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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국내에 들어온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펼쳐 가는 사랑과 갈등,명예와 질투,개인의 정체와 존재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뇌리를 관통해 나갔다.나라 잃은 서러움도 크지만 국가의 혼과 이념,사상마저도 빼앗긴 채 철저하게 일본인의 생각과 지시,조직에 의해 휩쓸려 가는 세태를 꼬집고 사랑은 이념이나 국경을 초월하여 순수하고도 애틋한 정념이 싹트어 간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마저도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가슴 아픈 시절의 이야기가 대구의 북성로(北城路)의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을 중심으로 당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자본과 물자를 내세워 국내에 들어온 일본 오우미상회(近江商會)의 미나카이 백화점이 포목점으로 시작하여 일본의 대동아공영과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닫을 무렵의 대구 북성로의 낮과 밤과 조선인과 일본인의 정체과 존재에 대해 현장감 있게 거침없게 스토리텔링이 질주하고 있다.
일본 오우미(近江)는 시가(滋加)현 지역을 중심으로 상혼이 발달되어 온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듣기로는 '파리가 어깨에 달라 붙어도 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장사 수완과 상혼이 깊게 배여져 있는 곳이다.이 지역의 미나카 형제중 셋째인 나카에 사장이 조선에 일찍이 발을 들여 놓고 포목점으로 사업을 시작한다.조선에 들어와 36년이 흐를 무렵 일본은 진주만 공습에 유럽에선 독일에 연합군에 패하고 종전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일본 경찰과 헌병대에 의한 노무 보국회라는 이름하에 조선의 젊은이들이 다시 못 올 전장터로 나가고 미나카이 백화점은 군대와 관청의 지원이 컸으며 지나,중국,조선에 20여개의 커다란 사업장을 거느리고도 남았고 나카에 사장 역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빗자루로 백화점 앞을 청소하는 것을 하루의 일과로 시작하여 근면.성실로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 그가 사업장을 진두지휘하고 휘하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점에서 오우미상회의 사업근성과 상혼을 본받을 만하다.
나카에 사장에게는 외동딸 아나코가 있다.그녀는 청춘의 싱그러움과 순수함, 아카시아 향이 솔솔 풍기는 상큼함이 판매부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정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나코는 순수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노정주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하고 밤이 되면 노정주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기도 하는데 노정주는 일을 마치고 마음이 꿀꿀해지면 여학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혼자서 그려 보는데,아나코에게 침을 흘리고 있는 헌병대 구로가와(黑川)는 나카에 사장에게 그의 딸과의 맞선을 요구하지만 아나코는 어쩔 수 없이 선 아닌 선을 보게 되고 마음 속의 뜨거운 연정과 사랑은 노정주에게 이미 간 상태이고 구로가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자존심과 명예를 내세워 아나코에게 스토커마냥 치근덕대고 강간마저 서슴치 않는 등 그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나라를 잃고 조선의 젊은이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은 가운데 노정주의 사촌형은 소학교 시절 그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야마모토의 후광을 입고 일본 경찰에 투신하게 되고 치안과 사상범들을 가려 내고 일본인으로 거듭 살아가기를 원한다.나라를 빼앗기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의 경찰관으로의 행색은 어찌보면 친일파이고 혼(魂)마저 일본화한 저주받을 인물이지만 가난에서 벗어나 윤택한 삶과 명예를 거머쥐고 싶었던 생각과 신념이 뇌리에 있었을거 같다.반대로 바로 아래 동생 치영은 '의열단' 소속으로 조선의 해방을 위해 조직원으로 일하면서 그의 형을 처단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고,일본이 저지른 2차 세계대전은 패색의 기미가 짙어가고 결국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육성에 의해 전쟁 종지부를 찍고 전쟁에 대한 책임에 대해 규명을 하면서 조선에 와있던 일본인과 사업장들이 문을 닫고 '걸음아,나 살려라'는 식으로 서둘러 몸만 빠져 나가게 된다.
거의 36년간을 미나카이 백화점에 전심전력했던 나카에 사장은 미나카이 백화점만은 내놓을 수 없다는 일념이었지만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미군정에 양도를 해야 되고,백화점 주인을 조선인으로 내세우려 그의 딸 아나코와 조선인 사위 노정주를 콩 볶아 먹듯 혼인식을 올리지만 이미 미나카이 백화점은 그의 손에서 멀어져 가게 된다.나카에는 귀국길에 오르지만 몸과 마음이 미나카이 백화점에 머물고 그의 부인과 아나코만 귀국하게 된다.훗날 대구를 찾아 온 아나코는 우연찮게 노정주를 대구역 앞에서 만나게 되지만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노정주의 삶도 별볼일 없는 처지로 나락하게 되지만 아나코는 북성로에서 알콩달콩 나누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개인은 나라의 이념과 체제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는 극히 현실적인 만남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나라를 빼앗기고 주객이 전도되었던 일제 강점기의 조선의 산하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대다수의 조선인은 초근목피로 어렵게 연명했으리라.노태영과 같이 기회주의적이고 약삭빠르게 처신하며 개인의 삶과 명예를 이끌어 가려 했던 부류도 있었을테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의열단을 조직하여 해방 조국을 염원했던 피끓는 청년들도 있었으리라.나아가 나라는 다르지만 순수하고 정념적이고 미래를 약속할 남녀사이만큼은 제대로 지켜주어야 했겠지만 노정주를 이등국민으로 치부했던 일본인의 오만과 편견이 아나코와 일찌감치 하나가 되지 못한 점이 가슴이 아려오고 애틋하기만 하다.대구의 북성로는 이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신천,향촌동,수성 지역은 군대생활을 대구근처에서 했기에 귀에 익은 지명이기도 해서 읽어 가는 재미와 연상 작용이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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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에 관해서는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구에 북성로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대구의 4성으로 그러니까,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있고 그것은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 성의 성벽이었다고 한다. 이 대구 성은 조선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흙으로 처음 축조되었고, 1736년에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그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0년에 거의 재축성에 가까울 정도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지만 30여 년 뒤엔 일본 상인들이 이를 허물고 4성로를 건설해 그 도로를 따라 점포를 세웠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이고, 소설은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1940년 대,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기 바로 몇 년 전을 그리고 있다. 그때 미나카이 백화점은 대구의 랜드마크였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의 백화점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돈데 1940년 대에 정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을까, 이건 작가의 상상에 의한 은 아닌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을 상당히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설은 미나카이 백화점은 화려함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 사는 일본 사람들, 친일파 조선인들, 하다못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조차 어떻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압제와 독립을 향한 의지 이 두 관점에만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일과 반일, 매국과 독립 뭐 이런 프레임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이 있었다. 나 개인적으론 이런 관점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줬던 건 <경계에 선 여인들>이란 책이었다. 물론 그것은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20세기 초중반의 동아시아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연구한 책이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의 여성에 대한 보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온 일본 여성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든다. 왜 나는 지배국의 국민들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난 그들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도 보면 미나카이 백화점의 사장 나카에의 딸 아나코 역시 외형적으론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같은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노태영이 친일 경찰이 되는데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또한 미나카이 백화점 설립자 나카에 역시 조선인에 대한 지극히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엔 자신의 나라 역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겐 오로지 백화점밖엔 없다. 결국 그는 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조선인 정주에게 넘기기도 한다. 태영의 동생 치영은 어떤가. 독립운동을 하니 등장인물 중 가장 멋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인 태영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흔들림이 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성실한 인물은 노정주다. 그는 백화점도 인수받았겠다 아나코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만다. 그뿐인가, 작가는 해방 이후 당시의 조선인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인들에게 보복을 했는가도 가감 없이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이란 비록 허구라고는 하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역사가 진실을 말하는 학문 같아도 그렇지 않고 오히려 편파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관이란 말을 써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역사는 사관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실존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충실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글이 안정적이고 나름 사유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그 시대에 대해 애정과 통찰을 갖고 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린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국가란 무엇이냐란 생각에 머문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힘없는 나라의 국민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아무리 조선을 만만히 보더라도 제 나라 백성을 조선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영원히 그렇게 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그렇게 만만히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설혹 만만히 보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패망을 했다면 조선에 사는 자기네 나라 국민들을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그것까지는 소설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나카에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를 볼 때 있는 나라가 부러울 때가 많다. 국민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이유다. 그래야 문화와 역사가 이어질 수가 있고 세계 어디를 가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그 참혹했던 시절을 생각할 때 국가 지도자들은 과연 그 일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고 싶다.
구한말 또는 개화기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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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비극 속에 자신이 믿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삶을 살다간 삼형제가 있었다. 같은 형제지만 서로의 생각이 달라 서로에게 총을 겨루는 엇갈린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녹아 있는 작품 '북성로의 밤' 저자 조두진씨의 작품은 처음이다. 저자는 2005년도에 한겨례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고하는데 현직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역사소설을 꾸준히 집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아직까지 대구에 가 본 적이 없다. '북성로의 밤'은 일제강점기때 대구의 번화한 거리 북성로에 있는 부의 상징인 미나카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상대로 배달을 다니는 막내 노정주와 어릴적부터 영특한 소년이였지만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일본인 순사 맏형 노태영, 그 사이에 조선인이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생각을 실행하고 있는 둘째 노치영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사는 것과 올바르게 사는 것에 대한 가치 차이를 둔 형제의 이야기에 백화점 사장의 딸 아나코와 노정주와의 로맨스까지 가미되어 있는 생생한 역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다 읽고난 소감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편 본 느낌이다. 사랑하는 감정은 억지로 만들려고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노정주와 아나코의 사랑 역시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발전하여 사랑으로 싹트게 된다. 허나 이들이 아나코의 부유한 아버지의 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사랑이 인정 받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행복도 느낄 사이도 없이 이별을 해야하는 연인... 짧은 이별은 결국 긴 이별로 이어지는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데.... 이 와중에 노태영, 노치영 형제에게도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의 만행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북성로의 밤'은 화려한 북성로를 중심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3형제를 중심으로 우리의 아픔 근현대사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쓸모가 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고 노태영이 막내 동생에게 이를 정도로 조선인의 목숨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과하지 않게 표현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지금의 대구 북성로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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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이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니까. 사람은 뭔가 자신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법이니까. 그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럼에도 요즘 많은 사람들, 결과만을 놓고 단죄를 내린다. 잣대를 들이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보다, 그(녀)가 왜 그랬을까 보다, 그(녀)가 이러이러했으니 이래야 한다, 에 집중하는 경향, 짙다.
이 소설의 노태영. 일제에 부역했다. 그것만으로도, 비난 받고 손가락질 당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노태영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 노태영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소설은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이 노태영의 죄를 없앨 순 없다.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한다. 노태영의 선택, 단순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웅숭 깊은 시선.
대한민국, 여전히 일제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다. 한일군사협정을 추진하는 것들을 보라. 해방과 광복을 맞이했지만, 말끔하게 씻어내지 못한 부역의 흔적이 한국을 여전히 쥐고 흔든다. 부역은 부역대로 하고 희생 당한 것은 어설픈 권력을 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큰 비극은 약한 사람들에게만 닥친다는 말, 진실이다.
그리고 문학의 존재 이유. 문학을 '사실'이라고 하지 않고, '진실'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노태영이 부역한 것이 사실이라면, 노태영이 부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진실이다. 문학은 진실의 장르다. 문학의 해야 할 일이다. 기사를 쓰는 조두진은 사실에 중점을 두겠지만, 문학을 하는 조두진은 진실에 더 방점을 둘 것 같다.
노태영의 명복을 빈다. 그보다 더 큰 빌어먹을 죄악이 지금도 날뛰는 마당이지만, 한국은 그것을 청산하지 못한다. 아니 청산할 생각이 없다. 한국을 지배하는 주류 기득권들이 지금도 쟁쟁한 이유다. 슬프다, 북성로. 그런 슬픔이 깃들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북성로는 슬픔의 다른 이름이다. 대구를 찾는다면 북성로에 가봐야 겠다. 노태영의 명복을 빌어줄 것이다. 그의 죄를 사하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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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근대의 흔적을 간직한 골목이 있다. 이른바 ‘대구 근대골목’. 대구를 홍보하는 책자에도 ‘근대’라는 단어가 곳곳에 있을 정도다. 대구는 근대의 시간을 다른 대도시에 비해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이다. 근대골목에는 영남대 국문과 출신의 소설가 김원일이 전쟁 직후의 사회상을 다룬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된 곳도 있고, 계산성당, 계산예가,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3․1 만세운동길, 여성 국채보상운동 발상지인 진골목, 화교거리,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감상실 제1호인 ‘녹향’ 등 근대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대구시는 이곳을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키우고 있다. 지난해에만 3만 여명이 근대골목을 방문했다. 이곳은 지금 ‘2012 한국관광의 별’ 최종후보에 올라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대구는 근대의 숨결이 현대까지 맥을 잇는 도시다. 그런 대구의 근대를 조명한 『북성로의 밤』(조두진 지음/한겨레출판 펴냄)은 1940년대 대구 북성로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이 근대화를 명분으로 침탈한 근대사에 편입된 사촌 삼형제의 이야기. 일제의 충실한 순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 실제로 있었다는 ‘미나카이 백화점’의 배달부이자 태영과 치영의 사촌동생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이 주요한 두 축이다. 대구의 북성로는 이 두 축을 뒷받침하는 근대사의 공간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드러난 실체 이면의 지점을 드러내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잠재태로 존재하는 침묵의 세계를 가시화하기. 우리의 인식은 늘 겉으로 드러난 것에 머물기 때문이다. 조두진 작가가 일제 순사 노릇을 하는 노태영에게 좀 더 시선을 둔 이유일 것이다. 그저 그런 소설이었다면, 독자의 쾌감에 집중했다면 노치영이 일제를 향해 폭탄이라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두진 작가는 그것을 거부했다. 일제의 부역자로 손가락질 받는 나쁜 놈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에 더 주목했다. 지난 4월19일, 그러니까 4.19의 봄밤. 서울 홍대부근의 ‘쏘울언더그라운드’, 『북성로의 밤』 출간기념 작가와의 만남에서 조 작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대의 봄밤에서 대구의 근대와 북성로의 밤을 떠올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근대를,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북성로, 근대사의 불행했던 공간 북성로. 대구의 실재 지명이다. 동서남북로가 있으며 북성로는 북쪽에 위치한다. 대구의 유흥가 중 하나로 알려진 동성로는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작가에 의하면, 이들은 조선시대엔 성(城)이었다. 일본이 이를 신작로로 닦았다. “대구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는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성(城)의 성벽이었습니다.”(p.350) “성(城)이라고 하면 왕조국가를 상징하는데, 신작로는 상업적인 제국주의 국가를 상징한다. 전면적으로 마주친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들이 이를 배경으로 엄청나게 뻗어나갔다. 역사적인 장소인 셈인데, 북성로는 근대사의 불행한 공간이다. 왕조국가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면서, 대체로 다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1906년부터 1945년까지 불행한 시간, 불행한 공간을 북성로가 상징한다고 봤다. 왕조국가의 제국주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던 시간과 공간. 그 북성로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북성로에서도 중요 공간이다. 참고로 미나카이 백화점은 현 북성로 대우 주차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의 3대 백화점 중 하나였다. 사장 나카에 가쓰지로는 부자가 되겠다며 조선에 온 가난한 상인이었다. “상인들은 성을 허물고 4성로를 건설했고, 그 도로를 따라 자신들의 점포를 세웠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입니다.”(pp.350~351) 작가는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을 그런 소용돌이로 몰아간 것은 무엇이었는지. 소설 속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일본 순사가 됐던 노태영은 단죄가 됐다. 일본인으로 한국에 와서 돈을 벌었던 사람도 제국주의 침략자로서 단죄가 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서 그들의 삶,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피치 못할 사정과 고통.
“소설은 이성과 거리가 있다. 질서정연하거나 과학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소설가로서 역사의 평가나 철학적 평가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초점을 맞췄다. 불행한 공간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통념이나 평가와 다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은 실존 인물이고, 노태영은 실존 인물을 토대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소설을 탈고한 뒤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비판도 많이 받았단다. 노태영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냐는 반응도 나왔다. 물론 면죄부를 주자고 한 건 아니었으나, 그런 반응에 공감도 갔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더라도 노태영에게도 공감을 했다. “불행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남자인 내가 읽으면 공감이 덜 할 텐데, 반감을 많이 가진 친구들은 공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지. 나는 나약해서인지 몰라도, 만약에 그런 시대, 그런 입장이라면 노태영과 비슷한 길을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공감을 하고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됐다.” “북성로를 걸으면서 100년 동안 이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없습니다. 나는 다만 그들을 통해 세월의 도도한 흐름과 촌음에 불과한 사람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p.352) 조두진이 글을 쓰는 방법 조두진 작가는 몰아치듯 글을 쓴다. “흔히 시인들은 영감으로, 소설가는 엉덩이로 쓴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 몇 장씩 꼬박 쓰는 스타일은 아니고, 하룻밤에 100장씩 쓰다가 몇 개월 안 쓰다가 다시 몰아서 쓴다. 내게 소설은 노동이 아닌 열기나 영감 같은 것으로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쓰고, 두세 달 지나서 다시 읽어본다. 그때는 영감이나 열기에서 빠져나온 상태라 이성적으로 다듬어 본다. 특별히 통제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만 손질한다.”
그는 전업 작가가 아니다. 대구에서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업으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다. 주변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면 더 잘 쓰지 않겠느냐는 말도 듣지만, 소설만 써서 가족을 부양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극히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소설을 정말 많이 쓰고 싶었다.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긴 하나, ‘소설을 쓸래, 처자식 부양 할래’ 물으면 처자식 부양을 택하는 인간이다. (웃음) 당장 소설을 그만 두지. 나쁘게 말하면 예술적인 깜냥이 부족하고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강한 부류의 사람이다.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처자식을 뒤로 하는 사람에 대해선 이해는 할 수 있는데, 내 삶으로 받아들일 순 없는 거지. 말하자면 지질한 인간이지. (웃음) 대의나 이념을 위해 살 수는 없고, 생활을 가장 중요시하는 인간이다. 단점도 많고 장점도 많은.” 그는 기자생활의 장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기자라는 직업,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야하다 보니, 인물들을 억지 고민해서 창조할 필요가 없단다. 각각의 입장에 처한 인물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날 작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웃음) 변명을 하자면 종일 글에 매달리고 있다고 소설이 잘 써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직장에 다닌다고 좋은 소설을 못 쓰는 건 아니다. 재능이 부족해서 못 쓰는 것이지, 직장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큰 비극은 약한 사람들에게만 닥친다” 순사이지만 일본에 부역해서 살고, 독립운동을 하지만 하수인이고, 수동적 형태로 살아갔던 인간이 우여곡절로 사장이 되고, 가슴이 아팠다. 삼형제를 좀 더 크게 그리고 싶진 않았나? 당시 한국인으로 태어나 아무리 노력해도 출세하는 건, 한국인 전체를 손꼽아 몇 명 안 됐다. 또 하나, 북성로에는 지금도 제화점이 많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도 많이 들었다. 그 일대에서 100~200리 떨어진 먼 시골에서 왔던 사람이 제화공이 되면 정말 크게 성공한 것이었다. 그만큼 여지가 없었다. 물론 스케일을 크게 하면 좋은 건데, 내가 보아왔던 것과 괴리가 생기더라. 평생의 꿈이 재봉틀 하나 사는 것이었고,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다. 실제로도 백화점 주인이었던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철저하게 한계를 뒀다. 일본에 줄을 선다고 해도, 한국인이라는 꼬리표가 작용해서 어찌 할 수 없는 차별을 받는 상황이었다. 내가 본 현실과 거리가 있어선 곤란하겠다는 게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아마 스케일이 크지 못한 인간이어서 그럴 거다. 내 꿈이 기껏해야 얼마 안 된다. (웃음) 판타지 소설을 쓰는 분은 산을 움직이고 불도 뿜겠지만, 나의 인간적인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길을 가도 불행한 사람이 눈에 많이 띠고, 결말이 좋은 것보다 비극이 더 눈에 띤다. 이상하게 그런 것이 눈에 많이 띠고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 어릴 때 가난해서인지 가난이 눈에 더 쉽게 눈에 띠고. 부모님이 아침에 일찍 일하러 나가셨다가 늦게 돌아오시고 한 것 등에 연결이 돼 있는 것 같다. 노는 물에 따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일본 사람한테 무시당했고, 해방 뒤에는 일본 사람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한국 사람들한테 배척받았소. 사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소. 일본 사람 편도, 조선 사람 편도 아니었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았는지,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도 모르겠소.”(p.348) 동생이 형에게 선물 폭탄을 전해주는 상황이 가슴 아팠다. 자신의 진로를 의지적으로 선택한 부분인데, 너무 비극적으로 몰지 않았나? 세 사람이 선택한 것은 자기 길이며 진로는 자기가 선택했는데, 진로 속에선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나는 그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념에 따라 선택했다고 해도 혈육을 어찌할 순 없잖나? 아무리 이념이 투철해도 그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단호하게 내 형을 죽일 순 없다. 내 자식이나 부모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내가 단죄할 수 있겠나? 내가 흉악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신고하지 않아서 죄를 받는다면, 죄 받는 쪽을 택하겠다. 형이 절망하는 장면도 그런 것이다. 나의 배신은 단죄 받아 마땅하다 할지라도 동생인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비극으로 몰렸던 사람들이 정말로 잘 나가면 덜 미웠을 텐데, 셋 다 잘 나가지도 못하고. (웃음) 실제 많은 비극이 그렇지 않을까? 확신을 갖고 잘 나가는 사람은 그렇게 큰 불행에 내몰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큰 비극은 약하고 비리비리한 사람들에게 닥친다. 노정주가 아나코를 자전거 태워주는 장면이 부럽더라.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나? (웃음) 늘 받는 지적 중의 하나가, 연애하는 부분을 못 쓴다. (웃음) 그런 부분의 묘사가 서툴다. 심하게 얘기하면, 장난 하냐? 그것도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손잡고 입 맞추고 한 연애를 하지 못했다. 아내와 결혼할 때도, 둘이서 만나 본 적이 없다. 나는 프러포즈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내는 프러포즈로 받아들였더라. (웃음) 하여튼 나는 연애장면이 어색하고 서툴다. 그래도 그런 부분이 좋았다니, 기분이 좋다. “아나코는 자전거를 따라 뛰다가 걸었고, 정주의 자전거는 미끄러져 나가는 듯하다가 다시 넘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아나코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었고, 정주는 진땀을 흘렸다.”(p.83)
백화점 사장이 실존인물이면, 행방불명도 진짜 있었던 일인가? 해방 직전에 죽었다. 뇌경색으로 죽었고, 그 회사(백화점)는 미 군정에 몰수당해서 세무서 건물로 쓰이다가 그 뒤 다른 용도로 활용됐으나, 지금은 주차장이다. 1층에 점포가 있고, 뒤쪽으로 입구를 만들어서 여러 층의 주차장으로 만들어졌다. 노치영의 과거에 대해 언급이 없다. 독립군이 됐는지도 나오질 않고. 덜 주목받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좌익 활동을 했다고 딱 한 줄 나온다. 쌍놈 양반이 없어졌는데도 시중들어야 하고, 종처럼 사는 그게 싫었던 거고. 물 떠주고 발 씻어주고 3년을 한 거라. 세상이 개화됐다는데, 개화도 안 돼 있고, 늘 차별 당했다. 노치영은 노태영에 비해 감정적인 부분이 많은 캐릭터다. 좀 더 충동적이고. 노태영은 수재니까 주목도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노치영은 그러질 못하던 터에 자신의 쓸모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났던 거다. 그렇게 쓰지 않았지만, 나는 그리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노치영에게 왜 덜 주목했느냐면, 노치영으로 대변되는 삶은 뮤지컬, 영화, 연극, 책 엄청 많다. 나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작가가 장남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전적인 장차남의 역할 분담 같은 게 있어서. 나는 차남인데, 그런 건 별로 안 느꼈다. 노치영에 대해서도 그리 생각해서 한 건 아니다. 노치영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해선 추모도 많이 했지만, 노태영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해선 그런 건 같지 않았다. “통념의 입장에 설 때, 노태영이 나라를 빼앗은 적의 목덜미에 저하의 송곳니를 쑤셔 박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노태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맞서 싸우다가 죽는 대신 그는 일본 경찰이 되어 살길을 도모했습니다. 그가 장렬한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고 나까지 나서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p.353) 읽다가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아나코가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그 시대 일본 여성이 그렇게 교육 받는 것이 가능했나? 아나코는 의전을 다닌 배운 여자였다. 실제로도 당시에 일본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당시 일본은 소학교가 이미 의무교육이었고, 여자라도 중학교를 안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문헌에 그렇게 나온다. 호흡이 짧다는 생각도 들었다. 2권까지 분량이 길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면 늘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서 아무도 사 보지 않을 것 같다. (웃음)
언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나? 신춘문예에 처음 응모 한 것이 1989년이었다. 제대하고, 23~24살 무렵인데, 3~4년 연속 떨어졌다. 나중에는 본선에 올라가고 그래서 내년엔 붙겠지, 이랬는데, 내년엔 2등도 안 되고. (웃음) 신춘문예는 7~8년을 응모했다. 문학담당기자를 4년 했는데, 가장 기뻤던 순간이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 때였다. 전화 받는 사람의 호흡을 느낄 수 있거든. 내가 축하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했다. 당선자의 행복함도 전해지고. 신춘문예는 천운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운이 많이 좌우한다. 90% 이상은 운이 아닐까 싶다. 99% 운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어떤 환경, 어떤 부모님, 정신상태, 몸 상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는 거고, 날 때부터 상당히 운에 좌우된다. 한국에 태어났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글이 건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태영이 죽는 마지막 부분에 울컥한 부분이 있었다. 독자들 감동을 주기 위해 한방을 노린 것도 있는 것 같다. 마땅히 이러했을 것이라는 입장에서만 썼다. 노태영 아버지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는데, 노태영은 어머니에게 아들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모든 희망이었다. 어머니에게만큼은 반드시 자기가 살아서 돌아와야 했다. 마땅히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태영이 어머니에겐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치영아, 너는 집으로 돌아가다오. 어머니 혼자 마루에 앉아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게 하지 말아다오. 돌아가서 어머니께 내가 집으로 오고 싶어 했다고 말씀드려다오.”(p.327) 태영이 일본 패망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준비를 안 했나 싶어서 그게 아쉽더라. 사람들이 친일 경찰이라도 따뜻하게 해줘서 빠져나갈 길도 찾고,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 해방이 그렇게 도둑같이 온 건가? 정보국에 있던 사람은 날짜는 몰라도 일본이 망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노태영은 그렇게 죽어가는 게 그 인물을 쓰겠다고 했을 때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 같았다. 청산가리를 먹고 태영의 아내가 죽는 장면이 있다. 그건 지어낸 것이 아니다. 일본 패전을 앞두고 일본에 협력한 고위층에선 청산가리를 다 갖고 있었다더라. 독한 사람들이지. 다음 작품 생각중인 것이 있나?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는데, 3~4년 안에 쓰겠다고 하는 게 있다. 현대물이다. 평범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누구인가. 나는 평범한데,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기도 하잖나. 나는 원래 사람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었다. 그런데 앞에 마주하고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눈물 흘리며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장에 와서 알았다. 굉장히 놀랐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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