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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에 딱 좋은 날씨군! 이렇게 말하는 누군가도 있겠지만, 죽기에 좋은 날씨는 없다. 죽기에 좋은 나이도 없다. 그러니 ‘죽을 나이’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저 살아가는 순간이 다하면 죽게 되는 것. 그것뿐이다.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70세가 되면 죽는다. 혹자는 죽고 싶지만 두려움과 고통에 머뭇거리던 일을 정부에서 해결해준다고 하니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죽을 나이를 법으로 정한다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법안이 통과되었다니 이상하긴 하다. 그럼 왜 이런 법안이 나왔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듯이 현실로 닥쳐온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제시한 법안이었다는 거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다. 노동의 인구는 적어지고 고령화는 빨라진다. 노령의 사람들을 돌볼 국가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모든 일에는 세금이 투입된다. 그 세금은 국민이 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족되지 못하기에 노령의 인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래서 국가는 결정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70세가 되면 사망해야 한다고. 법안은 통과되었고 정식으로 시행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남았다. 이제 2년 후면 7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죽는다. 현재 70세가 아닌 사람도, 70세가 훨씬 넘은 사람도 2년 후의 운명은 똑같다. 어디 그들뿐이랴. 아직 70세가 되지 않은 사람도 자기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 건강이 나쁘지 않아도, 그 전에 사고사로 죽는 게 아니라면 누구나 70세에 죽어야 하니까, 남은 시간은 바로 계산이 된다. 이런 세상이 왔다.
어머니를 10년째 간병하고 있는 도요코는 바쁘다. 살림하랴, 어머님의 잦은 호출에 응하랴.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으나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퇴사한 아들은 몇 년째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다. 딸은 할머니의 수발을 도와달라는 엄마의 청을 거절하고 독립했다. 남편이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돕지도 않는다. 시누이들은 어머니를 만나러 오지도 않는다. 누가 도요코의 힘든 일상을 알아줄까?
70세 사망법안은 어처구니없는 정책이다. 어떤 나라에서 개인의 목숨을 정하는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정책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안에 도요코도 포함된다. 10년의 세월을 외출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시어머니 병시중에 헌신했다. 부모니까 돌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자기만의 이기심을 내세울 때는 아니다. 시어머니는 남의 손이 닿는 것도 싫다고 간병인을 부르는 것조차 거부한다. 종일 잠시도 쉴 틈 없이 집안일에 환자 간병까지 하는 도요코의 일상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저녁이 되어 퇴근한 남편이 어머니는 수발하는 것도 아니다. 시누이들이 올케의 노고를 알아주지도 않는다. 어머니는 재활할 의지도 없다. 당신이 환자라는 특권(?)에 며느리를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중증환자도 아니니 재활을 하면 어느 정도 활동도 가능할 것 같은데 하지 않는다.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된 후로는 더 심해졌다. 어차피 2년 후면 죽을 텐데 재활 같은 거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일에 대한 의미가 없는데 재활도 의미가 없다. 설상가상 남편의 퇴직이 정해졌고, 남편은 오랜 꿈이었다면서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한다. (미친 거 아냐?) 처음, 남편이 퇴직한다고 했을 때 도요코는 막상 생활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찬성했다. 이제 시어머니의 간병에서 조금은 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같이 도와줄 테니까. 그런데 세계여행을 떠나겠다는 남편의 말에 화가 끓어오른다.
모든 상황을 혼자 끌어안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도요코가 답답해보였다. 저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싶었다. 하지만 도요코의 상황과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요양병원이 싫다고 소리치며 집에서 누워 계시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같이 보낸 3년여의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나 몰라라 하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모든 짐을 엄마 혼자 짊어지고 가야하는 게 미안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 그때서야 이해가 됐다. 도요코 역시 처음부터 그 모든 상황을 혼자의 몫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고, 같이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생활이 먼저인 가족들은 도요코의 희생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며느리를 무슨 무임금 노예처럼 여기던 고릿적 사고방식을 장착한 시어머니는 당신의 수발을 드는 이가 얼마나 힘든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의 손길이 싫다며 간병인을 두는 것도 거부했겠지.
지치고 지친 도요코는 가출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빈자리에 엉망이 될 집안을 걱정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요코의 빈자리는 가족들 몫으로 돌아간다. 갑자기 사라진 도요코 때문에 온 식구가 멘붕이 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야 하니까. 자기들이 직접 해보니 불편하고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급기야 이 사태의 해결책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한다. 시어머니 방을 환자가 움직이기 쉽게 새로운 시설을 하고, 시어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집안을 다닐 수 있도록 움직인다. 아들과 아버지는 주방일도 하고, 딸은 가끔 찾아와 할머니의 목욕을 돕는다. 한 사람의 빈자리를 여러 사람이 채우고 있는 거다. 이렇게 많은 일과 힘들었을 시간을 그동안 아무도 관심 두려고 하지 않았다니...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노인의 돌봄을 좀 더 수월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 곧 법안이 시행되면 70세 이상의 노인은 다 사망할 것이니 노인들 때문에 부족한 예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아니다. 한 가정의 현실과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거부하지 못함으로써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를 보여주고 해결책을 찾게 하려는 게 목적이다. 제목처럼 70세 사망법안을 가결하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거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답을 찾아가게 하는 데 한 가정 구성원들의 적나라한 진심을 들려준다. 모두가 한발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을 보지 못한 채로, 각자의 이기심만 먼저 채우느라 외면하는 것들을 불러와 눈앞에 세워놓는다. 정면에서 마주 보고 나니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엄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느라 자기만의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돌보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고 혼자서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막상 자기에게 닥치는 문제가 되고 보니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서는 이 가족 구성원의 모습에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지만, 부딪히면서 하나씩 배우고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어서 조금은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나이 듦을 거부할 수는 없다. 누구나 늙는다. 누구나 아플 수도 있다.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노후를 보낼 수도 있다. 청년 실업자가 되기도 한다. 빨리 일자리 찾아서 제대로 된 경제독립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가슴 아픈 현실이 계속된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서도 바로 알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마주해야 할 일상을 받아들이는 게 우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서로가 같이 나아갈 미래를 만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소설은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만 높여서는 안 된다는, 같이 한발 물러서서 봐야 한다는 결말을 보여주며 그게 최상의 답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각자의 입장은 분명 있을 테지만, 그 입장을 다 꺼내놓고 같은 길을 가게 한다. 비록 그 길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걷다 보면 조금씩 완전해지는 길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너무 적나라한, 무서운 현실을 그대로 들려주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섬뜩했지만, 무섭다고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당신과 나, 젊음과 늙음이 공존하는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는 고민거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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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그래도 설마?’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상상력 과잉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면이 많은 일본이어서 그런지 묘사되는 여러 풍경이 낯설지가 않네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탈리아와 한국 등은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태도이다.'라는 앞부분을 읽으면서부터 어쩐지 생생하게 그 정서와 위기감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하더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시누이와 남편의 태도, 정치가들의 이중적인 면모 등등...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바꾸어 놓아도 그럴듯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시작은 설득력있게 진행되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연 이렇게 정치가들이 의도한대로만 잘 흘러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현실은 상상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다만, 고령화/저출산 시대에 어쩐지 소설 속의 상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두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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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의 시작은 충격적이다. 70세가 되면 무조건 죽어야 한다.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의 해법으로 내놓은 처방은 상상을 초월했다. 법으로 70세 이상 인간들의 생명권과 인격권을 박탈하겠다는, 가히 합법적인 홀로코스트라 칭할만한 전무후무한 발상. 찬반 양론은 격하게 대립하고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될 개개인의 일상도 흔들린다.
며느리가 가출했다, 아니 탈출했다
시어머니 병수발로 지칠대로 지친 도요코는 해방감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이제 2년만 더 버티면 이 생활도 끝이구나.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오늘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함과 힘겨움의 연속이다. 도요코는 가족 구성원 누구의 관심과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밤낮없이 시어머니 수발에 잠도 제대로 못잘 정도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명문대학을 나와 누구나 부러워하던 직장에 다니다 그만둔 아들 마사키의 기약없는 백수 생활 뒷바라지도 도요코의 몫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년퇴임을 2년 앞둔 남편은 회사를 조기에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아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독립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 모모카에게 할머니 수발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시어머니의 딸들은 2년 뒤 본인들 앞으로 돌아올 유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어머니를 돌보고 수발하는데는 전혀 손을 보태지 않는다.
도요코는 노인 돌봄과 수발을 가족 내 여성(며느리)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통적인 가족돌봄의 문제를 상징으로 보여준다. 개호보험(노인장기요양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강화해 온 일본에서도 가족의 책임을 우선시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은 여전한가 보다.
사실 이 부분은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심하다. 노인 돌봄을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대비하고 책임진다는 인식은 복지선진국들에 비하면 아직 모자라다. 인식도 인식이거니와 실제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의 총량이 사회적 돌봄망을 튼튼히 구축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치매에 걸린 부모 혹은 배우자를 수년간 수발하다가 결국은 환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리는 비극적인 뉴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지독한 고독감과 외로움, 중노동에 지친 도요코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한다. 도요코에게 그건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다. 누군가에게 저당잡히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겠다는 해방 선언이다. 방을 구하고 직장을 얻고 평생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감행하면서 도요코는 점점 자아를 찾아 나간다. 갑작스런 도요코의 가출에 가족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당해봐야 정신차리고 겪어봐야 고통을 안다고 했던가. 도요코의 빈자리를 메꿔가면서 시어머니, 남편, 자식들 모두는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겪는다.
전대미문의 충격요법이 불러온 변화
도요코의 가출이 가족 내 충격요법이라면 '70세 사망법안'은 사회적 충격요법인 셈이다. 이 극약처방으로 일본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책은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데 결말에도 놀라운 반전이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재정위기를 벗어날 방법으로 기획된 '70세 사망법안'은 모든 충격요법이 그러하듯이 일본 사회의 자성과 각성의 계기가 된다.
총리는 법안의 전격적인 폐지와 함께 대폭적인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 노동 격차의 해소, 최저임금의 상승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70세 사망법안으로 온 나라가 노후 문제에 매달려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의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영위하면서 행복하게 늙어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깊게 형성된 덕분이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노인 문제는 단순히 노인 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자연적 과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잘 늙어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하고, 늙어서도 안전과 행복이 위협당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초고령사회라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변화앞에서 사회체계의 전면적인 수정과 혁신은 불가피하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설정이 다소 활당할수는 있으나, 이 소설은 저출산 고령화의 근본 해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이 불행이 아닌 행복이 되는 사회가 되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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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요새 같은 고령화 시대에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안락사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할 방침이다.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고 한다.’ 사회 전체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 ‘70세 사망법안’이 지극히 평범한 도요코 가족의 일상에도 들어온다. 사망법안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불안한 미래가 안정을 찾을 반가운 소식으로, 누군가에게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로,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을 무시하는 처사로 다가온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기회에서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되고 만다. 열 자도 채 안 되는 이 짧은 제목에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피부에 잔인하리만치 서늘하게 스며드는 현실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의 문제를 풀어 가는 시간 동안, 우리는 나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나’의 입장에서 진하게 공감하며 타인의 시각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더없이 사회적인 문제를 아주 평범한 한 가족에 투영하여,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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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키야 미우
이 책의 저자 가키야 미우를 처음 접한 책은 ‘이제 이혼합니다’란 책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러나 너무 얕지는 않은. 주변에 바로 있을 것만 같은 주인공의 담담한 이야기가 읽기에 편하고 끌리는 책이었다. 부담없는 위안을 느끼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을 쓰는 작가 같아서, 이 책도 구입해봤다.
2 주인공
이 책의 주인공도 ‘이제 이혼합니다’의 주인공 또래인 오십대 중반 일본 여성이다. 전 소설에서 주인공의 고민이 이혼이라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고민은 부양이다. 시어머니 부양에 바쳐진 인생. 이대로 좋은가.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들의 속물됨이 과장되지 않게 나오는데, 현실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할머니 부양의 무게를 같이 짊어지기 싫어서 도망 나와 독립한 딸, 좋은 대학 나왔지만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아들. 가족 먹여살렸다는 사실 하나로 당당하게 모든 가사와 부양은 거부하는 남편. 시어머니의 유산에만 관심있는 딸들. 악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꾸질하고, 이해해주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인간들이 등장인물들로 나오는데, 이들은 평범한 것인가? 나쁜 것인가? 다수가 그러니 읽는 나조차도 헷갈린다.
3 사망법안.
주인공과 가족들 앞에 70세 사망법안이라는 충격적인 법제도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변해가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다. 국민이 70세가 되면 국가가 나서서 생을 끝내게 해준다는 게 그 법안의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 이런 법안이 제출된다면 노인단체들 궐기 일어나겠지. 특히나 한국은 노인 무시하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정치인 인생이 끝나기도 하는 나라니,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법안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 책의 내용대로 지금의 많은 복지 재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누구나 그쯤 나이에 죽는걸 생각해봤을 것 같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짐되지 않고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가진 사람들도 많을테니 말이다. 나도 나이 들어서 내가 내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죽고 싶다. 그래서 70세에 편하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그러나 아마도 실제로 이런 법안이 제도적으로 도입된다면, 윤리적 비판은 제껴두더라도 심각한 현실적 부작용들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결국 자기 인생의 결말은 자기가 준비하는 수밖에.....
4 변화.
이 책을 읽고 확실하게 느낀 점은 변화의 중요성이다. 그냥 참는 것은 무의미하다. 견디고 참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행복하지 않다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 책에 나온 사망법안은 일본의 현실에서 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주인공의 인생에서 주인공의 가출 또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개선을 가져왔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사실 두렵다. 그랬다가 지금보다도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면 어떡하나. 또는 그동안 참은 게 억울해서 오기로 시위하듯이 변화에 도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 인생 아닌가. 참는 것은 정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참아주는 것을 고마워하는 사람도 없다. 누가 참아랬냐 라는 말이나 듣겠지. 아니면 싸구려 동정이나 지나가는 말로 하는 가벼운 칭찬이 그 보상의 전부일지도. 그게 목적인 인생이라면 그보다 비참한 인생이 있겠나. 무력감, 또는 변명이 되어버린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존중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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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70세가 되는 30일 이내에 죽어야 할 70세 사망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설이다.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70세 사망법안이 시행되면 연금 문제도 해결되고 노인요양원 수도 줄어 남은 재원을 70세 미만이나 장애인에게 돌릴 수 있어 의료비는 물론 대학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다.70세 사망 법안 하나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칠순 사망법안을 통해 도요코네 가족이 각각 어떻게 반응할지를 보여주는 얘기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도요코 가족을 생각하면, 시어머니 병간호에 지친 어머니, 도와달라는 어머니를 외면하고 자립한 딸, 명문대를 나왔지만 일자리가 없는 아들, 70세 사망법안이 강행처리되면서 퇴직해 세계여행을 떠난 아버지가 소개되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시점에서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70세 사망법안이 강행 처리되면 시어머니를 모실 며느리는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남은 인생은 15년밖에 없는데 2년은 시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남편은 칠순 사망 법안 이전에는 당연히 정년까지 일하려 했지만 칠순 사망 법안이 통과된 뒤에는 정년 후 인생을 즐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 정년을 앞당겨 퇴직하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 퇴직한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한 아내는 낙담한다. 정말 사려깊지 못한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화시대가 더욱 심각해지는 미래에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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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아미우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보통 일본 소설은 일본 소설만의 느낌이 이었는데 이 소설은 한국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번역가가 작가의 의도와 한국 사람의 정서에 맞게 잘 번역한 것 같다.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70세 사망 법안은 실행 유무를 떠나 많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가족의 모습은 현재의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모두 모아 놓은 집단 같았는데,남편과 아내 딸과 아들 모두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심씩 다른 생각을 하며 바뀌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역시 인간은 사회를 통해 바뀌며 발전하는 존재인 것 같다. 물론 도요코의 가출도 한몫했지만...
가정주부 도요코에게 시어머니를 맡겨버리고 본인들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조금의 배려라도 전혀 하지 않는 남편 아들딸, 또 남편의 여형제들을 보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0세 사망 법안이 발표되면서 조금이라도 온실이 있는 사람들이 잡초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며 가족뿐 아니라 사회까지도 변화하는데, 총리는 이런 것을 미리 예상하고 발표하지 않았을까?
봉사나 기부를 한 후 자신의 마음이 더 알차졌다면 그것이 진정한 봉사나 기부가 아닐까 싶다. 무엇을 하든지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마음인 것 같다. 남들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무엇을 하든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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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 가결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굉장히 흥미로워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배경은 일본입니다.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고령화 시대가 더욱 심각해지는 미래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이런 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이 법안의 효과를 사회 전체에서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있기보다는 각 개인의 삶에서만 고민을 하는 모습이 내용의 전부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소재가 매우 신선했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추천하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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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미있는 제목때문에 호기심에 구매하게 되었다. 주제는 70세가 되면 사망하게 하는 법안이 가결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물론 주제는 무거우나 실제 내용은 휴머니티를 가진 코믹한 이야기 전개로 재미있게 읽어 나갈수 있는 책이다. 3대가 사는 가정에 연로하신 할머니를 며느리 혼자서 케어하며 살아가다 결국 70세 사망법안이 통과되고 며느리도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과감히 가출을 시행한다. 결국 며느리의 살림 및 할머니를 케어하는 몫을 나머지 가족들이 분담하며 어머니의 고통과 희생을 공감하게 되는 가족애를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이 법안이 시행되지 않으며 해피앤딩으로 끝나지만 우리사회가 곧 직면하게될 초고령화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어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노령자를 케어하는 몫을 개별 가정의 몫으로 그려내 사회가 분담해야 할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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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과격한 제목이지만 현실 사회의 문제를 고스라니 수면 위로 끄집어 내고 있다. 더욱이 등장인물을 통해 그 모습들이 잘 녹아나 있기에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 모여 있지만, 저마다 꿈꾸고 있는 세계는 다양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아니였다면 집이라는 공간에 모일 이유조차 없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꿈꾸며, 현실을 부정지만, 정작 현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음에 포기하기 일수다. 70세 사망법안을 두고 그 갈등은 극대화되지만, 한편으로 그 갈등으로 인해 출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엄마의 가출이지 않을까 싶다. 무모하다. 대책없다. 로 생각될 수 있는 행동이 정말로 필요했던, 왜 이제서야 했냐는 아쉬움마저 든다.
고령화 사회, 세대갈등, 취업난, 졸혼, 비정규직 등 현 사회에 이슈되고 있는 모든 갈등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가정을 통해 꾹꾹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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