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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안녕! 계절이 바뀐다는 신호는 나무에게서도 찾는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 색깔이 돌기 시작하면 나무는 드디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매일 지나치던 나무에 눈길이 머물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나무에게 말을 건다. 그간 눈이 감지하지 못해 내가 사는 공간에 이제서야 그들이 돌어온 셈이다. 사람은 감각할 수 있는 정도만 세상을 알고 산다는 사실을 새기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가진 지각능력의 한계도 체감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우리 사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지 내 주위 사물에 눈을 돌려 볼 때 비로소 깨닫는다.
물론 나무는 말이 없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생물인데도 죽은 사물과 똑같이 무심히 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무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던 이유는, 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 <식물의 정신세계>가 책장에서 선택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식물도 생각한다'란 부제를 가진 책. 생물이니 그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면 나무에게 열린 마음이 된다. 나무야 안녕! 하게 되는 건 그럴 가능성에 인사를 건네는 셈이다. 누가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 여길 수 있는 일을 시도해본다.
<사랑 아닌 것이 없다>는 이러고 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제목도 눈길을 끌지만 부제가 더 매력적이다. '사물과 나눈 이야기'. 언젠가부터 내가 손에 드는 책은 이유가 있어서 내게 온 거라 믿기 시작했다. 거기서 마음에 담을 내용이 단 한 줄만 있어도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도 그래서 온 거라 믿는다. 내가 믿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작가가 목사란 사실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종교색이 짙으면 어쩌나 고민했던 책이다. 편견이 얼마나 많은 책에 거리를 두게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알아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고 하는데 말이다.
사람도 사물이요 나무도 사물이니 말이 안 통할 리 없지만, 하도 오래 서로 말을 나누어보지 않아선지 사물들과 대화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 저는 이 연습을 통해서, 제가 풀이고 풀이 저라는 진실을 몸으로 한번 저리게 깨닫고 싶었습니다. (9쪽)
이 책의 차례에서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분류해버린 대상까지 대화 대상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쓰레기통, 나무 젓가락, 병뚜껑, 부서진 빨래집게까지. 생각만 달리하면 내가 대화 상대로 꼽을 수 있는 존재는 무궁무진하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런 대상들과도 대화가 될까?란 호기심과 궁금증이 이 책을 손에 쥐게 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머리를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대화 내용이 동양철학, 선불교와 닿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이 책의 매력은 내 안에서 무한대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나무가 왜 내 인사에 답을 하지 않을까? 나무는 나무 나름의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내 방법대로만 표현을 하니 소통이 안되는 것일 수도. 나 중심, 사람 중심으로만 살다가 사물이나 우주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긴 쉽지 않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확대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 이 책을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문답같은 대화에 때론 동양철학이, 현대물리학이 스친다. 법구경이 인용되고, 기독교와 불교가 사이좋게 등장한다. 아,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생각을 흔드는 생각들을 만나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연장된 몸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내가 사물을 보는 방식이고 사람들을 보는 방식입니다. 불자佛者는 부처님의 자녀요 부처님의 연장된 몸입니다. 그가 바로 부처입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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