상천, 무상정, 멸진정, 극중수면, 극중민절 다섯 가지다. 이를 오위무심(五位無心)이라고 한다. 오위무심은 오직 제8식과 제7식만이 일어난다.

 

불교의 심법은 심왕(주된 마음)과 심소법(부수적인 마음)으로 나뉜다. 심왕은 제8식, 제7식, 전6식을 말하고, 심소법은 '심왕이 소유한 법'이라는 뜻으로,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마음법이다. 가령 안식을 예로 들면 안식이 심왕이고, 촉·수·상·사는 심소법이다. 일반적으로 촉·작의·수·상·사는심왕과 기본적으로 함께 하기에 변행심소라고 한다. 한편, 욕·승해·념·정·혜 이 다섯 가지는 별도의 대상에 대해서 일어나는 심소이기에 별경심소라고 한다. 심소법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 변행심소, 별경심소, 선심소, 번뇌심소, 수번뇌심소,  부정심소가 있다.

 

'제법무아'다. 즉 '모든 법은 자성이 없다'. '자성'이란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본성이다. 법은 불교에서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부처님 가르침'과 '나에게 펼쳐진 세상'이다. 제법무아의 '법'은 '나에게 펼쳐진 세상'의 의미다. 유식사상은 세 가지 자성(三性)과 세 가지 무성(三無性)을 말한다. 세 가지 자성은 변계소집성(邊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변계소집성은 글자 그대로 풀면 '두루 헤아려 집착된 자성'이라는 말로, 망정(妄情)과 착각처럼 그릇되게 집착한 것을 통틀어 이름한다. 의타기성은 글자 그대로 풀면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난 자성'이라는 말로, 사연(四緣)과 십인(十因) 등의 연기를 의미한다. 사연은 인연, 등무간연, 소연연, 증상연을 말한다. 원성실성은 글자 그대로 풀면 '원만, 성취, 제법 실성의 뜻을 지닌 자성'이라는 말로, 보통 아공과 법공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진여'를 의미한다. 한편, 세 가지 무성은상무성(相無性), 생무성(生無性), 승의무성(勝義無性)이다. 상무성은 체상이 없는 자성이고, 생무성은 자연생이 없는 자성이며, 승의무성은 아와 법을 멀리 한 자성이다.

 

『유식삼십송』에 의하면 유식사상은 크게 유식상, 유식성, 유식위로 구성된다. 유식상은 유식으로 나타난 여러 가지 모습이고, 유식성은 유식의 실성으로 승의무성, 즉 진여이다. 원성실성의 승의무성, 모든 법의 승의(궁극), 진여는 같은 경계를 나타낸 말이다. 유식위는 유식상과 유식성에 깨달아 들어가는 수행단계다.

 

z***a 2013.09.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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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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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할 땐 당황스럽다.계속 모순되게 사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이런 마음이라는 개념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상식선에서 말하지만 결코 얕지 않다.대승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단어 때문에 혼란을 겪은 모든 분에게 추천한다.(내용에 150자 이상 입력하라는 제한이 있네요. 그래서 팔요없는 말이지만 이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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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할 땐 당황스럽다.
계속 모순되게 사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마음이라는 개념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상식선에서 말하지만 결코 얕지 않다.
대승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단어 때문에 혼란을 겪은 모든 분에게 추천한다.

(내용에 150자 이상 입력하라는 제한이 있네요. 그래서 팔요없는 말이지만 이것을 씁니다.)




b*******d 2017.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