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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더라구요. 사실 꼭 판타지가 아니었어도 재미있을 추리소설이었어요. 주인공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사실 이런 존재가 하나 정도 있으면 세상의 살인사건을 다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미 여사님 세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는데 꼭 에도시대 물이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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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판타지였다. 나는 그 가고일 석상이 사람이 움직이는 것일까. 설마설마 했는데...아직 2권은 읽지 않았다. 그래서 사라진 사람들이 죽은건지 협상으로 그 가고일상에게 협조한건지 아직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연쇄 살인 사건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서 비탄의 문 2권을 구입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상상력이 무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런 시리즈를 만들어내다니. 미미 여사 대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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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문 1을 읽고 나서 바로 예스24에서 주문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번 기회에 처음 접하게 되었고 책은 나에게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책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저자가 선사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또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녀가 던진 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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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책 " 비탄의 문 "을 우연한 기회에 예스24 에서 발견하고 구입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더불어 미야베 미유키도 일본에서 유명하다고 하니, 책의 내용이 궁금해져왔고 택배가 오자마자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비탄의 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였고 과연 우리가 어떠한 시각과 생각을 갖고 주변을 바라봐야하는지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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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분이라 신작나오면 일단 믿고 사서보는:)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어놔서 쉽고 빠르게 읽힌다. 추리소설하면 대개 범인을 추리하는 구성이 많은데 이 책은 단순히 어떤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것으로 소설을 이끌어가지않는다. 말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이용할수있는게 놀라웠다. 정의와 욕망간의 애매한 경계속에서 사건을 파헤쳐가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날카롭고 깊이가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고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사회시스템적 문제와 사각지대 안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비유로 표현하며 꼬집은것도 기억에 남는다. 인터넷상에서의 나와 실제의 나는 전혀 다르지않고 무심코 하는 모든 말이 고이고 쌓여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그것을 피할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글은 두고두고 곱씹어볼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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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미야베 미유키는 범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러한 범죄행위의 트릭이나 함정을 어떻게 풀어 내는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장르 작가는 아니다. 범죄소설이 알리바이나 범죄의 추악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일응 독자의 흥미를 유인하는 중요한 요소일테지만, 강박적으로 계몽적 기능을 쫓는 독자 입장에서는 네 생각은 어떤데? 라고 질문을 던지고 단순하지 않은 현실세계의 가치 갈등을 교훈적으로 간접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의 역할에 충실한 작가의 시도와 방향에 수긍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탄의 문이라는 작품은 이세계의 설정이 들어간 범죄물이라는 점에서 현실성 없는 판타지 아닌가 싶고, 범죄의 영역에서 인간의 세계의 물리적 한계를 두지 않았을 때 작품 속 절대자인 작가의 뜻대로 흘러가고 마는 측면에서 인과성의 부실(혹은 무한성)과 흡입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시대적 관점의 문제를 의제화 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던지, 백설공주 살인사건, 서치 등등 다른 작품 들과도 함께 생각해볼 만한 문제를 제기한다.
개인, 하나의 인격체가 현실 세계에서 실재하는 경우 물리적 관계맺음의 한계성(시간적, 공간적)에 따라 해당 개인을 대상화하여 다수의 관계자를 통해 확보할때 개인에 대한 파악에 대한 용이성이 극대화되고 이는 객관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동일한 주체가 사이버 공간, 정보통신 환경, 인터넷 기반의 웹에서 활동을 할때에는 익명성과 한계의 무차별성으로 말미암에 대상의 일관성을 특정하기란 쉽지 않기도 하고, 인위적인 인격 형성마저 가능할지 모른다. 즉, 온라인 환경 안에서의 개인을 표상하는 인격의 병립으로 인하여 실존하는 하나의 주체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닿는데 어려움이 커진다.
단순히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관계맺음을 통한 인식에 더해, 보다 내밀한 인간성을 추가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이세계간의 병립을 통해 보다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익명의 보장성으로 말미암아 온라인 세계에서 개인의 인격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검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기도 하고 현실세계의 규율성에 익숙한 주체가 그 세계에서 얻는 부담을 이세계에서 해소하며 인격의 분리 혹은 규율의 해체를 통해 해방감을 얻는 경험으로 하나의 인격을 '확인'하고 '특정'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이세계의 병렬적 존재로 인한 개인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 - 이를 인간 소외로 볼 수 있을까? 혹은 너무 비약일까? - 은 가깝게 관계 맺는 사람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의 이해와 정의내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리적 흐름이 사실 온라인과 관계 없이 실체적인 현실세계에서의 관계맺음에도 페르소나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내면에 닿는데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런면에서는 이세계의 존재 이전에도 본원적 '소외'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도 하다. 그러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소외(다양한 연유에 의한)가 온라인에서의 괴리를 통해 심화되고 이것이 사회적, 구조적으로 이루어진 다는 점에서 개인이라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의 어려움은 당위적으로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소외- 괴리- 몰이해의 심화는 인간 사회의 견련성, 사회성의 반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 작품 그리고, 유사한 소재를 의제화하는 작품들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리라.
비탄의 문은 이러한 인간성의 이격 발생에 대해서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른 특성들과 함께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류적 동질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운명적 결론을 알면서도 비탄을 향해 질주하는 이유, 유형적 과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기리는 마음으로서 염원 이런 것들이 지향하는 방향
소외가 중심이 되는 범죄를 통해 그와 같으 무형적이고 되려 이성적 인식을 통해 납득하기 어렵지만 수긍하게 되는 감정의 중요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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