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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 김혜나.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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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6편의 단편소설로 김혜나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주로 상처입은 자와 사회에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1편에 로레나의 이야기를 보며 삼촌의 심한 욕설과 폭행당하며 주변에서 소외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6편 이야기 중에 표제작이었던 청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각자의 상처와 외로움를 보여주며 마음의 한 켠에 가슴이 저밀게 한다. 외로웠던 미영이와 작가로 살아가면서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영의 일상을 보며 서로의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그 외에 갑의 횡포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당하는 을을 보여주며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이 생각이 나 눈물이 나게 된다.
좋은 귤이든 나쁜 귤이든 다 똑같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마음의 외로움과 상처에만 맴돌지 않고 상처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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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의 소설. 완전 딥다크하다. 최근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을 자주 접하긴 했었으나, 김혜나 작가는 나에게 최고의 우울감을 선사해주었다. 마치 비가 온 후 습기와 곰팡이냄새가 가득한 세탁실에 갇혀있는 것만 같은 꿉꿉한 기분이 한참도록 가시질 않았다. 모두 다른 6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편적인 이 이야기들의 형식이 모두 달라서 여러 사람이 쓴 줄 알았다. 각기 다른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이 이야기들에서는 공통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고통을 동반한 공허한 감정' 이 책의 뒷면, 도서 소개글에는 '고통이 곧 삶의 증명임을 보여준다'고 써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였고, 작중인물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분노'를 느낌으로써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피하고 싶은 사건들, 눈을 감고 모른 척 해왔던 진실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들려줌으로써 독자들의 가슴속에 깊이 친입하고 자국을 낸다. 많은 이야기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그랑 주떼>였다. 거침없는 작가의 표현을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해내었더니,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다.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나이기에 몇번이나 읽기를 중단하고, 심호흡을 해가며 읽었던 부분이다. 분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녀의 소설보다 더 비린내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차오르는 분노와 그에 대항할 수 없는 나의 무력함에 우울해졌다. |
![]() 김혜나 작가의 <청귤>은 6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저자의 첫 소설집이다. 이 6편의 단편에 담긴 주인공들은 모두 소외된 자들, 상처입은 자들이다. 첫 번째 단편 [로레나]는 필리핀에서 건너 와 삼촌의 구타와 주변의 멸시를 견디며 살아가는 로레나의 이야기다. 표제작이기도 한 [청귤]은 풍요로운 상황에서도 외로운 미영과 작가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지영의 이야기이며 각각의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외로움을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외로움들이 나에게 전이된다.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아랑곳없이 페디큐어를 받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선 친척들, 페디큐어를 해야 하는 당사자의 피곤함과 통증은 그들에겐 알 바 아니였다.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작은 방에서 쓸쓸히 눈물 짓는 로레나의 모습에 담긴 외로움. 그게 과연 로레나만의 외로움일까? 갑과 을의 관계가 횡행해지고 우리가 무차별적으로 행하는 횡포가 당연시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혼자 쓸쓸히 눈물 짓고 있는 우리들의 외로움은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 단편 [이야기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대방이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는 요청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상대방의 요청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뇌수막염에 걸리고 사시 진단을 받은 이야기,첫 번째 소설 [로레나]의 주인공 로레나의 이야기 등 남들에게 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 인해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천천히 드러낸다. 자신의 삶이 청귤같다고 말하며 화려함 속에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미영과 성폭력의 상처 속에서도 짝궁의 잦은 구타와 성폭력에 대한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아픔이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은 내가 과연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나 자문해보게 된다.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할 때 모두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웃어넘겼어.그게 정말 한이 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엄마의 하소연이 메아리친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엄마의 말씀이 주인공의 이야기에 자꾸 오버랩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이 궁핍한 일상에 위안이 되어 줄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들어주는 것에 너무 인색해 왔음을 작품 속의 인물등을 통해 말해주는 것 같다. 저자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각 인물들의 아픔과 상처가 여운이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깊게 남는 작품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게 만든다. 당신이 바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어지면 이야기도 소멸한다는 사실을요. 말하자면 이 귤 같은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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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을 읽는 동안 두통이 일었다. 그 두통이 '청귤'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지, 날이 추워지면서 몸상태가 난조를 보이는 까닭인지, 아니면 책을 읽기 싫었던 내가 만들어 낸 두통인지 모를 일이다. '청귤'의 탓이 아니더라도 '청귤'에는 두통의 책임소재를 물을만한 요소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근래의 정신이 순두부처럼 무뎌져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청귤'의 표지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제발 미숙하고 일러 청량하고 싱그러운 이야기가 있으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시큼하고 씁쓰레한 것만 흘러나왔다. 머리도 아프고 뒷맛도 좋지 않아 책을 읽고 나서 공연히 개수대에 쌓여있던 설거지를 해보기도 하고, 잠깐 밖으로 나가 커피전문점에 다녀와볼까 생각해보다 냉장고 깊숙이 넣어둔 술을 한 캔 꺼내었다. 시원하고 짜릿한 것이 목을 따라 내려가자 그제야 좀 '청귤'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생겼다.
사실 '로레나'라는 첫 시작부터 어딘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네일을 하는 로레나의 모습을 읽으며 얼마 전 휴가로 다녀온 베트남에서 받은 마사지가 떠올랐다. 나에게 처음 마사지를 해준 사람은 한눈에 봐도 어리고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베트남도 마사지도 처음이라 알아보며 '내가 마사지를 잘 받을 수 있을까'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마사지를 받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동남아 가면 1 일 3 마사지도 받는대더라며 불편함을 다독이며 마사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청귤' 안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외면했던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마음을 도망가지도 못하고 마주하고 만 것이다. 페디큐어를 하겠다며 로레나에게 발을 턱 들이민 큰 삼촌이 된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청귤'은 내 안에 있던 불편함의 고리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게 하나씩 들이밀었다.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으로 사춘기시절까지 사시가 있던 혜정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사시가 있었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한쪽눈에 하얀 의료용 안대를 하고 다녔는데, 사시가 꽤 심해 초등학교 무렵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애의 눈이 교정되는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조용한 따돌림을 당했다. 처음엔 그 아이의 눈이 상대방을 째려보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남들과는 달라서. 그 아이가 이사를 가기 전까지 나는 꽤 절친한 그애의 친구였는데, 수많은 추억이 생겼어도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린시절 혼자 놀이터 모래밭에서 놀고 있던 그애의 모습이었다.
'청귤'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준다기 보다는 내 안에 흩어져있던 조각들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볼까도 싶었지만 책을 읽고 너무 내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 역시도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니까. 소설집 안의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고 기대보다 무거웠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런 계기없이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을 것들을 문득 꺼내보게 되기도 했고. 흐린 가을날에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더 궁금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내 이야기만 늘어놓은 감상평이 되었지만, 이쪽은 진짜니까. '청귤'을 읽고 나서 혹 궁금해진다면 글을 남겨보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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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
'청귤' 책을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이책에 대한 궁금증은 극에 달했다. 많은 이야기가 책속에 숨겨져 있을것만 같은 제목에 책한권.. P,68 "사람들은 청귤을 보며 여름에도 귤이 난다며 신기해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면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은 쓰고 시고 딱딱하기만 해.진짜로 먹을수는 없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는 온갖 많은 감정들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속 그속에서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상처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할까.저마다에 가슴속에는 타인들이 알지 못하는 상처들이 깊은곳 어딘가에 존재한다. 이책은 그 상처를 이야기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조금은 다른 사람들에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내가 될수 있는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책속에는 총 다섯편에 단편소설과 한편에 장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막내삼촌은 가족들과 필리핀으로 이민을 갔다. 잘살고 있으리라 생각한 삼촌은 숙모대신 두아이들과 필리인여성 로레나를 데리고 돌아왔다.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사람들에 따가운 시선속에서 살아가는 로레나에 이야기 <로레나> 어릴적 겪지 말아야하는 트라우마로 인해 가족을 원망하고 피할려고만 하고 살아왓던 시간들을 풀어낸 <이야기의 이야기> 오래전 동생이 자살했던 기억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외국인 남편에 이야기를 하는 아내..<오샤와> 평범하게 살아가는듯 남들에게 그리 보이지만 어린시절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발레강사!!자신을 그 괴로움에 기억속에서 빠져 나오게 하고자 이야기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친구들을 눈길을 피해 거리를 배회하다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자신이 위로받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뮤해야 하지만 도리어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괴로웧워하는 사람에 이야기 <그랑주떼> 각기 다른 상처들 아픔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들은 고통점이 존재한다. 각기 다른상처들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 상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치유하고 이겨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고통을 줄때 이겨낼만큼만 준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나는 아프다 아프다...그 생각만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겉돌기만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일것이다. 소설속 어떤이들처럼 나름에 방법으로 세상밖으로 나와야 하는것이다.
소설은 허구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책속에는 소설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고통과 상처들을 너무나 잘 그려내었다.그리고 그 마음속에 존재하는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존재한다는걸 소설속 주인공들을 통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그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건 아닐까. 실제로 소설속에 존재하는 상처들은 허구가 아닌 누군가는 겪을수도 있는 우리들에 이야기인것이다.이 책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전해지는 이야기속 아픔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이 마음속에 큰 여운으로 남는건 자신이 겪은 상처로 인해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살아가지만 그 상처속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에 방법으로 치유해나가는 주인공들에 모습속에서 나 또한 아픔을 바라볼줄 알고 마주하길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기에 긴 여운이 함께하는것이 아닐까.. 오래토록 기억속에 남을 조금은 다른 소설로 기억될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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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동질감 유발 소설집, 단편소설 다섯 편과 중편소설 한 편으로 이루어진 김혜나 작가의 첫 소설집- 작가로서의 삶이 약간은 늦은 출발이지만 박완서 선생님도 있으니 너무나도 빠른 출발이다. 자기 학대와 상처로 얼룩진 저자의 소설들을 들여보고 있자니 뜨끔하는 순간도, 나를 보는 것 같은 순간도, 이렇게까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느끼면서 읽게 되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작품들에 투영되어 이것이 실제인지, 허구인지 모호한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자화상 같은 작품들을 접하니 알싸하니 코 끝이 매워오고 마음 한 켠이 얼룩덜룩 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이야기 하고 싶다. 미치도록 당신에게 고백하고 싶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픔에 그리움이 덧대어져 그녀는 외로움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생채기 뿐인 시간들이지만 끝없이 어떤 존재에 대한 그리움,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래서 너무나도 미운 존재가 때로는 몹시도 열망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고, 죽이고 싶도록 경멸하는 존재이지만 그 손길마저 그리운 존재- 육체적 고통도, 정서적 트라우마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치유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약한 한 인간의 회복을 위한 발걸음이 하나의 이야기와 다음 이야기에 겹쳐졌다. 겹쳐진 듯 싶다가도 또 다른 인물과 상처로 다시 반복된다. 그 치유의 해결책은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번뇌, 혹은 이야기를 위한 다소 두서없는 독백, 혹은 소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에서 여운을 남긴다. 고통 받았지만 그래서 읽는 내내 언뜻 보면 고통받은 존재들의 내적 죽음을 보았다, 결국 그들에게는 죽음 뿐이구나 생각되었지만 책을 덮고 그들의 좌표를 잃고 풍랑에 흡쓸리는 현재의 삶들을 보면서 불안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겨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예상대로 최종적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을 것 같고 그지같은 삶을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회복하여 일어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아직은 전자 쪽에 가깝지만 소설 속 그녀들은 일어날 것이다. 남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자신 스스로에게 징벌적인 혹독한 신체적 가학을 보면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의 간절함이 내게까지 스며들어 어쩌면 세상에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은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엔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모든 사람이 한 번씩은 서로를 할퀸다.
놔두고 보기에는 예뻐 보이지만 맛을 보면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을 "청귤" 완벽해보이는 잘 익은 노란 "감귤" 사람들은 어쩌면 대부분 스스로 청귤로 생각하며 살 수도 있다. 완벽하게 잘 익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감귤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일 것이다. 자뻑인 사람은 자신만 감귤로 생각하며 살려나?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찌 되었건 우리는 모두 어딘가가 모자란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아파하고, 절망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혜나 작가의 소설은 인간이기에 겪는 성장통과 자아 성찰적인 혹은 고통의 동변상련을 담아낸 비망록 같은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있음에 이 모든 괴로움을 겪어내고 있는 것일 뿐, 고통의 근원을 찾아 치유하는 방법은 자신의 몫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나도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것들이 궁금했다. "괜찮을까?" 내가 묻자, 삼촌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희미하게 대답했다. "괜찮겠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중략) "잘 살겠지." (로레나, 30) 사실은 저도 그것을 알고 싶어요. 알고 싶어서 자꾸만 이야기하게 돼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지 못해서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야기의 이야기, 36) 바로 그 순간, 당신이 나타났죠. 그렇게 당신을 발견한 나는 이미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나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냥 이야기했어요. (53) 거대한 건물들이 뿜어내는 불빛,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들, 어디론가 계속 걸어가는 사람들, 우리는 마치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간 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청귤, 59) "말하자면, 이 귤 같은 거야." 미영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미영의 손 한쪽에 푸르뎅뎅한 청귤 하나가 들려 있었다. 까서 먹지도 못하는 청귤을 왜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지만 거두절미하고 그저 "뭐가?" 라고만 물었다. (68) "멋있다, 영." "뭐가?" "너는 진짜 귤 같아, 영." "뭐?" "겨울에 먹는 감귤 말이야. 겉과 속이 똑같고, 그리고 그건…, 진짜로 달고 부드러워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아." (70)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은 꼭 겨울나무의 겉껍질 같아 보였다.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 한 자리에 붙박여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그곳에 서 있었다. (오샤와, 85)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내가? 주드한테?" 앤드류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그딴 새끼한테는 화낼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런 앤드류의 표정과 몸짓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려다 말고 뒤돌아 다시 물었다. "그럼 너는, 누구한테 그렇게 화가 난 거야?" (107) 버스터미널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전철역 방향으로 걸었지. 그런데 내 발걸음이 평소와는 달랐어. 내 안에 얕은 떨림과 흥분이 자라났어. 왜일까? 나는 지금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가는 것뿐인데, 어딘가 먼 휴가지로 떠나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겨우 한 시간 반 거리의 대전에 가는 것일 뿐인데. 그런데도 나에게는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듯한 느낌이 배어들었어. 그래, 떠남, 떠남이었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상 중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떠남,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것의 정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오빠가 그토록 많은 여행을 떠나는 거겠지, 라는 생각까지도.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121-122)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인도에 와서 생활해나가며 메이는 진짜 현실을 깨달았다. 내 삶은,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구나. 나는 결코,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없구나. (133) 이곳은 인도의 수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지방 소도시일 뿐인데… 내가 죽고, 뉴스에 내가 사망자로 알려지면, 케이가 나를 알아볼까? 내가 죽은 것에 그가 퉁격을 받기는 할까? 케이가 놀라면 좋겠어. 아주 조금이라도, 그의 삶에, 그의 심장에, 그의 기억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그가 나로 인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나에게 무감각해지지 않으면 좋겠어.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에게 각인되고 싶어.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어, 나를 잊지 않으면 좋겠어… (137) 이따금 나는 등굣길 교문 사이를 지나는 아이들 큼에서 리나의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쉬는 시간에는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여자아이들 틈에서 리나를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면 서둘러 점심을 먹으려는 아이들로 소란한 급식당 안에서도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는 제법 멀리 떨어진 자리에,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항상 리나의 모습만 보였다. 리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중에도 어딘가 모를 다른 세계에 외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세계는 과연 어디였을까?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랑 주떼, 178) 나는 오빠의 그 거짓말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네가 잘못 본 거야. 저 남자는 그 남자가 아니야. 그 남자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야. 그러므로 그 일도 너에게 없었던 일이야.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일어난 적조차 없는 일이야. 그것은 모두 꿈이고, 착각이고, 거짓이야. 나는 점점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무엇이 허상이고 또 진상인지, 무엇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211) 그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빛을 감추거나 숨기는 법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으로 홀연히 빛났다. 아주 어렸던, 그때의 나에게도,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빛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흘러나오고 있었을까?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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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4 메이는....죽고 싶었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사라질 것 같은 자기안의 욕구, 그 살의를 비워낼 수 없다면, 이것이 끝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해갈되는 욕망이라면, 그 대상은 바로 메이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까지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를 죽여야 해,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 핑갈라를 무찌르고 영원한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는 거야 내 안의 악마를 없애기 위해, 나를 죽여야만 하는 거야.... 아주 조금이라도, 그의 삶에, 그의 심장에, 그의 기억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그가 나로 인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나에게 무감각해지지 않으면 좋겠어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에게 각인되고 싶어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어, 낫늘 잊지 않으면 좋겠어.....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중에서 다문화 가정, 가정폭력, 동성애, 자기학대, 모멸 등 불확실하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연약한 존재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본 삶의 의미 P82 좋은 귤도, 나쁜 귤도 없어, 영 청귤도 감귤도, 다 똑같은 귤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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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고독함에 갇혀버릴 때가 있다. 그 감정을 일으킨 상황보다는 그 상황으로 만들어진 감정 자체만을 끌어안고 베갯잇을 적시곤 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생각은 하지만 개선이 아닌 회피에 목적을 둔다. 타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김혜나 소설집 '청귤'은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 총 여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야에 들어온 건 허투루 넘기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하는 것 같다. 나도 이 글의 주인공이 되어 이 감정을 만들어낸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씁쓸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책에서 흘러나와 책을 잡고 있는 손을 통해 마음까지 도착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뿐인데도 나는 그 속에서 회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청귤과도 같은 상태인 걸까.
감정의 고독함에 빠져 혼자 허우적대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같은 상처를 공감하다 보니 차츰 내 상처를 한 줌씩 꺼내어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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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저마다의 아픔이나 가슴 깊이 숨겨 둘 만한 이야기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고들 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고, 그래서 인지 이 책은 가슴 한 곳에 숨겨 둘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 모아놓았다. 청귤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씁쓸하고 조금은 우울한 이야기들, 피하고 싶지만 마냥 피할 수는 없고 외면하고 싶지만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그런 이야기들... 이 책은 여섯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각 각 독립된 단편이 이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내용들이었다. 사실 읽는 내내 많은 생각에 쉽사리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나열 된 활자들 속에서 그 활자들이 갖는 의미를, 그 활자가 내포한 뜻을 찾으려 한참을 고민하고 다시 읽어야했다. 결코 어렵게 쓰여 있는 책은 아닌데 읽어내기가 그렇게도 힘이 들었다. 한 챕터를 읽고 숨을 고르고 또 한 챕터를 읽고... 그렇게 오랜 시간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는 순간, 이 책이 이렇게 힘들게 읽혔던 이유는 어쩌면 작가의 삶이 녹아있었기에 그리도 힘들게 읽혔던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의 아픔을 소설을 쓰고 요가를 쓰면서 잊어내고 버텨냈다는 작가의 말에,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마냥 허구의 이야기들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이 누군가의 아픔을 공유하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다독이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특별하지 않은 아주 보통의 이야기들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혜나 작가에게 글 쓰는 일이 요가가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의 희망이 되고 빛이 되어주었듯 이 소설이 지루하고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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