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들어 온지 103년 만에 신앙으로 조금 인정한 천주교에 대해 읽으면서 신앙이란 게 먼지? 믿음이란 게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특별히 종교는 없지만 급하면 어머니보다 하나님을 먼저 입에서 나오고 교회의 삭막함보다는 절의 운치를 더 좋아한다. 절에 들어갈 때 문에 있는 그 분들은 무섭다. 교회의 빨간 커튼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무섭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석가 탄신일의 등이 너무 이쁘다. 특별히 먼지는 모르지만 종교라는 분야에서 열심히 믿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대단하기 까지 하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배교를 하면 살려 줄 것이다.” 배교라는 말은 그 종교를 안 믿는다고 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 참 믿는 분들에게는 엄두도 못 낼 말이다. 그 말에 수많은 천주학을 믿는 분들이 죽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돌아 가셨기에 참 마음이 아프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이 사건들로 우리 조상들인 천주학을 믿는 전하는 분들이 돌아가신 것이다. 이 책은 그분들의 믿음과 그분들의 삶이 들어가 있다. 사건에서 살아진 사람들 그들이 참 궁금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사회공부를 대충해서 그런지 자꾸 헷갈리는 사건들이었다. 이번에 『조선이 버린 사람들 』을 읽으면서 시대의 아픔과 사건을 조금은 알은 것 같다. 꼭 천주학을 믿어서 죽음으로 몰린 사건도 있지만 자기가 강자가 되기 위해서 죽음을 당한 분들도 있다. 당파싸움에 희생된 분들도 있다. 왜? 굳이 남을 죽여가면서 이루어야 하는지 참 가슴이 아프다. 그들을 참수한 장면들을 읽어보면 인간으로서 그리 할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되어서 같은 인간을 그렇게 죽여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그분들은 순교하는 걸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즐겁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이 희생한 것이다. 참수형에 처한다고 해야 하나? 그분들을 죽이는 방법들도 너무 잔인하다. 인간으로서 화가 막 치민다. 충천도 일대에서 특히 많은 분들이 희생한 것 같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많은 분들이 참배를 들인단다.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님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신 주문모 신부님, 특히 프랑스 외방전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다. 멀리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숨어서 교리를 전파하시는 모습들도 본인들 돈을 써가면서 했다. 여러 신부님들의 그 당시에 희생한 분들이 기록에 남아 있는데 그 기록을 참고해서 여러 신부님들이 나온다. 여자 분들도 이름 모르게 죽어간 분들이 너무 많다. 살기위해서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희생된 분들이다. 아무래도 시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건가? 이름들이 다 나온다. 너무 많으셔서 누구를 적기가 그래서 이름은 책을 보면 자세히 나올 것이다. 저자인 이수광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면서 여러 가지 기록을 참조해서 책을 출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차동엽 신부님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셨다. 이 책은 조선을 뒤흔든 천주교 사건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갖은 박해를 당하면서도, 죽음의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는데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들의 강한 정신력, 종교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눈물의 역사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들과 같이 울었고, 그들과 같이 아파했다.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해서 귓가에 그들의 통곡이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비단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직장이나 사회에서 눈총을 받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은 기대 이상으로 위로가 될 것이다. (차동엽 신부) 죽음 앞에서 어린 자식들도 생각해야 했지만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의 신념을 믿고 행동한 것이다. 무엇인가 하나를 이루기 위해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누구든지 그 이루고자하는 신념을 이룰 것이리라 생각한다. |
|
얼핏 역사소설이라고 집어든 분들도 있을터이다. 하지만 역사 팩션소설의 인기작가 이수광의 이번 작품은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 논픽션이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소현세자 독살사건>, <조선명탐정 정약용>, <이토록 아찔한 경성> 등 인기소설을 펴낸 작가인 이수광은 이번 작품에서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등을 통한 한국 천주교회사를 고찰하고 있다. 조선말기 4대박해 과정에서 수천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했고 이들중에서 분명한 기록이 남아있거나, 증언의 신빙성이 인정되는등 교회법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의 사례를 증거함과 동시에 정조시대 이후 세도정치하에서 자행된 당파싸움과 쇄국정책의 희생양인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독교 국가다. 흔히들 기독교와 개신교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는 크리스트교 즉, 예수님을 믿는 종교를 말한다. 이는 가톨릭으로 대표되는데 중세 유럽에서 부패한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단행한 이후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뿌리는 같은데 두 집안으로 분리된 셈이다. 이후 가톨릭계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잘못된 교회역사에 대해 사과하고 낮은 자세로 오늘까지 임해오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공격적인 전도방식과 독선으로 개신교가 지탄을 받고있어 대조적인 모습이다.
세계역사상 한국의 가톨릭은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전래되었다. 보통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총과 칼을 앞세운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식민지배전략의 일환으로 가톨릭이 전래된데 반해, 한국은 외세의 위협없이 서학이라는 학문연구를 통해 자생적으로 종교가 받아들여졌다. 조선 중기이후 남인들이 주축이 된 실학파들은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을 통해 발전된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와함께 천주교 서적들이 국내로 유입됐는데 이를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레 서학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원론적인 철학적 사고에서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사농공상과 같은 신분서열, 양반과 천민의 신분계급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서학과 가톨릭 교리는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벽,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등은 마태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와 가톨릭 서책을 보고 교리를 연구하다 서학을 학문에서 신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1770년 성호 이익의 제자였던 홍유한이 천주교 책을 통해 천주교의 사상에 감명을 받고 주일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을 안식일로 정해 일을 하지않고 경건하게 보냈다고 전해진다. 무려 13년동안 백산에 숨어 살면서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하니 체계적인 교리공부도 받지 않고, 신부님을 만나지도 않은채 독학으로 오늘날 신자들과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은 한국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처음에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시작됐다. 영조의 지원을 등에업고 정국을 장악한 노론세력을 견제하고자 정조는 실학을 강조하는 남인을 중용했는데, 이때문에 천주교의 교세가 커질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을 실시한 정순왕후는 다시 노론과 손을 잡았는데 노론세력은 남인을 축출하고자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신유박해, 기해박해를 거쳐 고종시절 대원군이 편 병인박해는 가장 피해가 심했는데, 당시 국제정세는 유일한 대국으로 믿고있던 청나라가 아편전쟁등에 패해 영국과 프랑스에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영불 연합군이 북경까지 침공해 청나라 황제가 피난을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러시아가 두만강을 넘어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등이 통상을 요구하며 자주 조선 연안에 침몰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대원군은 국내에 천주교 신자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전복하려 한다는 불안감을 갖고있었고, 쇄국정책과 맞물려 대대적인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다.
천주교인들은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살인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배교하지 않으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수많은 신자들이 살려준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순교를 택했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하느님에 부끄러운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믿음과 신념의 표출이었다. 보통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집안 모두가 교인들인 경우도 많았고, 또는 마을 전체가 교인인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경우는 한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 박해때는 망나니들이 목을 베는 처형방법으로 진행됐는데, 수천명의 교인들이 처형장에 나오자 나중에는 여럿을 밧줄에 묶어 수장시킨다거나,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 하는 식의 처형방법도 등장한다. 이런 끔찍한 사례들은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신부들을 통해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병인박해때는 국내에서 활동하던 아홉명의 프랑스인 신부들중 여섯명이 순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병인양요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신자이면서도 이들 순교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너무 어렵기만 하다. 과연 목숨을 내던질만큼 확고한 내세에 대한 신념이 나에게는 있을까? 변변한 교육이나, 전례도 없던 이 시기에 무엇이 이들을 깊은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주일 미사를 드리고,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했을까? 종교활동이라곤 일요일 아침 유일하게 미사 참석하는것 밖에 없으면서도 그것도 시시때때로 귀찮은 마음이 앞서는데 말이다. 천주교인들은 꼭 읽어야할 종교서이자,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선말기 시대와 정치적인 상황에 흥미를 느낄만한 책이다.
|
|
<조선이 버린 사람들>은 병인양요를 배경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겪은 순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866년을 전후로 천주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역사 지식은 교과서 중심이었고, 왜 병인양요가 일어났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고픈 열정이 일어났다. 이 책에는 수많은 순교자의 이름이 나온다. 절두산을 비롯해서, 새남터와 충남 해미의 진둠범과 자리개질은 순교자의 죽음의 터였다. 배교를 하면 살 수 있는데 배교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원했던 순수한 천주교인들의 이야기에는 눈물이 나온다. 정말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혼돈과 두려움과 경건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너무 잔혹한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 천주의 뜻을 받드는 천주교인들의 용기가 복잡한 마음을 들게 한다. 책속에는 천주교의 순교이야기가 가득하다. 신부들의 순교, 양반들의 순교, 여인들의 순교, 온 가족의 순교의 역사를 읽으면서 과연 신앙이란 것은 무엇인가 고민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 그 시대의 천주교인들이 부러웠다. 천주교의 순교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잘못된 지도층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유교와 불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살생과 학살은 지도자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폭풍이 지나간 들에도 꽃이 피고,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이 솟는다” 인생의 험한 일을 겪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리라. 순교의 제물 위해 천주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속에는 천주교 성인의 사진들과 성지순례 장소가 나온다. 한번쯤 가고픈 지역의 이름이다. 차동엽 신부님의 추천의 글처럼,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앙의 도전을 줄 것이고, 신념과 이념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에게는 용기를 주는 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더불어 소통이 막힌 시대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
|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기 곤란한 주제가 3가지가 있다면 사랑, 정치, 종교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자랑스럽게 깔끔하게 말해야할 주제도 이 3가지 인데 조심스러운 것은 특히 이 3가지는 호불호가 심하거나,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
워낙 작가 이수광씨가 픽션에 능하시다보니 이 책 역시 픽션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조금 가볍게 접근하고자 읽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예상은 빗나갔으며 머리는 복잡해졌다. 시점이 순서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을 두고도 여러 사람 입장에서, 그리고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시간순으로 보기에는 많이 어려웠다. 덕분에 중간부분에 설명들이 많은 곳은 그냥 넘어가기도 했는데..그런 점은 작가분에게도 굉장히 미안한 부분이다.
심지어 이 책의 경우, 직접 순례지를 다 방문하시고 나름의 고증을 거쳐 쓰여진 책인데... 읽는 사람이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그 역사에 대해서도 소홀히 생각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정말ㅠㅠ...지루하고 어려운 설명은 이해가 갈때까지 읽을 상황이 안되었기에..
사실 조선에는 종교가 있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래도 종교라고 말할 수 있던 불교 역시 유교라는 종교가 아닌 학문에 의해 탄압을 받았고 천주교 역시 들어올 때는 종교가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 먼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종교 초기에 알지도 못하는 하나의 민족을 위해 피를 흘렸던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후에는 이 희생으로 인하여 조선은 프랑스와 일방적인 전쟁을 겪는 아픔도 있었지만..기독교 역시 나름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한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아쉬웠던 점은 후에 잠시 나왔던 기독교 유입에 있어서이다.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는 이 책에서만 보기에는 참...이중적인 인물로 비추어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왔다고 표현한 직후, 미국 선원들의 노략질이 심해졌고 결국 모두 포로로 잡을때까지도 등장하지 않던 이 선교사는 후에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장면만 비추어진다.
어쨋든,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순진하고 구원이 목적이었던 종교가 지금에 와서 많은 문제점과 타락함을 보며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안타깝고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 계통의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종교의 참된 의미를 새기는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
|
우리나라 천주교 수난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기록이 이수광에 의해 쓰여졌다.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 서학이 들어와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박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의 역사, 배교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여 천국의 품으로 돌아간 많은 이들의 애절한 기록이 한 권의 책에 스며들어있다. [조선이 버린 사람들] 그리 병인박해 정도의 사건으로 프랑스 신부가 순교했구나 하는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이렇게 백여 년 가까이 박해가 이루어졌고, 그 방법 또한 다양하게 이루어진 것을 새롭게 알고 나니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그 당시 절박한 상황, 천주에 대한 올곧고 애절한 마음들이 읽혀지는 듯하다. 한국근대사의 격동기 세계가 요동하던 때 우리는 그 외세를 막아보려 이런 천주교 박해로 국력을 낭비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 종교가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자는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를 하고 배교하지 않고 목숨을 바친 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이 진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 현대의 종교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때가 많이 덧입혀지지 않았는지 말이다. 천주교와 동학이 요원의 들불처럼 널리 퍼져야 했던 이유, 또한 이승훈이 1784년에 귀국하여 이벽, 이가환, 정약종 등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천주교가 조선 땅에 전파되고, 고난의 시기를 어떻게 거쳐왔는지. 조선왕조의 새로운 철학의 하나로 들어온 서학, 그 학문이 움튼 시기부터 박해가 시작된 기해박해, 신유박해, 병인박해 등 많은 민초들의 박해가 진행되었던 사건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천주교를 지키고자 순교를 한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 이존창, 황사영, 강완숙, 유진길, 정하상 등 조선인들을 비롯하여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니콜라 주교 등 천주교인들의 강한 정신력, 종교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그 눈물의 역사가 이 한 권에 다 들어 있다. 처음 등장하는 김아기의 순교장면처럼 그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도 하나 같은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가슴아프다. 어느 종교든 처음 낯선 곳에 뿌리내리기까지 고통이 따르는 것은 맞다. 불교도 그렇지 않았던가. 다만 천주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가 격동의 시기였던 만큼 더 심한 박해가 이루어진 것이고 그 기록도 더 생생히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면서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
|
1866년..... 그때는 무엇이였을까... 천주교를 억압하는 시기였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많은 천주교도인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에 말에 의하면 그건은 성스러운 죽음인것이다... 그렇다면 그시기 왜 우리는 천주교를 믿었고 왜 박해했을까? 그것은 천주교는 사농공사이 따로 없다는것..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믿는 최대의 이유였던것이다 그시기 우리는 양민과 양반등으로 나뉘어져 힘든계급사회였다.. 그때 천주교는 파격적인 종교였던것이다 즉 이 이유로 인해 환대받고 박해받았던것이다 그렇다면 또 잘생각을 해보자.. 즉 저이유로 인해 많이 믿었다는것인데... 잘 생각을 해보면 저 이유만 없다면 천주교가 그렇게 부흥하지도 않았을것이고.. 그만큼 죽지도 않았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볼수도 있겠다 이 천주교가 박해를 받지 않았다면 사농공상을 없앨려는 이들이 들고 일어났을터이고 그로인해 또다른 혼란이 오지 않았을까? 단지 그런혼란을 막기 위해 그때의 조선은 박해를 한것이 아닐까? 물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생각을 한다면 나의 말도 맞을수 있다 단지 그때는 사회가 억압하는 시대였을 뿐이였다 아니 너무 약한 나라라서 저런 자유스러운 종교를 받지 못한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우리나라의 유고문화를 거스르는것이기도 하므로 박해의 또다른 이유가 될수도 있다... 단지 이들은 정말로 조선에서 버린것일까.. 아니면 자기 스스로 버려진것일까.... 똑같은 하얀색에서 혼자만 검은색이 된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쩔수 없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검은색을 없애버린것은 아닐까... 알아야 할것은 어쨋든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켰고.. 그것이 지켜지기를 바랬던 사람들이라는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소망을 위해 죽음을 택한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죽음을 택해야했을까... 죽음이 아닌 다른것으로 할수있지 않을까.. 꼭 죽어야만 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과 그시대의 사회... 과연 무엇이 맞을까? 그리고 정말로 천주교가 부흥했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
이 책은 1886년 병인양요의 바탕이 되었던 병인박해 이야기를 소재로 사실을 픽션으로 만든 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답사했고, 순간 순간 본인의 가슴이 절절하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수업에서 잠시 지나갔던 사건 병인양요...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짧은 몇줄 안되는 사건으로 교과서에는 기록되어 사실 기독교인 나도 병인양요와 병인박해 때의 실상은 잘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병인양요의 처참함을 그대로 볼 수 있어 픽션이라고 하지만 그속에 진실이 담겨있어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해로 목숨을 잃었으며 순교를 했는지 종교를 믿는다는 죄로 같은 민족을 이렇게 처참하게 죽일수 있다는게 안타까웠다. 목을 베는 교수형이 지연되어 긴 통나무에 사람을 누워놓고 위에서 내리쳐 머리통을 깨져서 죽이게 했다니 읽으면서 소름이 끼칠정도였다.
이 책은 픽션이긴 하지만 실존인물들이 등장하며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마치 실제 사건같고, 책속의 주인공들이 실존인물 같아서 읽으면서 안타깝고 무섭웠으며 가슴이 아팠다.
당시 조선은 외국의 문물은 받아들이지도 않고 청나라 외에는 그 어떤 나라와도 외교를 하지 않던 시대였다. 오로지 조선에서 태어나고 조선에 죽는것이 당연시 되었으며 나라에 신고하지 않고 외국에 나가면 형벌을 받았다고 하니 당시 조선이 얼마나 우물안에 개구리로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서 나라가 발전하고 좋은 쪽으로만 흘러간다고 절대 단정지을수 없는 일이지만 현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우리것을 지키면서 서양의 장점을 융합하여 좀더 좋은 나라로 발전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안타까움이 컸다. 그 시대 조선은 왕보다 실세가들이 나라를 잡고 흔들때였으며 본인들의 튼튼한 권력을 위하여 모든걸 배척하던 시대였다. 조금만 더 넓은 시선으로 사람을 위해 살았다면 이렇게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왕권문화였고, 유교와 불교가 국교처럼 있던 시대에서 종교의 자유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그래도 종교로 인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박해했으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것에 대해 안타까울 뿐이다.
조선이 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나름대로 순교했다. 많은 사람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그들에게는 거룩한 순교였고 그 순교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근현대사로 넘어오면서 가톨릭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너무나 현실같은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한 이 책을 읽으면서 병인양요와 병인박해에 대해 잘 몰랐던 아픈 역사를 다시 알 수 있어 고마웠다. 아픈든 행복하던 모두가 우리의 역사이기에 분명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어 참으로 고마운 책이 되었다.
|
|
몇 년 전에 양화진 절두산에 있는 ‘절두산 순교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을 베었기에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절두산 순교기념관은 병인박해 때(1866년) 많은 교우들이 순교한 절두산에 1966년 병인박해 1백주년을 기념해 건축한 곳이다. 우뚝 솟은 벼랑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기념관의 접시 모양 지붕은 옛 선비들의 갓을, 지붕 위에 세워져 있는 구멍난 수직의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사슬은 족쇄를 상징하는데, 이곳에는 순례 성당과 순교 성인 28위의 유해를 모신 지하 묘소, 그리고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이 책은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 <인수대비> <정도전> <소현세자 독살사건> 등 역사서를 집필해 온 역사 소설가 이수광이 조선을 뒤흔들었던 천주교 박해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순교자들을 통해 한국근대사가 격동하던 1866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며, 한국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1866년에 조선인들은 무엇을 했으며, 천주교가 왜 그렇게 박해를 받았으며, 천주교와 동학이 왜 널리 퍼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파헤친다.
이 책은 천주교의 신앙을 지키고자 순교한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 길위의 사제,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이존창, 황사영 등의 조선인을 비롯하여 먼 이국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리고자 찾아온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조선에 개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서구 문명국가들이 보호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3세계 국가들을 침략하여 식민지화시키던 시대적 상황과 천주교인들이 당한 박해와 종교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김아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김아기는 남편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교리를 배웠다. 하지만 남편 김진은 양화진에서 처형됐다. 김아기는 포도청의 종사관으로부터 ‘배교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배교할 수 없습니다.”하고 거절하자 모진 고초를 가했다. 김아기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천주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다가 결국 참수에 처해졌다.
“김아기는 김진의 처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의정부에서 올린보고서에 의해 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언제 세례를 받았는지, 어디 출신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김아기를 책의 서두부터 꺼낸 것은 김아기의 죽음은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죽음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지도층은 부패하고 백성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했다. 또한 경제 대부분을 사대부가 장악했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구걸을 하며 전국을 떠돌던 시기였다. 백성들은 굶어죽지 않고 고통도 없는 세상을 원했다. 천주교가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요원의 들불처럼 퍼져 1866년에 2만 명의 신도를 헤아리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들은 신앙을 위해 귀한 목숨까지 버렸는데, 오늘날의 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 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
|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수광/지식의숲 전국의 천주교 성지를 답사하고 순교자들의 고통을 체험한 후에 1866년 병인박해를 중심으로 한 천주교 박해사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달레 신부가 조선에 있던 프랑스 신부들의 편지와 자료를 수집하여 출간한 《조선 천주교회사》의 기록을 많이 참조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그 자생적 특이성을 인정받고 있다. 스스로 천주교를 들여와 발전시키는 과정의 참혹한 탄압 사례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국가 통치 근간인 성리학을 부정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패륜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세력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회상 때문이었다. 질병과 가난에 신음하고 수탈당하던 백성들에게 천주를 믿으면 모두가 형제자매가 될 수 있고 내세에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꿈같이 일이었다. 때문에 온갖 고문에도 천주교인임을 자인하며 순교의 대열에 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했던 것이다. 중국은 아편전쟁 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조선만은 명분과 매달려 성리학을 붙들고 대문을 꼭꼭 잠근 채 은둔하고 있었다. 외척 세력을 물리친 대원군이 양반세력을 누르고 민생과 국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토지 개혁과 신분제를 철폐 등의 시급한 민생개혁은, 태생적인 한계와 지지세력 부족으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원군은 오히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프랑스, 영국과 동맹을 맺고자 했던 계획까지 프랑스 신부들이 제때 만나러 오지 않으면서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1만 여명이 순교하는 병인박해로 이어진다. 만일, 제때 프랑스 주교들이 만나러 왔다면 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역사의 가정은 늘 서글프고 아쉽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집권 세력이 반대 세력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측면이 강하다. 또한, 외국의 개방 압력에 따른 집권 위기는 황사영 등이 외국의 무력에 의지하려는 무리한 시도에 의해 더 큰 탄압을 불러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1889년에 프랑스와 수교를 맺으면서 103년 만에 천주교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때는 2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난 후였다.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천주를 믿으며 올곧게 살다가 천주의 품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백성들의 소박한 꿈은 《척사윤음》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반박한 정하상의 《상재상서》에 잘 나타나 있다. 대들보 같은 나무토막을 떨어뜨려 두개골이 부서지게 하여 죽이거나 큰 구덩이를 파고 교인들을 던져 넣어 생매장했던 순교의 현장들을 돌아볼 때는 종교적인 신념과 무관하게 그 누구인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러운 일부 교회와 종교인들을 보면서 저자는 묻는다. 순교자들이 모진 고문 속에서도 의연하게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것은, 조선은 그들을 버렸을지라도 천주는 영원히 안식케 하리라는 굳은 신념 때문이다. “네가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느냐?” “이 세상에서는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
|
"조선이 버린 사람들 을 읽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