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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책제목이지만, 오히려 저는 좀 아팠습니다. 오래된 우울증으로 여전히 아픈 마음과 바뀌지 않는 나와 주변 환경에 몸까지 아파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서평이벤트' 당첨으로 기분만은 무지 좋았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하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과 마음을 다독거려줄 수 있을 거라 믿어지는 책제목.. 새 책을 만난 생각에 살짝 설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제목에서 말하는 아픔은 내가 생각하는 정신적인 종류의 그런 아픔만이 아니였습니다. 나는 내 아픔에만 집중하느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이 대한민국에, 이 주변에.. 이렇게 다양하고 슬픈 아픔들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대부분 우울증 환자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는...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젤 아픈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소리내어 내뱉지 못하는 그 아픔.. 그 아픔이..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쓸데없이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고작 우울증 따위로 이렇게 징징내며 아프다고 울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우리 사회는 많이 아픈 사회였습니다. 새삼 그걸 또 깨달았습니다. 아니, 깨달았다기보다 인지했습니다. 잊을만하면 자꾸 떠오르는 사건, 사고들.. 세월호, 세 모녀 자살 사건, 미투 운동 등등등..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득 올라오는 기사에 '아직 해결이 안 났나?' '저 사람들은 왜 아직도 저러고 있지?' 이렇게 생각했던 제가 참 한심했던, 그런 이야기의 책이었습니다. 솔직히 언론에 계속 나오지 않으면, 뭐.. 뉴스나 기사를 잘 안 읽는 편이긴 한데.. 그렇게라도 나오지 않으면.. 나만 신경쓰기에도 벅찬 나여서.. 세상사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던 나라서..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으면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은데.. 워낙 위의 사건들은 사건 크기가 너무 크고 공감되었던 지라.. 많이 아팠고 많이 놀랐고 많이 화났고 많이 슬프고 그랬었는데.. 이제.. 고작 몇 년이 지났다고, 정말 고작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랬습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참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정말 잊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0.01% 다행이다 싶은 건 매년 4월 16일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다는 것.. 그거 하나는.. 그래도 내가 이건 아직 기억을 하고 있구나.. 잊지 않고 있었네.. 그렇게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세월호 뉴스가 실시간 뉴스속보로 컴퓨터 화면에 떠올랐을 때가 생각납니다. 한참 충격으로 너무 놀라 그저 멍하니.. 한참 멍하니..입을 막고 모니터 화면만을 쳐다봤었는데.. 아직 그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간이 지나버리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무살의 9.11 테러 사건처럼 4.16 세월호 사건은 그만큼 컸었나 봅니다. 머리가 아닌 날짜를 보고,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가슴이 시리게 아픈 걸 보면은.. 특히나 희생된 아이들이 많았던 지라.. 다들 내 조카들 같아서.. 마음이 참 아프고 무거웠습니다. 뭐 여전히 저는 아프고, 몸도 마음도 제가 제일 아프다고 느끼고 있지만..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관심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에 쓰여진 만큼의 모든 아픔들을 모두 다 포용하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슲퍼하고 같이 화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적어도 제 피부에 심장에 와닿았던 아픔들만큼은 그런 슬픔들이 시간이 지나고 언론에서 더 이상 그 이름들이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기억하겠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있었고 그런 사건들이 지금 어떤 상황이 되었고 또는 어떻게 해결이 되었고.. 글쎄요.. 해결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아픔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프다고 슬프다고 외면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달려가 같이 아파줄 수 없지만, 그러기에 나란 사람은 너무 나약하고 미약하지만, 잊지 않도록.. 내 머릿속에서, 내 가슴속에서 그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마음에 또 새기고, 새기고 또 새겨서... 적어도.. 적어도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또 같은 식으로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함께 마음을 모으고 싶습니다. 시간 관계상(실은.. 읽는 내내 아파서..아직 3분의 2밖에 못 읽었습니다. 죄송.ㅠ) 제 서평은 여기까지겠지만, 저는 계속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야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아픔, 알아야만 했던 아픔, 몰라서 미안했던 아픔.. 같이 아파주지 못해 슬펐던 아픔.. 읽으면서 다시, 아니, 읽으면서 같이 아파하겠습니다. 아파하고 기억하고 새기고 또 그렇게해서.. 그 아픔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저는 계속해서 읽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조금 아쉬웠던 점은 책의 주석들이 맨 뒤로 빠져 있었던 것인데..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한 페이지 안에서 읽을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주 아주 작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 아픔들을 보고 사람들이 더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마음만큼이나 저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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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면 온통 아픈 사람 천지다. 지구상에 오직 환자만 살아간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다 일단 병원 문을 나서면 세상이 또 달라보인다. 모두가 심신 문제가 없는 건강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딘가 아프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고 흉악 범죄자가 '심신미약'을 구실로 삼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는 '아픔 공화국'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과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인 이유도,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범람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대중의 우려를 불러모은 묻지마 범죄도 사회적 질병의 명백한 증후다. 사람이 아픈 것은 정신력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나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인심도 각박해져 시쳇말로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은 박사과정을 마친 후 고국에 돌아와 1년간 '아픔 공화국'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했다. 그리고 목도한 한국 사회의 아픔을 크게 '가족의 아픔, 낙인의 아픔, 재난의 아픔, 노동의 아픔, 중독의 아픔'으로 범주화했다. '의료인류학'은 무척 생소한 용어인데, 인류학자가 현장의 통역자라면 의료인류학자는 현장에서 아픔을 통역하는 사람이란다. 여기서 '아픔'은 무엇보다 권력의 문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간주된다. 의료인류학이 다루는 소재와 접근법에서 볼 때, 기존의 재난사회학이나 위험사회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픈 사람은 크게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질병의 환자'로 나눌 수 있다. 병실 환자는 그나마 의사와 가족의 꾸준한 관심과 정성 어린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거리에 방치된 사회적 질병의 환자는 병원치료는 엄두도 못내고, 가족의 보살핌과 친구의 관심마저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병실 환자는 병원에 들어서면 대중의 시선에 확연히 들어오지만, 사회적 질병의 환자는 특별히 불미스런 사건이 없다면 대중의 눈에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투명체로 살아간다.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는 질병은 이른바 사회적 구별짓기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장애인의 경우는 여기에 사회적 낙인까지 더해진다. 멀쩡한 사람도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 장애를 겪게 되면 자신이 이도저도 아닌 '경계적 인간'이 되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경계적 인간에 대한 공감어린 시선과 아픔에 대한 성찰이 사회적 구별짓기와 낙인의 틀을 허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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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있는 ‘아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궁금했는데,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아픔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세상은 아프다고 하면 약자로 취급한다. 제 주위의 사람들도 나의 약점이나이것에 저항하는 불온(?)서적이다. 전체적으로 여러 약자의 아픔을 말한다. 아니 아파서 약자가 된 이들을 드러내고 함께 아파하고 울린다. 첫째와 마지막의 큰 묶음은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약자가 된 버려진 아기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여러 가지 중독-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은 게임 중독-에 빠지는 이유로 가족을 들고 있고, 저자의 어린 시절 할머니를 떠올리며 전자오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가족을 말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 나라 사회에서 어떤 위치나 힘을 가지는지 말하는 것 같다. 이 밖에 등장하는 아픈 이들은 4·3항쟁과 베트남전의 피해자들, 4·16참사를 연결하며 공유하는 기억의 힘을 통해 아픔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장애인을 보는 우리의 비열한 시선,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여성이라는 이름의 약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아픔,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 텔레마케터, 니코틴 중독, 마약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여러 사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내가 마치 이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사회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거나 바라보도록 강요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산업 재해 등으로 통증이나 질병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거나 소위 흙수저로 대표되는 가난한 사람도 장애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개인의 부주의, 나약함, 무능함 등으로 포장해서 책임을 전가한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자답게 현장에 찾아가서 당사자를 인터뷰하거나 그 현장에서 찍은 사진, 다른 여러 나라 사람(인종, 민족)들의 문화나 사례, 여러 학자 들의 논문, 각종 통계 자료 등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네러티브)로 잘 녹여내고 있다. 이것을 통해 함께 울리기(애통, 공감, 공명)를 의도한 것 같다. 함께 울림을 통해 경계를 뛰어넘어 그들과 새로운 가족이 되는 힘을 가지게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삼성과 반올림 이야기에서 등장하지만 이 책 전체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아픔들이 실제함에도 무감각하고 울림이 없는 우리는 정말로 아픈 사람이요, 약자인지 모른다. 성경에도 예수님이나 선지자가 한센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영적으로 무감각한 것을 한센병에 걸린 것으로 많이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11장 16절~17절에도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하신다. 이 책은 이런 무감각한 병에 걸리거나 애써 억눌러 약자로 보이기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함께 울리는 약자가 될 때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새로운 힘을 가진 공동체나 가족으로 힘차게 살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 처방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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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았으면 - 좋겠습니다>는 인류학자가 1년 동안 아픔의 현장을 거닐며 목격한 아픔들을 담아낸 책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아픔은 넘쳐나는데, 그 아픔마저 '말하지 못하게'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는 오해를 넘어 몰이해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 책은 아픔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가족의 아픔, 낙인의 아픔, 재난의 아픔, 노동의 아픔, 중독의 아픔. 길바닥과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 학대로 숨진 아이를 통해 어린이 인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결혼한 부부로 구성되어야 정상가족이라는 한국의 극단적인 정상가족 담론이 미혼모 자녀를 사회적 시선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습니다. 4·3 항쟁과 베트남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 세월호 참사까지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국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애를 보는 비열한 시선과 빈부 갈등이 빚어낸 낙인들, 그리고 미투 운동.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외국인 노동자의 아픔. 가난이 죄가 되는 사회. 흡연과 마약,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회의 아픔들이지만, 드러내놓고 그 아픔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아픔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산다는 건, 그들과 다른 몸이라서 그들과 똑같은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인류학자는 일종의 '통역자'와 같다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몸들이 보는 세상을, 그 아픔의 영역을 통역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아픔을 마주하며 공감하는 경험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바로 나의 아픔이라고 느끼는 순간, 공감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아픔을 공유할 때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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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인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인간’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을까요. 바쁜 세상 속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사고들을 스쳐지나가며 살아가는 우리네에게, ‘인간’에 대한 생각 다시 말해, 바로 옆에서 같이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생각은 생각보다 어려운 ‘생각’입니다.
살면서 누군가의 ‘아픔’을 돌아보기보다는 나의 ‘아픔’에 대한 토로를 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겪는 아픔이 가장 크게 와닿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슈가 되어 여러 매체를 통해 큰 소리를 내면 그 때만 그에 대한 관심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관심이 없게 됩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바빠 이슈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에서 아직까지 진행중인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때의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라는 ‘아픔’이 되살아납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아플 수도, 그 만큼의 고통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느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기 때문이죠.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사회 문제를 읽으면서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 사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해결해 보려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관심’이 가장 필요해 보였습니다. 순간적인 ‘관심’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이 관심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인류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답답한 현실에 책 한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응당 넘어야 할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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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우선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선뜻 손을 뻗어 펼쳐들기에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프롤로그를 읽고는 맘을 먹었다. 읽어야겠다고. 아픔이란 단어는 질병, 질환, 혹은 고통이란 명칭과 사뭇 다르다. 그건 “아프지 말고! 알았지?”라는 흔한 당부 속 ‘아픔’이다. ... 이 ‘아픔’은 학습과 탐구의 영역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의 영역이다. ... 이런 세상에서 위로라도 받으려면, 아픔의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약자의 ‘증거’는 진위와 상관없이 무기력하기 일쑤다. 그래서 ‘아픔’은 실제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힘없는, 너는 나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구의역에서 홀로 승강장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사망한 19세 청년을 추모하는 문구) ... 힘없는 너는, 그래서 아픈 너는, 곧 나다. 힘없는 존재임을 공감하는 순간, 똑같이 아픈 존재임을 느끼는 순간, 똑같이 아픈 존재임을 느끼는 순간 너와 나를 나누는 경계는 순간해체된다 - 프롤로그 중 한나 아렌트의 “악은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라는 표현,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에 소개된 “간접경험과 상상을 통한 공감력 키우기”가 문학의 효용이라면 효용이라는 글에 깊이 공감한다. 물론 이 글은 문학이 아니다. 그러나 사건의 개요는 대충 알고 있으되 ‘타인의 고통’이기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애서 외면했었던. 각 장을 묶어두는 기준이 각각의 아픈 사건들을 관통하는 큰 의미를 보여주는데, 4.3 항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보복성 차원에서 베트남의 민간인을 학살했던 사건, 4.16 세월호 참사가 함께 엮여 있다. 장애와 미투 운동을 ‘낙인’이라는 아픔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삼성전자의 산재 환자들은 거대한 기업과 로펌, 더디고 더딘 사회의 공감력이라는 ‘재난’의 아픔으로 엮어놓았다. 흡연이나 게임 중독 등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서 들여다보고 공감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제안을 한다. (p.205) (레이 모이니핸과 앨런 커셀스의 <질병 판매학>에서 인용한 부분) "불쾌한 사람들의 감정과 문제성 있는 태도를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정의하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첫째, 약 복용자가 겪는 고통의 진짜 원인에 대해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줄이며, 둘째, 복잡한 사회 문제들을 개인화 시키고 탈정치화 시킨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결국 아는만큼 보인다/ 느낀다는 진리는 같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인류학자이기에 내게는 낯선 접근도 있지만 널리 읽혀지길 바란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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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 가짜뉴스가 다량 생산되는 요즘은 더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들이 받은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들을 조롱하고 매도하면서 이념적으로 몰고가는 자들이 있다. 무수한 감정의 파편들은 무감각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양극단으로 갈라서게 했다. 그들은 왜 억울함을 호소하며 길거리에 나와야 했는지 살펴볼 마음의 여유조차 우리에겐 없다. 공동체 의식보다 연대보다 이기적인 집단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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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픔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행여 말이라도 하면 최대치가 찰 나의 동정이며, 최악의 상황에는 약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는 세상이라지 않는가. - page 5, 프롤로그 책의 앞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참 받아들이기는 싫었지만 크게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려, 모든걸을 숨겨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기쁨은 숨기는 것보다 슬픔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 참 슬프다. 슬픔을 나누지도 못해 그 슬픔은 반이 되기는 커녕 점점 더 커지는 그런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책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이런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목차를 보아도 이런 시련, 이런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알 수 있다. 가족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 4.3항쟁과 4.16참사에 대한 이야기, 장애를 보는 시선에 대해 상처받은 사람들, 미투운동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산업재해, 이주노동자 등.... 이미 아는 내용들이기도 하고, 이 주제들만 봐도 얼마나 가슴아픈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해주고 얼마나 관심을 가져 주었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도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부분에서 큰 반성을 하게되었다.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지기도 하고, 언론에도 예전만큰 등장을 하지 않아 지워져가고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이고,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았다. 내 직접적인 일이 아니라도 이 문제에 대해 점점 멀어지는 내가 피해자분들에게는 참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또한 이분들의 슬픔을 진정으로 공감해 드리지 못했구나 하 생각이 든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이 슬픔에 대해 이 책과 같이 우리는 알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 슬픔을 알아가면서 함께 해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도 있었지만 다시 이런 사건들을 떠올리며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하는 내마음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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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 나의 아픔 이 책은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저자가 바라본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아픔을 묘사하고 있다. 아픔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괴로운 느낌이라고 한다.
예전 유명했던 드라마 ‘다모’의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과 상황으로 인해 아파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애써 외면하기도 하고 실상을 구체적으로 모르기도 하고 알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가족, 낙인, 재난, 노동, 중독 총 5가지 큰 주제를 말하고 있다.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인 한국,
1인당 국민 소득 3만불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하루 1명꼴로
아이가 버려지고 해외로 입양을 보내며 또한 하루 50건의 아동 학대가 일어나는 곳이 한국이다. OECD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해외 입양을 하는 나라. 또한 전세계에서
한국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보낸 나라이며 OECD
회원국 중 자살률과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각종 데이터들은 숫자로만 여겨질 뿐 현실적이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지난 2017년 9월 5일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의 대화’ 자리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무릎을 꿇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 자신의 자녀의 학교 설립을 위해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지역 주민들은 ‘연기다!’ ‘강서구 주민이 맞는지 확인해’라고 외치는 모습은 과연 저들만의 모습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왜 이제까지 말하지 않았냐고 묻지 마시고,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 주셨으면 좋겠다. 주목 받고 싶었냐고 묻지 마십시오.
이런 일로 주목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미투 운동자의 피해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여성이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왜 이런 피해를 당하고 나서도 오랜 시간 침묵 했는지 고민하는 사회가 하루 속히 되어야 할 듯 하다. 2012년 떠들썩 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加濕器 殺菌劑
事件)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살균제 피해를 통해 자녀를
잃었던 부모가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단순히 자녀를 잃었던 슬픔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여러 번 죽었으며 또 죽어간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와 장기가 망가져 죽고,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에 애통하여 죽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여 죽고, 부도덕한 기업의 발뺌과
무책임함에 죽고, 언론의 무관심에 죽고, 의사•교수들로 구성된 판정단에 의해 등급이 매겨져 죽고, 1, 2등급과 3, 4등급을 차별하고 분열시켜서 피해 규모와 배상 책임을 축소하려는 농간에 죽고, 더디고 더딘 우리 사회의 공감 능력에 거듭 죽는다. 이런 사상 최악의
생명 경시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도 왜 피해자들이 거듭해서 고통을 당하고 거듭해서 죽어야 하는가.’ 이
부모의 구구절절한 호소에 많은 대중은 외면을 하고 있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을 하지 않고 방관을 하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던 것은 아닌지 나부터
되돌아 보게 된다. 감정 노동자 하면 떠오르는 직업군인 콜센터 직원들은 상시 폭언과 모욕적인 언사로 인해 빈번한 퇴사를 나타내며
종종 자살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죽을 만큼 힘들면 그만 두면 되지? 뭣하러 죽느냐’는 식으로 고인의 삶을 평가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속 사정을 알고 또한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깨닫게 된다면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나약한
인간의 죽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직장에서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이들을 무능력자, 비겁한 인간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같이 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멀리 이국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적성, 능력과 상관없는 3D직업을 묵묵히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소식 또한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솜방망이 처벌로 사업주들의 권한은 강화하지만 죽은 네팔 청년에 대해 미안한 감정, 표현은 극도로 꺼리는 정부, 언론의 행태는 우리가 받은 모진 고난의
역사의 세월(일제강점기, 강제해외이주)을 또다시 가해자가 되어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담배를 마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점차 금연을
유도하는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흡연자를 마치 범죄자나 정신박약으로 묘사하거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풍토는 한번쯤 짚어봐야 한다. 여러 이유로 인해 흡연을 하고 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식 해야 한다. 최근 캐나다에서 대마초가 합법이 되었다. 전세계에서 대마초의 합법논란은
여전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이러한 논의 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마가 들어간 적법한 의료 용품조차
국내에서는 무조건 불법이 되며 그것을 수입해서 사용하다가 걸린 불치병을 앓고 있는 부모의 사연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WTO가 인정한 약품이지만 한국에서는 대마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이 불가능 하여서 통증 완화가 시급한 불치병을 앓는 이들에게 그림의 떡이 된 현실은 우리가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여기 저기 아프다고 난리이다. 이러한 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귀를
닫고 싶고 그만 듣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이러한 소리를 묵살하고 외면하는 순간, 내가 아플 때 나를 돌아봐주거나 도와줄 이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프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다. 다만 아프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 아픔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세상은 어쩌면 가능 할 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