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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우리 시대의 문제에 대해 사회정치학적 비평을 제공한다.
이 글을 읽게 된 이유는? 전미도서상 후보작이라서? 리베카 솔닛이라는 이름이 신선해서? 제목이 도전적이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아마존의 6쪽 글쓰기, 바칼로레아(1808년에 시작된 프랑스 국가시험), 인 공지능을 앞서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 150여년 만에 도입된 00선진국의 초등학교 논술과제가 떠올랐다. 아마 32단계였던 걸로 기억나는데 ......
퍼시 비시 셸리는 시인은 세상의 진정한 입법가라는 유명 한 말을 남겼죠. 그렇다면 기자는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 입니다. 기자들의 작업 덕분에 종종 사람들의 신념 체계가 바뀌고, 그리하여 입법과 제도 변화가 추진됩니다. 열정과 독립성과 배짱으로 수행되는 경우, 이 일은 강력하고 명예 롭고 긴요한 작업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훌륭한 영화 로 만든 것은 <보스턴 글로브> 탐사 보도팀이 가톨릭 사 제들이 방만하게 저질러온 성적 학대에 관한 기사를 특종 보도한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런 보도 는 분명 편안한 관계들과 믿음들을 산산조각 낼 것이기에, <보스턴 글로브>가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터뜨리기를 외 면했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301쪽
짧은 에세이지만 지금, 2019년 한국에서 반드시 해결해야하고 많은 생각을 요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서 여러 번 읽고 또 한 문장씩 되새겨 보고 있는 문장 두 개를 필사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통해 신념 체계를 바꾸고 입법과 제도 변화를 추진되게 만드는 직업이자 소명을 갖춘 사람들이었던 시절. 그 시절의 기자들을 대한민국에 소환할 필요를 크게 느낍니다. 주요 언론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를 먼저 두고, 기 자는 본래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편안한 관계와 믿음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얘기도 꺼내서 입법과 제도 변화가 추진되 도록 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뒤에 배치해봤습니 다. 원래 리베카 솔릿은 이 이야기의 순서를 반대로 배치했었 거든요. 기자는 성직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명만으로 세상을 살아 가라고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성직 자 같은 기자만의 소명을 기대합니다. 기자가 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면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당연한 사회! 그런 사회가 대한민국에 펼쳐지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독서가, 블로거가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정론에 입각해서 글을 쓰고 만일 몇 년 전에 다른 생각이었지 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면 이전에 잘못된 생각 또는 다른 생각을 가졌지만 이제는 증거와 상황을 판단한 결과 생각이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공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행동 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를 꿈꿔봅니다.
주류의 순진한 냉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변부나 좌파의 순진한 냉소주의자들도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킬 역량이 있는지를 의심한다. 이런 생각은 변화에 필요한 노 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도록 면제해주는 편리한 핑계로 기능한다. 얼마 전, 나는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서 읽은 글의 한 대목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일군의 과학 자들이 기후변화가 미칠 충격을 향후 1만 년에 걸쳐 개괄 한 글이었다. 과학자들의 그림은 무시무시하지만 절망적 이지는 않았다. "이 장기적 전망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인류문명 역사보다 더 길게 이어지며 재난을 낳을 가능 성이 있는 대규모 기후변화를 최소화할 기회의 시간은 앞 으로 몇십년뿐이다." 이 문장은 재난에 관한 문장이지만 기회에 관한 문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받은 첫 댓글 은 이랬다. "우리가 이미 저지른 일이나 하지 않은 일의 결과를 이제 와서 막을 방법은 없어요." 달리 말하면 이 런 뜻이었다. '나는 내가 건성으로 해본 생각을 전문가들 이 검토한 과학과 대비시키고 있어요, 나는 글을 꼼꼼하 게 읽지 않아요. 나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시끄럽게 티 내고 있어요.' 이런 댓글은 반사반응으로, 무척 다양한 자 극들에 적용 가능하다. 순진한 냉소주의는 다양한 사건들 을 접하고도 끝내 고집불통이다. 그중에는 긍정적인 사건 도 있고, 부정적인 사건도 있고, 두가지가 섞인 사건도 있 고, 개중 상당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들임에도 말이다. 118쪽
지금 필요한 것이 냉소적인 태도와 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 이 라는 글로 보았습니다. '나는 그 일과 관계 없어!'라는 태도와 '내가 할 일이 뭐지!' 라는 태도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알면서도 많 은 사람들 - 저를 포함해서 -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잖아!" 라고 말하고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고는 합니다. 리베 카 솔닛의 글이 그런 행동보다는 조금 더 나은 그리고 자신 과 이웃과 공동체와 모든 인류의 고향인 지구가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에 관심과 시선을 맞추면 좋겠다는 충언 으로 들렸습니다. 최소한 '니가 뭔대?'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답니다. 지금 말한 태도 2019년 11월의 한국에 매우 필요 한 태도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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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솔닛의 책들은 하나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 설명한다기보다는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특정 키워드, 예컨대 페미니즘 같은 키워드를 통해 솔닛을 접한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녀가 비록 '맨스플레인(men + explain)'이라는 단어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독자는 고명하신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로 그녀의 책을 만나는 게 아니라 메가폰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열변을 토하는 행동가와 보도에 서서 그녀를 쳐다보는 구경꾼의 관계로 만난다. 그녀의 목적은 물론 당신을 그 보도에서 걸어나와 길 한복판에 서게 만드는 것이다. 장담컨대 눈과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 주제가 정치에서 여성혐오, 기후문제에서 인권 문제로 여기저기 옮겨다니지만, 하나 하나의 꼭지에 담긴 생각들은 모두 반짝이는 보석같다.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꼬치 꼬치 캐묻기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설명하기 힘든 문제, 설명하기 난처한 문제들에 대해 '원래 그런 거야' 라고 말하고 덮어두기를 좋아한다. 마치 썩어가는 음식물들을 가려둔 것 처럼, 누군가 조금이라도 들추려 들면 정색을 하고 화를 낸다. 레베카 솔닛에게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예컨대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어져온 수천년 동안 인류 역사에는 부부싸움이 있었을 뿐 '가정 폭력'은 없었다는 사실을 돌아보자. 이게 무슨 말이냐고? 부부싸움은 서로 다른 두 남녀가 같이 살면서 겪는 일상적인 일, 그러니까 개인과 개인, 크게 봐줘야 가정의 문제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어떠한가? 그것은 가족 구성원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며, '사회적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된다. 이것이 왜 '이름들의 전쟁'인지 이제 알겠는가? 솔닛이 여기저기 분탕질을 벌이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익숙한 현상을 문제로 명명함으로써, 즉 그들을 그들의 진짜 이름으로 불러줌으로써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다. 당연한 것들은 차곡차곡 눌러 내부에 쌓아둘 수 있지만 문제들은 그럴 수 없다. 그것은 표면이 거칠고 여기저기 삐죽 삐죽 튀어나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린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을 각오를 하며 이런 일을 벌인다. 그래야 세상은 균형을 맞출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라는 한국어판 제목보다는 <Call them by their true names>라는 원제가 훨씬 마음에 든다. 전쟁을 벌이자는 게 아니다. 그들을, 그저 진짜 이름으로 한번 불러보자는 것이다. 다같이 거리로 나와서. 혹은 공원에 비잉 둘러 앉아서 말이다. 나는 이 제안이 주는 평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것은 사사건건 성대결로 번지고 있는 최근의 우악스러운 사태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건 당신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다같이 모여 그들을, 그들의 진짜 이름으로 한번 불러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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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욱더 심해져가고만 있는 것 같은 이 시기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여자들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들이다. 페미니즘을 위험한 사상으로 부르는 누군가에게는 눈 가리고 귀 막고 없는 척 치부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사소해보이는 맨스플레인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성폭행과 살인까지, 이 모든 것은 개별적이거나 예외적인 사건들이 아닌 결국 같은 범주, 전세계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여성을 억압하고 혐오하는 문화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해준다.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것과 싸우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여성을 다시 상자 속에 가두고 싶어하는 힘이 아무리 강해보이고 그 앞에서 무력함을 느낄지라도 그 힘이 우리를 다시 상자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 스토킹 살인, 여성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살해가 어느 때보다 극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것이 강간 문화와 성적 권리주의가 낳은 끔찍한 결과임을 안다. 하지만 옛날이었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부를 이름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말하면 공격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지금, 많은 여성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오히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만 희망이 존재할 수 있고, 우리는 1000마일이넘는 길에서 아주 짧은 거리만을 걸어왔음을 되새겨야 할 때다. 성 역할의 전쟁에서 다시 길을 역행하거나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황할지라도, 다시 상자 속에 들어가진 않으리라는 이 책이 준 믿음을 방패 삼아 나아가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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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분에 넘치는 자유와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왔다. 길을 걸을 때 죽음의 위험을 느껴보지 못했고 화장실 문에 구멍이 나 있는 줄도 몰랐다. 언젠가 네가 구멍이 잔뜩 나 있는 화장실 문 사진을 메신저를 통해 보내왔을 때 적잖이 당황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걸 받아 봤을 때 몰려오는 창피함과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요즘은 군대에도 진중문고가 보급되는데 기왕이면 레베카 솔닛 책은 필수로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차피 읽을 턱이 없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 굳이 답하자면, 내가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나는 피임을 아주 잘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모나 고모가 되는 걸 좋아하지만 또한 고독을 사랑한다. 불행하고 불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자랐기에, 그들의 양육 방식을 되풀이하고 싶은 생각도, 내가 이따금 나를 낳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나에게 느낄지도 모르는 인간을 탄생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지구는 제1세계 인구를 지금보다 더 많이 부양할 수 없는 형편이고 미래는 몹시 불확실하다. * 그녀가 행복 대신 얻은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우리에게는 더 나은 언어가 필요하다. 좋은 삶의 기준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혹은 민족, 명예, 의미, 깊이, 몰입, 희망을 얻는 것. * 2015년 한 스탠퍼드 대학생이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재판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하지도,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사람들과 소통하지도 못했습니다. 퇴근하면 으슥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가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왜인지 피해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분노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 자신의 비명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전세계가 그 비명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에게 편지를 썼고, 그 편지는 법정에서 낭독함으로써 법원 기록에 남겼다. 그리고 2016년 6월, 편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다. 아마도 강간과 그 여파를 피해자가 일인칭으로 기술한 기록으로는 역사상 가장 널리 읽힌 글일 것이다. 그는 빼앗겼던 목소리를 되찾았고, 그럼으로써 비인간화했던 자신을 다시 인간화했다. 그는 말로 감옥을 지어서 가해자를 가뒀고, 가해자의 무심한 악의를 기억하는 비석을 세웠으며, 가해자가 사는 내내 그 말들이 가해자를 따라다니게끔 만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힘이었다. * 남자들은 감정이입의 범위를 넓혀서 다른 젠더와 자신을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백인은 유색인종과는 달리 다른 인종에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자신만 볼 뿐 남들은 보지 않는 것이다. 특권은 종종 상상력을 제약하거나 가로막는다. * 기록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다 옮기지 못했다. 한남들 좀 읽고 좀 깨달았으면... * 형이야.. 편하게 들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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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따뜻한 시선 아름답고도 강한 마음
*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란 물론 우리가 각자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행동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 삶을 어떻게 묘사하고 자신 외에 무엇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의 한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우리가 이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우선순위와 가치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잔학함에 대한 저항은 그 잔학함을 숨기는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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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작가님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뷰입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후속작이라고 하니 이 책도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고 몇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아예 구매했어요 그냥 좀 불편하다 묘하게 불쾌하다 싶었던 내용들을 콕콕 찝어서 너무나도 재치있게 ㅋㅋㅋㅋㅋㅋ 써주셔서 민감한 내용을 다룸에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의도는 선량할지 모르나 페미니즘 대화에서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발언을 내놓는 바람에 누군가 - 내 경험으로는 보통 여자가 - 그의 생각을 바로잡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남자"들도 꼭 읽고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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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전에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같은 작가의 책이 출간되어 믿고 구입했습니다. 앞으로도 리베카 솔닛의 책은 믿고 사게 될 것 같아요.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상황들에 비판을 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얼마전 나는 무지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다.특권있는 사람 재현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 실제로 자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이 나름대로 일종의 상실이다. 페미니즘은 여자들이 과거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마침내 말을 꺼내는 것인 경우가 많다면 반페미니즘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p.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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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입니다. 맨스플레인에서 시작해 혐오살인까지 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작가는 미국인이고 책 전반적으로 미국에서의 사례만을 들지만 한국인인 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례도 떠오르는 게 많았고요. 책에서 다루는 사례들이 국경을 넘어 여성들에게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강력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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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관련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몇 년 사이에 봇물 터지듯이 정말 많은 책들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러다 내한했던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민음사에서 초청했을 때 간 적이 있는데 참 멋지시더군요. 이 책을 필두로 앞으로 여러 책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확장해서 관련 공부도 해보고 싶어요. 일단은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