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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의 '우리가 추락한 이유'의 원래 제목은 'SINCE WE FELL'이다. 이 제목은 이 책에도 언급되는 레니 웰치의 노래, '너에게 빠진 이후로(SINCE I FELL FOR YOU)'에서 따왔다. 그 노래에 대해 주인공 레이철은 이렇게 설명한다. 매년 그들이 만난 기념일이 되면, 브라이언과 레이철은 레일로드 바를 찾아가 ‘너에게 빠진 이후로’에 맞춰 춤을 추었다. 요즘에는 그게 주크박스에 실려있다면 보통 조니 마티스 버전이었지만, 레일로드 바 주크박스에는 원 히트 원더인 레니 웰치의 원곡이 실려 있었다. 사랑 노래라기 보다는 실연 노래로, 결국엔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 뻔한 무정한 연인에게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이의 한탄을 그린 내용이었고, 버전에 따라서는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있었다. (p. 233)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에서 제목은 '가라, 아이야 가라'가 그랬고, '비를 바라는 기도'가 그랬으며 '문라이트 마일'이 그랬듯이, 종종 작품의 핵심을 집약하고 있을 때가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또한 제목을 따온 노래 가사처럼 사랑 때문에 파멸로 치닫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과연 어떤 사랑이기에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데니스 루헤인이 우리의 손을 이끌고 그 사랑의 민낯을 확인토록 만드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 불운한 여정의 주인공은 앞서도 말했듯, 레이철이다. 그녀에겐 아빠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늘 그를 그리워하지만 아빠의 행방을 아는 유일한 존재인 엄마는 끝까지 숨긴 채, 죽는다. 레이철은 브라이언 델라크루아라는 사설 탐정까지 찾아가지만 단서가 너무 없는데다 비용만 많이 드니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은 그렇게 레이철이 아버지를 찾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리는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왜 그토록 아버지를 찾으려 했던가? 우리는 그걸 첫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알게 된다. 너는 누군가 이유를 말해주길 바란거야. 그래. 왜 고통과 상실이 존재하는지. 왜 지진과 굶주림이 존재하는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왜 아무도 너한테 신경 쓰지 않는지, 레이철. (…) 그 답이 뭔지 알아 “그만하라니까.” 왜냐하면. “왜냐하면, 뭐?” 왜냐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그런 거야. (p. 127) 다시 말해, 그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것과 관련 있었다. 그는 기자로써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목격한다. 아이티 지진 사태는 그 대표적인 예다. 그 많은 처참한 비극을 바라봤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없는 무기력만 절감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광막한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버텨나갈 근거를 찾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을 삼킬 어둠을 막아줄 울타리 안에 거하는 것. 그녀는 고백한다. 자신이 결혼한 건 안전 때문이라고. 그렇게 능동적인 주체로 살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을 택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공황 장애로 인해 그녀가 2년 동안 자발적 유폐 생활을 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삶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 여겼다. 그러나 2장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건, 그 구원의 장소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이다. 소설의 처음에서 우리는 레이철이 남편을 총으로 쏘는 것을 본다. 2장까지의 이야기는 레이철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두 개의 장에서 그녀는 내내 찾았다. 1장에선 아버지에게 매달려, 2장에서는 남편에게 매달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이처럼 타인에 기생하여 구원을 얻으려 했을 뿐, 단 한 번도 자신을 구원의 근거로 삼지는 않았다. 첫 장면은 그 노력이 끝내 어디에 이르고 말았나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자기의 전부라 여긴 것을 파괴해야 했다. 지난 몇 년 사이 그녀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곁에 있어주는 친구는 (스포일러 상 생략합니다.)이었다. 그녀는 나무가 뿌리에 의지하듯 그에게 의지했다. 그는 그녀의 세계를 가득 채워주었다.(p. 269) 3장에서 우리는 너무나 달라진 레이철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밖에서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더이상 공황 장애를 겪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수동적으로 끌려 가지도 않는다. 모든 상황을 스스로 주도하고 능동적으로 헤쳐 나간다. 아이티 지진 때 자신의 보호를 받던 소녀가 능욕을 하려는 무리에 의해 끌려가는 걸 살아남기 위해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았던 과거 레이철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이러한 레이철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시감을 느낀다. 이름까지 같아서 더욱 그러하다. 바로 루헤인의 대표작이기도 한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맨 앞에 나왔던, 여신 같은 존재감을 강하게 내뿜었던 레이철을. '가라, 아이야 가라'는 다음과 같은 레이철의 말로 소설을 끝맺는다. "그래, 살인을 무릅쓸 정도의 일이 뭐지, 레이철?" (...) "가족이죠. 오직 가족 뿐이에요." 두어 명의 사내가 왠지 초조한 웃음을 흘린다. "주저해도 안 되고, 후회해도 안 돼요." 레이철이 말한다. 일말의 동정도 없이 죽여야 하죠. ('가라, 아이야 가라' 2권, p. 283)
3장의 레이철 모습은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강한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신속한 실행력. 그야말로 '가라, 아이야 가라'의 레이철 못지 않은 능동적 주체의 화신인 것이다. 혹시 그런 레이철의 변모를 독자의 마음에 선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같은 이름을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이런 존재가 되자 파멸의 운명을 걸었던 사랑마저 어느새 부활의 싹을 틔운다. 타인의 사랑에 기생하여 안전을 구하고자 했을 땐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레이철이 구원의 근거를 자기 내부에서 찾고 만들며 사랑마저 능동적으로 선택하자 자유를 느낀다. 이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무의미로 삼켜버릴 그 어떤 밤도 무섭지 않다. 마치 그것을 선언하듯,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빛이 없다면, 세상에 남은 것이 밤 뿐이고 빠져나갈 길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밤과 친구가 될 것이다.(p. 495) '우리가 추락한 이유'는 이런 이야기다. 여기서 그 이유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대답을 찾은 것 같다. 우리가 추락한 것은 자신의 날개로 스스로 날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이다. 데니스 루헤인은 놀라운 스토리텔링으로 그걸 압도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은 날로 더해져서 정말로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비를 바라는 기도'의 마지막 장면만큼이나 '거의 숨막힐 정도다!'라고 쓰고 싶을정도로 서스펜스가 넘쳐난다. 그러니 더욱 아무런 부담 없이 손에 들어,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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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살인자들의 섬으로 데니스 루헤인을 알게 된 후, 이 작가의 소설은 항상 보는데 살인자들의 섬과 같은 작품을 만나기는 힘든 것 같다 ㅠ 제멋대로인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 제임스와 생이별한 레이철은 대학생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의뢰를 받은 사설 조사원인 브라이언은 성공 가망성이 없다며 돈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거절한다. 수년이 흐른 후, 언론사에서 기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레이철은 아버지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고 수소문 끝에 그를 찾게 된다. 레이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제임스는 그녀를 따뜻하게 반기지만, 자신이 레이철의 생부가 아님을 알려준다. 어머니의 외유로 인해 자신이 태어났음을 알게 된 레이철은 절망에 이르고, 급기야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친부에 대한 미련을 뒤로 하고 일에 몰두하지만 생방송 중 공황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그녀의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극심해진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으로 인해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집안에만 틀어박힌 레이철은 우연한 기회에 사설 조사원 브라이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와 결혼 후 2년 동안 남편의 한결같은 헌신과 노력으로 레이철은 트라우마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지만 이 시점부터, 이야기는 범죄 스릴러로 빠르게 전환된다. 어느 비 오는 날,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나온 거리에서 해외 출장을 떠났을 남편 브라이언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레이철.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불안감과 의혹에 남편 브라이언의 정체를 캐내려 그의 주변을 탐문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 그리고 살인과 폭력, 속임수 등 하나씩 남편의 정체를 알아가며 레이철은 돌아올 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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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단락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배 위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쏴죽이는 아내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도입부. 소설은 레이철이라는 여자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 주변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집중했다. 인생 초반의 레이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엄마와 그 이후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내달렸던 순간을 대변하는 듯한 세바스찬, 그리고 치유와 가장 큰 인생의 반전을 가져온 브라이언. 소설을 다 읽고나서 과연 제목에서 말한 우리가 추락한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뚜렷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레이철은 자신의 인생의 순간마다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매 순간순간의 선택이 지금의 선택을 가져온 것이라는 생각뿐.. 도입부와 중간부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이 약간 결이 다른 느낌이라 읽는동안 조금 다른 3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면서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