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나. 할머니집에서 바닷가로 나가는 골목길 끝의 함석 담벼락 미성년자 관람불가(그 때는 정확한 뜻을 몰랐다)라고 써진 이상야릇한 영화 포스터 틈의 포스터 한 장. 충격. 이상의 것이 '양철북'에 대한 내 최초의 단상이다. 물론 책이 아닌 영화포스터였다. 만삭이 된 임산부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모습을 배 위에서 다리 방향으로 찍은 사진(혹은 그림)이었는데, 어린 나는 그것을 보고 다른 어떤 포스터보다 음란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음란하다'라는 개념이 미처 형성되기도 전에 그것을 느낀 나의 혼란이 얼마나 컸으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 포스터와 느낌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묻혀있었다. 무의식 속에 침전되어 있던 그 기억이 일 년 전 대여점 한 구석에서 '양철북'이란 책을 발견했을때 일시에 화악 들고 일어났다. 야한 영화(?) 제목으로 기억하고 있는 책이 꽤나 엄숙한 표지를 하고 대여점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니. 생각할 것도 없이 책을 빌렸고, 다 읽기까지 10일간 오스카의 장황한 수다에 빠져들었다. 고전은 - 그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는 모호하지만 - 확실히 어렵고 딱딱하다. 책장이 휙휙 넘어가지가 않는다. 하지만 감자밭, 겹겹 치마 속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졌다는 쇼킹한 시작부터 아이이면서 성인이 된 오스카의 모순된 결말을 볼 때까지 다른 책은 집어들고 싶지 않았다. 수다쟁이 노인네에게 어쩌다가 붙들린 기분.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할아버지의 지겨운 옛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반쯤은 지겹고, 반쯤은 재미있고, 떨치고 일어나자니 예의가 아닌 듯 싶고. 그렇게 긴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나갔다. 귄터 그라스가 노벨상까지 받은 '대작가'였기 때문일까. 전쟁이 일어난 후의 아이의 모습을 한 성인 시절보다는 성인의 마음을 가진 아이의 신랄함이 더 마음에 들었다. 싸구려 유리창으로 내다본 것 같은 눈부시고, 어지럽고, 약간은 일그러진 세상. 어린 시절의 나도 문득문득 세상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양철북'의 포스터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낯설고 어색한 독일의 문화 속에서 펼쳐지는 장황한 이야기를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동질감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문득문득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잠시, 오스카의 시선으로 창 밖을 내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