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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진심이고 싶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이 물들 일이 있었어도 잊으려 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럼에도 아플 때엔 어떻게 하지 그 즈음에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글들을 하나씩 접하게 되었다. '교회를 찾아서'라.. 일곱 가지의 주제를 통해서 돌아보는 에세이가 아닐까.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도 하면서 그 몸의 일부가 되고 싶은 내가 존재하기에 교회와 나는 하나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교회가 아프지 않도록, 함께 보듬어 주고 만들어 나가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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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완벽한 교회는 없다. 결국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은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일 완벽한 교회를 찾았다면 더 이상 완벽한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완벽함에서 건강함으로의 중심 이동이 필요하다.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여전히 연약함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하게 건강함을 가지고 있는 교회 말이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선명한 건강함!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건강함은 바로 “고백” 이다.
어떤 고백인가. “우리는 모두 망가진 존재지만, 누구나 교회로 부름을 받고 환대를 통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고백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모두를 위한 기쁜 소식이라면 바로 이런 고백이 복음이 된다. 하지만 복음은 불편하다. 복음이 불편한 이유는 복음이 초대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복음은 누구나 초대하지만, “누구나” 안에는 나와 함께 하기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나와 함께 하기에 불편한 다른 사람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건 복음의 합당한 반응 이전에 솔직한 반응인 부담스러움, 찝찝함, 짜증남, 복잡함이다. 이념, 신학, 교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내 모습 자체가 망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 아닐까. 이러한 모습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면 내 존재가 거부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철저히 숨긴다. 들키면 뒷담화의 훌륭한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건 충격과 상처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페이스북처럼, 사람들에게 괜찮은 척, 문제없는 척, 좋은 척한 모습만을 공유하고 “좋아요” 라는 반응을 원한다. 이러한 반복 속에 결국 남는 건 가식과 위선이다. 허전하고 외로운 공동체.
서로 다름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영적 쌩얼(?)을 고백할 수 있는 교회! 그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 아닐까. 물론 우리의 고백은 불안하다. 고백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고백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고 해서 편안함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백 속에는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고 머리 아픈 위험한 길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고민하며 함께 걸어가야 할 유일한 길임을 포기 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담겨져 있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고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줄 수 있는 공동체. 서로의 고백이 매번 달콤할 수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그곳을 찾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