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라도 듣기 좋게 마치 아름다운 음악 소리처럼 굽이쳐 흐르는 대화의 영롱함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나 티브이 프로그램도 나는 두 시간 이상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 시간을 넘긴 그것들은 소음으로 다가오기 때문인데, 내 예민한 청각은 뭐든 장시간 노출되는 상황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목소리 큰 사람들 근처엔 좀처럼 가지 않는다.
‘도란도란’은 단어 자체에 조용함이 느껴진다. 속삭이듯 가만가만 말하는 모습은 푸근하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도 가끔은 그런 분위기를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요즘의 나처럼. 도란도란, 가급적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면 나는 정여울 작가의 책을 펼친다. 여러 번 읽어도 물리지 않는 그녀의 책이 나는 너무 좋다.
바로 이틀 전 리뷰 말미에 작은 소망을 담았었는데, 그 비슷한 내용을 이 책에서 또 만났다. “언젠가 당신과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오래오래 쓸쓸함을 견딘 당신과 나누고 싶은 소담스러운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아 띄워 보낸다. 너무 멀어 다가가기 힘든 대상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는 가을날의 오후, 그립지만 연락하지 않는 시간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내 작은 은신처에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백번 말해본들 아무 소용 없음을 알면서도 그 일조차 아름다운 그리움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타인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다면,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일 또한 멈출 수 있다. 다르게 볼 줄 알면, 비로소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목격하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많다. “기억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주체’의 입장에서 왜곡되고, 그 주체 중심적 서사에서는 반드시 욕망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접하니, 그와 같았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발자크의 소설, 『아듀』의 남자 주인공 필리프와 그의 옛사랑 스테파니의 비극적 결말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망각만이 살 길이어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았던 연인의 기억을 되찾아주었다가 도리어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된 사연이라니.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아닌 관점에서 사건과 감정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함을” 깨우침과 동시에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된다는 걸 인식했다고 한다. 나만큼 슬프고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잠시만이라도 내 주변을 살펴보자 싶다.
한겨울 꽤 오랜 시간,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있다. 평소 약속시간 엄수가 철칙인 내가 그렇게 한 데는 상대의 그런 사정을 알고도 내 쪽에서 미팅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인과 늦게 만났음에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마침 그날 첫눈이 펑펑 내렸기에. 몹시 춥던 어느 날, 몸살기로 일정 하나를 취소하고 카페에 들어갔던 저자는 창밖으로 맹인 안내견과 함께 서 있는 소녀를 보게 된다. 추위에 떨며 누군가를 오래오래 기다리는 듯한 그녀가 몹시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한참 후에야 소녀와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자 저자는 안도하면서도 후회한다. 진작 소녀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지 못한걸.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대도 그녀와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조바심으로 발만 동동거리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섣불리 돕지 못했을 듯. 이런 사소한 “잠든 감각을 일깨우고, 잃어버린 정서를 되찾아주고, 새로운 사유의 스위치를 켜주는 모든 경험”을 “소중한 버킷리스트”라고 말하는 정여울. 나는 지금 여울지는 중이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그림은 내게 난공불락의 거리감을 주던 신비로운 대상이었고, 그리하여 더더욱 ‘도란도란’ 다정한 말을 걸고 싶은, 너무 멀게 느껴져서 오히려 더욱 한 마디라도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었다.”
언젠가는 이 책에서 소개한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흰색과 회색·검정에 가까운 색을 위주로 한 그의 작품들은 저자의 말처럼 묘한 신비감이 있다. 우울과 고독, 뭔가 나른한 권태감이 느껴진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들의 무료함에서 구출되고 싶은 인물들의 눈빛이 절박해 보인다. 바로 그 점이 저자로부터 말을 걸고 싶게끔 하지 않았을까. 도란도란, 도란도란.
※ “ ”은 모두 위의 책 「도란도란」에서 발췌한 문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