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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작가님의 <소년은 지나간다>는 산문집입니다. 책을 읽는 중간에 "창말 소년 구효서... 효서가 1957년 9월 18일에 세상에 나왔으니..."라는 구절을 읽고나서야 작가 본인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너무나 소설 같은 이야기라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였다는게 더 믿기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소설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점도 있겠지만,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로 된 스물네 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방식이 얼마나 희한한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 못해 잠시 당황했습니다. 뻘 깨 뽕 뻥 깡 씨 꿀 쓰 빵 뚝 깽 찍 땜 뺨 쓱 꽃 때 쎄 떼 빡 뼈 뽁 떡 끝 각각의 된소리 홑글자마다 그 뜻을 설명하면서 그 글자가 주인공이 되어, 효서가 살고 있는 창말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글자는 다름아닌, '저어쪽'입니다. 창말 사람들이 '저어쪽'이라고 말할 때는 턱으로 염하 건너편을 가리키는데, 그건 바로 저어쪽 북조선을 뜻합니다. 바닷가에 철기둥과 철조망이 들어서면서 '반공' 방첩'이 붙기 전에는 저어쪽 사람들이 몰려왔던 그 곳. 모두가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고 그저 '저어쪽'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효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땜재이가 잡혀 들어갔던 게 '선연하다'라는 말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남들 잘 쓰지 않는 선연하다는 말을 쓰는 그가 수상해서 잡혀 들어간 것이라고. 창말 어른들은 좀처럼 쓰지 않는 말이라서 아마도 '저어쪽' 사람이라서 저어쪽 말을 쓴 것 같다는 게 땜재이의 죄목입니다. 그때는 모두 떼로 몰려오고 떼로 몰려가고 떼로 잡혀가고 떼로 죽고... 국방군, 인민군, 중공군, 미군, 영국군, 터키군, 호주군이 몰려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했을 것. 80명이 떼로 죽었다는 '80년 구데이'는 '80명 구덩이'였으며, 정확히는 83명 구덩이였다 합니다. 즌들이라는 마을의 사람들도 그렇게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그 시절 즌들 애들은 "아이시, 어~저~냐?"라는 떼창으로 창말 애들을 놀렸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알나리깔나리지만 마을을 짓누르던 공포에 대한 애들만의 대응방식이었나 봅니다.
구효서 작가의 고향은 강화도라고 합니다. 강화도 사투리에는 된소리가 많이 들어가서, '진지 잡수셨습니까?'를 강화도 사투리로 하면 '진지 잡쒔씨꺄?'라고 합니다. 그래서 된소리 홑글자를 핑계 삼아서 어린 시절의 마을 이야기를 썼다고 합니다. 참혹했던 시절이라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된소리 홑글자로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창말 소년 구효서는 그렇게 그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스물네 편의 이야기가 싹둑 잘린 듯 느껴지는 이유는 원래 이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에세이라서 그렇습니다. 다 읽고나서야 비로소 모든 이야기가 소년이 지나간 길이었음을, 우리의 아픈 현대사였음을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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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재간이 놀랍다. 글도 맛깔스럽다. 구효서 작가의 산문집 <소년은 지나간다>의 이야기다.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란 부제처럼 ‘뻘 / 깨 / 뽕 / 뻥 / 깡 / 씨 / 꿀 / 쓰 / 빵 / 뚝 / 깽 / 찍 / 땜 / 뺨 / 쓱 / 꽃 / 때 / 쎄 / 떼 / 빡 / 뼈 / 뽁 / 떡 / 끝’까지 각각의 에피소드는 1960년대, 작가의 고향인 강화도 창말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첫 문장은 대수롭지 않게 읽어 나가다가 갑자기 등장한 화자 ‘나’의 자기소개 ‘짜고, 검고, 곱고, 넓다’에서 혼란이 찾아봤다. 이게 대체 뭐지 싶다가 다시 본 이 챕터의 제목이 ‘뻘’이지 않은가. 그랬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자는 모두 각 장의 제목인 된소리 홑글자들이었다. 이 기발한 발상에서부터 이 책은 독특하고 재밌다. 이 홑글자 중에는 보다시피 그들이 갖는 의미에 따라 사물이기도 하고, 자연이기도 하며, 형체도 없이 의미만 존재하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간혹 ‘쓰’나 ‘깽’과 같은 그저 소리이기도 하였다가, ‘쓱’과 같은 그저 모양이기도 하다. 이 재밌는 사실에 작가는 ‘무엇이든 종이에 글로 적으면 소리가 된다는 게 그렇다. 글은 말이고, 말은 소리구나. 그러니까 모든 글은 소리. (p.144)’라고 적어두었다. 이 된소리 홑글자들이 바라본 ‘효서’를 비롯한 창말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그 시절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급급했던 우리의 과거가 있었다. 말 혹은 글이 소리가 된다는 것은 마치 생명을 얻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천연덕스럽게 의인화된 홑소리가 창말의 여러 사연을 들려주는 일종의 변사와 같은 캐릭터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창말 마을에 깃든 여러 이야기 중 이 책에서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대상은 아무래도 쑥구렁 집 여자였다. 이름도 없는 여자. 겨끔이라는 속된 이름으로 불리는 딸아이의 엄마. 공 첨지댁 사내에게 매 맞는 여자. 비밀을 간직한 여자. 순칠이가 끌탕하는 상대. 그녀의 사연을 이야기의 마지막 ‘끝’에서 마무리 짓는 이 책은 그 서사의 방식마저도 퍽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말에서 알게 된 그의 전작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도 곧이어 만나보고 싶은 책이다. 거기선 사물들이 화자로 등장한단다. 이번 책을 읽고 난 뒤라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 같다. 올해가 다 가기전 얻은 큰 수확이다. 이 책을 지나치지 않고 만난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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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말의 유희로 한바탕 놀고 난 듯한 느낌이다. 된소리 스물네 개로 만들어낸 스물네 개의 이야기에 피식거리며 웃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코끝이 찡한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아팠던 시절이었음이 분명한데도 슬쩍 웃어 넘겨버리고마는 그런 시대가. 그 아픔을 다 이야기하자면 어쩌면 삼백예순날 하고도 5일이 더 걸릴지 모르니까. 뻘, 깨, 빡, 뻥, 깡, 씨, 꿀, 쓰, 빵, 달, 깽, 찍, 땡, 뺨, 쓱, 꽃, 때, 쎄, 떼, 빡, 뼈, 뿌, 떡, 끝... 이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를 나열해보는 것은 그 소리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어느 정도는 짐작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어쩌면 그리도 찰지고 맛나던지. 전기를 증기, 김치를 금치, 김을 짐이라고 하는 강화도 창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음미해보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소리가 아니다. "계속되던 것이 아주 갑자기 그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이다. 소리가 아닌 모양이라지 않은가. 모양. 그런데 그걸 글로 적자니 소리가 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된소리. 뚝. 그러고보니 '하늘'도 아무 소리 없는데 글로 적으니 하늘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거 자꾸 재미있어진다. 무엇이든 종이에 글로 적으면 소리가 된다는 게 그렇다. 글은 말이고 말은 소리구나. 그러니까 모든 글은 소리. (-143,144쪽) 말 그대로 소리가 된 글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상당히 독특한 문장체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글에는 은유적 글이 있는가하면 미사여구 하나없이 있는 그대로의 말로 전해지는 글이 있다. 이 책에는 아름답게 꾸미고자 한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글로 소리낼 뿐. 뻘은 그대로 뻘이고, 깡은 그대로 깡이며 깽은 그대로 깽이다. 단지 그 말들이 1인칭 화자가 되어 그 때 그시절의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쑥쑥 빠져드는 뻘에서 게를 잡는 사람들, 늦은 하교길에 80명이 죽었다던 새기재에서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어린 효서에게 달려가고 싶어하는 깡, 달밤에 하릴없이 짓는다고 멋적은 주인에게 얻어맞은 개가 깽, 하고 소리를 낸다.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했던 꽃이 전해주는 새기재 이야기, 목 매달고 죽은 사람들이 길게 내밀었던 쎄는 '쎄가 빠진다'고 할 때의 '쎄'로 그 의미가 혀라는 것, 만신 할미의 굿이 끝나기만 바라며 목을 길게 빼고 있던 동네아이들에게 키 큰 아저씨들이 나눠주던 시루안의 떡, 밀고 밀리던 전쟁통에 한마을에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죽어갔던 사람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고 있던 뼈, 다같이 어수선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었음에도 공연스레 아이들의 '뺨'을 때리던 선생들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가 나이를 말할 때 종종 거론되는 58년 개띠가 있다. 1958년생. 개띠. 그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화도의 창말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작가의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958년 개띠는 전후세대다. 베이비붐세대다.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태어났다는 말도 있다. 교육적으로는 '뺑뺑이'를 맨처음 시작한 세대이고, 7080의 통키타 문화를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10·26사건과 12·12사태를 거쳐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제5공화국을 무너뜨리며 6월항쟁을 쟁취했던 세대가 바로 그들이며 IMF로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직장을 떠나야만 했던 힘겨웠던 세대가 또한 그들이다. 반공과 방첩을 주제로 웅변대회를 했으며, 송충이를 잡거나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야 했던 아이들. 머리에 이가 있거나 뱃속의 회충과 싸우던 아이들. '콩나물시루'같았던 교실에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공부했던 아이들. 그리고 양 어깨에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짊어져야만 하는 세대다. 낀세대,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그들이 올 해로 회갑이라고 한다. 만만치않은 노후를 또다시 견뎌내야 할 세대로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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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그 사건이나 상황의 의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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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지나간다(구효서)>를 읽었다. 구
효서는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씨를 들었다. 그냥 옛날이야기다. 슬그머니 빠져든다.
‘구효서’를 읽으면 알 수 없는 뉘우침이 감돌아들고, 잊힐 수 없는 그리움이 다가온다고, 그가 말한 지 27년이 되었다. 젊어 한때 읽었는데 어느 날 다시 구효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글을 읽고 있는데, 글은 눈으로만 읽고, 마음은 알 수 없는 뉘우침에 머문다. 나는 종이를 넘기고 있는데, 글은 눈을 스치기만 할 뿐 가슴에 그리움이 쌓인다.
어쩔 때는 잘못을 크게 빌 일도 아닌데, 한숨이 푹푹 터지고, 어쩔 때는 빌어먹으려고 하지 않는데도, 눈물이 쏟아진다. 책을 덮고 만다. 서성거린다.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나이 탓이라 둘러대고, 책을 슬그머니 밀어놓는다.
아예 책장 꼭대기나 맨 아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꽂아놨어야 맞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자꾸 스물네 개의 홑글씨를 떠올리고, 눈길은 책으로 간다. 일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손이 책을 들고 엎어진다.
책에는 한숨 쉴 때 나온 침과 손으로 미처 닦지 못한 눈물이 얼룩을 만든다. 그냥 기분 탓일 거야.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뱉은 말이다. 에이,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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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소리 홑글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인지 된소리 홑글자가 뭔지 몰랐다. 목차를 한 번 쓱 훑어보니 아! 하고 알 수 있었다. 이 에세이를 선택한 것도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보통의 에세이는 대부분 사람을 화자로 등장시키지 않았는가. 이 된소리 홑글자가 화자라니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소설가 구효서가 쓴 에세이는 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겹쳐지면서 펼친 책은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읽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간결하고 일상적인 최근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 창말. 공간적 배경이다. 1965년부터 70년 사이는 시간적 배경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읽다 보면 연작 단편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일관되게 흐르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창말 사람들과 상황들이 기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덧붙여진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57년생 작가가 어떤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현실에서 그가 풀어내는 창말 이야기는 너무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이제 중늙은이가 된 나도 그 시절의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데 더 늙은 그는 어쩌면 이렇게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기억은 더 좋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기억력이 좋은 것일까?
강화도. 여행으로 가 본 것이 전부다. 역사책에 나오는 정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에 다른 지역들처럼 비극이 똬리를 틀고 있다. 83명이 묻힌 구덩이도 있고, 뻘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 이 마을 앞에 있는 ‘뻘’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영화의 서막과도 같다. 효서가 이야기에 자주 등장할 것 같지만 그는 평범한 조연일 뿐이다. 그것과 가끔 등장한다. 된소리 홑글자들이 창말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들려주는데 이 작은 마을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코 적지 않게 일어난다. 낚시꾼들의 등장처럼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작가의 상상력과 어릴 때 기억이 만나 만들어낸 이야기는 좀 더 세밀하게 읽을 때 재밌다. 강화도 사투리가 난무하면서 무슨 뜻인지 추리해야 하고, 서슬퍼런 시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명사로 된 된소리 홑글자가 화자인 것은 쉽게 이해가 가는데 쓰, 쓱, 뚝, 빡, 뽁 같은 홑글자는 조금 낯설다. 사전적 의미까지 끌고 와서 작가가 설명하는데 이에 맞게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소설가의 서술과 묘사는 의도된 연출로 이어진다. 첫 이야기에 뻘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소설가란 이력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작은 이야기 속에 작은 반전을 넣어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사투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사실 나 자신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다른 동네 사루리를 잘 모를 때가 많다. 같은 도시라고 해도 옆동네에서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이 에세이에서도 작은 고개 너머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처럼 언어가 하나의 공통된 소리를 가지기 전에는 그랬다. 효서란 이름이 어떻게 불리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는 문자와 소리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아마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일일 것이다. 시대 속에서 흥미롭게 봐야 하는 것은 이름 없이 여자로 불리는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녀와 딸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많은 것을 풀어서 설명해주었지만 그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가 생략된 것도 사실이다. 풍자와 해학이 곳곳에 보이지만 나의 시선은 비극에 더 눈길이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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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1960년대인듯하다. 전란후 살기 힘든 그냥 살수 없을 정도의 역동의 시대말이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작가는 된소리 이야기로 그때 당시의 마을이야기를 전한다 . 한적하고 따듯한 이야기가 아닌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니야까라고 하니 어릴적 시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났으니 그 당시는 아니지만 아주 어렵게 산 기억은 떠오른다. 똥과자가 대표적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똥과자였으니..... 그리고 한끼 한끼가 처절할 정도 식구도많아 하루 양식이 제일 중요했던 시절이었고 책애서 나온 계란으로 뽀빠이 과자하고 바꿔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애서는 건빵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잠깐 살았지만 편지 심부름 한번 할려면 십킬로미터를 걸어가야한다 어릴때 그건 나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기 작가는 된소리로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학교아이들에게 각자의 몫을 나눠주고 그몫이 할당을 다 채워야 한다는것 그리고 알수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따라하는 모양이 따악 시골아이들이다 순박 하기 그지없는 씻지도 않고 다니고 코흘리면서 말이다 영문도 모른채 선생님이 때리면 맞기 일쑤이고 누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런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건너편에는 이북인데 그걸 입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창말 사람들의 이야기를통해 잊을수 없는 아픔과 다시는 되돌아 오지않는 그시절을 된소리를 통해 모든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스물내개의 된소리 글자이야기로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렇게 사는것이 전부인양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실이던 아니던 그시절은 그럴수 밖에 없었다는것은 짐작으로 알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무수히 사라져간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를 아주 해학적인 모습으로 만나게된다 개똥이의 집은 어떻구 누구집의 누구는 밤마다 사랑놀음에 잠을 못잔다는둥 그시절의 빨래터가 지금으로 치면 SNS나 인스타그램이 아닐까한다. 마을의 소식을 듣고 이야기하는 소식을 전하는 정보가 바로 빨래터이고 즐거움이었으리라..... 된소리 중에 "쓱"이 있는데 요즘 광고에 나오는 쓱이 생각난다.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삶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그때는 버젓이 일어나고 말도 하지 못할일인데도 말이다 이름없는 여자, 갑자기 목매달아 죽어버리는 남자,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없는 어른들의 세상 어른들의 단어는 도무지 알수 없는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그렇게 순수했다. 요즘은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어른들의 새상을 모르는 아이가 없는데 말이다. 그것이 지나쳐서 문제인데 말이다. 크라운 산도, 삼립크림빵을 지금은 먹어라고 사줘도 먹지 않을테지만 그때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그것보다 맛난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못먹는것이 없을정도로 넘쳐난다. 하지만 그런시절을 이야기하기는 세월이 너무 흘러버렸다 그리고 이해하라고 할수도 없는것이기에 말이다 집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들고 엿장수 따라다니면서 엿하고 바꿔먹던 그시절의 이야기들 너무나 소중한 그리움의 만남이었다. 메밀꽃 필무렵이라는 책이 생각나는 산문집이라고 해야할까 그냥 그런 느낌을 준다. 이런 문학을 많이 많이 만났으면 하는데 조금더 재미있게 풀어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때 그시절...그리고 지금도 생각나는 어린시절로 조금이나마 생각나게 해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