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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끔 왜 자전거를 타거나 걷느냐고 물으면 귀찮아서 그게 유일한 운동이라고 심드렁하게 답한다. 그러면 그렇게 느리게 타거나 걸어서야 운동이 안된다고 하며, 최대한의 속도로 빨리 달리거나 팔을 한껏 흔들며 힘껏 걸어야 한다고 열심히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운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다. 어릴 적 부터의 버릇이기도 하다. 게으른 탓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느리게 산다.-5p
덥수룩한 수염이 참 인상적인 시골교수님. 함자는 낯설지라도 작가 소개란의 사진은 무척 낯익은 박홍규 교수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언젠가 꼭 한번 책으로 만나 보고팠는데 어떻게 이번에 기회가 닿았다.(기회를 전해주신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추구하는(시골 전원의 삶), 바라는 삶의 이상향을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세속적일 수 밖에 없는 처지지만 내가 좀더 나이가 든 후(실천 가능할지는 인생 자체가 변화의 연속이라 미지수지만) 시골에서 자그만한 오두막집(?)이라도 지어서 텃밭을 가꾸고 좋아하는 책이나 읽으며 한량처럼 살고싶다..그냥, 소박한 바람이다. 이 책, 표지가 참 정겹다. 초록빛 초원 사이로 쭉 뻗어 있는 시골길이 멋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네 인생도 저렇게 쭉 뻗어 있다면 얼마나 좋아'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런 시련 없이 탄탄대로기만 하다면 것도 나름대로 재미없는 인생이지 않을까? 난 성격이 조금 급한 편이다. 누가 요즘 한국사람 아니랄까봐 무슨 일을 하건 빨리빨리를 외치곤 한다. 그래서 말도 참 빨랐었다.(지금은 보통수준이지만.) 느린 사람들도 참기 힘들어 한다. 어쩔수 없이 겉으로는 웃고있지만 속으로는 답답해서 죽을지경. 요즘은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본성이 급한건 어찔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그런 나에게 박교수님은 일침을 가한다 느리게 사는 인생에 대해서 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의 제목-표지분위기-만 봐서는 따뜻하고 정감가는 위로가 한가득 일거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느림보 인생에 대한 예찬과 함께, 신자유주의,즉 물질만능주의와 1등주의 등에 대해서 쓴소리와 입바른 소리를 하신다. 60평생 운전면허증도 없으니 차는 없는게 당연하고 휴대폰(심지어 삐삐조차)도 사용해 본적 없는 옛날 사람. 현대를 살고 있지만 모든게 디지털화된 글로벌 시대에서 동떨어진 아날로그도 한참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계시는 분. 걸어서 한시간 거리의 학교와 집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풍경들에, 자연에 귀기울이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게 시골생활을 사랑하는 박교수님에게서 시골생활의 깊은 애정과 사랑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But!!! 이책, 저자의 시골사랑은 차치하고 참으로 딱딱하다. 제목과 표지의 편안함과는 사뭇 다르니..이 책을 선택함의 기준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거나 자신이 지금 너무 힘들어서 미칠지경이라거나 돌파구를 향한 따뜻한 조언 따위를 기대한다면 선택하지 말라고 못박고 싶다. 그보다는 사회를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골과 도시의 삶의 속도와 정치,경제,노동 등에 대해서 짧은 칼럼 형식으로 논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책의 '분류'와 '제목'과 '표지'만 보고서 선택하지는 말라 이 말씀이다. 나도 처음에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사실..나이 관련 책은 이제 썩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시골교수님의 따뜻한 위로 한상 받아볼까?'싶은 마음이었다. 헌데, 에그머니나!!! 겉모습만 보고서 지레짐작했던 인자하고 털털한 교수님이시라기보다는..그 어떤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기만의 소신과 방식에 철저한 고집있는 분이시라는걸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서두 부분에서 내 성격은 참으로 급한편이라고 언급했었다. 이 책에서도 요즘 우리네 '빨리빨리' 행동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왜? 이 교수님은 느린걸 좋아하시니까! 가만보면 직장인 열에 아홉은 시간있냐는 물음에 바쁘다를 연발하며 산다. 이 바쁘다는 표현..나 역시 그렇다. 가만히 돌아보면 대체 뭐가 그리 정신 없는지 모르겠는데..여하튼 요즘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 속에서라도 여유를 찾아야는데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아서 그런지..잠도 바쁘게 잔다. 바쁜게 그저 일상이 되버린거 같아 때론 씁쓸할 때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준비에 바쁘다. 그야말로 준비 중독사회라고 할만하다. 유치원 시절부터 일류 대학에 들어갈 준비로 바쁘다. 대학에서는 일류 직장에 들어갈 준비로 바쁘다. 직장인이 되면 온갖 보험으로 미래를 준비하기에 바쁘다. 나이가 들면 갖가지 노후 보험이나 장례보험을 들거나 묘터 준비하기에 바쁘다.-27p
많은 사람이 바쁜 이유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미래란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29p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데에 보람을 느낀다면 그걸로 족한것이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내 안의 뭔가가 답답하게 콱 막혀 있다면, 또다른 나를 잃어버린것 같다면 그건 생각해볼 재고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자기관리 서적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 분류로 들어가는게 더 알맞지 않을까 생각든다. 이는 여러가지 우리나라의 정치풍토나 자본주의에 심하게 입각해 있는 현 실정, 무한경쟁에 따른 폐해를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기 대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소리를 고집스럽게 내고 있기에(자신이 쓴 책이니 당연한거겠지만서도! 어느정도 중용을 지키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자칫 한방향으로 치웃친 정치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옛사람같은 겉모습과 고지식함에 반해 사상은 진보적이라고 하면 될려나..라고 생각했는데..본인 스스로가 자신은 진보도 보수도 합리적 보수도 아닌 무능한 민초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 책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때 분노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와 얼핏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듯 하다. 무슨 정치사상이 들어있거나 한건 아니지만 , '눈뜨고 귀를 열고 행동하라'는 암묵적 메세지가 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회에 고하는 소리는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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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와 제목만 보고 심리적으로 풀이하고 위로하는 책인줄 알았다. 그리고 제목이 너무나 내 얘기인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받아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신 시골에서 살면서 자가용, 핸드폰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천천히 욕심없이 사는 삶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어 마치 한국판 <월든>같은 책이었다. 천천히 하루 하루의 삶을 살고,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느린 의식주 같은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느꼈던 저자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면서도 강하게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 읽을 때는 거부감이 좀 생기기도 했다. 나의 생각과는 달랐기에 느껴지는 이질감과 책 제목과 본 내용이 너무 생뚱맞게 안맞는것 같기도 했다. 또한 느림과 빠름, 시골과 도시를 딱 나눠 이건 좋고, 저건 안좋다는 식의 글들이 편 가르기 같아서 조금 거슬렸다.
책은 크게 인생, 속도, 음식, 여행, 공부, 사랑으로 주제를 잡아서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슬로우 라이프에 대하여 예찬하고 있다. 그러기에 저자의 생각과 소신이 아주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또한 저자는 6S - slow, silent, simple, small, soft, spontaneous를 제시하는데 그중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하자는 spontaneous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으니 따라해 봐라 라는 식은 아니다. 자신이 실천하는 삶이 본인에겐 만족스럽고 좋더라 에서 끝나고 있어서 독자들에겐 생각해 볼 여지를 주고 있다.
"느린 삶이 성공을 위한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가치있는 삶이다. - 261쪽 중에서 "
무조건 빨리 뛰어야 성공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천천히 속도를 낮춰 산다면 자연과 주변의 변화들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내 삶의 주체가 되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 경험 이야기만 하지 않고 구제역, 정치같은 사회적인 여러 문제까지 이야기하고 있기에 그의 글들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는 나의 친정이 있는 남원 이야기가 나온다. 강을 따라 높은 강둑이 길게 있다는 걸 보고 마음의 고향같다며 저자가 본 가장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풍정이라고까지 말을 한다. 읽으면서 어딘줄 알겠기에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칭찬을 딱 강둑만 한다. 강둑외에는 지겹고 불쾌하다고까지 해서 정말 헉~!했다.
아무튼 성공에 목을 메고 모든걸 빨리빨리 내달리느라 지친 우리네들에게 느리고 천천히 사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었다. 저자가 제안한 여러가지를 전부다 우리가 할 수 없겠지만, 각자가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몇 몇개라도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면 무거운 인생이 조금은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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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사는 일, 슬로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 때 새로운 책이 나왔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느림의 상식이랄까 그러한 것들을 전복시켜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직장 동료 중에도 한 동안 삐삐를 사용하고 핸드폰은 끝까지 구입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저자 역시 핸드폰은 물론이고 그 어느 통신 수단도 가까이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인터넷 메일도 필요에 의해서만 잠시 열어 보는 게 전부라고 하니 21세기에 참 놀라운 삶이다. 이 분이 지향하는 삶은 자신을 온전히 돌보고 더 사랑하고 천천히 지내라는 이야기 같다.
그런 자신을 두고 <여러 가지를 함께 하지 못 하는 바보다>라고까지 이야기 할 정도이다. 직업이 교수인데 핸드폰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내 의문점은 거기에서 오래 머물었다. 정보의 시대에 하나라도 더 알지 못 하면 불안해 하고 인터넷에서는 같은 상품일 경우에도 손동작만 빠르면, 클릭만 빠르면 반값에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고 그저 덤으로 얻을 수도 있는 그러한 세상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철학만을 지키며 살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저자가 놀라웠다. "나 같은 느린 사람이 살기 참으로 어려워진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후보가 되지 않는 것, 아니 아예 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다행이다."와 같은 글에서도 저자의 생각은 잘 드러난다.
198페이지 후반부에 가면 그런 자신을 바보의 삶이라고까지 표현해 놓았는데 참 놀라웠다. 스스로 바보가 되는 삶, 그러나 더욱 충만해져 가는 삶,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삶.... 도시에 살면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러나 저자는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전혀 주변 시선에 주눅들지 않고 그렇다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도 않고 오로지 행복하다. 책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무척 궁금했었는데 이제 알겠다. 인생을 오래 산 선배로서 지금 한참 힘들어하는 시기, 고비에 걸린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에는 힘이 있다. 느리게 살라는 운동을 주입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삶 자체를 적고 있어서이다.
책 서문에는 출판사에서 왜 이런 자신에게 책을 내라고 했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구절이 있다. 미소가 지어지면서 이 책에 더 신뢰가 갔다. 그런데 어쩌랴! 책 내용도 좋고 편집도 너무 좋다. "느리고 홉지며 작고 여리게 살라!"라는 말이 던지는 메시지가 참으로 오래 갈 것 같아서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날은 12월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이고 월요일이라 무척 바쁘다. 할 일도 챙길 일도 만나야 할 사람들도 너무 많아 쉬면서도 머리 속은 연일 활동중이다. 저자는 오늘 같은 날, 12월이 다 갈 무렵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길을 걷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느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주는 책이면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질문들을 다시 던진다. 193페이지의 <보통 시민의 참된 교양을 꿈꾸며> 이 부분이 특히나 와 닿았던 것은 바보 예찬으로 시작해 바보 사랑으로 끝나는 책의 구절 구절 때문이었고 저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자랐던 일이 행복했고 지금 이렇게 작은 행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 편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내 일을 하지 못 하는 경우도 없고 그렇다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그렇게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가꾸어 가는 삶이 어찌 이리 아름다울까! 오래 생각한다.
후반부에 가면 자연 파괴에 대한 저자의 경고와 안타까움이 곳곳에 나온다. 그것은 아마도 자연이 파괴되면 인성도 파괴될 수 밖에 없다는 경고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자연 자체가 사라지고 나면 인공 속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비장한 어조로 이야기 하는 저자의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옛 선비들은 그저 쉼 없이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며 삶을 깨달았는데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영원과 유장을 노래할 수 있을까? 시멘트와 철골로 담은 인조의 좁은 직선 물통을 바라보며 우리의 자식들은 과연 무엇을 노래할까?" 에 대한 생각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느리게 사는 삶은 뒤돌아 보면 생명의 삶이고 우리 모두를 지키는 바른 삶이다. 한 때의 유행이나 웰빙처럼 지나가고 마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하는 그런 삶. 자연 파괴는 단순히 인간뿐만이 아니라 자연을 터전으로 삼는 모든 생명들의 삶을 침해하는 빠르고 난폭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고 반성해 본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 주는 일이었고 그것을 통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리고 콘크리트만 보고 살아가는 메마른 이들에게 느림을 즐기고 그러한 것들을 온전히 삶 속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행복이 도래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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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는 '요즘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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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 산골의 촌노도 아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대학교수가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홍규'는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자로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러나, 법학뿐만 아니라, 인문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와 번역서를 낼 만큼 폭넓은 분야에 식견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오사카 시립대학,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영국의 노팅엄대학교, 독일의 프랑크프르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일본의 몇 몇 대학에서 강의도 했었던 것이다. 이런 저자의 경력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은 그만큼 세계 속에서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이메일 확인이 고작이고, 코스닥이 무엇인지, 왜 뉴스시간에 일기예보처럼 해야만 하는지, 재테크는 어떻게 하는지, 부동산 투자는 ? .... 전혀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무관심을 넘어서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대학까지 출퇴근길에는 자전거를 이용하니, 자동차의 필요성도, 운전면허를 따야할 필요성도 그에게는 없다. 논과 밭이 있는 곳에 자리한 집과 텃밭이 그의 생활의 기쁨을 주는 공간인 것이다.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야채들로 식사를 해결하고, 점심도 도시락을 들고 출근을 한다. 옛날과 달라서 아무도 그와 함께 점심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만의 생활 속에서 그가 느끼는 많은 이야기들을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서 책 속에 담았다. 인생, 속도, 음식, 여행, 공부, 사랑.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편안하고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에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지 않는 부분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의 Slow life가 모두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세상이 달라졌으면 그에 맞춰 사람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즐길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일 수도 있기에.... 그러나, 저자는 일반인에게서 느끼는 즐거움이 아닌 자신만의 즐거움을 '느리고 홑지고 작고 여린 삶에서" (책 속의 글 중에서)느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저자는 소신껏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 6 S 의 Slow, Silent, Simple, Small, Soft, Spontaneous에 각각 대응하는 느린 삶(속도), 조용한 삶(환경), 홑진 삶(구조), 작은 삶(규모), 여린(무른)삶(성질), 그리고 자발적인 삶(원리)은 서로 다르지만 이를 모두 묶어 표상하는 경우 Slow 라고 하겠다. " (p10)
이 책 속의 글들은 신문 등에 썼던 글들을 토대로 하기는 했지만 새롭게 다시 쓴 글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책 속의 내용이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사회적으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무게있는 내용들이 다수 담겨져 있는 것이다. 얼핏 얼핏 글 속에서 정치, 4대강 개발, 유기농 식품, 구제역, 대기오염 등의 환경문제, 지구 온난화, 출세지향주의 등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사는 곳에서 이루어진 2010년의 구제역 살처분에 대한 수백 만 마리의 가축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그이전에 그가 직접 키우던 닭들을 AI로 인하여 포대기로 싸서 묻고는 잠을 못 이루었다는 경험은 정말 마음이 싸늘해지는 이야기이다. 그는 식물을 유기농으로 키우고자 해도 이미 농촌은 사방이 농약 천지라고 말한다. 과연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 것인지....
진정한 먹거리란 " 슬로푸드는 느린 삶 속의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패스트 라이프 속에서 슬로 푸드를 먹는 것은 무의미하다. " (p118) 넷맹, 컴맹, 부맹, 주맹, 카맹, 경맹..... 세상의 발달한 기기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이 사는 그에게 유일한 취미는 그림그리기와 여행. 그는 여행은 삶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여 방학을 이용하여 1년에 2번은 해외로 긴 여행을, 그리고 중간 중간 국내 여행을 즐긴다. 그에게는 여행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하게 살자는 부처와 간디에게 배우고자 인도를 찾는 나를 그들은 물론 멸시했지만 이번엔 나 자신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라디크로 가는 고행같은 여정은 히말라야를 오염시키는 것에 기여했을뿐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인도에 오지 마라는 것이, 다시는 인도를 오염시키지 말라는 것이 부처와 간디에게 마지막으로 배운 교훈이었다. 인도에서 얻은 지독한 기침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 (p175)
교수로서 그가 말하는 공부란 토막지식의 암기가 아닌 자기 자신의 바람직한 삶과 사회와 시대를 즐겁게 탐구할 수 있는 공부를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Slow life는 단순히 느린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타율적이지 않은 자율적으로 행하는 느린 삶, 그것이 가치있는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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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느린 그의 삶을 따라 가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법정 스님이 말했던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만의 철학과 소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생활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삶을 본받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Slow life 중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의 삶 중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스스로 '바보 천치'라고 하는 그의 삶을 통해, 그의 생각을 통해 한층 성숙해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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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을 너무나 좋아하는 소년의 엄마가 간디를 찾아와서 아들에게 설탕을 끊도록 타일러달라고 했다. 간디는 2주 후에 다시오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말했고, 평소에 간디를 존경하던 소년은 2주 후에 간디의 권고를 받아 설탕을 끊게 되었다 .
간디가 엄마와 소년에게 2주 후에 오라고 한 까닭은 뭘까? 내용인즉, 간디도 실제로 설탕을 좋아했고, 스스로가 지키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권할 수 없기 때문에 2주간의 스스로 설탕을 끊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누구에게 충고하기는 쉽다. 사실 어떤 사람은 충고는 가치 없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바보는 충고를 알아들을 리 없고, 현자는 충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 권해서 널리 알리려는 욕구가 있다. 자기가 스스로 체험해서 겪었다면 더 그렇다.
여기 간디가 살았던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자신의 일생을 걸쳐 몸으로 실천한 좋은 것을 독자에게 권하고 행동으로 가르치는 분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박홍규 교수다.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때로는 일기를 쓰듯이 때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두서없이 정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묘사하기도 한다. 저자의 생각과 삶과 철학을 다양하게 음미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일상 생활이 뭐 특이하고 읽을 거리가 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거 소로의 ‘월든’이나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등을 읽은 독자라면, 한 개인이 일관되게 걸어온 일상적인 삶의 궤적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안다. 사실 ‘월든’의 경우는 느리게 천천히 사는 삶과 자연과 하나되는 삶,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도 비슷한 색감의 책이다. 다만, 월든의 소로나 니어링 부부는 일체의 도시적 생활과 관계를 단절하고 산속 깊숙이 들어가 자연과만 대면하는 생활을 했다면 저자는 교수라는 시민으로서의 직업과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은 채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조화로운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먼 훗날을 기약하며, 지금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서 내가 철들고나서 생각했던 실천목록을 항상 뒤로 미루며 몸을 사리던 나 자신이 매우 부끄러워진다. 주변사람에게 마치 환경친화자인 것처럼, 진보론자인 것처럼 떠벌리지만 정작, 실천이 뒷받침해주지 못한 나를 보고 얼마나 맞지 않은 옷처럼 어색해 보였을지 망신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
부엌에서 민주주의자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가정에서 평등과 배려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밖에서 진보인사인 것처럼 떠들어댄다면 바로 입만 진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적어도 자유를 숭상하는 한 개인으로서 내가 가진 가치가 정말 좋은 거라면, 그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게다가 나도 충분히 동의하는 바이지만, 저자가 자신의 가치를 고집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듯 보이겠지만, 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는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초등학생까지도 보급된 핸드폰도 없고, 자동차대신 자전거를 타며, 점심은 거의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자신이 먹을 것은 텃밭에 가꾸고, 이웃과 저녁에 고기를 굽고 대화하기를 즐기는 삶.
인간의 수명을 육십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육십평생을 자신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직업과 생활을 선택한다. 죽을때까지 몇년만 더 고생하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고, 가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을 해야지 생각하며, 현재는 하기 싫은 경쟁과 권위질서에 편입되어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 일단 이러한 자신이 정말로 원하지 않았던 삶의 트랙에 들어서면, 그 레일을 벗어나는 것은 열차가 정지될때까지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멈춰서지 못한다.
우리가 미리 60년의 인생을 살 것을 알고 있다면, 하루하루 모여 일년이 되고, 일년이 육십번 모여 인생을 이루듯이, 하루하루의 삶이 나에게 좋고, 행복해야 전 인생의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러려면, 우선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나에게도 좋고 이웃에게도 좋고 또 자연에게도 좋다면, 그런 삶을 하루하루 조금씩 살아내어야 온전한 나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될거다.
나는 자동차도 있고, 휴대폰도 최신형으로 가지고 다니며, 문명과 과학이 주는 혜택이란 거의 누리고 살고 있다. 아마 내가 누리는 생활의 편의와 물질적 혜택은 과거 제국의 왕이나 귀족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거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삶은 행복하고 마음은 편안한가? 억만금을 주고, 과학이 빛의속도로 발전해도 사람의 행복의 크기는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을거다. 행복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로와 니어링부부와 박홍규 교수는 더 갖지 않고 자발적으로 검소하게 지내지만 정말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슬로라이프를 주장한다. 슬로라이프는 일명 6S(Slow, Silent, Simple, Small, Soft, Spontaneous)에 각각 대응되는 느린 삶(속도), 조용한 삶(환경), 홑진 삶(구조), 작은 삶(규모), 여린 삶(성질) 그리고 자발적 삶(원리)을 말한다. 현재 도시인들은 빠르게, 시끄럽게, 복잡하게, 크게, 강하게, 타율적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저자는 공사의 구별이 없어지고 점차 자율적인 삶에서 타율적인 삶으로 바뀌어가는 현대인들의 너무도 숨 가쁜 일상을 안타까워하며 조금 더 느리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살 것을 권한다. 강요나 질책은 없다. 다만 저자가 느낀 느림의 가치에 대해, 조금 더 쉬어가며 사는 행복에 대해 말하며 더욱더 빨라져가는 도시인들에게 조금만 속도를 늦추라고, 천천히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서평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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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할 것 없이 무한 속도 경쟁을 자랑하는 시대이다. 남들과 다름이 차이(差異)가 아닌, 차별(差別)이 되어 버린 시대이듯이 속도에서의 차이는 곧 뒷처짐을 의미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대에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저자이다.
대학입학보다 더빨리 합격증을 받는 그 흔한 운전면허증도 하나 없고, 휴대전화도 없이 사는 사람이다. 남들이 불편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저자는 아무렇지도 않다. 내 기준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니, 그저 답답하고 불편해 보이는 것이리라...
돌이켜 보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것 같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마치 뒤쳐지는 것 같은 무한 속도 경쟁 속에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덩달아서 빨라지고 있다. 조금만 느려도 뭔가 답답함이 밀려 온다.
모 광고의 카피처럼 "속도 빠른 걸 원하는" 시대에 오히려 슬로 라이프를 주장한다. 표지 이미지의 평온하고 한적한 느낌만 봐도 솔직히 천천히 걷고 싶어지는 걸 보면 내용은 더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서른이라고 하면 뭔가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 같다. 더이상 젊다는 느낌으로 자신을 내세울 수도 없다.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어느 정도의 책임과 역할이 동시에 요구되는 나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쟁 상대보다 더 빨라야 더 많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속도에 민감한 요즘의 우리들에게 시골 교수는 무엇으로 슬로 라이프를 말하고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슬로라이프는 일명 6S(Slow, Silent, Simple, Small, Soft, Spontaneous)에 각각 대응되는 느린 삶(속도), 조용한 삶(환경), 홑진 삶(구조), 작은 삶(규모), 여린 삶(성질) 그리고 자발적 삶(원리)을 말한다." 고 한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과는 지극히 반대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특히나 한창 빠르게 움직이고, 뭔가에 매진해야 하는 서른 이후의 삶에게 과연 슬로라이프가 가능할까하는 의구심마저 생기기도 한다.
아마도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노력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애써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빨라지려고 매일 매일 만날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별거 아닌 것처럼 희생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남들이 볼 때는 느려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너무 서두르거나 조바심내지 말라는 그런 삶의 충고를 요즘의 사람들과 서른 즈음을 맞이한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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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제시하는 삶은... 나와 너무 정반대에 서있다.
조금은 어렵게 읽어가던 중... 배움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친척들마저 다 과학자가 될꺼라고 생각했던 난... 어느새 과학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어린시절 과학잡지를 구독해보고 아빠의 비싸디 비싼 시계를 스스럼없이 분해해보던 나는 학창시절 오로지 암기로만 점철된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을 배우며 어느새 점수만 잘따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 과목들을 이해하고 더 파고들려고 하기는 커녕... 높은 점수에 만족하고 짧게 암기했던 지식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만 갔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그런 자세로 공부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교수님이 지적했던 갇혀있는 학문이라는 말이 이런게 아닌가... 그래서 요즘 나의 공부에 자꾸 걸림돌이 솟아오르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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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때, 서른에서 마흔, 절반 이상이 미래가 불안하다.
아직 서른에 접어 들지 못한 나..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기임이 분명하다. 아직은 청춘이고, 아직은 젊고 아직은 가능성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30대가 되면, 갑자기, 청춘이 아니고, 늙어버리고, 불가능해지는 것일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30대를 무겁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대에는 그렇게 20대가 되길 바라고 바라면서..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시점은 왜 이렇게 힘들고 무겁고, 아프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세상의 기준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사람들의 잣대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아무리 자기 계획대로 나아가는 사람도, 30이라는 시점이 되면, 그 순간 삶의 무게를 삶의 고통을 더 주는 것 같다.
이제 부터 너는 30이다! 그러니 너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라! 이러는 것 처럼 말이다.
서른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때... 이 저자는 조금 천천히 가자고 말하고 있다. 조금만, 천천히, 슬로우라이프!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고, 우리는 빠른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느린 사람. 뒤쳐진 사람은 그대로 낙오 되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어쩌면, 지금 지나치게 빠르다.. 지나치게 빠르고 지나치게 완벽한 것을 요구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빠르다고 해서, 남들보다, 성공하고, 남들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될까? 이 저자의 전해짐 처럼, 천천히 살아간다고 해서, 결코 삶에서 뒤쳐지거나 낙오도니 삶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너무나 빠른 교통수단 보단, 오랜시간 천천히 걸어가는 것, 내가 걷는 길을 확인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보고느낀것을 생각하며,가슴에 담기도 하고, 페스트 푸드 보단, 슬로우 푸드를, 등등,
슬로우 라이프! 어려운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변화, 삶의 여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30대가 되겠지만, 다가올 내 30대야! 겁먹지 말자!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천천히,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보자!!
빠르기만한, 불안하기만한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 너무 급하게만, 빠르게만 가지말고, 우리 조금 천천히, 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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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든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무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어른이 되면 좋은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아니었다. 자유를 얻은 대신 그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여러 문제들에 치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무거움들로 인해 지쳐갈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남들처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좋은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살아야 할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을까? ' 경쟁에서 이길 자신도 능력도 물론 없었지만 그리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인생이 서글퍼졌다. 현실적인 여건들이 여유롭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어졌다. 이런 저런 고민과 생각을 하는 단계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현대인들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행동과 정신 모두 여유롭다. 집 근처 밭을 가꾸며 자신의 먹거리를 얻고 있고 직장까지는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탄다. 운전면허증도 없다고 한다. 휴대폰은 없으며 외모를 가꾸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저자는 책에서 6s의 삶을 말한다. slow, silent, simple, small, soft, spontaneous에 각각 대응되는 느린 삶(속도), 조용한 삶(환경), 홑진 삶(구조), 작은 삶(규모), 여린(무른) 삶(성질), 자발적 삶(원리)을 표방하고 있다.
당장 삶의 모습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생각부터 작은 행동부터 여유를 가지고 6s의 삶을 살아보려한다. 저자가 저자만의 삶을 꾸려나가듯이 나도 그러하고싶다.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삶의 모습을 참고하여 나만의 삶을 꾸리고 싶다. 저자의 삶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자신이 삶을 당당하게 이끈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모습에 기죽지 않고 만족하며 자신의 삶의 가치관안에서 최대한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도 배려하면서 살고 있다.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나도 내 삶을 만족하며 가꿔나가려 한다. 설사 그 삶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더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