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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길 카미노데산티아고,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에서 출발해 큰 도시와 마을, 탁 트인 전원 지대를 지나 마냥 걷는 길이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750킬로미터의 카미노데의 끝은 산타아고데콤포스텔라 시 오브라도이로광장의 산티아고대성당이다. '카미노 루트는 노란 화살표나 가리비 껍데기로 표시되며, 역사 명소 안내판도 마련되었다. 순례자는 순례자 여권이라 불리는 증서 credential를 들고 다니며 매일 도장을 받는다. 산티아고대성당 사무소에서는 산티아고 순례를 완수했음을 증명하는 콤포스텔라 Compostela 증서를 발급한다. (p 25)' 산티아고, 즉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유해가 산타아고데콤포스텔라가 있는 언덕으로 옮겨졌고,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된다. 1000년 순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16세기에 순례가 위축됐고, 19세기에도 순례자 수가 크게 줄어 고비를 맞았다. 하지만 오늘날 카미노 순례는 종교 여행을 넘어 삶의 내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여행으로 카미노는 부활했다.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는 순례길 카미노데산티아고에 관한 민족지다. 조사의 시작은 순례였다. 저자인 낸시 루이즈 프레이는 9주간의 첫 번째 순례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카미노를 걸었고, 순례자 숙소 네 곳에서 13개월간 일하며 순례를 경험하며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사람들은 왜 순례를 떠나며, 어떤 목표와 동기를 가지고 카미노로 오는가? 순례 중에 맞닥뜨리는 기쁨과 시련, 고민은 무엇이고, 순례 경험은 집으로 돌아간 뒤 그 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p. 6)' 이 책은 여느 순례 기록과 다르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물리적 여행의 종결에서 기록을 멈추지 않고 순례자의 귀향 이후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순례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경험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 조사한다. '사람은 언제, 무엇으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는가?'라는 인류의 오래된 물음에 답을 찾는 책이다. 출발했던 집으로 돌아온 뒤 카미노의 경험을 어떻게 작동할까? '순례는 여행 결심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산티아고 도착과 더불어 종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p 25)' 여행의 목표가 목적지에 도착이라면 순례의 목적은 오브라도이로광장의 산티아고대성당, 성지에 도착이 아니다. 길을 걷는 과정이 목적지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되기도 한다. 순례 후 일상 복귀의 어려움도 느낀다. 관점과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어떤 힘을 갖고 있는데, 그 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한 데서 비롯된다. 순례에서 발견한 것들을 일상에 적용하는 과정이 복잡하다. 일상의 리듬에 다시 익숙해지기도 만만찮다. 카미노를 걸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일상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카미노의 가치를 깨닫는다. 기억 속에 두 가지 카미노가 존재한다. 이웃과 나누는 과정에서 재해석하는 카미노, 또 하나는 본인 만의 기억 속 카미노다. 이 기억은 카미노를 재방문 할 때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카미노 순례는 종교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종교로부터 멀어지게도 한다. 카미노는 잠재해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선물을 주기도 한다. 나도 산티아고 순례를 결심하곤 했다. 왜 카미노데산티아고 찾을 결심을 했을까? 곰곰이 그때를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변화를 찾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카미노를 걷는 것만으로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미노가 순레자에게 열어주는 새로운 문을 자신의 힘으로 통과해야만 한다... '한 영국 순례자는 순례가 "정신의 상태, 삶의 방식, 마음의 형편 a state of mind, a way of life, a condition of the heart"이라고 말했다. 순례가 생각과 해석, 행동, 느낌과 감정의 집합체라는 이야기다. 순례는 순례자의 개인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강도로, 여러 층위에서 꾸준하게 영향을 미친다. 기억은 현재의 감정과 사고, 행위에 방향을 부여하며 그것의 표현에 관여한다. (p. 339 순례의 정신을 간직하기)' 뚜렷한 의미를 단박에 찾기 힘들어 참 어려운 문장이지만 곱씹어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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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tv N에서 방영한 '스페인 하숙'을 보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땐, 삶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750km나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일은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해줄 것 같았다. 이건 애써 꾸며내 보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더 정확하게는 ‘몹시 이끌림!’의 느낌이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바로 여기구나.’라는 느낌말이다. 아직 경제적 여건 등으로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2년 안에 가고 싶다. 씁쓸하게도 이 바람은 2년 전과 같다. 먼저, 이 책은 내가 두고두고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이 책은 나 같이 산티아고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순례길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미 다녀온 귀향자들에겐 자신이 지나던 순례길에서 느꼈던 감흥을 다시금 느끼게 할 것이다. 또 귀향자의 귀향 이후 느꼈던 실망과 어려움, 기쁨과 변화 등의 다양한 감흥과 변화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순례자 대부분 순례길 이후의 삶에 변화를 기대하기에, 이 부분이 이 책의 ‘독보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순례길이 어떤 곳인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 야고보의 무덤으로 가는 길로 그 길이는 750km이다. 종교적, 역사적 설명은 너무 복잡하기에 생략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인만의 것이 아니다. “중세에는 가벼운 죄나 큰 범죄를 속죄하려고 순례를 떠났다. 법적 처벌도 순례로 대신할 수 있었다. 어떤 순례자는 호기심으로, 엄격한 사회규범에서 벗어나고자 모험을 떠났다. -p.35”고 한다. 이처럼 과거에는 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꽤 많은 ‘비종교인’들이 찾는다. ‘비종교인’의 경우에도 산티아고로 떠날 때 저마다 개인적인 목표와 동기들을 가지고 떠나는데, 그 이유들 중 몇 가지는 '나를 찾기 위해서',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일상의 탈출’, ‘관광’, ‘개인적 시험의 장’, ‘사회적 친목’ 등과 같다. 관련 다큐멘터리들을 봤을 때 ‘왜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접했었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와 순례자들이 순례 여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과 고민, 순례 이후 순례가 삶에 끼친 영향까지 더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보다 구체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저자의 직업이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러 번 순례하고,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은 순례길 위에서 자원봉사자로 민족지적 조사를 한 ‘인류학자’이다. 그래서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 넓고 깊으며, 다채롭기까지 하며, 신성한 느낌마저 든다. 다른 산티아고 관련 책을 읽지 않아서 잘은 모른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귀향 후의 삶을 추적하고 조사한 책이 또 있을까..? 감히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삶에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면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가벼운 여행 에세이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은 아니다. 모든 순례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찾진 않을 것이다. 독자 또한 순례자의 마음 또는 정신과 교감하고, 사유하며, 마음으로 소화하면서 읽었을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삶의 변화가 절실한 사람일수록 이 책과 주파수가 맞아 울림이 클 것이다. 지금 답답한 상황에 있다면, 이들과 함께 걸어보시길 바란다. 다소 딱딱하다 여겨질 수도 있다. 다채로운 만큼 학문적인 색도 함께 띠기 때문이다. 거기다 책 두께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랑하게 읽히는 부분이 많고, 시공을 관통하는 듯한 감동으로 목메는 지점도 꽤 많았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거나 중요한 시점에 있다면 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관심이 큰 사람이라면, 책의 두께는 장점이 되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보서가 될 거라 생각된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 싶은 동기와 목적은 뭘까? 나는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 어디쯤의 동기와 목적을 가진 것 같다. 예를 들면, 정처 없이 걸으면서 느끼게 될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나의 바닥을 확인해 보고 싶은 거랄까…. 물론, 낯선 땅에서 혼자 걸을 것을 상상해 보면 두렵다. 1장 1단이라고 하지 않나.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필히 나쁜 법이다. 고행의 길을 누군가와 매일같이 맞춰가며 함께 걷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750km의 순례길 위는 우리의 인생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끌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제목을 보고 마음이 끌렸다면 당신도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 위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순례길을 걷고 있는 미래의 당신이, 현재의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산티아고는 끌림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여담으로, 순례를 마친 귀향자들과는 편지로 소통했다고 하는 부분이 나름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해당 연구 시점이 90년 중반에 이뤄졌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 p.20 산티아고 순례는 죄와 용서, 구원이라는 가톨릭 교리에 뿌리를 두며, 이런 요소는 지금도 변용된 채 유지된다. 그러나 카미노는 초월적 영성, 관광, 육체적 모험, 과거에 대한 향수, 애도의 장소, 비교적 입사 와도 연관된 곳이다. 무엇보다 자연과 합일, 휴가, 일상의 탈출, 자아와 인류를 찾아가는 영성의 길, 사회적 친목, 개인적 시험의 장이다. p.188 어떤 순례자는 들개뿐 아니라 신기하게도 ‘개 순례자 dog pilgrim’에 관해 말한다. 그들은 두려움과 놀라움, 신비, 애정을 표현한다. 개와 걷는 순례자와 대화하며 놀란 점은, 그 개들이 애완견이 아니라 길 위 어느 지점에서 그들을 따라왔다는 것이다. 때로 개들은 살던 곳을 떠나 수백 킬로미터 이상 따라온다. 가끔 울퉁 불퉁한 돌길을 걷다 발에 상처가 난 채, 발에 붕대로 하고 순례자 숙소로 들어온다. ‘주인’순례자는 그런 고통에도 개들이 계속 따라오는 데 놀란다. 버려졌거나, 굶어 죽어가거나, 외로웠을지 모를 그 개들은 항상 유순하고 대개 나이가 많으며, 인간 동료에게 극도로 충성스럽다. p.189 한 포르투갈 남성은 1995년 첫 순례를 할 때 로그로뇨 외곽에서 크고 흰 암캐를 만나 음식을 주었다. …. 그러나 개는 날마다 몸을 일으켜 그와 동료들을 따라왔다. 그가 보기에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 녀석도 여행이 끝났음을 아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방문한 일행은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그 개는 공원에 누웠다가 숨을 거뒀다. …. 어떤 이들은 개에게 산티아고에 도착하지 못한 옛 순례자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를 통해 #황소걸음 출판사에서 협찬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