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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시간에 쫓겨사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 슬로우~
"시간에 쫓겨사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 슬로우~" 내용보기
제목이 현실과 맞지 않아 오히려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남들은 다 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해 안달인데 왜 저 혼자 튀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뻔한 자기계발서일 줄 알았는데 ‘사회 문제’로 분류되어 있었고, 다소 식상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내용은 결코 식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이 책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
"시간에 쫓겨사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 슬로우~" 내용보기
제목이 현실과 맞지 않아 오히려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남들은 다 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해 안달인데 왜 저 혼자 튀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뻔한 자기계발서일 줄 알았는데 ‘사회 문제’로 분류되어 있었고, 다소 식상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내용은 결코 식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이 책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 바로 저자가 던진 그 질문이었다.
“도대체 왜 난 시간에 이렇게 쫓기기만 할까?”
저자는 활동이 다소 자유로운 직종에 종사하기 때문에(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해답을 구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엄격한 룰이 적용되는 직장에 근무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앞서 얘기한 자기계발서를 두서없이 훑어보는 일 뿐이었다. 솔직히 짜증이 일었다. 모든 걸 다 내 탓으로 돌리는 저술의 일관된 방향성, 거만한 느낌의 충고성 발언, 작심삼일이라는 보통 인간의 기본 성질(?)을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교과서적인 태도까지!
 
슬로우의 저자는 고맙게도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은 아니라고 위로해준다.(실제로 위로해주지는 않지만 저절로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된다. ^^) 조금 다른 문맥에서 요새 개인을 피로하게 하고 지치게 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들여다보는 책이 주목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보다 뒤처지는 건 개인이 게으르거나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나, 이제는 이것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는 것 같고 나도 여기에 동감하는 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요새 소위 ‘등골 브레이커’라는 잔인한 별명으로 불리는 ‘노스 페이스’의 창립자 얘기가 책에 등장한다. 이 사람 이름이 더글러스 톰킨스라고 하는데 매번 신제품을 출시해야만 살아남는 기업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며 자연 자원을 고갈하는 자신의 행위가 ‘네이처 브레이커’로 느껴졌는지 사업을 그만두고 남미의 파타고니아로 날아갔다고 한다. 사업가 기질이 체질인 건지 그는 그곳에서도 ‘막대한’ 돈을 들여 ‘막대한’ 땅을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막대한 돈을 들여 산 땅이 고갈용이 아닌 보존용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관심이 있는 주제였고, 저자의 여정도 흥미진진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내 안의 작심삼일은 어디 가지 못하겠지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그리고 ‘슬로우’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s*******g 2012.04.03.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잃어버린 당신의 진정한 속도를 찾아서...
"잃어버린 당신의 진정한 속도를 찾아서..." 내용보기
1844년 영국의 화가 조셉 말러드 윌리엄 터너는 '비 증기 그리고 속도'라는 그림을 발표했다. 그의 나이 70세에 그린 이 그림은 기차 여행중 기차의 빠른 속도로 인해 유리창에 그려지는 빗방울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 속도감으로 인해 달라지는 세계의 인상을 이렇게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었다.    터너의 그림에서 보듯 근대에 들어와 놀랄만큼 빨라진 속도
"잃어버린 당신의 진정한 속도를 찾아서..." 내용보기

 

 

 

 

 1844년 영국의 화가 조셉 말러드 윌리엄 터너는 '비 증기 그리고 속도'라는 그림을 발표했다. 그의 나이 70세에 그린 이 그림은 기차 여행중 기차의 빠른 속도로 인해 유리창에 그려지는 빗방울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 속도감으로 인해 달라지는 세계의 인상을 이렇게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었다.

 

 터너의 그림에서 보듯 근대에 들어와 놀랄만큼 빨라진 속도는 사람들에게 경이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체험이었고 단시간에 보다 멀리까지 가게 함으로써, 그렇게 그들의 세계를 보다 확장시켰으므로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사람들은 빠른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새삼 시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루 걸릴 거리를 한 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은 시간 단위들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생활은 이제 하루, 반나절 이런 단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빨라진 속도에 맞춰 시간 혹은 분 더 나아가서는 초 단위까지 나뉘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 우리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시간 테이블은 근대에 들어와 나타나게 된 일종의 발명품이었고 그것을 정형화시킨 이는 바로 미국의 프레데릭 테일러였다. 테일러는 1910년대 당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던 생산 공정에 표준화를 가져온 이로 유명하다. 그것이 가장 최초의 정형화된 일련의 공정이었으므로 '테일러주의' 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테일러는 생산 공정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공정을 세부적으로 단계를 나누어 그 순서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단순 반복 작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숙련성'을 노동자에게서 박탈하였고 그래서 보다 쉽게 노동자들을 교체 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무튼 테일러는 그 단순 반복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분단위까지 잘게 나누어 시간표를 짰는데 바로 그러한 시간의 분할이 오늘날 자본주의 시간적 생활양식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원인과 결과란 종종 되먹임의 과정이다. 원인이 촉발시킨 결과가 다시 그 원인을 가속화시키는 동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분과 초 단위까지 관리되기에 이르자 생활의 속도 역시 더욱 빨라지게 되었다. 시간 여행에 대한 영화를 보게 되면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도 과거의 사람이 현재의 도시로 왔을 때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장면이다. 그것은 과거에서 온 여행자가 자신의 시대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었던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을 놀란 표정으로 보게 되는 장면이다. 왜 영화들은 자주 이것을 묘사하는가? 바로 이 속도의 체험, 가속화된 시간의 체험이 과거의 사람에게 무엇보다 시간적 단절의 느낌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의 시간 리듬이란 근대와는 달라서 보다 더 긴 시간 단위 그러니까 하루나 한달 어쩌면 계절을 주기로 흘러갔으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가속화'란 어디까지나 근대에 의해 창출된 이른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각을 우리는 독일의 다큐멘터리 작가 플로리안 오피츠의 '슬로우'란 책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시간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요즘 부쩍 늘어난 시간 관리 상담가라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잡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아끼려는 개인의 노력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 문제를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보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많지 않습니다.(P.89)

 

 

 

 

 

 

 오피츠의 '슬로우'도 이와 같이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속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아니 이 책 자체가 오피츠가 살면서 가지게 된 하나의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그 의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든 한 번은 떠올려 보았을 그런 의문이다. 즉 '왜 이렇게 시간에 쫓기듯이 살아야 하는걸까?' '시간을 벌려 바쁘게 살아가는데도 휴식은 커녕 왜 더 바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지내야 하는 걸까? 대체 여기에 해결책은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다.

 

 기술적 발달로 절약한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는 간단하게 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손편지 하나 쓰는 것보다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이 두 배는 빠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편지 10통 쓰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면 이제는 30분이면 이메일을 10개 쓸 수 있죠. 그런 30분의 여유가 생깁니다. (...)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이메일을 10개가 아니라 50개 60개씩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린 셈이지요. (...) 우리는 이메일 기술의 발달로 시간을 벌었지만 그만큼 읽고 처리해야 할 뉴스도 많아졌기 때문에 이를 도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신기술의 발달로 얻는시간 보다 뉴스의 양이 훨씬 더 빨리 늘어나기 때문입니다.(P. 73~74) 

 

 

 그렇게 단순히 오피츠 개인의 의문이란 것을 넘어서 어쩌면 사회 보편적 의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의문들을 말 그대로 오피츠 스스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 '슬로우'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다큐멘터리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기 때문에 인터뷰가 중심이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파문처럼 보다 확장되는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즉 1장 '우리는 왜 불안하게 쫓기며 살까?'가 개인 차원의 시간 관리 문제를 다뤄 개인적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밝혀낸다면 2장 '속도와 경쟁에 집착하는 세상'은 거기서 보다 확장되어서 사회적 차원을 다루는데 즉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사회가 이미 구조적으로 가속화 사회이기 때문임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논리가 시간을 부족하게 만드는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은 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불가능한 겁니다. 우리를 몰아세우는 것은 비단 자본주의나 경제만은 아닙니다. 경쟁 논리도 한 몫 거들죠. (...) 바로 이 경쟁 논리가 이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며 이 경쟁 논리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언제가는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 세상이 조금씩 빨리 돌아가고 있으며 우리도 그에 맞춰 빨라져야 한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빨라진 속도는 이제 활동의 자유를 가져다주지도 못하고 자기 발전에 대한 희망도 심어주지 못합니다. 압박은 점점 심해지는데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지요. (..) 우리는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빨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P.112 ~ 113) 

 

그리고 3장 '행복과 속도, 그 대안을 찾아서'는 이미 구조로 자리잡은 가속화 사회에서 과연 그 속도에서 해방되어 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진정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 그 대안을 탐색한다. 이 모든 과정은 오피츠 개인의 체험으로 접속되어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경험과 함께 보다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의문에다가 그 과정이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의 해답 찾기 과정이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게 그리고 마치 내 문제 처럼 그 여정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그래서 오피츠의 고민과 더불어 첫 페이지를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앞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거기다 대답의 추구 대부분이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각 사람들의 체험을 통하여 보다 더 생생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다.

 

  이 책은 특정한 대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사람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주된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그들의 육성으로 생생한 체험들을 들으면서 독자 자신이 자기에게 맞는 대안들을 찾아 가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꼭 건네는 충고는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한계를 알아라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얼마든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는 과욕을 부리지 말 것을 경고한다. 바로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식의 내겐 한계가 없다는 과신이 속도의 강박을 불러온다고 한다. 그래서 엄연히 존재하는 육체의 한계를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은 신체와 정신의 피로만 가중시킨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기 절제'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겸허히 내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렇게 스스로 제동 장치를 두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자세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단 이것은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사회 역시도 이러한 제동 장치가 필요한데, 오늘의 거대한 위기를 초래한 신 자유주의가 바로 그러한 제동장치가 없는 체제였기 때문에 이 '자기 한계의 긍정에서 나오는 절제'라는 제동 장치는 정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가속화는 장기적인 안정이 보장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안정은 다시 제동 장치의 기능이 원활할 때 보장되지요. 최근 수 십년간 지속되는 신자유주의는 이 제동장치를 체계적으로 제거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안전도 사라졌죠. 신자유주의 정치는 처음부터 자본의 흐름뿐 아니라 교육제도와 노동시장에서도 제동장치를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제동 효과가 있거나 유연성을 제한하는 모든 것. 그리고 자본이나 상품, 투자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두 제거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P. 132)

 

 '슬로우'는 한번쯤 삶이 가진 바쁜 속도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느림'을 추구하는 책이 아니라 '속도'라는 것을 전혀 다르게 보기를 제안하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지는 속도의 강박은 삶의 충실에 대한 강박과 맞닿아 있었다. 즉 우리가 그렇게 분초를 다투며 바쁘게 시간을 메우는 것은 그것이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어'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속도의 집착이 삶을 보다 충실하게 만들어준다고 여겼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거기서 주로 성공한 엘리트들의 삶은 자주 회사의 복도를 부단히 이동하는 가운데 정신없이 말을 주고 받는 장면으로 묘사되곤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충실은 삶이 가진 시간의 아주 작은 단위조차 허투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슬로우'는 그것이 일종의 강박이며 오해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느 만큼의 속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어느 만큼의 속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는어느 만큼의 속도가 필요한가? 무엇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가?" 입니다.(p. 137)

 

 말하자면 '슬로우'는 이렇게 보다 바람직한 삶을 위해 당신으로 하여금 제대로 질문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제대로 된 해답은 늘 제대로 된 질문이 있는 가운데 있어 왔다는 건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l****1 2012.06.08.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슬로우, 우리의 우울한 인생에 대한 원인을 짚어주는 책.
"슬로우, 우리의 우울한 인생에 대한 원인을 짚어주는 책." 내용보기
슬로우         1. 책을 읽기 전.   슬로우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봤을 때, 느림의 미학이라는 내용이거나 혹은 단전호흡과 같은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책을 읽는 걸 즐기는 편이다. 처음에 책 겉표지를 봤을 때 에는 그렇게 호기심이 가지 않았다. 단지 또 말도 안되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인간 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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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1. 책을 읽기 전.

 

슬로우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봤을 때, 느림의 미학이라는 내용이거나 혹은 단전호흡과 같은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책을 읽는 걸 즐기는 편이다. 처음에 책 겉표지를 봤을 때 에는 그렇게 호기심이 가지 않았다. 단지 또 말도 안되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인간 본연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훈계조의 내용일 거라는 혼자만의 억측을 했기 때문이다.

 

 

2. 책을 읽고 나서

 

 

이런 말을 하면 무지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안이 되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하고 싶은 책이었다. 누군가 책 좀 추천해줘라고 하면 호들갑 떨면서 읽으라고 달려들 거 같은 내용의 책이었다.

 

우리가 왜 인생에서 갈증을 느끼는지. 심하게 생각하면 자기 혐오증에 걸리는 지에 대해서 설명이 되는 책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세계의 흐름까지 이제 잡아내야 할 때라는 책.

 

 

 

사람들은 시간을 보내면서 참 시간이 짧다고 생각을 한다. 언제나 급하고 언제나 시간은 모자란다. 일단 나의 상태는 그렇다. 느린 걸 굉장히 싫어하고, 그럴 때 마다 내가 안달이 나서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릴 때가 있다. 난 그걸 내가 유별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줄곧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찾아보곤 했다. 이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서말이다. 그 중에서 가장 타당성이 있었던 책이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란 책이었다. 그 책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 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나이가 들면서 일정한 패턴이 생긴다. 그로 인해서 결국은 지루함을 느끼고 같은 것을 보기에 더 이상 자극이 없기에 그 만큼 시간 속에서 흥미롭지 않아서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태 시간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에 대해서 알려달라는게 아니라 그런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 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슬로우라는 책은 일단 처음에 시간으로부터 힘든 현대인의 생활, 그 다음에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대안점에 대한 것으로 책이 쓰여졌다.

 

우리는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을 한다. 그 날 잠에 들면서 정말 죄책감에 휩싸이면서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나에 대해서 반성을 한다. 내일은 내일 나름대로의 일이 존재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아쉽게 보낸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시작한다. 일종에 자아비판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된다면 ‘탈진’하게 된다. 보통은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왜 나는 그 일을 하지 못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을 때 무엇보다 문제는 ‘내가 보낸 시간의 비효율성’이라고 느끼는 것이고 곧 나는 ‘낙오자’로 느끼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즉, 주체는 나라고 가정하는 시각이지만 결국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의해서 살아가는 꼴이 되어버린다.

 

 

책은 이렇게 설명을 한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많은 혜택을 받고 산다. 인터넷은 어딜가나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고 걸으면서 이메일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의 손에는 이제는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잠시 표를 끊으러 줄을 서거나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핸드폰으로 많은 일들을 처리하려고 한다.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하루에 이메일 수십통을 보내게 되고 한 이메일을 보내는데에는 몇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편하다.

 

이 편리하고 빠른 세상에서 왜 인간은 아직도 자신의 업무 처리가 느리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걷기만 하면서 살았을 때에는 하루에 대충 예를 들면 10키로 정도를 걸을 내용의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동차가 생기고 비행기가 생긴 뒤에는 활동범위가 늘어난다. 수천 키로 미터를 움직이는 생활을 하게 되는 거다.

 

즉, 편리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의 일을 더 해야하는 거고 편리한 세상에 맞추어 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늘어났다. 결국 우리는 편리해 진 게 아니다. 그저 일을 더 하게 된 것이다.

 

마치 기술의 힘을 빌려 우리가 누리는 세상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결국은 기술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은 분야는 무궁무진하게 늘어나면서 그 모든 것을 처리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데,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비하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탈진증후군’

 

 

결국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조급증을 낳게 한다. 그리고 속도라는 개념이 남과 비교했을 때에 얻는 것이라 더더욱 주체성을 잃고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된다.

 

어떠한 일을 처리하다가 포털사이트를 뒤적여보는 습관이 생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조마심을 낸다. 할 일을 잠시 접어두고 인터넷을 한다.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다. 다시 업무에 복귀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윈도우시스템 처럼 창을 내려놓고 다시 올리면서 동시에 일을 할 수 없다. 멀티태스킹이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렇다. 무슨 일을 하다가 불현 듯 생각나는 것에 갑자기 인터넷을 하고, 인터넷 url을 다라 네버엔딩월드에서 헤엄치는 꼴이다. 끝이 없는 그 바다 속에서 끝을 보려고 그렇게 집요하게 파고들다보면 결국 아무런 이익도 없이 하루가 간다.

 

명상과 집중함으로서 인간은 구조적 시스템보다, 컴퓨터 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일을 해낼 수 있는건데 그런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간은 주체적인 삶이 필요하다.

 

 

 

 

내가 소름이 돋았던 부분이 있다. 예전에 지붕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서 ‘이게 다 생리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생각이 난다. ‘이게다 기술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는 결국 모든 정보를 취득할 때에도 시간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한다. 시간이 아깝거든. 마치 usb를 머리에 꼽아서 바로 입력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다못해 책을 읽더라도 시간이 걸리고, 사랑하는 이와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또 음식을 만들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이제는 그런 시간이 걸리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 와중에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취득할 수 있는 게 소비다. 소비는 돈을 지불함과 즉시 바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화끈한 방법 중 하나.

 

 

내가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건, 현대사회의 비만문제도 이 문제에 대해서 먼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기 위해선 시간을 투자해 노력을 해야 한다. 스스로에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그런데 식사, 입에 넣음으로서 바로 즉시 배가 불러지는 포만감은 이러한 속도, 빨리라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빨리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채우고 싶어 한다. 갈증을 느낀다. 날 채우고 날 안심시켜주는 것중에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성취는 먹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더 비만화 되는 것 같다. 결국 이 모든게 기술 때문이다.

 

 

 

저자는 인터뷰를 한다. 시간에 쪼들려 사는 세계로 간다. 그런 세계에서는 오로지 컴퓨터가 일을 하면서 점점 사람은 찾지 않게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퇴출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런 사회에 대해서 멀지 감치 나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집중하기로 한다. 산중턱에서 살면서 소젖을 짜면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그런 인생에 대해서 자부심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고민을 한다. 내가 그럴 수 있을 건가.

 

 

책의 말미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 타계를 하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돈이 필요 하다는 말을 한다. 부자에서부터 가난한 이까지 기본적인 생활비가 갖춰져야 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모두 다 자멸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기본적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일을 하지 않을 거니...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편해 진거 같지만 그에 맞추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늘었다. 일이 많다고 생각이 들면 마음이 조급해 지고, 결국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에는 자신에 대한 비하로 사람들은 우울해진다. 실제 우울증의 원인이 이런 점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한다. 기술은 광속이상으로 발전하고 쏟아지는 정보사이에서 인간은 소외된다. 그 일은 인간이 아닌 기술이 함으로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사실 이런 체제로 가다간 지구가 망해버릴 수 있을 거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모든이가 조급해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하지만 다행이도 이런 시간에 대한 고민을 한 두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건 그걸 방증해 주고 있는 걸 거다.

 

어떻게 하면 GDP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사람들에게 쉼의 주말을 늘림으로서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그 행복지수 때문에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하게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미 세계에서는 시간정책이라는 것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즉, 세상은 앞으로 기술의 발전으로의 브레이크!를 외치는 풍조가 생길거고, 이것이 제 3의 길이라고 제안을 하고 있다.

 

시간을 얼마나 잘 쪼개서 사는게 인생의 성공 키라고 했던 시대는 갔다.

 

 

 

 

 

책을 읽으면서 사회적 우울감이 이런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에 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실 원인이 없는 우울감은 그저 인간이 약해 빠졌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책만 해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견고하고 강한 마음을 가졌을 건데 스스로 나자신을 봤을 때 얼마나 연약한지.

 

하지만 그 원인은 인간이 느리거나 멍청한게 아니라 잘못된 구조라고 하면서 이 구조를 이제는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들은 매우 일리가 있어서 든든한 지원군이라도 얻은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울하고 자책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시대 흐름을 보면 복고라고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이 생긴다. 하지만 여태 시간에 대한 개념은 ‘ 시간은 돈’이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일을 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스템을 버리고 우리 이제 자연으로 들로 돌아가 원시 시대 사람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 지에대한 적정속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 적정속도를 잡아내는 사람이야 말로 무한경쟁에서 승리하는 자이며,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깜냥이며, 어느 정도의 행복감을 올리기 위해선 앞으로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 이 책을 선정한 이유:

 

단순히 느리게 살아라는 뜬구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면서 달래줄 수 있는 책이라. 그것도 매우 논리적인 달램이다.

 

+ 인상깊은 구절:

 

어느정도의 속도로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무엇이 이런 삶의 대안인지를 물어봐야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야를 넓혀 쳇바퀴 건너편에 어떤 모습의 삶과 사회가 존재할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 함께보면 좋을 책: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베 드라이스마 저.

 

 

s*****y 2012.05.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시나브로, 느림, 천천히 생존을 위한 정언명령
"시나브로, 느림, 천천히 생존을 위한 정언명령" 내용보기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삼척동자가 다 안다. 그 뻔한 승부의 결과와 애당초 성사되기 어려운 달리기 경주의 교훈도 잘알고 있다. 삐딱한 시선에서 거북이는 어떻게 총알 탄 우샤인 볼트인 토끼를 이길 수 있었을까? 예측컨대 아마 거북이는 토끼를 달리기의 경쟁상태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토끼를 이기고자 하는 강한 승부욕이 없었기 때문에 토끼의 빠르기에 자신의 느린 발걸음
"시나브로, 느림, 천천히 생존을 위한 정언명령" 내용보기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삼척동자가 다 안다. 그 뻔한 승부의 결과와 애당초 성사되기 어려운 달리기 경주의 교훈도 잘알고 있다. 삐딱한 시선에서 거북이는 어떻게 총알 탄 우샤인 볼트인 토끼를 이길 수 있었을까?

예측컨대 아마 거북이는 토끼를 달리기의 경쟁상태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토끼를 이기고자 하는 강한 승부욕이 없었기 때문에 토끼의 빠르기에 자신의 느린 발걸음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단지 거북이는 자신의 속도로 자신과 경쟁하며 목표점을 향해 걸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승리했다.

빠른 속력이 최종의 승리자로 만들지 않는다. 인생백년을 내다보는 삶의 도도한 여정에서 빠름보다는 느림의 철학이 필요한 시대이다.

저자인 플로리안 오비츠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이자 작가이다.

직업의 특성상 최종의 결과물을 산출하기 위해 시간과 인적자원을 적절히 배분해야 하며,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정보통신 기계의 절대적인 의존과 본인 스스로 멀티테스킹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는 반복적인 작업 속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인터넷과 다양한 IT기기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간 부족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또한 삶의 여유로움은 찾을 수 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의문과 회의 속에 저자는 결국 왜 바쁜가의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화두를 풀기 위해 전문가들을 찾아 나선다.

시간관리 제왕, 탈진 증후군 전문가, 디지털 세계와 단절한 기자, 시간 연구자 등을 차례대로 만난다.

시간 관리자 자이베르트는 '국제적인  경쟁에 관한 한 더 빨라져야합니다. 생산성이나 효율성, 신속성에서 말이죠."라며 속도경쟁을 부추기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시간과 전쟁을 벌이는 알렉스 륄레 기자를 만나는데 그는 인터넷과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생활을 6개월 정도한 인물이다. 그 또한 속도의 가속화를 인해 인터넷과 휴대폰 중독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별종인간으로 취급할 정도로 디지털 기기를 멀리했던 그는 시간으로부터 해방, 속도로부터 해방을 만끽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보다 더 인간적인 교류에 집중하게 된다.

오늘날 끊임없이 인터넷 세계를 부랑자처럼 떠돌아 다니기도 하고 한시라도 스마트 폰에서 눈과 엄지 손가락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사람과 사람간의 정서적인 교류는 사라지고 오로지 파편화된 개인만 남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외로움과 쓸슬함을 IT 기계를 통해 달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탈진 전문가의 만남을 통해 현대인의 병페를 발견한다.

" 사람들이 힘을 소진하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은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심이 탈진 증후군을 불러일으칸다는 것이다.

탈진 전문가의 진단은 시간 연구자인 가이슬러 교수의 충고와 상통한다.

오직 속도와 성장, 성과만으로 자신의 삶을 탈진시키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현재의 경제 체제는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점점 빨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해결방안으로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돈을 더 많이 벌겠다는 생각, 더 많이 쓰야 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억대 연봉자인 '루디'의 체험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다.

루디의 시간은 오로지 성공과 높은 보수, 이익과 목적달성을 위한 사교적인 만남이었고 진정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그는 시간의 노예였고 주인된 삶을 영위하지 못한 그는 심각한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된다.

그의 삶의 방향은 알프스에서 극적 전환을 가진다.

그곳에서 오롯히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시간의 흐름을 오감을 열어 함께 느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루디가 금융의 정글에서 시계바늘에 온몸이 난도질 당하며 살아갔더라면 영원히 시간의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속도 가속화의 화신이며 강한자가 약한자를 잡아 먹는다라는 고전적인 속담을 재해석한 '빠른 자가 느린자를 잡아 먹는다'라는 기업 컨설팅 회사의 사장의 인터뷰는 오늘날 유럽과 미국의 금융자본의 위기를 단적을 보여준다. 마이 포흐틀러라는 여사장은 속도의 무한 가속화를 통해 많은 금융이익을 치마 속으로 탈취하고자 하는 탐욕의 돼지에 불과하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며 시간 경쟁이라는 개념으로 기업의 이익을 추구한다. 로이터 통신의 유럽본부도 그녀와 유사한 빛의 흐름으로 세계를 달군다.

이 여사장의 인생자체가 속도전으로 불릴 만큼 빠른 진급과 성장을 이루었고 이미 50대 초반에 세계적인 기업 컨설팅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사장이 되었다.

과연 그녀가 언제까지 금융의 밀림에서 암사자로서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말 속도의 속도를 따라가지 위해 자신의 속도를 높이다 보면 결국 루디의 삶처럼 스스로 무너지거나 내일의 아침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편 속도와 성장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노스페이스의 창업자 톰킨스의 생태계 보호 활동도 그녀와 다른 느림의 삶을 보여준다.

저자는 시간부족의 원인과 속도 경영의 세계적 흐름을 살펴본 후 그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이미 알프스의 산장지기로 새 삶을 시작한 금융 전문가 출신 루디 뿐만 아니라 자연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스위스의 농부가족.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 부탄을 제시한다.

국민행복지수가 국가경영의 핵심인 나라. 이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 모든 정책결정의 기준은 '부탄국민이 행복한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개발과 성장을 통한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아닌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는 생태환경적 개발 방식과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는 부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가난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나친 속도경영과 환경 파괴적인 개발을 자제하고 인간과 자연이 어울리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아직도 부탄은 그 해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다소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모범적인 정답이라기 보다 독자들에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차원에서 제기하고 있다. 부탄 외에 국민이 행복한 국가는 많으며, 루디와 톰킨스와 스위스 농부 가족 외에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물들은 많다. 단지 시간 부족과 속도 가속화로 인해 제대로 된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는 셈이다.

 

끝으로 개인적인 차원의 대안이 아닌 정책적 차원에서 혁명적인 방안으로 '조건없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적으오 현대인들이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의식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침부터 새벽까지 속도를 높힐 수 밖에 없고 결국 자아의 파괴는 물론 공동체적 삶마저도 말살될 수 밖에 없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은 "모든 시민들에게 법적으로 균등한 경제적 지원을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미 1500년대 부터 제기 되었고 이미 독일에서는 성인에게 매월 200만원씩 지급하자는 정책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혹자는 무위도식으로 게으름뱅이들만 대량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처음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주민들은 생업에 더욱 집중하였고 여가 시간에 본인의 창의력을 높이는 활동을 할 뿐 아니라 이웃간의 상부상조가 잘 이뤄졌다고 한다.

이후 어느 정도까지 발전이 이뤄졌는지 알 수 는 없으나 무한 경쟁과 속도의 가속화를 조절하고 인간적인 삶을 부활하기 위해서는 생존에 대한 위협을 국가차원에서 보장해 준다면 사람들은 시간을 쫓기지 않고 자신을 위한 시간, 가족을 위한 시간, 지역을 위한 시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웰빙과 함께 느림이라는 새로운 생활 방식이 한 떄 유행처럼 번졌으나 먹고 사는문제로 인해 다소 시들해진 상태이다. 각 지방별로 제주의 올레길과 유사한 느림의 길들이 만들어지고 속도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의 힐링 쉼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고도 성장과 신자유주의의 체제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빨리 빨리의 속도전'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의 자살율,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인 노동조건, 해고와 실직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우울한 자화상은 더 이상 개인의 자기수양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사회는 성장이라는 괴물을 잡기 위해 다시 속도를 높히려 한다. 속도를 따라가는 자는 속도의 바람으로 사막 속의 모래가 흩어지듯 사라져 가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자아의 존엄성을 잃고 절망하고 있다. 이런 광란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자기변화 밖에 없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j****i 2013.02.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긍정,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긍정,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내용보기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강제성을 띤 분절된 시간 속에 살아간다. 6교시로 짜인 일상 속에서 한 시간 단위로 사는 법을 배우고 그것이 몸에 익을 때 즈음에는 6교시 앞뒤로 아침‘자율’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 붙어 엿가락처럼 늘어난 시간을 견디는 법을 익힌다(이 훈련은 후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밥 먹듯이 하게 되는 야근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대비시킨다). 학교가 되었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긍정,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내용보기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강제성을 띤 분절된 시간 속에 살아간다. 6교시로 짜인 일상 속에서 한 시간 단위로 사는 법을 배우고 그것이 몸에 익을 때 즈음에는 6교시 앞뒤로 아침‘자율’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 붙어 엿가락처럼 늘어난 시간을 견디는 법을 익힌다(이 훈련은 후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밥 먹듯이 하게 되는 야근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대비시킨다). 학교가 되었든 회사가 되었든 권위 있는 기관들은 시간을 쪼개어 쓰라고 가르친다. 사람들은 한 시간 단위도 모자라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시간은 잘게 나눌수록 더 많아지는 게 아니라 더 없어지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시간의 뒤꽁무니를 쫓느라 마음은 더욱 바빠진다.

 

“속도와 효율”이라는 무시무시한 주문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비단 세계적 기업의 컨설턴트나 금융전문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뉴스를 전하는 기자들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방과 후 학원을 네다섯 개씩 전전하는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도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간의 노예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먹고 자라는 사회에서 “속도와 효율”의 시간은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의 절대성은 주술과도 같아 감히 바깥의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에게 『슬로우』 같은 책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 책은 시간을 다르게 살아내기 위해 “속도와 효율”의 시간에 제동을 걸고 잠시 멈춰 서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예컨대 시간의 가속화에 앞장서던 전직 금융 전문가 루디와 노스페이스 창업자 톰킨스는 “속도와 효율”의 한계를 몸소 체험하고 자연에서 대안을 찾은 사람들이다. 한편 가난한 나라 부탄의 높은 행복지수는 우리가 시간과 기꺼이 맞바꾸는 돈이 행복의 절대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가 시간에 쫓기면서 느끼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돈을 조금 덜 갖는 한이 있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살라고 충고한다. 이러한 생각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저자의 제안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끄고 휴식을 취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스스로 적막한 시간을 만들고 그 속에 머무는 자신을 견뎌내는 것이다(p. 259).”

s******h 2012.04.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정한 삶의 속도를 제안하는 책 '슬로우'
"진정한 삶의 속도를 제안하는 책 '슬로우'" 내용보기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도 어느덧 오년째.. 마치 잔인한 육식 동물들이 가득한 정글의 한가운데 뛰어든것 같은 긴장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진다. 남보다 먼저 더 빨리, 더 멀리 뛰지 않으면 잡아 먹히고 마는 약육 강식의 세계.   무엇이 나를.. 아니 지금의 우리를 숨가쁜 정글속으로 밀어넣었는가??   정글 속, 자기 개발의 속도를 부축이는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 유독
"진정한 삶의 속도를 제안하는 책 '슬로우'" 내용보기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도 어느덧 오년째.. 마치 잔인한 육식 동물들이 가득한 정글의

한가운데 뛰어든것 같은 긴장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진다.

남보다 먼저 더 빨리, 더 멀리 뛰지 않으면 잡아 먹히고 마는 약육 강식의 세계.

 

무엇이 나를.. 아니 지금의 우리를 숨가쁜 정글속으로 밀어넣었는가??

 

정글 속, 자기 개발의 속도를 부축이는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 유독 눈에 띠는 제목 "슬로우"

별다른 기대 없이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속엔 다른 대안의 세계를 보여준다.

 

"왜 이리도 시간이 부족한 것일까?"라는 필자의 의문에서 시작한 여행은 시간 관리 제왕의 만남에서

부터 세계적인 기업 컨설턴트, 산골 농장의 바츨리 가족, 국민 총 행복을 선포한 나라인 부탄까지

다양한 사람과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중 유독 나에게 감명을 준 것은 황무지로 떠란 노스페이스 창립자의 얘기에서였다.

'더글러스 톰킨슨' 성공한 기업가로 살아가던 이 노스페이스의 창립자는 어느날 끊임없이

신제품을 생산하며 추월 차선을 달리던 삶이 미친짓이라고 깨닫는다.

모든 것을 던지고 떠난 그는 칠레의 광활한 황무지를 사들여 자연보호 구역으로 만드는 작업에 한창이다.

특히나 수명이 4,000년이나 되는 '알레르세'라는 측백나무를 키우는 프로젝트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수천, 수만년을 살아가는 자연이라는 시간의 폭. 우리는 광활한 자연속에 미비한 모래알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1분, 1초를 다투며 살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년을 품고 살아가는 자연 속에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용하고 천천히 그리고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슬로우'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확인하지 않은 3개의 문자와 17개의 이메일을 알리며 깜빡거리는 블랙베리의 전원 버튼을 지긋이 눌러본다.

g*********e 2012.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휴식의 이유 '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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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뒤돌아 보지 않고 이른 아침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길 몇년..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고 나서야 내가 너무 바쁘고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쉬고 있는 요즘 만난 '슬로우..' 내가 이 책을 조금 빨리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 처럼 모든것을 버리고 나의 삶을,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났을까..   최소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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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뒤돌아 보지 않고 이른 아침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길 몇년..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고 나서야 내가 너무 바쁘고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쉬고 있는 요즘 만난 '슬로우..' 내가 이 책을 조금 빨리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 처럼 모든것을 버리고 나의 삶을,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났을까..

 

최소한 모든 걸 버리진 못하더라도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는 마련해주었을 것 같은.. 그런 책..

 

'슬로우'는 나의 무모한 휴식에 훌륭한 이유가 되주었다..

 

날보고 부러워 하는 직장인 친구들에게 건강한 일탈을 권해주기 위해 이 책을 권해본다..

 

휴식이 나쁜것이 아니다는 것을.. 조금 느리게 간다고 그것이 잘못된것이 아니라는 것을..

j****0 2012.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슬로우- 어쨌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슬로우- 어쨌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내용보기
더글러스 톰킨스라는 양반이 노스페이스의 창립자 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띠지에 제대로 낚였다.  - 플로리안 오피츠(이 글의 저자)인 줄 착각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자기계발서 내지는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같은 에세이나 어쩌면 생태 환경학 같은 종류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와 감독(다큐멘터리)일을 하
"슬로우- 어쨌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내용보기

 더글러스 톰킨스라는 양반이 노스페이스의 창립자 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띠지에 제대로 낚였다.  - 플로리안 오피츠(이 글의 저자)인 줄 착각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자기계발서 내지는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같은 에세이나 어쩌면 생태 환경학 같은 종류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와 감독(다큐멘터리)일을 하면서 느낀 가속화에 대한 회의, 시간은 도대체가 왜 부족한 것일까? 속도와 경쟁에 집착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만나는 여정속에서 저자가 이해 못하는 것과 깨달음, 불안, 성찰, 그리고 다소 파격적인 대안까지도 오롯히 담아내는 인문학적인, 그런 책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기에 가까운 멀티테스킹 작업과 우선 순위를 정하여 처리하는 일들도 결국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분 초를 쪼개 쓰는 사람들, 100만분의 1초 빠른 뉴스를 전송하기 위해, 전송받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에 사람은 없다. '우리가 이러한 속도전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속도전은 누구에게 유익한가? 더 나은 세계와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난 몇십 년 동안 끊임없이 개발된 기술과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 효율성으로 절약한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그 시간을 훔쳐가기라도 한 것일까?' - p19

  

 그리고, 늘 시간에 쫒기고 불안해 한다. 더 많은 정보를 알기 위해 사람들은 인터넷에 들어 가지만 곧 길을 헤매인다. 싸이월드의 파도를 타듯 링크를 타고 돌다 보면 애초에 내가 왜 접속했는지에 대해 잃어버리고 만다. 끊임없이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고 한 페이지 정도 되는 글은 스크롤을 내려버려 본인이 원한다고 하는 정보만 찾아 읽는....... 정신은 무감각해지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소통에 매달리지만 여전히 단편적인 SNS나 채팅같이 빠르게 더욱 빠르게 나의 관심사를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다닐 뿐이다. 모든 것을 관장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탈진.... 허무, 낙담,   "인생은 선택, 한계를 인정하고 집중하세요."  디지털 세계와 6개월간 단절한 기자의 인터뷰는 생경하다.

 

  거래소에서 주식을 사람이 마우스 클릭질로 판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일부 개미들은 그렇게 하겠지.......  초당 1,000건이 넘는 주식들이 마이크로 초단위로 변동하는 이익에 따라 기계적인 프로그램 매매로 사고 팔린다.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곳.  기계가 이미 점령하고 인간은 쓸모없어졌다. 사람을 위해 기계가 만들어졌으나 되려 사람의 가치가 필요없어지는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 이렇게 까지 빨라져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 - 우리가 아니고 아마 그.. 아주 극소수의 이익을 챙겨가는 그들(유한한 생명인데 돈을 싸들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들어갈 것인가.) "인간의 일상 생활과 복지에 의해 좌우되어야 할 경제가 왜 컴퓨터의 통제에 맡겨져야 하는 걸까?" -p129  알고 있으면서도 충격적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참담하다. "나는 왜 사람들이 속도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는 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태연했다. "모두 그렇게 하니까요. 기술을 개발하니까 그 기술을 이용하는 겁니다." -p 131

 

  그렇다면 이 가속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불안해 하지 않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대안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다큐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활자로 날아 든다. 제도권을 탈출해 산장에서 감자를 깎으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금융 전문가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분주한 일상과 의도적으로 거리 두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행복....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 문제는 제도권 안에 벗어나기가 그의 말처럼 거짓말처럼 저지르기 쉽지 않다는 것...  그러면 스위스 산골 농장에서 소와 양을 키우는 바츨리 가족은 어떠한지.... 이들은 저자가 보기에 바람직한 삶을 위한 투쟁이라 보는 것 같다. 1년 365일 하루의 휴가도 없이 새벽 세네시에 일어나 젖을 짜고 일을 시작하는 이 사람들은 그 일을 행복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삶을 살 수 없지 않는가. 저자가 찾는 것은 현재이 가속화된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대안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나는 4,000년 후를 기대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노스페이스 창업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본다. 톰킨스의 급진적인 사명감만이 지구와 인간을 다시 건강한 속도로 끌어내리는 대안이 될까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다시 품으며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인 부탄으로 떠난다.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민총행복론의 실제 삶을 들여다 보고 과감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대안으로 내 놓은 것이 조건없는 기본소득 즉, 빈부남녀를 가리지 않고 월 200만원의 기본금액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18세 미만의 아이는 절반의 금액을 국가에서 보조해 주어 삶의 가치를 높이자는 것인데 재원확보가 불가능하고 물가가 올라 소비와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며 필요에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이 돈을 받는다면 일을 하려 들지 않고 놀 것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확실히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유토피아적 생각이다.

 

   문제는 인간이란 생물 자체가 스스로의 이익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바 의식이 성숙되고 인격이 높아져도 현실적인 내 문제로 다가오면 쉽게 동조하지 않거나 극렬하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일견 수정된 공산주의 체계라고 보여지는 - 비록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갖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행복을 구현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 이런 논지는 아무리 인식 능력이 뛰어나게 진화할지라도 인간 본연의 불완전체로 인하여 가능한 현실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내가 낸 세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 안하고 탱자탱자하면서 노는 멀쩡한 녀석들을 위해 (걔네 행복과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곰곰히 생각해 보자면 무척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행복의 기준이 모두 다른 시점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저자는 행복한 삶에 필요한 공식이나 가속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대안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해야 하며 주어진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가속화를 멈춘다는 것은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고 그것은 시간을 절약하거나 건강하게 주말을 보내는 습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생은 유한하다. 질병과 죽음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올 수 있다. 그때가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지칠때 까지 일하던 생활? 그럴 수는 없다. p 259

 

  이 책에서는 어떠한 답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각기 다른 삶을 들여다 보면서 묻고 회의하고 스스로 깨닫고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가속화에 대한 논의가 너무 개인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인 흐름을 돌려 볼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거시적인 대안을 생각했다면 너무 큰 기대였을까....  어쨌거나 [슬로우]는 그 시작점에 서는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고 시발점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h****n 2012.05.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리뷰] 슬로우 "나는야 한 때 미련했던 동시 수행자"
"[리뷰] 슬로우 "나는야 한 때 미련했던 동시 수행자"" 내용보기
" 오늘날은 속도의 증가만으로 빨라지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동시 활용'과 '시간의 압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요즘 말로는 '멀티태스킹'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두뇌는 진정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두뇌는 한 번에 한 가지씩 순서대로 처리하게끔 프로그램화
"[리뷰] 슬로우 "나는야 한 때 미련했던 동시 수행자"" 내용보기

" 오늘날은 속도의 증가만으로 빨라지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동시 활용'과 '시간의 압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요즘 말로는 '멀티태스킹'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두뇌는 진정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두뇌는 한 번에 한 가지씩 순서대로 처리하게끔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알다시피 인간의 두뇌는 뛰어납니다. 그러나 깊은 사고가 필요하고 철저한 분석이 요구되는 일은 시간 압축이나 멀티태스킹으로 처리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집중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멀티태스킹' 외에 가속화를 추구하는 두 번째 마법의 주문은 '유연화'입니다."

(...)

가이슬러 교수는 이렇게 유연하고 완벽하게 멀티태스킹에 맞춰진 사람을 '동시 수행자'라고 불렀다.

p.82, 슬로우, 플로리안 오피츠



과거에 나는 모 분야 전문지 기자였다.


(망할) 빠른 적응력 하나 덕분에 입사한지 오래되지 않아 나는 회사에서 원하는 '유연하고 완벽하게 멀티태스킹에 맞춰진 동시수행자' 반열에 금세 올랐다. 소 맥을 촬촬 마는데 기가 막힌 재능을 자랑하던 윗선들은 '이 상태로 얼마나 오래버티는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며 칭찬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들을 입버릇처럼 (술자리에서만) 뱉곤 했다. 거북한 속을 달랠 새도 없이 어미새의 마음으로 새벽같이 나가 기삿거리를 조근 조근 물어 왔으며, 밤 11시가 넘도록 취재원과 이바구를 떨며 손으로 그의 뒷통수를 치는 야마를 뽑아냈고, 그 시간까지 이자카야에서 (사케도 아닌) 소주를 마시며 진상을 부리는 사수가 자리에서 (알아서) 일어날 때까지 인내심을 시험하며 엉덩일 붙이고 앉아있었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출근하자마자 어젯 밤의 취재원으로부터 애미애비에게도 못 들어본 상소리를 이쪽 귀에서 저 쪽 귀로 흘려 들으며 또 다시 그의 뒷통수를 깔 그 '한 마디'를 물기 위해 은그은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욕은 또 왜 처먹고 앉아 있냐며 할 일 없이 갈궈대는 팀장 앞에서 그저 네, 네 하고 뒤를 돌아선 부랴부랴 가까운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는데, 그 와중에도 어느 경쟁지의 누가 먼저 썼느니, 마니, 등등 따위의 개소리는 위장 운동을 전혀 도와주지 않았으며, 아무리 들쑤셔도 취재 거리가 나오지 않는 어느 날 오후에는 쓸데 없이 부풀어오르는 자책감으로 몹시도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이 고장났다. 그리고 만세를 외쳤다. 그만뒀단 말이다.


다 만 그 만세를 병원에 드러 누워서 외쳐야 했다는 사실, 속도와 경쟁에 집착했던 한 때의 미련했던 '동시 수행자'로서 그지같은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사실, 그리고 하르트무트 로자 교수가 말하는 '암세포'의 살아있는 수혜자로서 또 다른 성격의 묘한 자부심을 같는 지금 이 순간이 씁쓸할 뿐.뿐.뿐(뿡!).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그만뒀거든. 내 동기들은 달디 단 시간의 주권을 편집장과 발행인, 그리고 위대하신 스마트폰님게 빼앗긴 채 여전히 썩고 있거든. 오랜만에 전활해서 실컷 놀려줘야 할까보다. 조만간 단골 이자카야엘 데려가 달디 단 사케를…!  



우 리 사회의 문화와 구조, 제도에는 가속화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연법칙에 따른 한계도, 만족도 모르는 이런 냉혹한 현실에 대해 나는 두려움과 염려를 느낍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위력을 드러낼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암세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p.136-137, 슬로우, 플로리안 오피츠



 


s********8 2012.06.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한경쟁 시대 '대안'을 찾자! 코끼리의 스피드는 어떠할까?
"무한경쟁 시대 '대안'을 찾자! 코끼리의 스피드는 어떠할까?" 내용보기
"모든 사업은 속도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123)   배우 유아인은 '자기만의 속도'로 행복하게 질주하겠노라고 말한다. 존재에 있어서 속도는 불가피하다. 정적인 상태로 머무르는 존재가 있을까.   자본주의가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한 인터뷰어의 저 말 한마디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모든 사업'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업'은 인간의 최고도 스피드를 원
"무한경쟁 시대 '대안'을 찾자! 코끼리의 스피드는 어떠할까?" 내용보기

"모든 사업은 속도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123)

 

배우 유아인은 '자기만의 속도'로 행복하게 질주하겠노라고 말한다.

존재에 있어서 속도는 불가피하다.

정적인 상태로 머무르는 존재가 있을까.

 

자본주의가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한 인터뷰어의 저 말 한마디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모든 사업'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업'은 인간의 최고도 스피드를 원한다.

무한경쟁, 무한이득, 모든 것들을 갖고야 말겠다는.

 

사람은 나무와 같아서 그 시기에 걸맞는 때를 필요로 한다.

태아라는 존재로 엄마 뱃속에서 9개월,

두 발로 걷기 전까지 무한한 누군가의 보살핌을 24시간 필요로 한다.

두 발로 걸어도 아직 여러모로 불완전하여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면서도

이리저리 궁금한 것들이 많아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여념이 없다.

두 발과 두 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

이제 누군가를 돕고 싶어한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걸 넘어서 누군가를 돕고 싶어한다.

결국 두 발로 더 이상 걷기 힘들 때 그때 역시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만

호기심과 상상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두 눈을 감기 전까지 내내.

 

걸맞는 때가 있는데 그 걸맞는 타이밍을 맞춰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게 바로 이 시대, 무한경쟁 시대라는 어이없는 시대,

대한민국은 단기간 동안 어마어마한 스피드로 경제 성장을 한 국가이다.

우선 살고 보자-라는 테마 아래 극기의 정신으로 모든 걸 감내한 언니오빠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지금 이 시대를 영위하고 있다.

그들을 탓할 생각은 절대 없다.

다만 그때 그들은 하나만을 바라봤어야 했고 그 하나만을 바라보라고 종용한 인물이 있었다.

 

계속 뛰고 또 뛴다면 심장이 저절로 멈춰주기 전까지 뛰어야 한다면-

무한행복을 바라는 것인가 혹.

행복은 무한하지 않다.

행복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

더 많이 뛴다고 해서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행복의 양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하여 우리는 지금 대안을 찾아야 할 때를 맞이했다.

 

"부탄에는 국민총행복부 장관이 있다." (212)

 

부탄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주목하는 세계인들의 시선 또한 분주하다.

'국민총생산'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라 '국민총행복'을 담당하는 부서가

한 나라에 있다니, 이건 마치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지만

있다, 그것도 부탄이라는 가난한 나라에.

신선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 자체 '대안'이라는 말의 생생한 움직임 그 자체이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속도가 있는데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 시스템은 인간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속도를 무시하여 이루어진다. 이 책의 제목은 [슬로우].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의 속도를 찾기 전까지 사람은 코끼리의 속도로 24시간, 4계절을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하나의 대안이다. 배우 유아인이 말하는 '자기만의 속도'는 행복과 밀접하다. 행복이라는 과실은 저 들판을 뒤덮은 나무들에 한가득 열려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바구니는 제한되어 있다. 덩치가 큰 사람은 조금 더 많이 바구니 안에 열매를 담을 수 있을지도. 저질 체력인 내가 바구니 안에 담을 수 있는 열매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적을 수도. 그렇다고 해서 슬퍼할 일은 아니다. 욕심과 욕망이 뒤엉키면서 인간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구도 썩어간다. 욕심과 욕망으로 뒤엉킨 내 마음 네 마음 잠깐 내려놓고 어디에서부터 망가졌는지, 그리고 대안은 뭐가 있을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노라, 글쓴이는 그런 제안을 한다. 불씨는 인터넷과 휴대폰에 있었으나 그 탐구 과정은 결코 지난하지 않다. 느리게 아주 최대한 느리게 [슬로우]를 펼쳐보시라!

 

 

 

 

이제는 대안을 상상할 때

 

왜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세계 역사나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 형성과 관련된 이념과 문화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종교적인 이념과 정치 이념, 그리고 전통 같은 요인들이 있었죠. 그리고 경제는 이들과 함께 작동했던 겁니다. 서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도 완벽해서 다른 대안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관점은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합니다. 나는 별을 보고 우주의 크기를 헤아려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제 겨우 200년밖에 안 된 현재의 경제 시스템과 씨름하는 일이 우주의 끝이나 세계와 인류의 종말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른 이념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나는 언젠가 우리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사회의 장점, 진보된 기술문명 그리고 그 경쟁력을 배제하지 않고도 인류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208)

 

인용한 글은 이 책 안의 작가가 쓴 게 아니라 하르트무트 로자 교수의 글입니다.

 

v******s 2012.05.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