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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그림은 고딩 미술시간에 인상쓰는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이라는 허무개그가 유행했듯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했다. 인상 이라는게 힘든 시절이라서 그랬을까. 그러나 첫인상(first impression)이란 단어는 첫발자욱(le premier pas)이란 연주곡이 자주 라디오에서 흘러나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앞에 첫이란 형용사 하나 붙었을 뿐인데.. 그 당시 첫사랑 첫경험이란 그런 단어도 좋은 역을 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다 수 십년 세월이 흐른 후 2010년 필라델피아 미술전이 있었다. 그 미술전은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품중 주요 인상파화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국내 전시한 기획전 이었다. 록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장면에 록키테마가 흐르는 장면은 50여년이 다 되가지만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본서에서 소개된 화가들 대부분의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 특히 인상파는 프랑스로 고착되있지만 미국의 여류화가 메리 카사트의 작품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기억력이 좋다기 보다 유투브같은 플랫폼이 되살려주기 때문이겠지만. 르노와르풍의 색채속에 엄마와 아이의 그림은 브뤼셀 왕립 미술관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그림은 음악이나 영화와 달리 다리품을 팔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어느 미술 평론가의 말에 공감한다- 사실 인상파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관련서도 많다. 19세기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서 대단히 인기가 많아 프랑스로 수출 된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시절 조선의 도예공을 잡아가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급속히 발전 된 건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이다- 수출되는 도자기 포장지가 일본에서 당시 유행하던 우키요에 판화를 찍은 종이였다. 우리나라 보수언론지가 동남아에 포장지로 수출된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동남아로 수출되는 신문종이는 포장지로 끝났지만 -하긴 요즘은 창피해서인지 수출을 중단했단 보도도 있다- 우키요에 포장지는 인상파화가들의 눈을 사로 잡아 자포네즘이란 단어를 유행시키게 된다. 에드와르 마네나 고흐의 그림은 우키요에를 오마쥬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파리에는 지금도 도쿄가(Tokyo Street)가 있다. 일정이 빡빡해 그 곳을 방문해보지 못한게 무척 아쉽다. 인상파와 관련된 우키요에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저자는 일본의 풍경과 사회풍속을 묘사한 花鳥風月의 우키요에화풍과 인상파의 그것이 매칭이 되 일본인들에게 친근감을 주어 고전풍의 성서화나-사실 바이블에 기초한 유럽국가와 달리 아시아에서 기독교 신자가 거의 없는 (공산국가 제외)나라가 일본이다-신화 그림보다는 인상파그림에 더 애착가는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일본의 버블 경제시절 어느 일본사업가가 고흐와 르노와르의 그림을 옥션에서 고가로 낙찰 받은 뒤 자기가 죽으면 관속에 함께 넣어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겨 세계의 문화인들을 아연실색케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뒤 소식은 모르지만 물론 지금도 생존해 있으니까 뉴스 후일담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의 인상파는 고대 로마의 예술이 파리로 이동한 후 프랑스 화풍은 보수 일색이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사조가 인상주의이다. 그러니 처음에 얼마나 냉대와 멸시속에서 견뎌내었는지를 서론에서 밝히고 인상파의 시조라 할수 있는 에드와르 마네 그리고 필라델피아 미술전에서 잊을 수 없었던 클로드 모네. 대학시절 샹송을 참 잘 불러 르노와르의 피부를 가졌다고 말해줬던 과선배가 생각나는 르노와르. 어린 시절 발레를 배웠다던 그녀가 그 그림 앞에서 떠나지 못했던 드가. 그리고 미국인으로서 최초의 인상파 여류화가 메어리 카사트의 글을 읽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14년전 봄밤 필라델피아 미술전을 보고 서초동 길을 같이 내려오던 그 사람을 누가 모르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