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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항해에 발 디딘 뱃사공들이여!『배를 타라』(上,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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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소설! 이 단어만으로도 가슴은 벅차오르고 설레기에 충분하다. 거기다 더해 '음악'..그것도 클래식이라는 소재와 맞물려 한층 더 감미롭고도 잔잔하면서도 풋풋한 그때 그 시절 감정을 울컥하고 끌어내 주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일본소설의 흔한 '자극성' 짙은 소재에서 벗어난 분위기 있는 이 소설은 일본소설에 대한 편견을 일시에 날려보내기에 모자람이 없고, 촘촘하게 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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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소설! 이 단어만으로도 가슴은 벅차오르고 설레기에 충분하다. 거기다 더해 '음악'..그것도 클래식이라는 소재와 맞물려 한층 더 감미롭고도 잔잔하면서도 풋풋한 그때 그 시절 감정을 울컥하고 끌어내 주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일본소설의 흔한 '자극성' 짙은 소재에서 벗어난 분위기 있는 이 소설은 일본소설에 대한 편견을 일시에 날려보내기에 모자람이 없고, 촘촘하게 짜여있는 스토리는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왔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이가 얼마만큼 들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를 떠나서 자신이 어느 정도 생의 정점에 있다고 느끼는 그런 순간에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볼 접점이 분명이 한번은 올 것이다.(앞서 리뷰 했었던 『빌라 아말리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다. 인생을 돌아봄과 새 인생을 시작하는 차이)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역시 그런 의미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내가 이만큼의 인생의 나날들을 보냈는데 그 와중에도 더 생각나고 더 잊을 수 없었던, 가장 찬란했거나 혹은 가장 암울했거나...후자는 어쩌면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내고 싶은 순간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역시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굴곡은 있겠지만, 그 굽이치는 단면들이 모여 하나의 산맥을 이루는 우리네 인생 중 그 어떤 단편적 기억들도 결코 헛된 시간과 경험들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끝이 없는 '길'로 인도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것 또한 인간들의 염원과 같은 부분이다.

 

 

양친을 제외하고는 음악가 집안이나 다름없던 환경에서 태어난 사토루.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업라이트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 사토루의 음악-정확하게는 연주-을 통한 사춘기 방황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스토리가 상·하 두 권에 걸쳐 묵직하게 서술되어 있다. 많아 봐야 17~18살 그 시절 사춘기 아이들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대부분 느끼지 않겠는가. 사토루 역시 음악, 첼리스트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 또래의 아이들과 비슷하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자부심 또한 넘쳐나는 오만함으로 가득 찬 사내아이. 음악 외에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토루로 인해 소설 속에는 음악가, 철학자 할 것 없이 그들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과 가치관 등이 고민 많고 생각 많은 사내아이의 걷잡을 수 없는 마음처럼 펼쳐져 있는데 이는 바로 우리들 개개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마찬가지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인생, 삶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질문은 끊임없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서성대고 있는 것들이다. 살아내면서도 확답을 내릴 수 없는, 평생토록 한두 번쯤은 고뇌에 빠지게 하는 숙제 같은 것들. 하지만 살 만큼 살았다고 되뇌는 우리들조차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는데 고작해야 18살 사내아이가 뭘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렇기에 사토루의 방황과 돌발적인 행동, 질문들은 더욱 걷잡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어떤 극점을 찾아 맹렬한 속도로 내달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역시 되돌려받음으로써 사토루 그 자신의 삶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허기진 채이기만 하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깨져버린 독에 미친 듯이 물을 퍼붓고 있는 것처럼.  그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었던 게 음악이고 첼로 연주였지만 이조차도 느낌표가 아닌 영원한 물음표로밖에 남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음악은, 인간이 인간을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고,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매료된다. 그곳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다가올 것이다.-315p

 

여기서 잠깐, 누가 당신에게 "당신은 음악을 왜 듣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나는 음악을 왜 들을까? 그것이 클래식이든 재즈든 록이든 메탈이든, 수많은 장르와 그에 파생되는 세부적 장르를 막론하고 무엇을 듣고 즐기든, 왜 듣는가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라면 식상하지만 위안과 위로, 해방 같은 답변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그에 더해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걸러내 정화해 주는 치유와 기분전환의 연장선이라고 말하면 어느정도의 답변이 될까. 사토루를 비롯한 우리들의 인생 자체가 물음표로 점철된 것이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수십 개의 물음표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음악을 왜 듣는가 같은 질문 역시 그에 상응하는 하나의 꼬리표였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느끼는 사춘기 시절, 남들은 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인생이고 내 인생만이 독보적인 전진을 하고 있다고 으레 믿기 마련이다. 사토루가 그렇다. 하지만 실상 그 속에는 열등감으로 뭉쳐있는 나약한 영혼이 존재할 뿐이지만. 철학에 심취하고 음악도의 길을 가려 수련을 하고, 청춘의 상징 같은 사랑 역시 빠질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사랑 또한 실패의 길을 걷는다. 누구보다 우월한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쟁취한 첫사랑을 통해 사토루의 오만은 방점을 찍어버린다. 결국은 또 사랑이다. 어떤 절차를 거쳐왔다 한들 사랑이라는 게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중년에 접어든 한 남자가 회상하는 자신의 철 없던 어린 시절, 망망대해에서 흔들리는 한 척의 배와 다름없던 그 시절은 결국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거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철학자도 아니었다. 배를 타고 새로운 태양,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배를 타고 있었고 그 배는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366페이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배를 타라!

살아가고 사유하는 나름의 방식에 대한 전체적인 철학적 정당화가 각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다시 말해 온기와 축복과 결실의 빛을 내려주는 태양처럼, 칭찬과 비난에 초연한 채 자족적이고, 풍요롭고, 관대하게 행복과 호의를 만들어내려면 철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부단히 악을 선으로 개조시키고, 모든 힘을 꽃피우고 성숙하게 하며, 상심과 분노의 크고 작은 잡초들이 전혀 피어나지 않게 하려면 철학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숙고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갈망을 외치게 된다. 아, 이러한 새로운 태양들이 생겨난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악한 자, 불행한 자, 예외적인 인간도 자신의 철학, 자신의 권리, 자신의 태양을 가져야 한다! 필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동정이 아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배우고 실행해온 그러한 교만한 생각을 우리는 잊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고해를 받아주는 자, 마귀를 내쫓는 자, 죄를 사해주는 자를 세워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의다! 새로운 해결책이다! 새로운 철학자다! 도덕의 지구도 둥글다! 도덕의 지구도 양 극점을 가지고 있다! 양 극점도 실존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 발견해야 할 하나의 세계가 있다! 하나 이상의 세계가 있다! 배를 타라, 철학자들이여! -361~362페이지

 

청춘이여!

배를 타라!

폭풍우를 만나고,

내리쬐는 뙤약볕과 동행하고,

때로는 잔잔한 수면에 너를 비추어라!

인생은 이렇듯 항해의 연속 선상에 놓여 있는 한 척의 배와 다름없으니.

열심히 노를 저어라, 청춘의 배를 타는 뱃사공들아.

 

 



w*****8 2012.05.04. 신고 공감 20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서툴러서 더 아름다울런지 모를 청춘을 위한 소설『배를 타라 上』
"서툴러서 더 아름다울런지 모를 청춘을 위한 소설『배를 타라 上』" 내용보기
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 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 그리움만 실어요 구름은 바람따라 떠나도 그 하늘 그냥 구르고 인생은 세월따라 떠나도 그마음 그대로 피네    패티 김의 노래 중 『인생은 작은 배』라는 노래다. 흔히들 인생을 배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엄청난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며 표류하는 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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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 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 그리움만 실어요

구름은 바람따라 떠나도 그 하늘 그냥 구르고

인생은 세월따라 떠나도 그마음 그대로 피네 

 

패티 김의 노래 중 『인생은 작은 배』라는 노래다. 흔히들 인생을 배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엄청난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며 표류하는 배가 되지 않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그래서 인생은 하나의 배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배에는 한번 오르고 나면 내릴 수 없으며 연습할 수도 없고 몇 번씩 반복할 수도 없는 일회성의 시간속의 무정한 배.

시간이라는 무정한 배에 승선하고 나서야 돌아볼 수 있는‘나’의 모습은 이미 현재의 모습인 ‘나’가 아닌 과거형의 ‘나’이다. 지난날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 모습과 반추해 보고 나서야 과거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에 견딜수 없게 될 때가, 그럴때가 있다....

 

『배를 타라』를 읽으면서 상념에 잠기는 이유가 그런 이유였다. 내가 아닌 시절,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만 같은 ‘나’의 모습을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아침, 점심, 저녁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웃기도 하고, 조용히 한숨짓는 어른의 삶을 살다가 문득 잃어버리려고 애쓰던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과거의 나로 회귀시키는  책이다. 지나치게 조숙하고 지적호기심에 니체와 소크라테스에 심취하여 주변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속에 투영되는 ‘젊음의 혈기’로 자행되는 방황과 사랑은 어른이 되기 위한 자양분으로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다.

 

남들보다 조숙하고 성숙한, 그래서 오만한 사토루. 자신의 우수함을 의심해 본 적이 없던 사토루는 예술 음악 학교에 떨어지고 삼류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류학교이지만 학교이사장인 할아버지의 후광덕인지는 모르나 나름 친구들과 적응도 잘하고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기도 하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미나미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건너편 쪽을 마주볼 수 있는 장소에서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내려오자마자 하행선 전철이 들어와, 나를 쳐다본 그녀를 금방 볼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을 확실히 알았다. -p84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은 깊어가지만, 사토루가 착각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자를 현실이 아닌 ‘로맨틱한 사랑의 괴로움’으로만 느꼈다는 것이다. 한 번도 타인을 배려한 적이 없었던 사토루로서는 가장 최선으로 미나미를 사랑하였다. 첼로스트로서 단기로 독일 유학을 가게 되지만 가난해서 독일 단기유학에 제외되었던 미나미는 오히려 상심하게 되고, 사토루가 독일에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이후 내용은 2권에서 ^^)

 

꿈이 없는 인생을 배에 키가 없는 것과도 같다라는 말을 한다. 배를 항해하다 보면 궂은 날씨로 고생도 하고 암초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잘 이겨내고 나면 한동안은 순탄한 항해가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 사토루를 통해 서투른 사랑과 미완의 꿈으로 어설픈 모습을 살고 있는 사토루의 모습은 우리의 청춘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인생이란 것이 끊임없는 연습도 가능하고 다시 고칠 수 있는 연습장 같으면 좋으련만, 배를 타고 나서야 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생의 성적표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서나 가능하다. 저자 오사무 역시 인생이라는 배에서  늘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던 가슴  한 켠의 짐을 소설로 풀어놓음으로서 자신을 반추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자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되어진 미완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보며 과거로 회귀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서툴러서 더 아름다울런지 모를 청춘들을 위한 소설이다.   

 

사랑의 아픔이니 사랑의 슬픔이라는 말은 소설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텔리비전의 멜로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남자들은 대부분 울거나 한숨을 쉬거나 일기를 쓰거나 벽을 치거나 빗속에서 절규하거나 했다. 소설은 그런 남자들을 아름답게 그리고, 영화는 그들을 슬픈 음악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p150



YES마니아 : 로얄 k********2 2012.04.23. 신고 공감 12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귓가에 클래식 선율이 계속 맴도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느껴지는 멋진 음악청춘소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귓가에 클래식 선율이 계속 맴도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느껴지는 멋진 음악청춘소설" 내용보기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 반(班)에 한 두 명 씩 있었던 “예체능(藝體能)”계열 아이들은 “우리” - 여기서 “우리”란 인문계, 자연계로 구분하여 수험 준비를 했던 일반 학생들을 말한다 - 와는 “다른”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밤낮 없이 공부에 시달리던 우리들과는 달리 며칠씩 수업에 나오지 않다가 등교(登校)해서도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기 일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귓가에 클래식 선율이 계속 맴도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느껴지는 멋진 음악청춘소설" 내용보기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 반(班)에 한 두 명 씩 있었던 “예체능(藝體能)”계열 아이들은 “우리” - 여기서 “우리”란 인문계, 자연계로 구분하여 수험 준비를 했던 일반 학생들을 말한다 - 와는 “다른”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밤낮 없이 공부에 시달리던 우리들과는 달리 며칠씩 수업에 나오지 않다가 등교(登校)해서도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기 일쑤이고, 실기 시험 준비한다며 점심시간 이후에는 금세 사라져 버렸던 그 아이들은 부러움(憧憬)과 질시(嫉視)의 대상이자 앞서 말한 대로 우리와는 “다른” 그런 학생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같은 “일반” 학생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던, 때로는 같은 반 친구이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 본 친구가 없었을 정도로 존재감(存在感)이 약했던 친구들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만나는 동창생들 중에서 그 친구들의 근황을 묻거나 알고 있는 친구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음악 청춘 소설 <배를 타라 上,下(원제 船に乘れ /북폴리오 / 2012년 4월)>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 60 여 명의 학생들로 북적였던 교실 한 켠에서 유달리 말이 없고 조용했던, 지금은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졸업 앨범을 꺼내 놓고 한 참을 들여 봐야 찾을 수 있었던,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그”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친구가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우리들 못지않게 고뇌와 방황, 그리고 외로움으로 젊은 날을 보냈다는 것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곤 외할아버지 내외와 외삼촌, 이모 모두 음악가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사토루”)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실력 탓에 (외)할아버님은 내게 중학생이면서도 체격이 좋고 가족 중에 아직 첼로 연주자는 없으니까 첼로를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나 또한 “명령”같기만 한 할아버님 말씀에 따라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다. 음악을 하려면 예대에 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고 그 외 학교는 모두 이류라는 생각이 집안의 불문율과 같았기 때문에 당연히 예고 입시를 준비하지만 다른 학과 성적이 너무 나빠 그만 낙방하고는 할아버님이 음악 대학 학장으로 계셨던 “신세이” 대학 계열의 음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예고와는 비교가 안 되는 “3류” 수준의 음악 학교인지라 나의 첼로 실력은 1학년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나는 학교 연례행사인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하고 학교 축제 연주회에 참여하는 등 바쁜 학창 생활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입학할 때부터 한 눈에 들어왔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동급 여학생 “미나미”와도 풋풋한 로맨스를 시작하게 된다. 어렵기만 했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을 미나미와 함께 연주하고, 오페라를 함께 관람하며 둘 만의 데이트를 하게 된다. 특히 신세이 고등학교에서는 드물다고 할 수 있는 예대 진학을 한 선배에게 자극받아 나와 미나미는 예대 진학을 목표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둘의 사랑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할 줄 만 알았던 학창 시절은 2학년 여름방학 끝나고 나서부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독일에서 거주하던 외삼촌과 숙모의 제의로 두 달 여 동안 독일에서 첼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그 누구보다 반가워 해줄 줄 알았던 미나미가 나의 시선을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답변을 하지 않는 미나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둬 버리고, 사연을 알게 된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 버린다. 그리고는 결국 나를 아껴줬던 선생님을 누명을 씌워 학교에서 내쫓게 만드는 일까지 저지르게 된다. 모든 것이 어그러진 상황, 3학년이 된 나는 결국 앞으로의 내 음악 인생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음악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어쩌면 나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오케스트라와 3학년들 동급생들로 구성된 미니 오케스트라 연주에 열중한다.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미니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는 날, 학교를 그만뒀던 미나미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교복을 다시 입고 공연장에 나타난다. 미나미 또한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이 공연에 참석하고 싶어 친구를 통해 연습 테이프를 들어가며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공연 후 다시 사라져 버린 미나미에게서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편지를 받은 나는 이제야 미나미와 완전한 이별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함으로 학교를 그만 둔 선생님을 찾아가 사죄를 한다. 선생님은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하시겠다며 나에게 “배를 타라”로 시작되는 니체의 책 한 구절을 선물한다. 나의 청춘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처럼 책은 주인공인 사토루가 음악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음악 소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악기 연주와 협연 장면들이 꽤나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취재를 통해서 구성한 것 같진 않고 혹시 작가가 실제로 음악을 전공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역시나 주인공처럼 실제로 센조쿠가쿠엔 고등학교 음악과를 전공했다고 한다. 또한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작가 스스로도 트라우마였기에 쉽게 들추어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라고 하니 어쩌면 작가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아냈기에 오케스트라 연주나 협주, 그리고 첼로, 기타 악기들의 연주 모습을 이렇게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었다. 또한 십대 후반 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 시절의 방황과 고민, 불안한 심리 상태 등을 치밀하게 그려내는데, 이 또한 관찰자가 아닌 작가 스스로의 경험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은밀한 즐거움과 함께 절로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과 미나미의 풋풋한 사랑에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도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 함께 가슴 아프고, 마지막 공연에 나타난 미나미의 모습에 주인공처럼 가슴 먹먹한 아픔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800 여 페이지 가까운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다 읽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는 귓가에 계속 맴도는 클래식 선율 - 물론 책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 중 제대로 아는 음악은 거의 없었지만 - 의 여운에 한동안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의 일기장과 같은 이 글을, 스스로 트라우마처럼 여겼던 상처를 왜 이렇게 소설로 드러내야 했을까? 어쩌면 꼭꼭 숨겨둔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작가는 “배를 타라”라는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기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 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제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사라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하권 P. 362~363

 

인생은 흔들리는 배를 타는 것과 같다고, 처음에 나를 괴롭히던 멀미야 어느 순간 사라지겠지만 배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라고, 청춘은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그런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삶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인생을 쇠퇴시킬 뿐이라며 한탄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인생은 지금부터라든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경솔한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하권 P.368

 

그런데 이 마지막 구절을 읽자 의문이 하나 들었다. 과연 이렇게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계속되고 있는 항해의 최종 도착점은 어디일까? “트루먼”(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처럼 거짓된 세계에서 벗어나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마주하게 될까 아니면 인생에서의 모든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편안한 안식을 얻게 되는 일종의 “깨달음”의 경지일까? 그 항해의 목적지를 찾는 것은 바로 우리들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도 “그것으로 됐다”로 마무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소설이라는 색다른 소재가 주는 재미와 성장소설의 감동, 두 가지 모두를 맛볼 수 있었던,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귓가에 계속 맴도는 클래식 선율처럼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다음에는 책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을 맞춰 들으면서 읽어봐야겠다. 머릿 속으로 상상했던 음악과 실제 연주 음악은 어떻게 다른 지, 또한 어떤 감동을 줄 지 자못 기대가 된다.

 

끝으로 절친한 동창에게서 서두에서 언급했던 바이올린 전공했던 친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진 터라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는 데, 음악은 대학 때 포기하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 간단한 근황이지만 그 근황 속에 그 친구도 만만치 않은 흔들림과 뱃멀미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음 동창회 때 나오기로 약속했다니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셈이다. 학창 시절 변변히 이야기 한 번 못나눴던 내가 먼저 아는 척 하려니 머쓱하기도 하지만 흔들리는 배를 타고 인생을 항해하는 동지로서 그를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다. 동창회가 기다려진다. 

 



a*****7 2012.05.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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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에서 느꼈던 설레임을 상기시켜준 작품,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상실의 시대에서 느꼈던 설레임을 상기시켜준 작품,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내용보기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읽기전에 가졌던 기대보다 더 큰 설레임을 가져다준 이 작품은 내게 있어열일곱 상실의 시대를 만났을 때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상기시켜주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감동 혹은 충격이 큰 작품일 수록 나의 리뷰는 읽고 한참 뒤에 적히거나아에 적을 수 조차 없었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후자쪽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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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읽기전에 가졌던 기대보다 더 큰 설레임을 가져다준 이 작품은 내게 있어열일곱 상실의 시대를 만났을 때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상기시켜주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감동 혹은 충격이 큰 작품일 수록 나의 리뷰는 읽고 한참 뒤에 적히거나아에 적을 수 조차 없었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후자쪽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내키지 않는 리뷰를 남기는 건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것도 아주 늦어버린...

 

이야기의 화자는 나이든 '나' 쓰시마다.

타인을 납득시킬 이유는 없지만 자신에게 있어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예고시절의 이야기가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음악을 사랑한다기보다는 부모를 제외한 양쪽 조부모와 친척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하게 된 나는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려운 전집을 시작으로 중학생때는 이미 철학자의 이론서를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읽는 소위 '허세'스러운 아이다. 나의 경우는 고입 직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머뭇거리게 된 까닭, 내게 있어 열일곱 상실의 시대를 상기시킨 것은주인공과의 동일화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었기 때문이다.고입 예비과제로 내준 작품들이 아큐정전과 같은 고전이었다.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조금은 어른과 가까운 형상이 된 그시절의 학생들이 예비과제를 얼마나 수행했을지는 모르지만 책을 좋아하고 새로 이사간 동네에 도서관이생겼다는 이유로 난 리스트에 적힌 고전도서를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쓰시마가 읽었던 책의 대부분을 나도 읽었던 셈이다. 다만 쓰시마보다는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뒤에 읽긴 했어도 결국 그가 가졌던 허세스러움을 나도 가졌었기에작품자체에 몰입했다기 보다 나는 쓰시마가 가진 그 허세에 몰입되어버렸던거다. 동기들과의 대화, 이성친구와 스승에 대한 묘한 승부욕의 대한 묘사는 저자가 이 시기를 모두넘겨본 나이라는 점에서 맘껏 공감할 수 있었다. 배를 타라 메인 테마곡까지 나의 BGM화 되면서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은그런 환경속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마치 비틀지코드를 연상시키듯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했던 고교시절 윤리쌤마저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리뷰는 약속이 있었다고는 해도 이런 이유로 적고 싶지 않았다. 리뷰가 아니라 회상록 이나 고백서즘이 되리란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한 줄도 적고 싶지 않다. 조금도 내보이고 싶지 않다. 라고 생각하지만 타이틀 '배를타라'에 대한 짤막한 언급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짜피 이야기의 플롯은 단순하다. 청소년시절의 방황과 사랑과 갈등,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맞게되는 풍랑과 그 시련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한 나이든 남자의 고백일 뿐이다.  동기생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그것도 잡학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이라면, 작품의 이해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떠나 문자자체에 대한 해독으로 난해한 서적을 들춰봤던 이들, 클래식이란 단어가 지루하기보다는 그리움의 대상인 사람들이라면 분명 이책이 맘에 들거라 생각된다. 이 책의 대한 여운이 어느정도 사라질 때즘이면 비로소 제대로된 리뷰를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상실의 시대 리뷰를 지금까지 적을 수 없었던 걸 생각하면 그때가 언제일지는 미지수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12.05.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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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후지타니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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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일까?내가 하고싶은일보단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주인공 쓰시마,어렸을때부터 어른이되기까지의 성장소설을 주제로한 배를타라.상하권 둘로 나뉘어있고 초등학교 졸업부터, 중학교 고등하교 대학생교그저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이 적혀있다.청소년기에 좋아했던 마음, 그리고 좋아했던 미나미에대한 마음이 좌절되었을때느꼈던 상처, 대학진학에 쓴 인생의 맛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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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일까?
내가 하고싶은일보단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주인공 쓰시마,
어렸을때부터 어른이되기까지의 성장소설을 주제로한 배를타라.
상하권 둘로 나뉘어있고 초등학교 졸업부터, 중학교 고등하교 대학생교
그저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이 적혀있다.
청소년기에 좋아했던 마음, 그리고 좋아했던 미나미에대한 마음이 좌절되었을때
느꼈던 상처, 대학진학에 쓴 인생의 맛을 보고, 운명을 거론하며, 음악가보단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는 쓰시마.
이책을 읽는내내 나의 십년전을 돌아보았다.
나의 성장 나의 열일곱살때는 나는 도아니면 모였을적,
하고싶은 일을 대학진학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어오고 있다.
근데 살다보니, 어렸을적 마음과 조금은 반대로 가는게 아닐까 생각이든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일과, 좋아하는일만 하는일, 생계를위해 어쩔수 없이 하는일,
사람은 살다보면 각기다른일들로 그들만의 삶을 선택하며 살고있는거 같다.

난, 고등학교땐 세상의 그넓은 부분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땐 마냥 어린아이어른이었는데, 세상을 100%이해하기란 조금 힘든부분이 아닐까 싶다.
대학생이 되고 스무살이 되고 서른이 된다고 해도 세상의 반도 못산 삶의 부분에
어느정도 알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삶은 그런 것 같다. 인생이란 바다에 배를 타는 기분,
작가는 그걸 말해주고 있다. 배에 나의 몸을 싫어 파도를 이겨내는 삶
온전하게 둥둥 떠갈수도 있을테고 비바람이 몰아치면 울렁울렁 힘든 삶이 있을테고,
위태로운 인생에 좌절도 하고, 기쁨도 느껴보며 배를 타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좌절에 기쁨에
내몸도 익숙해 질 수 있다는 느낌을 표현한것 같았다.
무엇이든 운명에 맡기질 말고, 세상사는 이치로 물흘러 가듯이 가다보면 언젠가 답이나오지 않을까

 

하권 :: P 146
나를 이해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위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음악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이 비열하고 꼴사나운 나를 향해서 따스함과 아름다움으로 넘쳐 들어왔다.
피아노 전주에 떠밀려 나는 연주를 했다.
나 자신이 내고 있을 음조차 나에게 따스했다.

 

하권 :: P 366

나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철학자도 아니었다. 배를 타고 새로운 태양,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배를 타고 있었고
그 배는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도 있었던 것이다.


배를 타라 (상.하) :: 후지타니 오사무

l****h 2012.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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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후지타니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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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화 한편을 보고서 보기 흉한 꼴을 하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토루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의 일입니다. 그날은 중간 고사가 있기 전날밤이었고, 밤새도록 시험 공부를 할 생각으로 늦은 시각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몰려오는 잠을 쫒을 겸 어두운 거실의 TV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깰까봐 소리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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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화 한편을 보고서 보기 흉한 꼴을 하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토루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의 일입니다. 그날은 중간 고사가 있기 전날밤이었고, 밤새도록 시험 공부를 할 생각으로 늦은 시각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몰려오는 잠을 쫒을 겸 어두운 거실의 TV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깰까봐 소리를 낮춰놓고 조용히 TV를 봤습니다. 그때 본 영화가 <시네마 천국>입니다.

 

 


    지금의 전 그때 그 영화를 보지 않고 영원히 그 영화의 존재를 모르고 지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고 감상적이었던 120분의 주요 장면으로 요약하고, 이런 식의 짧은 영상 하나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서글펐고 가슴 시렸습니다. 물론 영화의 그 장면들만이 토토의 인생사에서 중요했던 유일한 장면임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기억은 좋든 싫든 간에 잔인할 정도로 아프거나 가슴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기억만을 남겨 놓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 그시절 시험을 잘 봤는지 어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해내질 못하지만, 시험 전날에 공부한답시고 밤 늦게까지 있다가 영화 한편을 보고 결국 밤새도록 울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듯이 말입니다.



    저는 그 영화의 장면 중에서도 특히 오랜 세월이 지나서 중년이 된 남녀가 재회한 그 부분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자동차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여자. 남자가 실내등을 켜자, 여자는 등을 끄며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 우습지만, 어린 제가 그때 그 장면을 보고 세월의 덧없음을, 그리고 지금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건 지금의 제 인격의 한 부분을 만든 주요 장면일지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그 장면을 보며 분노했습니다. 그때 흘린 눈물의 시작은 분노의 감정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탄 배는 끊임없이 어디론가를 향해 흘러가야만 하는가. 스스로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름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하는가. 그 자리에 멈춰있을 수도, 그리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가.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를 향해 흘러가야만 하는 인생에 대해 분노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분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곧 체념의 눈물로 변했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나약함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세상에 분노해서 크게 소리쳐보아도 반혀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엔 그런 분노와 소리침은 공허한 것이라는 것에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싫어졌습니다. 무엇이 싫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의 전 그저 모든 게 다 싫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전 무척 어리석었고, 어렸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제가 그때와 비교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성숙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어리고, 여전히 그때와 마찬가지의 미성숙한 상태입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의 저는, 그 이후 오랜 시간동안의 제 자신이 지내온 모습을 과거의 저와는 달리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제 자신이 파도와 타협하던 모습과 흘러가는 배 위에서 그저 물에 빠지지 않기만을 위한 버팀의 시간을 보낸 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차이뿐입니다.



    서점에서 '후지타니 오사무'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책을 제외하곤 검색되어 나타난 책의 제목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다른 소설이 나왔던 적이 있지만 지금의 서점에는 없는 모양입니다. 유명하지 않거나 재미가 없었거나 아무튼 여러 이유로 인해 국내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검색 결과 없음'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저는 묘하게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자서전인지 무언지 알 수 없는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제 글 또한 그런 자서전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점이 참으로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혼자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 그런데 가끔 보고 싶은 이야기. 『배를 타라』는 저를 이기적으로 만드는 소설입니다. 부끄러운 제 자신을 말하고 있었던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후지타니 오사무는 이 소설을 쓰고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른이 되고 다시 이 소설을 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게 있어선 솔직히 그때 읽든 지금 읽든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전 청소년 때의 제 모습과 달라진 것이라곤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르겠습니다. 10년, 20년 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 소설을 읽는다면 지금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저는, 어린 그 시절 <시네마 천국>을 보고 울었던 과거의 모습을 한 채 『배를 타라』를 읽으며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을 '고귀한' 존재라 느끼던 자애심이 순간 부서졌을 때 한꺼번에 밀려들었을 혼란.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며 방황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아름다웠던 기억들, 아련한 추억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회상의 재료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회상은 결국 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이야기일 뿐이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소심한 남성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아니, 그것은 남성의 소심함이었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소심한 모습, 그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심함은 사실이었고, 저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으며 충분히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그것을 철학적으로 분석해서 합리화하려는 청소년기의 소심한 몸부림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괜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면 될 것을 저는 그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부정하기 위한 분노였습니다. 화를 낸다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아닌 척 할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저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은, 왜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잔인하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가. 그리고 한없이 아름답고 순수하며 깨끗한 무언가는 왜 세상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하는가. 소설의 이야기마저 왜 꼭 현실의 모습을 하고선 잔인하게 흘러가야만 하는가. 불길한 예감은 왜 이토록 잔인하게 적중해서 내 가슴을 후벼파야만 하는가. 이런 것들이 저를 괴롭게 했고 여러번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기위해 읽던 책을 내려놓고 책읽기를 수차례 쉬어야만 했습니다. 



    그나마 소설은 읽기를 잠깐 멈추면 그만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상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화가나면 화가 나는대로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대로, 그래도 세상은 흘러갑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힘들고 아프고 슬퍼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눈물 범벅이 되어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눈물을 닦아낼 그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으며 잠깐 멈추거나 돌아볼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언제 파도칠지 모를 먼 바다의 모습을 하고 우리의 배를 흔들고 있습니다. 항해하며 느낄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배를 타지 않으면 그만일 감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우리에게 '배를 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배를 탄 이후의 모든 일들은 그저 '그것으로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결론짓기에 그것은 끝을 낼 답이 아니라고 여기며, 그래서 무언가 아쉽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결국에 우리들은 혹시라도 이 항해가 끝나는 종착점 어딘가에는 우리가 그동안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존재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의문, 기대감, 희망, 호기심 등등, 항해를 해야만 하는 여러가지 이유를 갖고서 계속해서 나아갈 뿐입니다. 그 자리에 멈춰있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므로 타인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고귀한 인간 자신이 더욱 '가혹'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上 30쪽)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건너편 쪽을 마주볼 수 있는 장소에서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내려오자마자 하행선 전철이 들어와, 나를 쳐다본 그녀를 금방 볼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을 확실히 알았다. (上 84쪽)



    나는 어떤 투명한 쓸쓸함 갓은 것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에는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의 주역이 될 수 없다. 우리 인생의 주격은 음악이고, 음악의 이 절대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의 기쁨이나 슬픔, 분노나 초조함 같은 건 거의 의미가 없다. 음악은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앞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불쌍한 협잡물에 지나지 않는다. (上 135쪽)



    사랑의 아픔이니 사랑의 슬픔이라는 말은 소설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텔리비전의 멜로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남자들은 대부분 울거나 한숨을 쉬거나 일기를 쓰거나 벽을 치거나 빗속에서 절규하거나 했다. 소설은 그런 남자들을 아름답게 그리고, 영화는 그들을 슬픈 음악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上 150쪽)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싸움을 거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사랑하고 있다고 본심을 고백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上 251쪽)



    맞아, 미나미. 나 역시 착하기만 하지는 않아. 가능하면 미나미의 연습 시간을 절반이나 그 이하로 줄여서 함께 여러 곳에 가고 싶어. 아침부터 밤까지 쭉 둘이서만 있고 싶어. 그리고 나는 너와 섹스가 하고 싶어. (上 316쪽)



    그 말은 격려가 되었다. 동시에 가슴 한쪽에 얼마간의 불만도 느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자신을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이라는 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선생님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었다. 조금도 미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확실히 미숙했다. (上 353쪽)



    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는다는 명목으로 해왔던 정체가 한순간에 드러났다. 이해한 것도 아니고 공감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난해해 보이는 책을 선택하여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페이지를 넘기고 정말로 공감한 것처럼 책을 덮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확실히 주위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는지를 확인했고, 그곳에 아무도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을 목격자로서 속여넘겼다. 자신을 속인 것이다. 그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을 나는 지금까지 몇 년 동안이나 '독서'라는 명목으로 해왔던 것이다. (下 31쪽)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겋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악기에는 악기 자체의 원리가 있고 인간의 육체에도 독자적인 원리가 있다. 연주는 그 두 원리가 서로 겹쳐지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는 그 원리를 조합하여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악기와 자신의 육체에 관련된 지식과 경험, 단련은 단순히 '악기를 꺼내서 켜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下 50쪽)



    늠름하고, 참을성 있게, 그리고 말하지 말 것.

    그렇다면 젊은이여 너는 사나이답게 승리를 거둘 것이다. (下 64쪽)



    나는 패배한 수컷이었다. 인간인 패자에게는 아직 미학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수컷인 패자에게는 미학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한없이 우스꽝스럽고 보기 흉하고 무가치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下 98쪽)



    진짜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나는 너무 부족한 겁쟁이였다. 게으른데다 눈곱만큼의 재능도 없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下 279쪽)



    음악은, 인간이 인간을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고,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매료된다. 그곳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다가올 것이다. 최초의 음악을 만들어 낸 인간은, 여기에 없는 사람, 여기에 자신이 있다는 걸 모르는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플루트를 불고 있는 것이다. 오직 혼자서. (下 315쪽)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밤 나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을 절감하고 울었던 것 같다. 그것은 행운이나 불행 같은 것은 아니었다. 운명이나 숙명 같은 것과도 조금 달랐다. (下 338쪽)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주하는 독주에도 청중은 있다.

    왜냐하면, 너를 보고 있는 또 하나의 네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下 351쪽)



    그것으로 됐다. (下 368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i*******y 2012.04.06.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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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소설 [배를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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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인생을 쇠퇴시킬 뿐이라며 한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인생은 지금부터라든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경솔한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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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인생을 쇠퇴시킬 뿐이라며 한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인생은 지금부터라든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경솔한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후지타니 오사무 배를 타라.>

 

누구나에게 존재했던 시기이다. 질풍노도라는 말이 우스워 보일 정도로 힘겨웠던, 하지만 이후 떠밀리 듯 어른이 돼 버린 우리는 그런 시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청소년기를 잊어버린다. 일본 문단계 중견작가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소설 배를 타라.> 청춘소설이란 장르가 딱 들어맞을 정도로, 풋풋하면서도 청신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남들보다 조숙했던, 아니 조숙한 척 했던, 발레리와 몰리에르, 니체에 빠져있던 지적허영심 가득한 소년 쓰시마, 신세이 학원 음악 학장인 할아버님의 권유로 첼로를 시작했고, 일류 예술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 낙방하면서 인생의 첫 번째 쓴 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음악 학교로는 삼류인 신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된다. 암울할 것만 같았던 소설은 쓰시마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음악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친구들과 교류하고, 성숙해지면서 음악이 자신이 갈 길인가에 대한 고민, 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고, 같은 학교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미나미와의 첫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깨지며 겪는 아픔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해 간다. 그리고 계속해 의구심을 품었던 자신의 재능에 대한 한계에 부딪히며, 첼로 포기를 선언한다.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길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가벼워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하권 362

 

그 후 10, 쓰시마는 계속 길을 잃고 헤맨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수많은 아침, 점심, 저녁의 반복하면서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배를 타면 뱃멀미가 시작되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겠지만 배의 흔들림은 멈춰지지 않는다고,,, 배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네 인생이란 배 역시 계속 흔들리며 그렇게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음악학도들의 꿈과 절망, 동경과 질투어린 성장담이 그들이 합주하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며 스토리에 리듬을 줌과 동시에, 치기 어린 성장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는, 그래서 인생은 어느 순간이든 파도에 흔들리겠지만, 그것이 바로 인생임을 깨닫게 해주는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었음이다.



n****5 2012.05.11.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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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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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읽다보면 의외로 클래식에 엄청난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가 많다는걸 알수 있다  우선 내가 좋아했던 무라카미하루키가 대표적인데..이분은 째즈 역시  엄청난 매니아신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접했던 `손가락 없는 환상곡`을 쓰신 오쿠이즈미 히카루라는 분이 있고...그리고 이 책을 쓴 작가가 있다. 이 작가는 고교때 음악과를 나오신걸 이력을 통해 알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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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읽다보면 의외로 클래식에 엄청난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가 많다는걸 알수 있다 

우선 내가 좋아했던 무라카미하루키가 대표적인데..이분은 째즈 역시  엄청난 매니아신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접했던 `손가락 없는 환상곡`을 쓰신 오쿠이즈미 히카루라는 분이 있고...그리고 이 책을 쓴 작가가 있다.

이 작가는 고교때 음악과를 나오신걸 이력을 통해 알수 있기도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역시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보통의 지식이 아닌 전문가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수 있었다.단순하게 아는 지식을 나열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그 악기에 정통하고 조예가 깊기도 하다는걸 알수 있었지만..그래서인지 클래식에,특히 악기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엔 조금 애로사항은 있었다.그럼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은 음악이야기가 아닌 첫사랑에 아파하고, 고민하고,갈팡질팡하기도 하는 소년의 심리묘사가 탁월해서 그 약간의 애로사항만 감수한다면 한편의 재밌는 청춘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가족 대부분이 음악가이기도 한 부잣집 아들인 나는 약간의 자의식 과잉을 가지고 있는 첼리스트이자, 니체와 소크라테스와 같은 어려운 철학서를 읽기도 하는 오만한 열다섯살의 소년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커왔고 집안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한 케이스지만 예고입시에 실패하고 3류라 칭하는 사립 신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약간의 자존심이 꺽이는걸 경험하게 된다.

전교생이 여학생이고 남자는 달랑 6명이 입학한 상태이자 주목받는 첼리스트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되면서 무너진 자존심을 어느정도 회복하기도 하지만 같은 입학생인 미나미를 우연히 보게되면서 모든 관심은 그녀에게로 향한다.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오케스트라합주가 시작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도움으로 방학동안 독일로 가게 되면서 그런 그를 질투하는 그녀와 미묘한 갈등을 겪게 된다.

 

중간중간 어려운 음악용어가 나오는 걸 빼면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화자의 입장으로 그때의 감정들을 반성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피하지않고 덤덤하게 이야기해나가는 방식이라서 친근감도 느끼게 되고, 왠지모를 아련한 그리움같은 감정도 느낄수 있었다.생각해보면 부끄럽지않은 청춘이 얼마나 될까..?

주인공인 나 역시 그때의 실수아닌 실수로 망쳐버린 자신의 추억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달콤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청춘에 대한 오마쥬를 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문득 클래식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정말 작가가 말하고 느낀대로 나 역시도 같은 음악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아마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상당수가 될 것이라고 예감한다.

방황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청춘에 관한 책!

 

 

y******0 2012.04.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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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上,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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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생에 있어서나 제 딸의 인생에 있어서나 약간의 방향조정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 내용들이 우리의 상황과 꼭 닮아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음악에 관한 청춘소설이라 하여 꼭 딸이랑 같이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읽어본 결과, 지금 딸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고 심사숙고 중인 내용들이 잘 버무러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딸아이는 지금 음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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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생에 있어서나 제 딸의 인생에 있어서나 약간의 방향조정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 내용들이 우리의 상황과 꼭 닮아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음악에 관한 청춘소설이라 하여 꼭 딸이랑 같이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읽어본 결과, 지금 딸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고 심사숙고 중인 내용들이 잘 버무러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딸아이는 지금 음악의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정형화된 음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말 그대로의 음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정형화되고 표준화된 곡들을 쳐야만 하고 배우고 싶지 않은 곡들도 배워야 하고 거기엔 또 부수적으로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전 예고를 결정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입시전문 학원으로 옮겼었습니다. 레슨의 내용도 몇배의 차이가 있겠지만 렛슨비 또한 지금의 5배 만큼이나 차이가 나더군요. 그래도 큰맘먹고 하고 싶은거 해보라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단 두번의 레슨을 받고는 "이건 내가 원하던 음악이 아니야" 라며 엄청난 발언을 해 버리더군요. 그렇게나 피아노를 좋아하던 아이가 무슨 일인가 하여 너무 놀랐습니다. 순간의 판단으로 후회하지 않을까하여 회유도 해보고 윽박 질러 보기도 했지만, 끝까지 아니라며 울어 버리더군요. 결국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눠본 후에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더군요. 물론, 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정형화된 교육을 꼭 거쳐야 하지만 저는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꼭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 했습니다.

 

 

 

난 입시를 위해서 플루트를 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불필요하게 긴장 하기도 하고 연주하고 싶지 않은 곡도 무리하게 해야 하잖아? 게다가 예술대학 입시용 연주 방법 같은 것도 있는것 같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불고 싶어. 벌벌 떨지 않으면서 불고 싶어. 그래서 이제 입시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아. (上 304쪽 사토루의 친구 '이토'의 말)

 

 

 

소설속의 사토루를 보면서 때론 정형화된 교육속에서만이 음악과 함께 살아 남을 수 있는가 싶기도 했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살아 남는 사람보다 도퇴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또 한번 씁쓸함을 느끼게 되더군요. 이 이야기는 작가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어른이 되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왠지모를 허전함과 괴로움의 이유가 고교시절 겪었던 그 일들이 트라우마가 되어 항상 잔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모든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써내려간, 어른인 내가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고통스러운 편지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그 시절에 자신이 내렸던 한 순간의 결정으로 인해 특별한 아이에서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몰랐을 자신을 상상하며 그때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 봅니다.

 

사토루는 첼리스트를 꿈꾸는 유복한 가정의 아이입니다. 유명한 예고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할아버지가 학장으로 계시는 삼류 음악학교인 신세이고등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예고에 낙방한 사토루는 자신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학업의 의지를 잃어가지만 신세이에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음악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면서 음악학도의 꿈을 다시금 키워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국수집을 하는 부모님밑에서 가난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는 그의 첫사랑 미나미도 만나게 되지요. 그러다 독일로 2개월간의 단기유학을 다녀온 후, 자신의 주변에 큰변화가 생긴걸 알게됩니다. 미나미는 자신을 피하기만 하고,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던 선생님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자 사토루는 모든일에 의욕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를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것이겠지요.

 

 

 

한 사람의 '위대한'음악가 밑에는 수십 명의 '월등한'음악가가 있다. 그리고 '월등한'음악가 밑에는 수천 명의 '우수한'음악가가 있고, 그 밑에는 수만 명의 '기술을 습득한'음악가가 있는 것이다. 마이니치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예선에서 떨어진 사람은 몇 십 명이나 된다. 그들 또한 1위를 한 사람과 똑같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오로지 음악에 바쳐왔을 것이다. (下, 156쪽)

 

 

 

책 속에는 정말 수없이 많은 곡들이 등장합니다. 첼로에서 부터 바이올린 플루트,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곡들을 눈으로 쫓고 있다보면 이 곡들을 꼭 한번씩 들어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피아노를 하기 전엔 클래식곡들은 그저 졸리운 음악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피아노를 하면서 찾아 듣기도 할만큼 클래식을 자주 접하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주로 피아노곡들이었죠. 예전의 저와 같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클래식이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의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것을 느낄겁니다. 아이들이 곡을 배우는 과정에서 곡에 대한 자잘한 설명들이 어쩌면 너무 생소하여 지루함을 느낄수도 있겠지만, 사토루의 첫사랑과 그가 지나왔던 인생항로를 따라가다 보면 비록 음악학도가 아닐지라도 앞으로 내 아이가 지나야 할 인생의 항로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 하고 있는것 보다 한뼘 더 자라 있다는걸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할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h******1 2012.04.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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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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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쉼 없이 흐르는 책을 만났다. 학창시절 공부를 위해서 들었던 클래식을 빼고는 커서는 대중가요에 심취해서 클래식 음악은 별로 듣지 않았는데 '배를 타라'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좋아하던 클래식 선율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CD장 속에 묻어두고 먼지만 쌓이게 했던 첼로 걸작선을 틀어 놓고 듣고 있다.   저자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가 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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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쉼 없이 흐르는 책을 만났다. 학창시절 공부를 위해서 들었던 클래식을 빼고는 커서는 대중가요에 심취해서 클래식 음악은 별로 듣지 않았는데 '배를 타라'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좋아하던 클래식 선율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CD장 속에 묻어두고 먼지만 쌓이게 했던 첼로 걸작선을 틀어 놓고 듣고 있다.

 

저자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들어 있는 작품이라는데 기존의 성장기 소설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음악 이야기가 음악 학교 학생들을 통해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란 생각을 했다. 이미 성인으로 성장한 주인공 '쓰시마 사토루'는 자신의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자신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성숙하다고 생각한 쓰시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한차원 높은 책을 읽으며 나름 자부심에 빠져 있는 소년이였다. 어릴적부터 엄마를 제외하고는 외가쪽 사람들은 다 음악과 관련되어 있는 분위기에서 자란 쓰시마는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접하지만 피아노에 소질이 적다고 판단한 대학교수로 있는 할아버지의 권유로 첼로를 시작하게 된다. 일류 예고를 지원 했다고 떨어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음악 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그의 첼로 실력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

 

쓰시마에게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바이올린을 켜는 아름다운 소녀 미나미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팀을 이뤄하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연습하는 시간은 즐겁기만하다. 자신보다 앞선 음악 실력을 가진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잘생긴 친구 이토를 비롯 친구들도 사귀게 학교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학교 행사인 연주회에서 선생님이 낀 팀이므로 참여가 힘들었던 쓰시마 일행은  쓰시마의 할아버지를 비롯 가족들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고 쓰시마의 첼로 솜씨를 보고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두달이란 짧은 시간동안 독일로 유학이란 길을 권유 받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여자친구인 미나미는 심한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데....

 

'배를 타라 上'에서는 쓰시마가 왜 운명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책 속에서는 끊임없이 학생들이 모여 음악 연습을 하는 과정 속에 등장하는 클래식 이야기는 클래식을 썩 즐기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학생들이 뿜어내는 열정적인 모습이 저절로 연상이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별 걱정없이 자유로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쓰시마와는 달리 가족들에게 음악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미나미의 형편은 자신이 쓰시마보다 더 낫다고 느끼는 미나미에겐 아픔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미나미의 마음이 유학길에 오른 쓰시마와의 짧은 이별후 재회에서는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해졌으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는데 '배를 타라 下'에서는 본격적으로 쓰시마가 마음에 담아둔 아픔이 드러날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빨리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q******5 2012.04.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