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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제목만 보고 거부감이 들었었다. 해부와 의학서적이 주는 무거움이었다. 첫 서문에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되고 저자의 약력을 보고 오히려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제목만봐서는 저자가 의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였는데 저자 빌 헤이스는 의학의 의자도 모르는 그저 작가일 뿐이었다. 전업 작가이자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빌 헤이스는 어떻게 전혀 상관없는 『해부학자』를 쓰게 되었을까? 저술로는 『불면증과의 동침 :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Sleep Demons: An Imsomniac's Memoir)』(2001년), 피를 주제로 한 『5리터 :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Five Quarts: A Personal and Natural History of Blood)』(2005년), 19세기의 해부학자이자 현대 해부학의 기초를 닦은 헨리 그레이의 평전이자 해부학의 역사를 추적한 과학 논픽션 『해부학자 : 진짜 그레이 아나토미 이야기((伊)The Anatomist: A True Story of Gray's Anatomy(伊))』(2007년)등이 있다. ![]()
저자 빌 헤이스는 어느 날 서점에서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를 구입하고 헨리 그레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한 권씩은 갖고 있어야 할" 책이며 , 집필 시 참고용으로, 인체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종종 들추어 보았던 책이었던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을 보다가 어느 날 머리를 스친, "도대체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바로 <해부학자>의 출발점이 되었다.그러나 헨리 그레이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해부학자로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집필의도를 더욱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은 의학 학계와 교육계에서 탁월한 저서라는 호평을 받았고 중쇄를 출간 직후 바로 하고, 미국판이 이듬해인 1859년에 출간되는 등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연구와 출판 모두에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경력을 탄탄하게 구축해 가던 이 젊은 해부학자는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간병하 다 본인도 천연두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의학자로서, 해부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저술가로서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헨리 그레이였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현재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존재는 몇장의 흐릿한 사진과, 그가 세인트 조지 병원 해부학 박물관 학예관 시절 만든 몇 개의 해부학 표본, 그리고 그의 사망 진단서와 묘비만이 남아 있다. 일기나 그가 동료들과 주고받은 서한은 물론이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준비하고 있던 『그레이 해부학』 개정판의 원고와 『그레이 해부학』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삽화들의 목판 원고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 저자는 프롤로그편에『그레이 해부학』을 구입한 이유는 그림때문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삽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말하는데 삽화가의 이름은 헨리 그레이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로부터 미술 재능을, 어머니로부터 화가 '반 다이크'의 이름을 물려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 헨리 밴다이크 카터(Henry Vandyke Carter) 는 헨리 그레이의 후배로서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의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학업의 시기인 1852년부터 1856년까지 헨리 그레이와의 공동 작업을 병행하며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리게 된다. 1845년 5월 22일에 시작되는 그야말로 카터의 깨알 같은 일기, 그리고 누이인 릴리와 주고받은 편지 등 '개인 문서'였다. 런던에 있는 웰컴 도서관이 카터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저자 빌 헤이스는, 마이크로필름으로 된 자료를 전해 받는다. 카터가 깨알같이 써놓은 자기만의 암호로 적어 놓은 일기를 마이크로필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가며, 『그레이 해부학』의 탄생 비화를 추적하는 동시에, 저자는 해부학 실습 과정을 청강해 실제로 인체 해부를 학습한다. 1년 가까이 해부학 실습을 하며 실제로 인체의 이곳저곳을 직접 해부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자 그는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가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를 무려 150년 전에 죽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해부학을 개괄하고 있다. 해부 절차며, 해부학적 구조는 물론이고, 해부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해부학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해부학이라는 학문에 쉬운 접근까지 용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처음 집필목적으로 삼았던 헨리 그레이의 생애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헨리 벤타이크 카터의 일기를 통하여 헨리의 이야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으며, 이 책의 가치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처음 저자가 시체를 보고 거부감과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인체를 해부하면서 감정의 변화는 내가 이 책을 보고 느끼는 변화와 똑같았다. 해부학에 대한 첫 거부감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책의 매력에 빠져 읽은 것 같다. 시체를 처음 본 순간 혐오스러움에서 빠져있다가 인체를 해부하게 되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되는 변화처럼 말이다. 카터가 “나는 단순히 시체만이 아니라 죽음에도 매료되어 있다. ”라고 말하듯이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우리는 육안 해부학을 통해 생명을, 인간의 생명을 배운다.” 로 끝맺듯이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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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는 저자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 과거의 해부학자와 삽화가의 전기로는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아니었는데, 여기에 저자의 6개월간의 실제 해부실습이 더해지면서, 이 책은 생명력을 얻은 것 같다. 한국에는 언제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의과대학생의 고유 영역같이 취급되고 있다. 이전에 중, 고등학교에서 한, 두 번쯤 개구리 등의 해부를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생물학과 등에서는 닭 등의 동물해부도 경험하지만, 해부라는 것이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특히 인간의 해부는 갈갈이 짖기고, 발기어 나간 육체,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피와 더러 나는 혈관, 클로르포름의 지독한 냄새 등등 무엇보다 죽음을 떠올릴 수 있기에 우리가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숨이 빠져나간 신체를 통해서 배우려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재료가 되는 인간의 시신 사이에 어떤 배움이 있을까? 이런 해부, 특히 해부학에서 명작이라고 꼽히며, 아직도 팔리고 있는 책, 그레이 해부학, “도대체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서양의학을 상징하는 해부, 과거 동양에서도 해부나 외과적 처치가 있었겠지만, 유달리 서양의학과 연관되는 것은 사물을 보는 다른 방식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서양에서도 생각보다 깊지 않은 해부의 역사, 중세시대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금지되었고, 1240년 혁신적인 변화로 시작되었다. 이후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왔고, 현대에서는 더 새롭게 밝히거나, 나아갈 바(?)가 없어서인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범죄나 수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나오는 시체실과 사인을 부검하기 위한 해부, 대개는 전문가들이라서 그런지 너무 쉽게 해부된다. 하지만, 학생들이나 우리가 해부칼을 잡는 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 사회에서 호흡하던 사람들, 하지만 지금은 시체 흔히 시체를 볼 때, 특히 시체의 손이나 얼굴을 볼 때 ‘영향’을 가장 크게 받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해부라는 피상적 개념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의 인기(?)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이 제목을 들어봤을 책 “Gray’s Anatomy”, 이 그레이 해부학을 쓴 헨리 그레이(Henry Gray)와 삽화가 H. V. 카터와 그리고 저자가 엮어가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과거의 카터와 그레이의 지식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더불어 저자의 해부학 실습에서의 노력 또한 빛나는 것 같다. 세 주인공 중, 헨리 그레이의 놀라운 성공, 카터와의 협업을 하지만, 카터는 성공을 아직 이루지 못한 고뇌와 고민이 가득한 젊은이의 모습이 그의 일기와 반성록에서 잘 나타난다. 종교(비국교도로의 고민와 고뇌)와 여성에 대한 사랑과 열망 등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민들. 저자의 계속되는 조사 속에 밝혀지는 이야기들. 주로 한마디로 주인공은 카터였다. 약학대학 학생들의 실습, “상상의 알약이 내 가상의 배 안으로 툭 떨어지는 순간”, 어떻게 약이 인간에게 들어가고 작동하는 가를 알기 위한 실습과 미술학도들이 근육과 인체를 알기 위한 실습과 물리치료를 위한 해부 실습, 많은 이들이 배움을 위해 해부를 하는 모습 부러운 교육의 현장이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이런 교육의 기회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배운다면 더 나은 기억과 배움일 될 것 같다. 과거, 비인간적인 행위로 여기던 일을 인간적으로 만들기, 해부학이 살아있는 인체에 관한 과학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으로 서양에서는 해부가 빠르게 발전해 나가고, 더불어 의학도 진보해나간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막상 해보니 해부가 재미있더라는 것과 심지어 ‘상당히’마음에 들더라는 것을 보면 피상적인 두려움보다는 닥치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것 같다. 또한 의사들의 교육에서 주어진 임무를 잘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배움이 있는 것 같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컴퓨터 동영상이나 그림으로 펼쳐지는 해부의 세계, 하지만 해보지 않고는 인체에 관한 통합적 시각을 가질 수 없어 보인다. 인간을 해부학적으로 관찰하여, 가능한 치료시나리오를 떠올리는 능력을 육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을 거둔 젊은이는 아쉽게 수명이 짧고, 당시에는 뒤쳐진 카터이지만, 불륜과 다양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새로운 분야에서 카터 균종 Carter’s mycetoma의 발견, 나병과 공중보건연구를 통한 전염병 전문가로써 거듭 난 카터는 어쩌면 대기만성형이라고 여기고 싶다. 사람에게 많은 걱정 “끝없이 일에 전념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이다.”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해부학을 한마디로 한다면 인간의 기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찾아 본 책과 편지 등 다양한 문서들, 이런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시스템과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이들이 지탱해가는 사화가 부럽다. 과연 우리에게 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저자보다는 몇 배나 더 많은 노력이 드는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시체를 이리저리 자르고 헤치면서, 죽음에 관한 자신의 가장 내밀한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말처럼 이 책의 완성은 저자의 연인의 죽음과 함께 마무리된다. TV드라마 덕분으로 해부라는 것이 이전에 비해 가까워진 느낌이지만, “시체를 직접 해부해보고 나서야 인체에 관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멀리 있기를 바란다. 저자의 해부 실습을 묘사한 부분들에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고, 우리의 육체는 이런 것이라고. 우리의 몸을 자각하는 것이 영적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저자의 말이 깊게 와 닿는다. 항상 우리를 떠나지 않는 인간의 고뇌로, 우리와 함께 한다. 타인의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문득 죽음이란 것이 그만의 현실이 아닌 나의 미래라는 자각이 온다. *해부의 다양한 면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저자의 이야기가 책를 더 사실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 아쉬움 그림(삽화)가 좀 더 크고 영명을 알아 보게 만들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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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을 너무 작은 규모로만 분석 한다” 『해부학자』라는 이 책을 처음 받아든 순간 표지에 있는 사진에 눈이 먼저 갔다. 폐에 관한 해부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나서 그건 사진이 아니라 『그레이 해부학』에 수록된 삽화임을 알았다. 비의학도인 해부학과 상관없는 내가 보기에도 그 삽화는 사진보다도 더 섬세한 묘사와 2차원적인 그림이지만 음영을 통한 입체감이 느껴졌고, 동맥과 정맥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채색이 되어있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는 삽화였다. 이러한 삽화는 과연 누가 그린 걸까? 하는 의문을 이 책의 글쓴이 “빌 헤이즈”도 가졌던 모양이다. 이러한 해부학 관련 저서 중 출간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되고 있는 책이 『그레이 해부학』이다. 의학 관련 집필을 주로 하던 글쓴이도 틈틈이 자신이 참고로 하던 『그레이 해부학』을 보면서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글쓴이는 『그레이 해부학』의 저자 헨리 그레이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해부학책의 저자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그레이 해부학』에 실린 400여점에 달하는 삽화는 또 다른 헨리인 헨리 밴다이크 카더의 작품(줄여서 H.V.카터)의 작품임을 알아낸다. 그리고 헨리 그레이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발견된 H.V.카터의 일기를 발견하고 그의 일기를 통해 두 헨리의 삶의 행적을 추적하게 된다. 《헨리 그레이의 사진 》 『그레이 해부학』의 원제인 《그레이 인체 해부학》(Henry Gray's Anatomy of the Human Body)은 헨리 그레이가 집필한 인체 해부학 교과서이다. 초판의 제목은 《해부도와 상세한 설명이 달린 해부학》(Anatomy: Descriptive and Surgical)이었지만, 줄여서 『그레이 해부학』이라 불렀고 후기 판본에서 정식 명칭이 되었다. 『그레이 해부학』은 해부학에 막대한 영향을 준 고전으로, 초판이 발행된 1858년 이래 오늘날까지 계속하여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다. 2008년 초판 발행 150주년 기념을 겸한 제40판이 발행되었다. 영국의 해부학자 헨리 그레이는 1827년에 태어났다. 내분비기관의 발생과 지라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1853년 세인트 조지 병원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수가 되었다. 1855년 그레이는 동료였던 헨리 밴다이크 카터에게 값싸고 실용적인 해부학 교과서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다. 1832년 해부법이 발효된 이후 의과대학은 보다 자유롭게 인체 해부를 할 수 있었고, 두 의사는 이를 바탕으로 검시소와 영안소에서 많은 해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레이와 카터는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뒤 18개월에 걸쳐 책을 만들 기초 자료를 만들었고, 1858년 런던의 출판인 J.W. 파커에 의해 초판이 발행되었다. 그레이는 초판을 스승이었던 벤자민 콜린 브로디 준남작에게 헌정하였다. 초판이 발행된 이듬해인 1859년에는 약간의 개정을 거친 미국판이 발행되었다. 그레이는 1860년 개정 증보판을 출간할 예정이었지만,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였다. 이 때문에 제2판은 파커에 의해 발행되었다. 파커는 제3판 까지 출간한 뒤 판권을 롱맨으로 넘겼고, 이후 다시 처칠 리빙스턴 출판사가 판권을 이어받았다.
《헨리 벤다이크 카터의 사진》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 담당자였던 H.V.카터는 해부학에 대한 열정에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바탕으로『그레이 해부학』의 삽화 400여점을 그렸다. 그는 『그레이 해부학』의 출판이 끝난 다음 인도로 건너가 군의관으로 근무하며 인도의 그랜트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인도의 고질적인 풍토병인 “마두라 발 질환”의 원인균을 발견하여 그 균에 그의 이름을 따서 “카터 균종(Carter’s mycetoma)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또한 나병연구에 주력하며 나병연구의 권위자인 게르하르 한센의 이론을 뒷받침한 나병에 관한 단행본(1874)을 출간한다. 이렇듯 의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세운 H.V.카터는 1897년 5월 4일 66세의 생일을 보름 놔두고 사망한다. 『그레이 해부학』에 대한 글쓴이의 궁금증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H.V.카터의 일기를 통해 의학과 자신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고민하고 기도하던 H.V.카터의 삶에 있어 성취를 향한 한 인간으로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레이 해부학』의 초판본을 비롯한 거의 모든 자료가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은 헨리 그레이와는 별도로 H.V. 카터의 일기를 바탕으로 카터를 중심으로 일기를 통한 그의 행적을 추적해가면 애기를 풀어나간다. 또한 이 책을 쓰기위해 실제로 해부학 수업에 참가하여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해부학에 관계된 애기를 풀어 나간다. 글쓴이는 의대 실습에 참여해 해부를 직접 배우는 이야기를 H.V.카터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다. 방금 도려낸 심장을 만져보고, 갈비뼈를 들어내고, 피부 가죽을 벗겨내는 등의 해부 실습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렇게 현재에서 과거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시체와 해부학자라는 극단적인 대비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 글쓴이가 꼼꼼한 고고학자처럼 도서관의 오래된 자료만을 통해 두 헨리의 삶을 재구성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살았던 집과 그들이 의학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해부했던 병원들을 직접 찾아가보며 두 헨리의 삶의 여정을 추적하고 있다. 글쓴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레이 해부학』의 저자인 두 헨리의 삶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지만 그게 이 책의 핵심은 아니다. 『해부학자』는 해묵은 옛날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 두 사람의 여정을 기록하면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살아있는 독자들에게 계속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불어 글쓴이는 해부의 역사로 독자를 이끈다. 1240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의사의 실력 향상을 위해 5년에 한 번씩 인체를 해부해도 된다는 훈령을 발표함으로써 해부 금지의 암흑시대가 끝났다. 14세기 초 해부에 사용된 시체는 거의 처형된 범죄자였다. 당시는 방부처리 기술이 없어 추운 날 나흘 정도 만에 해부를 끝내야 했고, 먼저 부패하는 내장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 책에는 수없이 많은 해부에 대한 전문용어가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연결해 풀어내는 글쓴이의 방식은 자료의 부족이나, 전문용어로 인한 불편함을 뒤로하고 마치 매주 이어지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다음 편에는 두 헨리의 어떤 행적이 그의 글속에 그려질까 기대감까지도 갖게 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 내내 난 한 가지 의문에 휩싸였다. 글쓴이가 단순히 유명한 해부학책의 저자인 두 의학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의의를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 책 『해부학자』에는 두 헨리와 관계된 모든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 본인의 죽음부터 그들과 관계된 형제, 자매, 그리고 부모. 그들에게 지식을 전수했던 그들의 스승과 친했던 친구들의 죽음까지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는 『해부학자』를 저술하기 위해 그 긴 여정을 같이했던 글쓴이의 친구 스티브의 죽음까지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사인과 더불어서 묘사하고 있는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해부학실에서 일어나는 죽은 자를 통한 산 자의 조우를 통해, 그리고 기록이 없어서 그 행적을 알 수 없는 헨리 그레이와 일기를 통해 그 행적을 추적했던 H.V. 카터와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글쓴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애기는 무엇일까? 또한 '기록하는 자'와 '기록되는 자'의 대비를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애기는 무엇일까 글쓴이는 나의 이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에필로그를 통해 그 답을 전해주고 있다. “나는 정직해야 한다. 나는 단순히 시체만이 아니라 죽음에도 매료되어 있다. 이미 꺼져버린,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최후에 대해. 그 무작위성에 대해. 그 가까움에 대해.(중략)하지만 이미 죽은 시체로부터는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없다. 시체를 직접 해부해 보고 나서야 인체에 관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이란, 또는 생명을 규정하는 상징이란 움직임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눈을 깜빡이거나,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팔다리를 휘두르고 숨을 헐떡이며, 뭔가를 향해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가는 것, 어떤 목표를 향해, 어떤 결승전을 향해, 그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H.V. 카터의 일기장에 적혀있던 “나는 인생을 너무 작은 규모로만 분석 한다”는 자신에 대한 혹평은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작은 것에 집중하고,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긴 여정을 성취로 이끄는 원동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H.V. 카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쓴이가 해부학 실습을 통해, 두 헨리의 여정을 통해 애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인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기관과 골격과 근육들도 나눠놓고 보면 조그마한 것이지만, 그 전체가 모여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한 생명체를 구성한다는 것을. 나도 다시 중단된 일기를 써야 할 모양이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도 떠난 뒤,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세상에 존재했었음을 스스로 증명해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살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삶을 고민하고 힘들어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리도 치열하게 살았는지, 마치 H.V. 카터가 그랬던 것처럼 기록으로 남겨둬야 되는 것은 아닌지. 삶을 기록하려는 집착은 아직 죽음을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삶의 여정에 대한 미련은 아닐까. 자신의 여정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향한 마지막 미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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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라는 이 책은 작가인 빌 헤이스가『그레이 해부학』이라는 책을 구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수백 장에 달하는 인체해부 그림과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책의 가격에 선 듯 구입해놓고 방치한『그레이 해부학』을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보게 됐을 때 빌 헤이스는 이 책의 저자인 “헨리 그레이”의 삶이 궁금해졌다. 21세의 나이에 의학박사 자격을 얻었고 25세에 아이작 뉴턴과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과 나란히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 된 그가 34살에 천연두로 갑자기 사망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떠한 개인적인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은 빌 헤이스는 해부학자 헨리 그레이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지난 150년 동안 출간되자마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판을 거듭해 출판되고 있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의외로 별다른 정보가 없다는 거에 호기심을 느낀 저자는 “헨리 그레이” 전기를 자신이 쓸 수 있을 거라는 운명의 기운을 느낀다. 빌 헤이스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약학대학 해부학 강의에 연속으로 참석하면서 인체해부에 관해서는 의대생 수준의 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처음에는 청강생으로 참여하던 수업이 나중에는 의대생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줄 아는 조교나 강사의 역할까지 거뜬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해부학 수업에 집중했는데 이 모든 일은 “헨리 그레이”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의 결과였다. 헨리 그레이에 관한 자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반해『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린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일기를 찾게 된 것은 빌 헤이스의 커다란 성과였다. 카터는 영국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던 의학도에 불과했지만 인도로 건너간 후에는 군대의 의무관에서 학예관을 거쳐 의학교수가 된 인도의 “헨리 그레이” 였다. 인도로 떠나기 전 그가 존경했던 헨리 그레이의 책에 삽화를 그리던 카터는 습관대로 간결한 일기를 남겼다. 그의 일기 중에 “해부하는 게 좋다. 지침서가 없으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라는 대목을 읽으며 빌 헤이스는 이 고백이야말로 앞으로 2세기 동안 해부학의 지침서역할을 하게 될 이 책『그레이 해부학』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레이 해부학』은 출간되자마자 찬탄이 담긴 서평과 더불어 해부학의 새로운 교과서로 상찬을 받는다. 빌 헤이스는 카터의 일기를 통해『그레이 해부학』이라는 책이 나오기까지의 의문점들을 풀어나갈 수 있었고, 헨리 그레이의 자료가 왜 그렇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추측을 할 수도 있게 됐다. 천연두로 사망한 헨리 그레이의 집을 방문한 관리들이 공기로 전염되는 병균을 의식해서 헨리 그레이의 모든 물품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그에 관한 자료가 일시에 사라진 것으로 추측하는데 상당히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천연두는 심각한 전염병으로 인식이 되어 관리들이 골목을 다니며 천연두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뒤처리까지 명령했다고 한다. 이 책을 한 번 읽는다고 해서 인체해부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도 해부학을 수강한 학생들이 그 내용을 활용하지 않으면 90%까지 잊어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해부수업의 진지하고도 경건한 모습을 통해 우리 몸의 숨겨진 비밀들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쓰여 진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의학도서로 분류되어서 지루하고 딱딱할 것 같았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서 많은 고심을 한 듯하다. 하나의 축에는 저자 자신이 해부학 실습에 참여한 이야기를, 또 하나의 축에는 150년 전의 헨리 그레이와 카터의 이야기를 엇갈리게 놓고 자신의 파트너인 스티브와 함께 그들의 족적을 찾아 박물관과 도서관, 헨리 그레이가 16년 동안 근무한 런던의 세인트 조지 병원-지금은 호텔로 바뀌었다-과 그 주변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그레이 해부학』의 저자들을 되살리려고 애쓴 내용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글을 쓴 헨리 그레이 박사와 삽화를 그린 헨리 밴다이크 카터 박사를 떼놓을 수 없는 것은 이 책을 다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과다.
한 권의 책으로 시작 된 여행은 이년이 지난 후 빌 헤이스의 파트너인 스티브 번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간의 정황을 알게 되고 저자가 이 책의 출판을 앞두고 회한에 젖은 채 책의 맨 앞장에 “스티브 번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글귀를 읽었을 때 그가 저자의 오랜 파트너였으며 그의 죽음을 저자가 바로 곁에서 목도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침마다 감는 머리에서 늘 한웅큼의 머리카락이 빠져나온다. 내 몸에 붙어있을 때는 소중한 존재였는데 내 몸에서 벗어나자마자 혐오스런 형태를 띤다.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내 안에 갇혀있다 빠져나오는 것 뿐 인데 내 몸을 거치면 이렇게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이 되는 사실이 기묘하기만 하다. 이런 우리 몸이 우리의 영혼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만큼 흉측한 것이 아니라 들여다볼수록 매료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많은 의학도들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이유에는 의사들의 놀라운 노력도 한 몫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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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현실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비교적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편인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운명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 또는 소설을 극적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모티프라고 생각할 뿐 현실 속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또는 어떤 대상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해 왔다. 인연은 믿지만 운명이라는 표현은 항상 지나치게만 느껴져 왔다. 하지만 어쩌면 실제로 세상에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존재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에게 이런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책이 운명에 대해 언급되어도 개연성만 보장되면 수용하며 즐겨오던 문학 분야가 아닌 과학 관련 서적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십진분류체계로 보면 500번대에 위치하는 그런 책에서 운명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다니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학술서로 보이는 책이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은 학술서는 아니었다. 뭐라고 규정하긴 어려운데 일종의 인물 탐구 과정에 대한 기록이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 결합된 책이라고 할까?
저자 빌 헤이스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의학 분야에 대한 꿈을 꾸게 했던 책 [그레이 해부학]의 저자인 헨리 그레이에 대한 글을 쓰고자 그에 대해 조사하게 된 것이 이 책의 첫 걸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조사를 하다보니 헨리 그레이에 대해서는 성인기 이전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고 유명한 인물이지만 이 인물 그 자체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록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인물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저자를 [그레이 해부학]에 매료시킨 그림을 그린 장본인인 헨리 카터라는 화가 겸 의사의 존재였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그 인물에 대한 조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하게도 헨리 그레이와 달리 헨리 카터가 생전에 쓴 일기가 남아 있었기에 이 일기장을 통해 책을 탄생 과정과 두 저자가 만난 계기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카터의 일기장은 자세하진 않았기에 많은 것을 담고 있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충실한 기록의 흔적들이 남아있었기에 저자는 과거 두 헨리가 처음으로 만나서 책을 만들어가던 과정을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비록 온전한 기록이 아니기에 저자의 추측이 기반이 된 추적이지만 두 헨리가 어떤 성향의 인물이었는지 형상화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저자는 주로 일기장이 남아 있는 삽화가 헨리 카터의 삶을 추적하고 복원하게 된다. 글을 읽으며 저자가 조사 과정에서 이 헨리 카터라는 인물에 얼마나 빠져들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화가의 재능과 해부학자로서의 재능 양 쪽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가 얼마나 성실한 인물이었는지, 자신의 의학 화가로서의 재능을 자각한 시점이라든지 그가 얼마나 강박적일 정도로 성실하고자 한 인물이었지를 애정어린 문체로 복원시킨다.
또한 그가 종교적인 면에서 어떤 고민을 겪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가감없는 태도로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데 종교적 소수자로서 겪었을 그의 고뇌를 자신의 처지- 아무래도 동성애자인 듯 하다-에 비춰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기에 해부학이라는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시종일관 온기가 느껴진다. 본격적인 책의 탄생과정보다 카터의 고뇌와 방황을 다룰 때 글이 더 따뜻했다고 느낀 것은 나뿐이 아닐 듯 하다.
이 저자의 놀라운 점은 이 책을 준비하며 실제로 해부학 실습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해 해부학을 꾸준히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며 참여한 실습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의학생들과 함께한 해부학 실습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의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해 줄 수 있는 단계가 될 정도였으니 그의 열정과 성실성 역시 두 헨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해부학 실습의 과정이 수필처럼 진행되는 동안 해부학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느꼈을 두려움과 흥분이 그들의 땀 냄새까지 맡아질 것처럼 느껴졌고 이런 실습과정이 헨리의 일생과 교차 편집되었기에 헨리 카터의 방황과 고민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책은 어둡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필과 같은 글에는 헨리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도 함께 기술되어 있었는데 이 기술에는 그동안의 해부학 저서들에 대한 기술이 함께 되어 있기에 관련 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 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선물받았을 때 당황했다. 학창시절 생물을 좋아한 편이지만 정제되고 압축된 지식에 대한 접근이었고 그 후로는 간혹 관련 책을 볼 때는 있었지만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몸도 아프고 정신도 아픈데 골치 아플 과학책을 꼭 읽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해부학자에 대한 책이라니.... 해부학자라고 하면 검시관의 이미지가 연상되어 시체 옆에서도 햄버거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괴짜만이 연상되었기에 더더욱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나에게 의학적인 탐구심이 조금만 있었다면 당장 [그레이 해부학]을 찾아보고 싶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만큼 이 책은 사람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해부학이라는 학문에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편견도 버리게 되었다. 해부학이라는 학문도 즐거울 수 있는 학문이었구나! 어쩌면 두 헨리의 만남이 운명적이듯 [그레이 해부학]과 저자의 만남이 운명적이듯 이 책과 나의 만남도 하나의 작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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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해부학」이라는 책 제목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해부학이나 의학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터라 찾아보지는 않았다. anatomy의 뜻이 ‘해부학’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 책 「해부학자」를 읽으며 「그레이 해부학」이 얼마나 해부학 역사에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명한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 까 생각했는데 주인공 이름이 그레이 였다는 사실을 친절하게도 번역자가 해 주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꽤나 어렵고 지루한 책일 거라 지레 짐작 했다. 그런데 「그레이 해부학」을 집필하고 삽화를 그린 두 명의 친구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이야기를 그린 논픽션이었다. 주로 삽화를 그린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일기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으며 그때를 그려낸다. 저자인 빌 헤이스 또한 해부학 실습에 직접 참여하면서 150년 전 두 명의 헨리가 애쓰고 힘들게 만들어 낸 그레이 해부학 책속으로 들어간다.
![]() “헨리 그레이라는 인물에 관한 전기는 단 한 권도 없었던 것이다.” (p.15)
「그레이 해부학」이 오랜 시간 해부학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책이지만 책의 저자인 헨리 그레이와 삽화가인 헨리 밴다이크 카터에 대한 전기 및 기록은 거의 없다는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저 사진을 발견하면서 완전히 두 명의 헨리에게 빠져 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먼저, 나는 진화론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화론과는 조금 다르지만 창조주가 우주와 만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많은 책과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내가 믿는 창조론을 재확인하고 확고하게 느낄 때는 종종 경험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이었다. 의도치 않은 신비에 압도되는 경험 그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몸에서도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연이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증거를 제공하지만 내 경우에는 인간의 해부 구조가 그렇다고 보는 바이다.” “머리를 돌릴 수 있게 하는 선회축, 고관절의 구멍 안에 들어 있는 인대(ligament), 눈의 도르래 또는 활차근육(trochlear muscles)” (p.149) 인간의 손가락 관절과 유사한 로봇의 관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라와 기업과 연구소와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하지만 굉장히 간단한 관절기술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팔꿈치가 안으로만 굽혀지는 것, 눈꺼풀이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는 것. 등 작가는 해부학 실습을 실제로 하며「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참고하는데 이 책에 실린 삽화들만 봐도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진화론, 창조론 둘 다 이론이다. 어떤 이는 믿음으로 믿기도 하고 어떤 이는 믿음으로 믿지 않고 어떤 이는 과학으로 믿고 어떤 이는 과학으로 믿지 않는다. 선택은 각자가 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친구다. 친구. “나이와 종교와 출신 배경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의학과 과학에 관한 깊은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섬뜩하게도 해부에 관한 열정 또한 공유하고 있었다.” (p.161) “그레이는 감독관으로서 머리에 온통 일에 관한 생각뿐인 반면, 카터는 변덕스러운 예술가로서 뮤즈가 찾아오지 않는 까닭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p.237) “불과 1년 6개월 안에 해부학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책을 써야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속에서라면 이들 두 사람 사이에 더 많은 다툼과 창의적 갈등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p.239)
작가가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일기를 읽으며 내린 결론은 두 명의 헨리가 참 다른 면을 가진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일생의 역작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그들은 대중 해부학 서적을 내는 것이 애초 목표였다. 더군다나 시중의 해부학 책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초판이 판매되었다.) 「그레이 해부학」집필과 삽화제작을 위해 만나고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어왔지만 둘은 애초부터 참 다른 사람이었다. 헨리 그레이는 저작권을 확보해 두어 지금까지 4대에 걸쳐 저작료를 챙기고 있지만 헨리 밴다이크 카터는 단돈 150파운드로 끝났다고 한다. 나도 친구가 있다. 어릴 때는 꽤 많았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보니 숫자는 줄어들었다. 두 명의 친구가 있다. 대학 때부터 이어오는 인연들이다. 십 수 년이 지나고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들이 되었지만 여전히 만나면 애들같이 논다. 유치하게도 ‘삼합회’라는 이름도 만들어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 춥고 배고프던 대학생 시절 종종 모여 고기를 구어 먹었었다. 셋이 마음을 합해 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 해서 ‘삼합회’다. 세 명이다 다르다. 기질유형 검사 중 MBTI가 있는데 세 명의 기질이 같다고 나온다. 하지만 모이면 다 다르다. 성격부터 습관, 기질 등 모든 것이. 그래서 더 재미있다. 많은 것들을 함께 해오고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두 명의 헨리는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한 명의 일기에 의존한 추론이기에 100% 맞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했다고만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늘 한 명의 일기에 또 다른 한 명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빌 헤이스도 이 책을 집필하며 소중한 친구 스티브를 잃는다. 마흔 셋의 젊은 나이인 친구를 잃은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생뚱맞게도 나는 내 친구 두 명과 함께 아직 먼 일이기는 하지만 ‘누가 한 명 죽기 전에 책에 등장하는 두 명의 헨리나 작가와 스티브처럼 무언가를 해 놓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레이 해부학」이나 「해부학자」처럼 멋진 책을 내기에는 세 명 모두 글 실력이 없고 노래를 만들자니 작곡 실력이 없고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리뷰를 쓰며 카톡을 날렸지만 답이 없다. 이런 무심한 놈들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그냥 삼겹살이나 한 번 더 구워먹어야 겠다.
아!! 곳곳의 숨어있는 삼겹살 집을 찾아다니는 삼겹살 맛집 기행으로 여행·맛집 에세이를 써볼까~~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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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라는 제목도 그렇고 책 본문에 나와는 여러 가지 인체 사진들을 보아도 그렇고 전혀 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고 결코 난해하지만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일단 소설과 같은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1인칭 소설’ 내지는 ‘자전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저자가 연구한 내용에 근거한 팩트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헨리 그레이를 중심으로 한 여러 인물들의 내면 심리상태와 행동이나 말들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하나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표현들이 저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 전체가 결국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과정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 p.7
책의 프롤로그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문장과 그 뒤에 몇 문장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한 분야에 몰입하여 일가를 이루려고 노력을 했었는지. 저자가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저자는 <그레이 해부학>을 읽고나서 그 책의 저자 ‘헨리 그레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헨리 그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파헤치면서 본인이 직접 대학의 해부학 실습에 참여하기도 한다. 단지 눈으로 보는 참여가 아니라 메스를 들고 해부를 하기도 하는 경험을 통해 헨리 그레이를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책은 크게 1부 학생, 2부 화가, 3부 해부학자의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구분은 크게 의미없어 보인다. 책은 저자가 대학의 해부학 실습에 참여하기 위한 오리엔테이션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런 실습 참여과정을 보며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어떤 학문이나 지식도 ‘앎’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실행’으로 옮기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저자는 헨리 그레이라는 유명 해부학자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실습실에서 직접 메스까지 잡은 것이다.
저자는 <그레이 해부학>에서 인체사진을 그린 또한명의 헨리인 H.V.카터의 생애와 헨리 그레이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한다. H.V.카터는 헨리 그레이와 함께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H.V.카터는 헨리 그레이의 후배로서 헨리 그레이와 공동연구를 진행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헨리 그레이에 가려 그저 그레이 해부학에서 인체그림을 그린 사람 정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이 H.V.카터가 매일같이 작성한 일기와 주변 사람들과 교환한 편지를 보면서 헨리 그레이를 만나는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낸다.
저자가 직접 해부 실습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도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해부라는 일이 내가 직접 한다고 생각하면 ‘토나올 일‘이지만 저자는 용케도 훌륭히 수행해 낸다. 해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해부과정이 상상이 되어 속으로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피부를 벗겨내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오래된 시트지를 뜯어낼 때 나는 듯한 찢어지는 소리(p.130)로 묘사하였는데, 대략 그 과정과 소리가 상상되면서 울렁거림과 동시에 생명이 떠난 인체라는 것이 결국 생명이 없는 물질에 불과하구나 하는 허무감도 들었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모두 흥미롭고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뼈와 혈관, 장기를 비롯한 상당히 많은 인체조직에 대한 전문용어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모든 인체조직에 관한 용어들을 다 이해하고 이 책을 읽었다간 정말 의학을 전공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각 뼈의 위치라든가 장기의 기능들에 대한 설명이 언급될 때는 자세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러지 않아도 이 책이 전해주는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감동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 감동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한가지 사실을 파헤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다. 두 번째 감동은 저자의 실습과정과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 등 실존인물들의 해부연구를 통해 깨닫게 되는 인체의 소중함이다. 특히 시체와 죽음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에 대해 신비감을 갖게 되었고,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다는 ‘해부는 곧 운명’이라는 표현과, 저자가 책의 말미에 언급했던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다‘는 표현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도 배울 수 있었다. 저자가 도서관 자료를 통해 찾아낸 브로디 박사의 연설문도 인상적이다. 여러분이 비록 개업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학생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이란 끝없는 것이며, 가장 경험 많은 사람조차도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음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124 이 책의 원서 표지를 보니 정말 무시무시한 표지 디자인이었다. 궁금하신 분은 찾아보시라. 저자인 빌 헤이스가 쓴 또다른 책인 <5리터>와 <불면증과의 동침>이 2008년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되었는데 이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읽기를 마무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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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드라마 허준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의 위는 목구멍으로부터 한자 여섯 치를 내려가면 심창골과 배꼽 중간에 각 네치에 뻗쳐 있으며 위의 길이는 한자 여섯치며 꾸불꾸불한 것을 모두 펼치면 두자 여섯치이며 크기는 한 자 다섯 치요 지름이 다섯 치로서 물과 곡식 서 말 닷되를 받을 수 있고 늘 차 있는 음식물이 두말이요 …… 이것이 위의 모습입니다.” 눈으로 보는듯한 그의 답변에 좌중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허준은 스승님의 몸을 열어보았다고 답변을 하는 대목입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사람을 해부하는 것은 터부시되어왔다고 합니다. 대신 개나 돼지 등의 동물들을 해부해서 그것으로부터 사람의 모습을 짐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획기적인 책 한권이 등장하게 했는데 바로 헨리 그레이의 「그레이 해부학」입니다. 저자는 이 책이 비록 읽지는 않고 갖고 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한 권씩은 갖고 있어야 할 할 고전이라 생각을 했는데 문득 이 책의 저자에 대해 호기심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에 나타나 있는 정보는 헨리 그레이라는 저자의 이름 뿐 다른 것은 없었는데, 2008년에 출판 150주년을 맞아 40판이 출판되었고 일반인조차도 그 제목을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의학서적인데도 쓴 사람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에 놀라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통상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으로는 글의 주제에 맞는 문헌을 찾거나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많이 쓰일 것입니다. 「해부학자」의 저자인 빌 헤이스도 「그레이 해부학」의 초판본 및 여러 문헌들을 열람하고 직접 해부학 실습을 참관하면서 전문적인 해부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 해부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의 남아 있지 않다시피한 헨리 그레이에 대한 자료 대신 「그레이 해부학」의 또 다른 저자이자 3백개가 넘는 삽화를 그린 헨리 반다이크 카터의 일기와 편지를 찾아 그것을 더듬어 헨리 그레인의 행적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즉 이 책은 크게 저자가 직접 해부학 교실에서 체험한 것과 헨리 반다이크 카터가 남긴 문헌으로 헨리 그레이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이렇게 두가지 축으로 서술됩니다.
화가의 피를 이어 받은 헨리 반다이크 카터는 꼼꼼한 성격에 늘 완벽을 추구하여 복잡한 삽화를 그리기에는 접합한 인물이었는데, 인성도야의 훈련을 위해 일기를 써 그 일기가 1800년대 중반의 영국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카터는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그레이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의 해부실력도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레이와는 달리 “어쩌면 차라리 낮은 지위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고백할 만큼 그는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대조적인 삶을 산 두 사람이 멋진 책, 값 비싼 책이 아닌 과거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학생들을 위해 적당한 가격의 정확한 교재 즉 애초부터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책이 바로 「그레이 해부학」이었습니다. 당시 “그저 최상급의 칭찬이외에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설명은 놀라우리만치 명료하고, 삽화는 최근 해부를 통해 그려진 것으로 정말 완벽하다.”고 극찬을 들은 이 책으로 헨리 그레이는 아직까지 명성을 누리고 있으나 헨리 반다이크 카터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인도에서 삶을 마쳤다고 합니다.
저자는 카터를 따라 그의 행적을 되짚어가는데 들을 읽으면서 왜 부제가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작 주인공인 그레이는 카터의 일기와 편지에 등장하는 조연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4세라는 짧은 나이에 천연두로 사망하여 당시 관례에 따라 그의 소지품이 다 태워졌기 때문인지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헨리 그레이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우회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레이 해부학」의 숨은 공로자인 헨리 반다이크 카터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저자는 해부를 통해 인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고 나면, 이번에는 인체가 어떻게 고장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를 속일 수 있는지를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인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무서운 열정으로 지금까지도 쓰이는 불세출의 스테디셀러를 만들어낸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특히 “똑같은 것, 똑같은 의무를 매일 똑같은 시간에 수행하면 머지않아 유쾌한 기분을 들 것이다. (p. 376)"라고 일기장에 적어 놓을 만큼 매일 같이 저녁마다 삽화를 그리던 헨리 반다이크 카터의 모습을 말입니다. 책 중간중간에 실린 「그레이 해부학」의 세밀한 삽화들을 보면 그런 모습이 더욱 잘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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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면 해부학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에 얽힌 추억 한 토막씩은 가지고 있을 듯 합니다. 제가 해부학을 공부할 적에 <그레이 아나토미> 원서는 두툼한 두께에다 아트지로 되어 있어 무게가 4kg이 넘어 들고 다니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해부학 시간이 들어있지 않은 날에도 <그레이 아나토미>를 들고 학교에 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혹시 여학생과 미팅이 있는 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요즈음에는 의사들이 아니더라도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동명의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가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까닭일 것입니다. 시애틀의 그레이스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다섯 명의 햇병아리 의사들의 성장기를 다룬 <그레이 아나토미>를 본 기억으로는 그들 가운데 하나인 메러디스의 어머니가 유명한 외과의사 엘리스 그레이라는 이유로 병원 내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데, 저는 그때 메러디스가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사들의 업무와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시청했습니다만, 등장인물들의 사랑이야기에 끌려 시청하신 분들이 대부분일 듯합니다. 그밖에도 한국계인 산드라 오가 크리스티나 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핏줄이 당겨서일까요? 어떻거나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는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의료현장에서 실무를 익히기 시작한 인턴들의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과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의학이란 학문에 첫 번째 맞닥뜨려 넘어야 하는 거대한 산 ‘해부학’을 상징하는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제목으로 가져온 것 아닐까요?
사설이 길어진 것은 제가 한때 공부했던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공연히 친밀한 느낌이 드는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 Anatomist>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레이 해부학』에 숨겨진 미스터리’라는 카피와 함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발목과 폐 그리고 두개골의 해부도는 바로 그레이 해부학교과서에서 본 것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다시 치(?)가 떨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는 의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그레이 아나토미>책을 구입해서 그림에 빠져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의 저자를 뒤쫓게 되었다고 하는데, 막상 그레이에 관한 기록은 만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놀라게 되는 점입니다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명인사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록들이 아주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는데 유독 그레이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를 뒤쫓다가 책의 삽화를 그린 헨리 벤다이크 카터가 남긴 기록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헨리 그레이의 족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헨리 그레이의 <그레이 아나토미>는 1858년에 출간되어 의학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독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의학학술지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랜싯(The Lancet)은 지금껏 나온 세계 각국의 해부학논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격찬했으며, 카터의 삽화를 완벽하다고 평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치료하던 그레이 자신이 천연두에 감염되어 1861년 6월 12일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손님, 마마, 두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던 천연두는 치료방법이 없어 한바탕 유행한 끝에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대책이 없던 전염병이었는데, 종두법이 개발되어 지금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선언된 유일한 전염병이기도 합니다. 헨리 그레이는 종두를 맞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것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연두에 걸린 환자는 일단 격리조치를 하고 환자가 쓰던 물건을 모두 불태워 없애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조치였던 것인데, 이런 이유로 헨리 그레이에 관한 기록도 불태워 사라지고 말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가 사망한 다음에 불태워진 기록 가운데는 1858년 출간된 <그레이 아나토미>의 개정판 원고도 포함되었을 것이라 합니다. 눈 내린데 서리 내린다고 <그레이 아나토미>의 초판 원고와 삽화마저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처음 책을 출판한 영국의 출판사에 불이 났을 때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해부학자>의 저자 빌 헤이스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카터의 삶을 뒤쫓아 헨리 그레이의 삶을 엿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해부학 그림에 관심이 많은 탓인지 의과대학의 해부학교실에서 진행되는 세 차례의 해부실습에 참여한 경험을 <해부학자>를 통해서 녹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약학과, 물리치료학과 그리고 의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해부실습과정으로 각각 다른 교과과정을 통하여 실습동료들이 해부실습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처음 해부실습실에 들어섰을 때, 과정책임을 맡고 있는 서덜랜드 박사는 “(실습실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실습실 안에서 식사는 절대 엄금, 음악도 절대 엄금, 그리고 사진 찍는 것도 절대 엄금, 목소리는 최대한 낮출 것. 대신 웃는 건 얼마든지 해도 무방. (…) 하지만 우리 실습을 위해 소중한 시신을 기증하신 이 훌륭하신 분들을 바라보면서 웃는 것은 절대 엄금입니다.(28쪽)”라고 말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이나 해부학실습을 시작하는 첫날 졸도하는 학생이 있었다는 전설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부학실습을 처음 시작한 날은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탓인지 졸도까지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윗 학년 선배님들이 불러 술을 사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실습이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습실을 무겁게 내려누르던 엄숙한 분위기는 사라지더라는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땡시험을 앞두고 실습실을 개방하던 날은 스낵을 들여온 친구도 있었고, 시험을 준비하느라 해부가 진행된 시신에서 중요한 부위를 확인하느라 소란스럽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땡시험에 관한 추억 한토막입니다. 저자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땡시험은 “시험용 시체의 특정 부위마다 숫자를 적어서 핀으로 꽂아 놓고, 그 각각에 대해 문제를 내는 식의 시험(235쪽)”입니다. 시험문제를 늘어놓은 시험장에 문제 숫자에 해당되는 만큼의 수험생이 입장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시험이 시작되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제한된 시간이 되면 조교가 ‘땡’하는 소리를 내면 다음 문제로 일제히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땡’소리를 어떻게 내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쇠로 된 실습의자를 쇠막대기로 쳐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그 ‘땡’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던 생각이 납니다.
땡시험과 관련된 고백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험문제가 몇 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반에서 100명이 같이 공부했기 때문에 몇 개조로 나뉘어 시험장 밖에서 차례가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갑자기 막걸리를 먹으러 가자는 것입니다. 시험준비는 한다고 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맞는 힘든 시험인데 자신없다는 표시를 내기는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젊었을 적이니 지기 싫다는 치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닐곱 명이 학교 밖에 있는 선술집으로 몰려가 막걸리 한 되를 각자 냉면그릇에 부어 마시면서 시험시간을 기다리다가 차례가 가까워지면 순서대로 시험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저야 번호가 중간근처였기 때문에 그런대로 시험장에 들어서기는 했습니다만, 막상 시험문제를 읽고 시신에 매달린 표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답을 몇 개씩이나 반복해서 적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결국은 재시험자 명단에서 이름을 올렸던 불경스러운 추억입니다. 저자가 전하는 해부학의 역사와 의학에서 해부학이 가지는 의미들을 읽다보니, 그때의 제 행동이 해부학을 가르쳐주신 스승님들과 귀중한 신체를 기증해주신 고인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는 죄책감이 끓어오릅니다.
저자는 ‘과학으로서의 해부학은 실패한 학문’이라는 해부학에 대한 최근의 시각도 가감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어 교과서도 똑 같고, 가르치는 방식도 똑 같다는 것입니다. 해부대마다 시체를 하나씩, 그것도 똑같은 자세로 눕혀 놓고,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그 모든 부위에 대해서도 똑 같은 순서로 똑같이 외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 직접 해부를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없애는 의과대학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부학자들의 견해는 고전적인 해부학수업이 사라진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나 인체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해부학 실습을 하는 이유)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이니까요. 누군가의 ‘몸’을 내 손으로 직접 뒤적여 보는 거 말이에요. 내 두 손으로 직접 말이죠. 이건 거의 의례적인 측면이 있어요.(383쪽)” 그렇죠.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몸에 녹아있는 지식과 책에서만 읽은 지식은 실전에 임했을 때 튀어나오는 반응속도가 다른 법입니다. 제 경우는 4명이 한조가 되어 해부학 실습을 두 학기에 걸쳐 해부실습을 했습니다만, 최근에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구하지 못해서 한 구의 시신으로 전체 학생들이 해부실습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부학자>에서 의사들은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보았던 카터의 환상적인 삽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을 하신 박중서님께서 최신판 의학용어집을 인용하신 탓에 책에 등장하는 해부학용어들이 참으로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레이 아나토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서른 넷에 요절한 헨리 그레이가 쓴 초판 내용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해부학자가 내용을 보완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초판이 지금까지 내려왔다면 뒤에 설명한대로 해부학은 학문으로서 생명이 다한 분야라고 할 것이고, 후대에 보완했다면 보완한 저자는 누구인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입니다.
끝으로 인체해부가 금지되었던 중세기에 혈액의 폐순환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낸 마테오 콜롬보가 여성을 해부하여 클리토리스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아르헨티나의 페데리코 안다하시의 소설 <해부학자; Anatomista>와 인체해부가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http://blog.yes24.com/document/5381957>를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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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빌 헤이스의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의 <해부학자>의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나는 이미 그의 전작들 <5리터>와 <불면증과의 동침>을 주문해놓고 있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미스터리 소설 쯤으로 생각했던 책이다. 그리고 서문을 보았을 때는 주로 헨리 그레이가 중심이 될 거라 생각했다. 빌 헤이스가 추적한 해부학자는 주로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린 헨리 벤다이크 카터였다. 그런데 그 유명한 책 <그레이 해부학>의 부록 같은 존재일 수 있는 또 한 명의 해부학자의 삶을 쫓는 것이 오히려 더 흥미진진했다. 비록 그 책의 주인공 헨리 그레이에 대한 자료가 워낙 없고, 반면에 H. V. 카터의 경우엔 그가 남긴 일기가 충분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보인다. 하지만, 위대한 업적 뒤에서 빛나는 조명을 받지 못한 조연의 삶에 대한 조명이야말로 더 인간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었다. 바로 대체로의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는 H. V. 카터 만큼의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또한 책 뒷표지에 언급한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서평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대상은 해부학자의 삶만이 아니다. 가장 위대한 걸작품일 수 있는 ‘인체’가 바로 또 하나의 대상이다. 빌 헤이스는 해부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체를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직접 해부학 실습에 참여한다.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 왜 해부학자들의 삶이 매혹적인가를 깨닫게 되는데, 그건 인체가 그토록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숨이 끊어진 시체를 통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의 인체가 얼마나 정교하며 조화로운가를 해부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 위해서 독자들도 해부학적 기술을 충실히 따라갈 필요도 없다. 그 인체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 자신이 그걸 느끼면 되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본다. 2. <벌거벗은 유전자>나 조너던 와이너의 여러 과학서적 (<초파리>, <과학, 죽음을 죽이다>, <핀치의 부리>, )에서와 같은 미국 전형적인 과학 글쓰기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즉, 과학적 사실(여기서는 두 해부학자를 추적한다)과 개인적인 경험(여기서 빌 헤이스는 스스로 해부학 실습을 자청해서 직접 해부를 한다)을 서로 엇갈려놓는 방식이 그것이다. 또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전통에서는 찾기 힘든 교양 과학 저술 방식이다.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기 위해선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충분한 연구자가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일로도 충분히 생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으리란 것은 짐작만 하지만 거의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교양 과학 도서는 논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재미는 반감되고... 아무튼 부럽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교양 과학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건 그런 정도의 풍토가 마련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과학 수준이 이미 한참을 올라와 있을 테니까 더욱 반가운 일일 것이다. 3.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가 즉 <그레이 해부학>을 패러디한 제목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레이 해부학>이란 책도 몰랐었고, 그게 그토록 유명한 책이란 것도 몰랐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해부학 교수님께 여쭤보니 한참을 얘기하신다. 우리의, 아니 나의 교양이란 것이 이런 수준이다. 깊지도 못한데 넓기도 힘들다. 세상에 알아야할 것이 많은 게 아니라, 알아야 할 것, 또는 알고 싶은 것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잘 모른다. 딱 그 수준이다. (2012.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