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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종교의 천국이라고 부를만하다. 전통시대부터 자연신과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조선말기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기독교는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무섭게 교세를 확장시키기도 했다. 한때는 다방과
교회 숫자가 거의 비슷했고, 지금도 저녁이 되면 여기저기 솟아있는 십자가 불빛이 눈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예전에는 각 교단에서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를 모두 합하면 총인구보다 많다는 말도 있었으니, 가히 종교의 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교가 없다. 아니 신이 있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
학교가 미션 스쿨이었던 관계로 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고 일주일에 한번씩 채플 시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가졌던 적도, 종교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없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아이들은 아내의 영향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껏 다니고 있다. 그러나 내가 무종교인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의 신앙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종교는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한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줄 참이다.
이 책 [종교 없는 삶]은 미국을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다. 미국은 알다시피 종교적 바탕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나라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도가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미국에서도 무종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타임지는 미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10가지
변화 중 하나를 무종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급증을 꼽았다고 하니,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단지 한 때의
일시적인 변화만은 아닌 모양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이 책의 저자는 구체적으로 그 수치를 밝히고 있다. 1950년대만 해도 미국인 가운데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채 5퍼센트가
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30퍼센트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무종교인이 전체의 56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니 이는 단지 미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조류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첫째 목적은 사람들이
무종교인들에 대한 혐오와 불신에서 깨어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이 목적을 읽고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질문들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 건지 의아하기조차 했다. 아무리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지만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하는 질문은 총 8가지이다.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종교에서 멀어지면 좋은
사회에서도 멀어질까?
종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종교 없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무신론자를 위한 공동체가
가능할까?
종교없이 삶의 고난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미국사회에서는 종교가 없으면 무절제하고, 오만하며, 이웃을 돌보지 않고 이기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퍼져
있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삶의 기준이 되는 도덕성이 종교적 믿음과 참여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진리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맞서 수많은 무종교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과 증언을 통해 그것이 말 그대로 편견 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종교인들을 비난하거나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종교에서 찾는 것을 인정하는 그는,
무종교인 역시 그들과 다름없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말할 뿐이다.
그는 사람들이 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들을
대한다’는 의미라며, 이는 동서고금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황금률이고, 이것을 행하는데 필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공감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무종교인들은 상처나 고난, 중독에서 벗어날
때 신에게 도움을 비는 대신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고, 죽음 역시 불가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상의
내세를 기대하거나 갈망하는 대신 지금 여기, 바로 앞에 있는 것들을 즐기고 소중하게 여기며 산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한 경외를 느끼고 경험하는데 신은 필요하지 않다.
생명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남녀 불문하고 종교가 없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활력과 의욕, 열정, 끈기를 갖고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이기 때문이다’(24쪽)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최근 들어 종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데에서 찾고 있다. 그는 종교와 보수 정파 사이의 노골적인 합작에
대한 반작용, 사제들의 스캔들에 대한 정신적인 환멸, 여성
임금 노동자의 현저한 증가, 동성애로 대표되는 사적 자유의 이해증진,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이러한 원인들은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지켜나가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속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종교적 믿음과 참여, 종교적 정체성, 종교적
제도는 사회에서 약화되고 희미해져 결국 의미가 적어’(110쪽)짐에 따라 무종교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종교적인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는 무종교적이고, 대부분의 무종교인들도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종교성과 무종교성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 단지 한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음을
뜻한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은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그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책을 읽어가다 보면 ‘종교 없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삶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나는 일상에서 내가 무종교인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어버리고 산다. 나에게 고통이 닥쳐도,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담담하게 나를 돌아보고 ‘지금 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세속주의라는 무종교성에서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현대사회에서 종교란 무엇이고, 그 본질과 가치를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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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종교가 없으면 문제가 있는 것일까? 꼭 종교를 가지고 있어야 할까?
2015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56.1%라고 한다. 무종교 인구가 종교 인구보다 더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무종교 층의 연령대가 10대에서 40대의 젊은 층, 그리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도덕적이 않을까? 종교가 없는 부모들도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종교가 없이 자라도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자랄 수 있을지를. 종교 없이 키워도 큰 문제가 없음을. 종교가 없다고 해서 삶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를 어떻게 키워 가 갈 수 있는지를. 그래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의문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8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다.
1장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을까?
콜버그는 도덕적 발단의 여섯 단계를 말하고 있다. 청소년 후기가 되면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정의와 평등, 모든 인간 존재에 대한 존중과 황금률 같은 보편적인 윤리적 원칙들을 토대로 도덕적 추론을 하게 된다(p162)고 말이다. '우리의 도덕성이 어디에서 근원하는가?’ 보다는 매일의 삶에서 이 도덕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p72) 라는 말처럼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타락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신의 도덕을 발달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법칙인 황금률이면 충분하다.
2장 종교에서 멀어지면 좋은 사회에서도 멀어질까?
가난하고 혼란스럽고 문제가 많은 나라일수록 가장 종교적인 나라들에 속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부유하고 안정적이고 잘 돌아가는 나라일수록 가장 무종교적인 나라들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p84)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사회는 잘 돌아간다.
3장 종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종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를 저자는 다섯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 번째로 기족교와 보수적인 정치권 사이의 노골적인 합작에 있으며, 두 번째로는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소아성에 스캔들이 불러일으킨 정신적 환멸과 반작용이다. 세 번째는 사회적인 요인으로 여성 임금 노동력의 현저한 증가이다. 네 번째는 동성애를 인정한 것이고 다섯 번째로는 인터넷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종교 없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4장 종교 없는 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무종교적인 부모들이 복종보다는 자율성을 가티 있게 생각하고 자녀들에게 이것을 함양시켜 주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기독교인 부모들에 비해서 종교가 없는 부모들이 이성적인 문제 해결과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진리 추구 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p167)고 한다.
5장 무신론자를 위한 공동체가 가능할까?
무종교인들도 공동체 생활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개인적 선택권을 확보하고 삶의 많은 측면에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p219) 한다. 그러나 파스퀴엘 교수는 자율성을 대단히 가치 있게 여기고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다고. 그렇다고 해서 모두 반사회적인 은둔자 무리는 아니라고.
6장 종교 없이 삶의 고난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종교가 삶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내도록 긍정적이고 이로운 방식으로 도와준다(p243). 그래서 종교에 의지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교 없이 힘든 시기를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빅터 프랭클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희망이 아닌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그들고 그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7장 죽음 앞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종교 없는 사람들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말한다. 죽으면 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이 생이 유일하고 그러므로 이 생을 꽉 붙잡아 만끽하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이 끝나도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8장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삶은 경이롭다. 있는 그대로 모습 그대로 경이로운 존재이다. 아인슈타인이 썼듯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이 세계의 구조가 지닌 아름다운 조화를 겸허히 칭송해야 한다. 그것이 전부다." (p361)
알랭 드 보통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에서 종교에는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효과적이고, 지혜로운 것이 많다고 인정했다.(p378) 종교는 매력이고 보람 있다고 느끼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작가 데일 맥고원은 종교적 충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의 조건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p379) 다 맞는 말이다. 종교가 없다고 해서 삶에 감동이나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 없이 살아간다고 '아무것도 아니거나 무언가 결여된 삶'도 아니다. 종교 없이도 삶을 이겨내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성취와 실존적 경외의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를 파괴시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종교는 본인의 선택이다.
이 리뷰는 판미동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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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삶 이 책은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람들이 무종교인들에 대한 혐오와 불신에서 깨어나게 돕는 것이다. (29쪽) 현재 종교없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필 주커먼, 클레어몬트 피처 칼리지 사회학과 교수다. 저자는 미국내 다양한 인종과 민족 집단, 연령, 직업, 성적 취향, 출신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각계각층의 무종교인들을 심층 인터뷰하여 종교없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 『종교 없는 삶』의 원제는 『 Living the Secular Life: New Answers to Old Questions』이다, 번역해보자면, '세속적인 삶' 정도가 되겠다. 정작 중요한 말은 그 뒤에 있다. ‘낡은 질문에 새로운 대답(New Answers to Old Questions)’ 저자가 제목에 덧붙여 놓은 ‘낡은 질문(Old Questions)’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누차 질문이 있었고, 사람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해 왔던 질문들, 그래서 이제는 낡은, 오래된 질문으로 여겨지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이 책의 목차를 보면 그 질문들이 열거되어 있다. 1.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2. 종교에서 멀어지면 좋은 사회에서도 멀어질까 3.종교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4.종교없는 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5.무신론자를 위한 공동체가 가능 할까 6.종교 없이 삶의 고난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7.죽음 앞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8.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그렇게 8개의 낡은 질문에 저자가 새로운 대답을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스스로 밝히길, 새로운 대답이라 한 것은 나에게도 역시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새로운, 더 새로운 대답이 나올 때마다 멈추고, 생각하며, 그 뜻을 새겨보려고 애를 썼다. 물론 나의 생각 – 이미 편견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르는 – 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신선한 생각으로 나의 굳은 편견을 깨우치는 부분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또한 지금 종교 – 거의 모든 종교, 기독교를 포함해서 이슬람교, 불교 등 – 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 밝혀 놓은 부분도 나의 시야를 밝게 해주었음은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존재와 도덕의 관계 이런 문제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도덕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까 종교가 없는 사람은 도덕 없이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속주의의 원칙을 살펴봐야 한다. 세 가지다. 첫째는 물질적인 수단들로 현세의 삶을 향상시킨다. 둘째는 과학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섭리다. 셋째는 선을 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36쪽)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 번째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선이라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종교인들은 각자 자기의 신이 원하는 것을 선이라 하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선은, 곧 종교없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선이란 바로 황금률이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에게 해주는 것이다. (37쪽) 따라서 무종교적 도덕성은 모두 공감에 의한 호혜라는 황금률의 기본적이고도 간단한 논리에서 직접적으로 자연스럽게 비롯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이런 생각도 덧붙인다. <도덕성이 종교와 믿음 체계로 묶여 있다면, 도덕성은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도덕성이 전부 신과 연결되어 있을 경우, 어느 순간 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도덕관념이 흔들리지 않겠는가?>(161쪽) 황금률을 종교적으로 표현한 가르침 가운데 어느 것도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공감능력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공감능력은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을까 그저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면 된다. (39쪽)
나는 왜 이 책을 읽었는가 나는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종교 없는 삶’과는 관련이 없다. 그런데 왜 이 책에 시선이 가고, 기꺼이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종교가 편견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이 가진 종교를 가지고 다른 종교인을 대할 때에 가지고 있는 종교가 편견이 되어 다른 종교인을 차별, 무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저자의 생각은 그런 나의 생각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좋은 내용이 되었다. 저자와 나는 종교가 결코 다른 사람 – 타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을 배척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다시, 이 책은 <근본주의 신자들의 경우, 대부분 한번 받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자연히 보수화된다.> (13쪽) 저자의 말을 조금 수정해 본다면, 근본주의 신자든 아니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고정되고, 보수화된다. 신앙의 확고화 차원에서는 그게 좋을지 모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게 문제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읽어야 한다.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혹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특히 부정적인 모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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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왜 있는 것일까-란 물음을 뒤로하고 종교 없는 이들이 태반인 우리나라. 나도 그 중 한 명에 속한다. 한 때는 심리적으로 힘들어 일부러 종교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교회를 몇 년 다니기도 했었는데 '신의 존재'는 쉽게 인정되어지지가 않았고 특히나 실망스러운 교인들의 모습에 그만 다니게 되었다. 내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진정한 종교인은 거의 없지 않나 싶다. 믿음의 실제는 본인과 신-만이 알겠지만.
제목부터 솔깃한 [종교 없는 삶]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 휼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수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나열해 놓았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 영화 캐리만 보더라도 종교란 믿음이 가지는 막대함을알 수 있는데 이젠 세속화의 물결로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그리 큰 차이점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종교가 인간에게 있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도 요즘엔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도대체 그 대상을 누구로 해야하는지가 고민아닌 고민이다. 누구에게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위를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그래서 우습게도 기도를 못하고 있다. 그냥 무작정 지켜달라고 기도를 하려니 이상한 것 같다.
저자는 무종교인이 종교인보다 더 나은 점이 분명 많음을 지적한다. 반면 종교인이 더 많은 시간과 봉사 기부를 함 또한 인정한다. 종교의 유무는 단체성과도 연관된다고 보는데 여기에 기인한 결과로 종교인이 가지는 잇점이 나타나는 것 같다.
지켜보는 눈이 없는 무종교인과 지켜보는 눈이 있는 종교인. 무종교인에겐 '양심'이 그 눈을 대처한다. 종교인들은 양심 + 신의 눈이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고. 종교인에게 있어 신의 눈은 상과 벌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믿음의 강도에 따라 다르겠고.
도덕성의 기초를 애초부터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누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p 46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사람보다 더 관대함을 신이 없어도 선해질 수 있음을, 처음부터 종교가 없었던 사람들 등 도덕성은 신과 무관할 수도 있음을 저자는 피력한다.
자메이카와 덴마크에서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을 예로 들며 저자는 종교의 유무와 좋은 사회의 상관관계에 대해 파헤친다. 종교 없는 이들이 늘어가는 이유와 증교 없는 부모들에게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종교 없이도 삶의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죽음 앞에서 종교가 갖는 의미 등 종교의 유무에 따른 삶의 차이점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종교가 주는 잇점도 많지만 잘못된 믿음으로 인한 부작용(?)도 많은 세상이다. 종교를 갖기 힘든 세상에서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게 종교인보다 못한 것은 없어 보인다. 믿음의 유무를 떠나 도덕적 양심만 살아있다면 살기 좋은 세상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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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삶이란 어떨까?"
" 우리에겐 이 생이 전부이므로,
책의 저자 필 주커먼은 믿음이 약하고 무종교성이 강한 나라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내가 보는 한국은 종교성이 강한 나라인데,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달라서 신기했다.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종교성이 강한 자메이카 같은 곳은 상대적으로 못살고, 종교성이 약한 덴마크 같은 곳은 상대적으로 잘 사는 것을 분석해 놓았다.
" 삶은 진실하고,
신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사는 삶, 나중의 천국을 바라는 것이 아닌 현재를 천국으로 생각하고 사는 삶도 참 괜찮아보였다. 이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나도 <종교 없는 삶>을 살 것이다. 그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종교 없는 삶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태어난 책. 종교 없이 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 주위에서 교회가자, 절에 가자는 말에 질린 독자들을 위하여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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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없는삶 #무종교 #탈종교 #자기신뢰 #무신론 #자존감 #불안 #필주커먼 #신없는사회 #판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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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삶'이라는 제목과 표지는 나에게 신선하기까지 했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저자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싶어서 두꺼운 책이지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무엇인가에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상황들에 놓이게 되면서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는 등 삶에는 여러 색이 존재함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철저하게 무신론자였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는 종교는 어쩌면 편협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시각도 있구나 하는 다양성 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저자의 자라온 환경이 미국이다보니 종교성 강한 미국의 상황을 예로 들었고,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하였다고 했지만 인터뷰 대상이 주로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결국 종교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인종 차별주의자가 되거나 복수를 할 가능성이 대체로 덜하다. 뿐만 아니라 강경한 국수주의자가 될 가능성도 적다. 또 군국주의에 대한 태도만 따로 살펴보면, 종교적인 사람일수록 이라크나 베트남 같은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고 침략하는 행위에 더 찬성하는 반면, 무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이런 군사적인 공격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또 종교적인 사람들에 비해 어떤 입장에든 더 관대하다.(p.49) 사실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개인차인 것 같은데 모든 상황을 종교의 있고, 없음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뒤에서 모든 것이 종교적이거나 무종교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지만 글 전체의 맥락은 그랬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특이한 점은 종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그 원인 중 하나가 인터넷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람들도 웹 상에서 갑자기, 심지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종교 전통에 대한 비판이나 노골적인 공격에 노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아니면 결코 이런 것들을 접하지 못했을 텐데...폐쇄적인 특성이 있는 종교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견해들을 접하면서 확신에 찬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 없는 삶도 어쩌면 그 자체가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면서 리뷰를 마칠까 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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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그 제목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겐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대변해주고 있으니 사이다 같은 책일 것이고, 믿는 사람은 좀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나아가서 이 책에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전자에 동조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사실 처음엔 좀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처음 읽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라 그다지 많이 화가 났던 것도 아니다. 먼저 저자는 1장에서,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느냐고 했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저자가 시작부터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와 도덕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종교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교 안에 도덕성이 포함되는 것이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요는 저자는 이것을 같은 범주의 것으로 생각해 자신의 논리가 타당함을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얘기를 하자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에게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인을 핍박하거나 거부할 때 가장 쉽게 꺼내들었던 카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부도덕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당연 무종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종교에서 도덕이 결여된 사람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 할 얘기가 없는 것이 아니나 여기선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겠다.
구원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책은 그 어디에도 구원에 관한 언급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즉 종교없는 삶이 그토록 타당한 것이라면 구원이 의미가 없고 그것을 반박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구원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거나 지나친 채 그저 현상학적 측면만을 나열했다. 저자는 신자로부터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꽤나 귀찮았던 것 같고, 그것을 위협적(?)으로까지 느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질문을 한 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번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더구나 교회에서 전도 프로그램 수련자가 실습하겠다고 재수없이 접근해 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뭔가 반박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비판대신 조금씩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다 보면 이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꼭 그리 틀린 말도 아니겠다 싶다. 사실 저자도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그렇지, 사실 책에 언급한 내용 거의 대부분은 이미 종교 진영 특별히 기독교에선 이미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무종교 진영에선 타당한 것들을 기독교에선 위기로 보는 시각의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뿐이다.
예를들면, 저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종교를 찾지 않는 이유라고 했는데 그도 맞는 얘기다. 직장 일하랴, 육아까지 떠안은 여성이 교회에 나올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인다. 더구나 교회 생활이 안식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성과 의무를 요구한다면 집에서 쉬거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지 교회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엔 여성들이 사회진출이 그리 많지 않으니 교회 나오기는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성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교회엔 아직도 남성의 비율 보단 여성의 비율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남녀를 떠나 그렇게 피곤해서 교회 안 나올 것만 같지만 나오는 사람은 나온다. 요는 저자가 무종교의 타당성을 증명하려면 교회 나오는 사람은 왜 나오는가에 대해서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어느 한 측면만 부각시키다 보니 객관성이 떨어지고 설득력도 별로다.
물론 저자는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만났던 사람은 자신의 논증을 뒷바침해 줄 사람만 만났나 보다.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미국에 국한시켜 연구를 했던 모양인데 세속화를 언급하면서 신앙이 있는 사람들 역시 보면 별 것 아닌 수준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으니. 그러나 모든 교인들이 그런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그래도 얼마간은 구원을 믿으며 경건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비율에 낮아서 그렇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저자가 잘 써 먹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을 안 믿는 사람은 급진적이고 맹신으로 매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희화화시키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것은 빠뜨린 채 도덕성 운운하는 건 좀 넌센스 아닌가?
저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 중 또 하나로 성소수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것 역시 당연하긴 하다.기독교에선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물론 요즘엔 일부나마 동성애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동성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라 저자가 제시한 것이 최근에 나온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요즘 나온 문제처럼 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교회를 기피하는 것도 맞는 것 같긴하다. 그러나 조금 더 이성적여 보자. 정말 기독교만이 동성애를 부정해 왔는가? 그래서 마치 기독교는 이 성소수자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고, 또한 그로인해 그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기독교인만이 피박해 왔을까? 무종교나 타종교인들 중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인에 집중되어 온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종교없는 삶을 짚어내고 있지만 기독교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때로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역시 세속화가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세속화가 믿지 않은 사람에겐 신앙을 갖지 않을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전에 모 교수가 TV에서 과학은 하나의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진화론도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고, 여전히 가설로 연구 대상인데 진화론은 마치 과학의 신이요 끝판왕처럼 신봉하는 반면, 창조론은 특정 종교를 표방한다고 해서 배제시켜 왔다. 가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과학이라면, 창조론도 같은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미국이 기독교적 이념에서 출발한 국가가 아니라면서 대통령이 성서를에 손을 얹고 대통령직을 수락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은 대통령을 지목하기도 하고, 그밖에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비기독교 내지는 비종교인임을 지적한다.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저들의 입장에선 기독교 진영에서 위대한 기독교인을 추들며 기독교의 위대성을 말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위대한 사람은 종교인에서건 비종교인이건 다 나올 수 있다는 것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 국가적으론 패망이었지만 기독교가 그 시대에 했던 일은 가히 놀랍다 못해 위대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역사 교과서에선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대학만 들어가면 급속하게 신앙을 버리는 것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낀다. 게다가 나라 정책이 점점 비신앙을 옹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다못해 미션 스쿨에서도 성서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이것을 단순히 저자가 나열한 무종교의 탁월한 예를들어 그냥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한 저자는 죽으면 내세는 없으며 지금 여기의 삶을 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럴 듯하긴 하다. 하지만 내세관 역시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철학이다. 그것을 단지 몇 페이지 또는 몇 줄만으로 긍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내세관이 없는 것 보단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세상에서 싫은 사람을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만날 걸 생각하면 끔찍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사별의 슬픔은 좀 덜 하지 않을까? 또한 나쁜 사람들을 지옥이나 가라고 저주할 수도 없다. 아무리 비종교인의 우수한 도덕성과 교육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죄까지 없앨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깊어지면 죄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걸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이미 적잖은 지면을 할애했고, 이런 논의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또한 이러는 나 역시 처음부터 종교적 인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회의속에서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종교의 삶이 종교의 삶 보다 나을 거란 근거를 못 찾겠다. 저자가 이만큼 고민해서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한 왜 종교적 삶이 합당한지 고민해 보겠다.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종교적 삶과 무종교의 접점을 찾는 책중 하나로 봤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고가 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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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무종교인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저자는 학자로서 이 점에 주목하여 미국내 각계각층의 무종교인들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과 연구를 바탕으로 종교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연구하며 느끼는 바는 종교 없는 사람들이 절망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윤리적 토대 위에 예의바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무종교인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무종교인이어서 느끼는 어려움, 난관들이 있을텐데 마치 종교적인 사람들보다는 매우 합리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식이다. 저자 또한 무종교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는 점도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자메이카와 덴마크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가난하고 혼란스럽고 문제가 많은 나라일수록 가장 종교적인 나라들에 속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부유하고 안정적이고 잘 돌아가는 나라일수록 가장 무종교적인 나라들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종교의 약화가 (...)모든 사회적 악의 주요 원인이라면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나라들이 가장 큰 문제들을 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라고 런던대학의 박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처럼 사회가 안정된 상태라면 굳이 종교가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정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나름의 확고한 개인 윤리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 종교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사는 것. 그것이 무종교적인 사람들이 추구하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바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종교를 표층적인 단계로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잘 살고 있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힘만으론 감당이 되지 않은 영역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니 그 이상의 심층적인 단계가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면서 종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보게 된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해소되지 않은 갈증을 많이 느낀다. 과연 무종교인과 종교인을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무종교적인 것을 너무 후하게 지지하는 것은 아닌가, 나름의 개인 윤리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가 등등 의구심과 여러 생각들로 복잡해진다. 지금으로선 무종교적인 삶을 택해도 아무렇지도 않을만큼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책 속에서) +모든 종교에는 기복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표층이 있고, 만물과 내가 하나요 만물이 서로 의존하고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심층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바람직한 종교적 발달은 표층에서 심층으로 심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은 어디서 비롯되는가?'(중략) '나를 길러 준 사람들과 내가 살고 있는 문화, 나의 뇌, 삶을 헤쳐 나가면서 경험한 일들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나의 도덕을 구축했노라'고. 물론 따지고 보면 '우리의 도덕성이 어디에서 근원하는가?'보다는 매일의 삶에서 이 도덕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신의 도덕을 발달시키고 그 결과가 연민과 친절, 정직, 이타주의로 나타난다면 그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신이 필요하지 않으며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이들에게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법칙인 황금률이면 충분하다. +미국의 첫 존엄사법이 오리건 주에서 통과된 이유는 오리건이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주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다. 단전인 예로, 오리건주에서는 교회에 좀처럼 가지 않는 주민이 약 40%나 되며, 성경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쓴 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40%나 된다. 또 약 25%의 주민은 종교를 '전혀'믿지 않고, 약 20%는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을 삶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종교인의 특징이라면, 삶에 대한 감사는 이런 특징이 불러오는 미덕이다. (중략) 무종교적인 감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삶은 환영도 아니고 죄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삶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으며, 실제적이다. 삶은 힘들 때도 있고 평탄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너무도 유한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삶과 그 삶이 가진 소용돌이의 핵심에는 바로 삶의 유한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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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무종교인 인구가 전체의 56.1%로 10년만에 무려9%인 300만명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젋은 층, 교육을 많은 받은 사람들에게 두드려지는 데,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잘 사는 나라일수록무신론이 점차적으로 우세한 현상을 '맹목적인 종교인들이 타 종교인들을 무시하고 이들의 삶까지 비도덕적인것처럼 비난하거나, 무례한 포교활동이나 최근의 폭력적인 종교활동,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주요 원인이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요내용 : 1장은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아주 복잡한 문제이기때문에 도덕성과 관련된 진화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역사적 등 복합적인 작용과 원천들을 고려해야되겠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나를 길러 준 사람들과 내가 살고 있는 문화, 나의 뇌, 삶을 해쳐 나가면서 경험한 일들에게 얻은 교훈들을 통해 나의 도덕을 구축했다고 언급하며, 사실, 이 도덕을 매일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통의 과거와 공통의 미래를 지닌 사람들, 비슷한 기억과 미래에의 기대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수세대 동안 비슷한 경험들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함꼐 물어받은 방식과 상징, 의식, 습관이 없습니다. 무종교적인 문화에서는 이런 유산을 찾기내기가 쉽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와 성향, 지속적인 선택이라는 유산만이 남겨집니다. 정리하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