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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 [차별의 언어]라는 제목과 책표지에 쓰여 있는 문장과 단어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말에 담겨 있는 다양한 차별을 파헤치는 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내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언어에 깃든 차별과 함께 그것이
다문화에 대하여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다루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다. 또한 지금은 다문화 시대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깃든
차별이 다문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차별이라는 것이 꼭 다문화시대에 어울리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면서도 그 뜻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다문화라는
말에 깃든 차별과 같이 말이다.
‘무심코 쓰는 일상언어로 본 우리사회의 차별의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저자는 다문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한국인의 언어풍경을 통해 과도한 ‘우리’주의를 꼬집고, 단일민족과
단일문화의 허상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먼저 우리 언어에 깃든 차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펴본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어생활을 하면서 ‘우리’라는 말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 평상시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우리마을, 우리나라 같은 말에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만, 우리 가족, 우리 아내와 같은 말에는 무언가
잘못된 어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막상 ‘우리’라는 말에 깃든 차별은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저자는 ‘우리’라는 단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는 속성이
있어 울타리 안의 사람과 밖의 사람을 갈라 놓는다고 말한다. 이런 ‘우리’주의는 한국인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태어나 교육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흔히 한국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일민족 의식과 연결되면서 독특한 ‘우리’주의를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인지에 대한 논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차치하고라도, 민족에 대한 의식이 맹목적으로 우리 머릿속에 들어가게 만든 것은
분명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낳은 산물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혈연이나
혈통을 주된 요소로 존재하게 만들면서 탄생한 단일함은,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중시하고 이것이 대부분의
사회규칙과 통제를 능가하는 집단주의 성향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단일의식은 다른 국가와 민족에게, 그리고 과도한 집단주의는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조장하였다. 우리의 언어가 지금도 ‘국민배우’,
‘국민 여동생’과 같은 국민시대를 고수하면서 국가주의에 매달리는 현상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언어가 다문화에
어떤 차별을 야기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다문화란 한 사회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볼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다문화사회라 할 수 있다. 의,식,주는 물론 문화와 교육 모두가 알게 모르게 다른 나라의 영향 속에서
전통과 합쳐져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문화’하면 바로 외국이나 동남아시아를 떠올린다. 이미 ‘다문화’라는 용어 속에 한국인 특유의 단일의식이 포함되면서 차별의
언어가 된 것이다. 저자는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귀화한 수많은 외국인들, 이주노동자와 유학생들, 조선족과 같은 재외한인들 및 탈북자들을 예로
들며 그들이 ‘우리’속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일상언어에 포함된 차별성도 한 이유라고 말한다.
이러한 차별의 언어가 생겨나는 것은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한다. 고정관념은 자신의 출신문화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 의해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전수되어 주입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실제적인 경험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내린 판단이 편견이다. 이런 편견이 겉으로 드러나면 바로 차별이 되고, 차별의 언어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고정관념과 그로 인한 편견은 사회화과정을 거치면서 머리 속에 형성되기 때문에
없애기는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오락으로 생각하는
‘틀린 그림 찾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 ‘다른 그림 찾기’ 아니 ‘다른 부분 찾기’가 옳다고 말한다.
‘틀리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과 분명 다르지만 우리는 그 둘을 동의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이미 차별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흔히 우리는 차별을 이야기할 때 차이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우리’주의가 그 기준 역할을 할 때 차이가 차별로 쉽게 옮겨갈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단일함이 이끌어낸 ‘우리’라는
허상, ‘우리’주의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이라는 인식을 넘어
누군가를 배척하지 않는 상생의 언어를 만들어가자고 역설한다.
책을 읽으면서 다문화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차별의 언어를 넘어서자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 일례로 우선 나부터가 ‘틀리다/다르다’를 쉽게 동의어로 사용하고, ‘우리’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를 생각해보면서 그 언어들이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혹 무의식 중이나마 차별을 전제로 한 단어사용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