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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기 전에 시진님의 작품으로는 '마니'와 '베이지톤 삼색체크'라는 단편집을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단편집은 괜찮았지만 솔직히 마니는 그렇게 큰 재미를 못 느꼈기 때문에 쿨핫도 어떤 내용인지 마음에 들면 읽고 아니면 만다는 생각으로 1권만 대여점에서 빌려 읽은 기억이 난다. 쿨핫을 처음대한 나의 첫번째 반응은 '역시 별로 재미없다' 였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시진님의 '폐쇄자'라는 작품을 봤다.비록 두권이었지만 내가 느낀 감동이나 재미는 20권짜리 만화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진님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요령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시진샘의 작품은 천천히 여유롭게 내용을 곱씹으면서 읽어야 한다는걸 알았다. 쿨핫도 전에 잠깐 읽었을때 비록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웬지 그렇게 쉽게 재밌다 그렇지 않다라고 판단하기에는 좀 아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에 5권까지 모두 구입하게 됐다. 그리고 여유롭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에 읽었을 때랑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정말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었을때는 내가 대체 뭘 읽었는지 이상하게까지 생각이 들 정도로 비록 유쾌한 웃음이나 아름다운 사랑이나 이런 내용은 전혀 없지만 시진님만이 그려낼 수 있는 재미랄까? 한컷 한컷 집중해서 읽으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잔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쿨핫은 스토리 중심이 아니라 캐릭터 중심으로 엮어진 만화이다. 등장인물들이 돌아가면서 하나의 트랙(track)의 시점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트랙에 따라서 앞에 나왔던 얘기가 다시 나오기도 하지만 똑같은 시간과 상황에서도 그 시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한 트랙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면 그때 왜 그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된다. 뒷부분을 읽고 있다가도 앞부분의 같은 상황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밌다.
2권의 트랙의 주인공은 동경이다. 동경이는 외동딸에 예쁜 얼굴 유명한 아버지, 겉으로 보기엔 남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만큼 완벽한 조건을 갖춘 아이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더 나아가 남성에 대한 증오)와 외고집으로 상당히 외로운(남들이 생각하기에) 아이다. 하지만 본인은 전혀 외롭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제발 남들이 날 좀 가만히 놔뒀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경이다. 자신에 대한 루다의 관심도 처음에는 전혀 달갑게 여기지 않지만 루다의 진실된 마음을 조금씩 받아들여 간다.
동경이처럼 자신의 주변에 벽을 쌓고 함부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모두 각자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그런 사람들이 동경이와 같은 입장이 되서 동경의 변해가는 모습들을 지켜봤으면 한다. [인상깊은구절] 동경이는 어떤 면에서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하고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놀라운 자기 보존 능력과 결벽증에 가까운 고지식함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런 면을 동경하게 된다.(그래서 작가가 동경이라고 이름지었나?) '남성적'인 것들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가 동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약한 것, 슬픈 것, 짓밟힌 것에 대한 사랑... 이 또한 동경이의 약점이기에, 그런 보통과 틀린 강한 면이 더 빛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